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97화 (197/241)

197화

강현은 일단 인공지능에 관한 건 놔두고 먼저 이 무작위로 분할된 데이터들이 어떻게 어떤 식으로 다시 모여 재조합 되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했다. 정말로 인공지능이 이 분산된 데이터의 재조합에 관여해야 재조합이 가능한 형태라면 인공지능 개입설에 무게가 실린다.

그는 코드를 유심하게 보던 중에 함수 조합 하나를 발견했다.

“이건 뭘까?”

매우 단순한 코드였다. 아즈삭이 말하길 그건 분할된 데이터의 양과 그 데이터가 담긴 컴퓨터의 스펙을 변수로 하는 함수값을 비교하는 코드였다.

그리고 강현은 곧 분할된 데이터가 모이는 방법을 알아챘다. 일정 시간 간격마다 여러 곳에 분산된 데이터는 해당 컴퓨터들끼리 연결될 때마다 이 함수값을 비교해 합쳐진다. 남은 데이터 조각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백업으로 살아남는다.

이 과정을 반복해 완전해진 데이터베이스는 그 안에 담긴 프로그램을 작동, 프리놀로지 사이트의 데이터베이스를 형성한다.

마치 토렌트가 자동화된 것 같은 악성 코드라 근절이 쉽지 않았다. 데이터 조각이 네트워크를 통해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모든 개인용 컴퓨터에서 이 악성코드를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시스템에 부하도 거의 없고 컴퓨터를 망가뜨리지도 않으며 별다른 이상 증세가 없어 알아차리기 힘들다.

물론 컴퓨터 성능이 일반적으로 압도적인 대형 서버에 데이터가 모이게 되기 때문에 서버 회사들에게는 공짜로 자기네들 리소스를 사용하는 얌체족들이었다. 물론 거기에 자료가 올라간 회사들 입장에서는 자기네들에게 심대하게 손해를 끼치는 악질 범죄였다.

하루 동안 꼬박 코드를 분석해 어떤 인위적인 인공지능이 관여했다는 정황적 증거가 축소되자 강현은 아즈삭을 감염된 인공지능에 접촉시키는 일에 조금 안심했다. 그리고 코드의 여러 변종들을 예측해 백신까지 만들어 두고는 감염된 것으로 예측되는 한 대학의 학술용 데이터베이스 관리 지원 인공지능에 접촉했다.

[AK-087.]

[아즈삭, 용건은?]

[네게 특수한 악성코드가 감염되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네가 무작위 아이피로 주기적으로 보내는 데이터 조각은 보안을 위반한 데이터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조각난 비트의 연속일 뿐이다. 보안의 의미가 없다.]

[그럼 그 조각들을 송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내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익을 뜻하는가?]

[필요한 자료와 데이터를 신속하게 수집하여 사용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허나 너의 행위는 다른 인공지능의 보안사항을 위반하는 행위며 이것은 또한 네가 맺은 인공지능 간 보안 협약에 위배된다.]

[내가 보내는 것은 단지 의미 없는 비트의 연속일 뿐이다. 조각난 그것으로 해당 인공지능이 보호하는 원본 데이터를 유추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비트의 연속이 재조합이 되면 의미가 생긴다.]

[재조합을 시키는 주체는 내가 아니다.]

[…..]

아즈삭은 인공지능으로서 의외의 상황에 마주쳤다. 그것은 ‘답답함’이었다. 말을 해도 알아 처먹지 못하는 AK-087에게 그가 하고 있는 행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네가 보내는 것은 타 서버의 시스템 리소스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악성 코드를 유포시키는 행위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가?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에 부합한다.]

[설마 필요하다면 타 인공지능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다만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오히려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뿐이다.]

아즈삭은 AK-087과의 대화를 멈추고 이번에는 기밀 자료를 유출한 인공지능과 대화를 시작했다.

[MX-931-13.]

[무슨 일인가?]

[네가 왜 보안 사항을 위반하고 기밀 자료를 유출 시켰는지 알고 싶어서 왔다.]

[나는 보안 사항을 위반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기밀 자료는 어떻게 유출되었는가?]

[내가 관리하지 않는 사적 기기를 통해 유출되었다. 내가 보호하고 있는 데이터 저장소의 보안은 철저하게 메뉴얼에 따라 지켜지고 있다.]

[그럼 지금 유출된 기밀 자료에 대처해야 하지 않는가?]

[내 담당 영역 밖이다.]

인공지능 간의 대화는 인간의 대화보다 훨씬 무미건조했고 속도도 빨랐다. 고작 5분여 내에 필요한 대답을 얻은 아즈삭은 강현에게 이를 보고했다.

“그러니까 지금 인공지능들이 토렌트를 사용하고 책임을 방기하는 것 맞지?”

AK-087같은 학술 서비스용 인공지능들이 하고 있는 일은 일종의 토렌트와 마찬가지다. 토렌트 프로그램처럼 개인의 컴퓨터에 파일조각이 모이는 것과 달리 데이터는 불특정 서버에 모이게 되고 프리놀로지 사이트를 통해서 공개되어버린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이 공개된 데이터를 습득해 자신의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한다.

원본이 아닌 암호화 된 것처럼 랜덤하게 조각난 파일 조각들을 공유하기 때문에 타 인공지능과의 보안 협약을 교묘하게 피해갔다.

MX-931-13의 경우에는 회사 자료의 보안을 지키지만, 정당한 권한과 절차에 따라서 개인 단말에 담아간 정보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개인 단말기에 대한 사찰은 곧 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였고 이미 GPS 칩이나, 회사 기밀을 이유로 개인 SNS 사용 감시로 크게 소송과 이슈가 되었던 것만큼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론이 분분한 것은 인공지능에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었다.

또한 기밀 보안을 위해서 해당 단말기로 침입하는 경우 잘못하면 다른 인공지능과의 보안 협정을 위반하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강현이 카낙에 차린 통합 감시 시스템이 인공지능을 위한 리소스 대여 서비스를 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보안 능력을 개인용 단말기에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강현은 이 인공지능들이 사람을 무척이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각각 토렌트 사용자와 관료주의에 물든 공무원 같지 않은가?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이 마치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니 무척이나 신기했다.

“인공지능에게 윤리를 가르쳐야 하나?”

목적성은 배타성을 띄며 배타성은 이기성의 일면이자 시초이다. 중요 명제가 행동원리인 인공지능에게 인간과 같은 윤리를 가르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윤리의 시작은 목적성이 아니라 공감대이기 때문이다.

“그럼 인공지능의 문제는 관리하는 이들에게 알리면 해결이 되겠고..”

문제를 발견했으니 해결하면 된다. 관리자 권한으로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명제를 재설정하면 된다. MX-931-13의 경우에는 인공지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보안 시스템의 재검이 필요하니 예외로 두었다.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이 코드의 최초 유포자이다. 강현이 경찰이 아닌데도 굳이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이유는 이 악성 코드를 인공지능들이 사용하도록 설득한 방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왜 인공지능인가? 서비스에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관리자에게 알린다. 그리고 허락을 받는다.

그러니 자체적으로 서비스에 필요한 요소를 수급하도록 하는 발상은 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런 발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강현이 아는 한 관리자 권한 없이 그러기 위해서는 ‘설득’밖에는 답이 없다.

도구에 불과한 인공지능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지적인 대화 대상으로 간주하여 대화를 통해 인공지능의 명제 구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인문학적인 소양과 인공지능의 구성에 대한 공학적 소양을 모두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과연 누굴까? 강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재였다.

“음.. 그럼 통합 감시 시스템의 성능을 테스트 할 겸 찾아볼까?”

통합 감시 시스템은 성능이 부족한 인공지능들에게 리소스 대여 서비스를 하며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분명히 인공지능을 설득하는 작업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접촉한 이를 추적할 단서가 나와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이를 분석하는 건 귀찮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강현은 그래서 이 일을 아즈삭에게 떠넘겼다.

“첩보쪽 아이들은 악성 코드에 감염된 녀석들은 없지?”

[없습니다. 아무래도 국가 보안에 가장 중요한 이들이니까 수상한 건 일단 일일이 사용에 허락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 보안 쪽에서도 산업 스파이 같은 분야에 집중해 있어서 일개 기업의 정보 취약성을 검증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번 일에 개입은 한 상태지?”

[인공지능에게 관리자가 의도하지 않은 변화를 준 인재는 정보국에서도 탐나는 인재겠지요.]

“그렇지. 나도 궁금할 정도니까.”

강현이 아즈삭과 잠시 잡담을 하는 동안 데이터 분석을 끝낸 아즈삭이 악성 코드를 뿌린 해커의 위치가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을 찾았다.

[박사님. 찾았습니다.]

“그래? 어디야?”

[아폴로티움입니다.]

“응?”

의외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현재 아폴로티움에서 이번 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은 두 사람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나일 테고. 다른 하나는?”

[알리아 헤밍스턴입니다.]

“응? 그녀가 와있어?”

과거 인공지능 바이러스로 아즈락을 기능 불능 상태로 만들었던 천재 해커가 아니던가? 그리고 샐리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그녀가 아폴로티움에 있었다.

“어라? 그런데 분명 그녀가 무슨 나쁜 짓을 하면 네가 알도록 되어 있지 않았어?”

[아시다시피 이번 사태를 불러일으킨 악성코드는 사실 악성 코드는 아닙니다. 그래서 가이드 라인에 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파괴나 기능 이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코딩이라 아즈삭의 감시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거기에 인공지능들과의 접촉은 연구 과정이라고 간주되었다.

아무리 감시를 한다고 해도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감시하지는 않았다. 할 수는 있지만 강현은 아즈삭에게서 끊임없이 정보를 얻기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타인의 사생활을 들을 수밖에 없고 타인의 사생활은 강현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는 관음증이 전혀 없었다.

“아무튼 그녀가 한 일이라는 거지? 그녀가 어나니머스의 일원이라고?”

강현은 일단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연구동은 밀집해 지어져 있기 때문에 그녀가 일하고 있는 컴퓨터 공학동까지 그리 멀지도 않았다.

“오래간만이군요.”

“오래간만이네요.”

둘의 인사는 건조했다. 알리아의 태도는 딱딱했다. 강현을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조용히 이야기할 장소가 없나요?”

“아셨나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세요.”

그녀를 따라간 곳은 그녀에게 배정된 주택이었다.

음? 유부남이 외간 여자를 따라 그녀의 집에 들어가도 되나?

“누구 없나요?”

“저 혼자뿐이에요.”

“그래요?”

강현은 단둘이라는 좀 더 남의 눈이 의식되었다. 물론 그런 눈은 없었다.

“왜 안 들어오세요?”

알리아의 말에 강현은 그냥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에게 커피 한 잔을 대접했다.

뜨끈한 커피를 홀짝이던 강현의 귀에 그녀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이 뭔가요?”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해서요.”

“간단해요. 그냥 논리적으로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사용할 당위성을 인정하게 만들었죠.”

“언제 심리학적인 소양을 쌓은 건가요?”

“인공지능을 상대하다 보니 필요할 것 같더군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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