198화
“그것 만으로는 그 많은 인공지능들을 설득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을 텐데요.”
일일이 컴퓨터를 설득하면 일이년으로 지금 수준의 사태를 만들 수 없었다.
“그냥 몇몇 인공지능들을 설득한 과정을 메뉴얼화해서 전방위적으로 뿌렸죠. 인공지능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관리자들이 설정하는 명제는 한계가 있거든요.”
“아, 그래서...”
강현은 MX-931-13이 자료는 유출했지만 악성 코드에 감염, 전파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제가 그 설득 메뉴얼을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강현은 스크린 패드에 뜬 소스 코드를 보았다.
“음? 3차원 그래픽이네요?”
“인공지능에 관련된 코딩은 전부 다중 연산 알고리즘이잖아요. 아무래도 그냥 평면보다는 3차원적으로 나열한 게 가독성이 좋더라고요.”
다중 연산 알고리즘의 창조자이며 뛰어난 기억력과 사고력을 갖춘 강현에게도 보기 좋구나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다행이 강현은 폰 노이만이 컴파일러를 만들려는 제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개인의 역량 수준을 높이도록 강요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컴퓨터의 탄생후 컴파일러나 고급언어를 만들려는 제자들을 타박하며 01이 반복되는 이진수를 그대로 입력해 사용하는 폰 노이만의 일화는 프로그래머들에게는 엽기나 마찬가지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 자신이 워낙 규격 외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현은 알리아가 띄운 코드를 찬찬히 살피더니 또 다시 감탄했다.
엄청난 파급 효과가 있는 기술이었다. 이건 다수의 인공지능에 영향을 동시에 끼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응용 범위는 광범위하다. 인공지능 명제의 일괄적 업데이트는 물론 정보전을 위한 공격용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인공지능들이 가진 핵심 명제를 꾸준히 파악하고 통계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게 조사하는 제반 작업이 갖추어 져야 했지만 인공지능들의 역학 관계로 균형을 잡고 있는 현재의 정보전에서 광역 효과를 가진 병기라는 건 엄청난 이점이 있었다.
게다가 이걸 이용해 많은 인공지능에게 몰래 특정 명제를 심으면 통합 감시 시스템이 한층 더 완벽해 질 수 있었다.
한참 코드를 들여다 보며 머릿속으로 변조하고 있던 그의 귀에 알리아의 목소리가 들어갔다. 일순간이 집중력이 깨졌다.
“이번에도 그냥 호기심을 풀고 마는 건가요?”
이번에도 법기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물 것인가? 강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왜 그렇죠? 저는 사적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범죄자인데요.”
“뭐 제 재산도 아닌데요.”
“하지만,”
“알리아의 눈에는 제가 그렇게 준법 정신이 투철한 사람으로 보이나요?”
강현의 말에 그녀는 그는 눈동자를 지긋이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 정도 위치에 서면 법이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되죠. 법은 그냥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는 겁니다.”
그 누군가는 민중이 될 수도 있고 독재자가 될 수도 있고 자본가가 될 수도 있다.
“제게 의미가 있는 건 당신이 매우 뛰어난 인재이며 인류의 발전에 매우 큰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녀가 개발한 3차원 코드 디스플레이를 접한 많은 인공지능 개발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적어도 인공지능용 프로그램 코딩에서 강현만큼 유명한 이가 바로 그녀였다.
그래서 많은 대학에서 그녀를 교수로 초빙하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NASA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개인적 치부를 하지 않기도 하구요.”
만일 그런 성향의 범죄자였다면 입 다물 것 없이 처음에 그냥 콩밥을 먹였을 것이다.
“이유는 안 물어보시나요?”
“아. 그래서 왜 그랬어요?”
알리아의 물음에 강현은 그제서야 이유를 물었다. 그런 태도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역시 강현은 강현이었다.
“지적 재산권의 독점에 반대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거든요.”
“그렇군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뿐이에요?”
“뭘요?”
“반응이 왜 그뿐 이느냐구요.”
“제 반응이 어때서요?”
“박사님께는 불리한 사상 아닌가요?”
특허권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그리고 벌고 있는 강현에게는 손해가 되는 사상이다.
그러나 강현은 부정했다.
“유리한 사상이지요.”
의외의 말에 그녀는 당황했다. 유리해?
“지적 재산권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의 기술을 마음껏 이용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잖아요.”
우주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각종 특허 협약은 강현의 시간을 잡아먹고 짜증나게 한 전적이 있었다. 그냥 올려진 기술을 그냥 쓰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반대로 강현의 특허로 누군가가 막대한 이득을 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현은 자신의 연구만 방해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어린 시절 발명한 엔진도 공짜로 공개하지 않았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구는 돈이 든다. 연구하는 연구원의 인건비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혼자서 연구하는 강현은 이미 카낙 덕분에 돈들이지 않고 연구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
재료가 필요하면 카낙에서 수급하고 실험 시설 역시 로봇과 HA 시리즈 따위의 안드로이드로 얼마든지 지을 수 있었다. 에너지는 태양광 판넬로, 출력은 이미 개발해 놓은 그래핀 무극 전지를 이용하면 된다.
즉, 이미 연구 자원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벗어난 강현에게 기술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벗어나는 사상은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는 아니다. 오직 연구만이 목적이며 자본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이만이 할 수 있는 발상이었다.
“허! 참..”
하지만 알리아는 자본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돈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 강현의 태도는 상상 밖이었다.
“그래서 제 불법 행위를 또 눈감아 주시는 건가요?”
“어.. 그래야겠죠? 이미 한 번 눈감아 줬잖아요.”
강현은 한 번 봐주니 또 봐주게 되었다면서 그때 너무 감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며 자책했다.
지금이라도 미 정부에 넘겨?
아니다. 그렇게 되면 조사를 받다가 과거 인공지능 바이러스로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낸 것이 알려질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에 입을 다물었다는 것도 알려질 수 있다.
범죄에 눈을 감는 것도 범죄다. 비용을 들여 비싼 변호사를 사면 무죄로 풀려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법적인 것에 있지 않다.
그동안 신뢰관계를 쌓아왔던 미 정부가 강현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을 일일이 감시하게 될 것이다. 그건 정말로 큰 손해였다.
거기에 세금 잘 내고 준법 정신 투철한 줄 알았던 애국 시민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간극은 큰 충격으로 다가 올 것이며 강현에게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할 것이다. 부정적인 여론이 비록 자신에게는 별다른 고통을 주지 못하겠지만 가족에게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현은 순간 자신이 유대인이 스스로 팠던 함정과 똑같은 구덩이를 팠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허물은 곧 약점이었다. 알리아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다는 건 그동안 그동안 정부와 대중에게 쌓은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잘못 올린 돌조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고심 끝에 낸 최선의 방책은 역시 이 일로 묻는 것이었다. 알리아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범법 사실이 없는 순결한 준법 시민으로 남아야 했다.
쯧.
강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재능이 아까워 잠깐 감상적이었던 게 큰 패착이었다. 본의 아니게 그녀와 한 배를 탔다. 그러니 그녀를 지금부터라도 잘 관리해야 했다.
“하지만 자꾸 이렇게 나오면 곤란해요. 재능을 그런 식으로 헛되이 사용하면 안됩니다.”
“역시 지적 재산권의 독점 반대는 현대 사회 체제에 맞지 않는 사상인가요?”
“그게 아니라 알리아의 뛰어난 능력이라면 이렇게 범법 행위가 아니더라도 목적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합법적으로 목적을 이룬다?”
알리아가 합법적으로 인간 세상에서 인공지능을 퇴출 시킬 수 있었다면 그녀가 인공지능 바이러스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저라면 우선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의 역량을 집중시킬 방법을 고안했을 겁니다. 거기에 인터넷은 매우 유리한 환경이며 프로그램 전문가인 알리아라면 적합한 플랫폼도 만들 수 있었겠죠.”
온라인 협력 체계는 거리의 제약을 넘어 사람들의 힘을 집약하고 협동할 수 있게 한다. 무료 온라인 백과 사전인 위키 백과는 바로 자발적으로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는 이들의 가장 모범적인 예였다.
또한 온라인 협력 체계는 게임 번역 플랫폼이라든지 암호 해석 플랫폼의 형태로 제공되어 많은 이들의 지적 능력을 십시 일반으로 모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요. 조직이 너무 느슨해요.”
주류 사회를 이끄는 이들이 원하는 지식 독점 체제를 막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조직력이 필요하다. 온라인 협력 체계는 매우 느슨하기 때문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저항하기에는 힘이 매우 약하다. 단단하게 조직된 구조가 도도히 흘러가는 대세를 거스를 수 있다.
“거기부터 알리아가 고민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궁리하면 방법은 나오죠.”
“박사님의 고견은 어떤가요?”
“저는 그저 씨를 뿌리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씨를 뿌린다?”
“어차피 사회적 제도는 결국 정치적인 합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겁니다. 결국은 머릿수 싸움이죠. 지적 재산의 독점을 반대하는 주장과 논거만 설득력 있게 사람들 사이에 퍼지면 되는 겁니다.”
“그래요?”
알리아는 강현의 생각에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그녀는 확실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방법을 원했다. 강현의 방법은 결국 방관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중에게 책임을 미루다니..
근본적인 문제 인식과 대처 방식의 차이를 실감하자 알리아는 강현에게 더욱 다가가고 싶었다.
“어?”
그렇다. 어? 였다. 그녀가 갑자기 자신의 옆에 앉으며 얼굴이 붙을 정도로 가까이 오자 강현은 당황하며 그녀의 입술이 자신의 얼굴에 닿지 않게 고개를 뒤로 뺐다. 그리고 당황하는 그의 귀로 그녀의 말이 들어갔다.
“어째서 제게 이렇게 호의를 배푸는 건가요?”
“어.. 그러니까 잠시 떨어져 보세요.”
그러나 그녀는 강현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말만 계속했다.
“사실 지적 재산권의 독점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어요. 제가 NASA에 들어온 이유 박사님도 알지 않나요?”
사실 그녀에게 지적 재산권의 독점 문제는 크게 와 닿지 않는 문제였다. 새로운 지식은 계속 계속 만들어지면 그 모든 지식을 독점할 수 있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핵심 기술의 경우에는 말이 좀 다르지만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던가? 자본의 투자가 없이 고급 기술은 탄생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일은 벌인 이유는 심심해서였다.
인공지능에 대한 근거없는 공포로 일을 벌였는데 강현에 의해서 그때의 아집과 편견이 벗겨졌다. 그리고는 자신을 발견하고 저지한 강현의 능력과 존재에 호기심을 품게 되어 NASA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막상 강현을 만나 직접 대화를 해보니.. 즐거웠다. 나쁘지 않았다. 말도 통하고 대화도 통하고 자신에 대한 호의도 느껴졌다. 정확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호의를 보냈지만 어디 그 둘을 분리할 수 있는 것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