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자원이 부족할까?”
[축적된 자원은 있지만 우주 도시에 사용되고 있는 자원이 너무 편중되어 있습니다. 당분간 철이나 구리 RP의 가격은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하긴. 지금 실리콘은 쌓이고 있지?”
[반도체 원료로 사용이 가능하지만 생산량에 비해서 수요가 너무 적습니다. 그리고 지구로 내려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카낙에서 태양광 판넬을 자체 제작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대기가 없어 감쇠가 일어나지 않는 태양빛이다. 지표면에서보다 훨씬 높은 전력을 무한대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태양광 판넬이다. 앞으로 우주 진출 시대에 적어도 태양계 내에서 태양광 판넬은 수요가 멈추지 않는 품목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현의 무한의 공유지 전략에서 태양광 판넬 제작의 완전 자동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고 이미 계획에 예정되어있던 일이었다.
“흐음. 태양광 판넬이라.. 카낙에서 완전 자동화로 제작을 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박사님의 역할이 아니겠습니까?]
아즈삭의 대꾸에 강현은 쿡하고 웃고는 역시 아즈삭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카낙에서 태양광 패널을 완전 자동화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기로 했다. 무수히 많은 지구의 태양광 패널 제작 업체의 몰락은 예정된 수순이겠지만 수요가 무한대인 우주에서 사용할 태양광 패널을 지구로 내려 보낼 생각이 없기 때문에 지구의 환경에 맞추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가진 기업은 살아남을 것이다.
강현은 일단 카낙에서 실리콘이 남아 돌기 때문에 일단 실리콘 반도체 태양광 전지 기술을 탐색했다. 태양전지의 기술은 간단히 설명하면 물질 속의 전자가 광자를 받아 들뜬 상태가 되어 정공(+전하)-전자(-전하)를 만들어 내는데 이를 분리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기술이다.
가장 오래된 방법은 실리콘 반도체의 PN-접합을 이용하는 것으로 정공을 받아들이는 P형 반도체와 전자를 받아들이는 N형 반도체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이 PN접합을 이용한 태양전지는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효율성과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서 다양한 기술들이 나왔다. 태양광 흡수 효율을 좋게 하기 위한 반사 방지 코팅이나 표면 처리 기술은 물론 근본적으로 태양전지가 생산하는 전위차를 높이기 위한 방법과 내부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법까지 다양한 형태로 연구 되었다.
그중 하나가 비정질 실리콘과 결정질 실리콘의 헤테로 접합을 이용한 방법으로, 똑같은 실리콘이라고 하더라도 비정질과 결정질 사이의 밴드갭 구조 차이를 이용해 태양광에 의해 들뜬 전자와 정공을 분리하는 방법이다. 이는 플라즈마 제련 장치에 의해 비정질 실리콘 덩어리가 생산되는 카낙 소행성 공장에 적절한 방법이었다.
강현은 여러 방향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카낙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의 기술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
실리콘 위에 가느다란 망 형태의 은 전극을 올릴까, 아니면 금속 박막위에 실리콘을 올릴까, 아니면 투명 전극 위에다가 실리콘을 올릴까?
다양한 기법을 탐색해 진공, 무중력 환경에서 쓸만한 기술이 있는지 확인했다. 솔직히 실리콘 기반의 태양 전지 기술은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어서 이젠 양산을 위한 기술 개발이나 그래핀들을 이용한 신소재 태양 전지 기술 개발 분야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쩝. 무료는 무리겠네.”
하지만 적어도 제작에 필요한 기술들을 연구한 이들에게 로열티를 지불하기 위해서 완전히 공짜로 태양열 판넬을 공급할 수는 없었다. 완전 공짜보다 시장에 충격은 덜하겠지만 그래도 우주용 태양전지 판넬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할 수 밖에 없는 건 수순이었다.
아직 카낙 공장에 대량 생산에 필요한 설비가 완성되지 않아서 당장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자동화 된 카낙 공장이 충분히 설비를 갖추게 되면 일어나게 될 일이었다.
“흐음. 적당한 방법은 찾았는데.. 문제점이 있네.”
강현이 구상한 방법은 금속판 위에 실리콘을 올리고 표면 처리 및 도핑을 해서 반도체로 만든 이후에 그 위에 투명 전극을 올리는 방법이었다. 투명 전극을 올린 후에는 강력한 우주선이나 태양풍, 자외선 등으로부터 태양전지의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유리같은 투명한 물질로 겉을 덮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세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둘은 투명전극으로 사용할 재료와 그걸 실리콘 위에 올리는 문제, 하나는 유리를 다시 그 투명전극 위에 올리는 문제였다.
투명전극으로 주로 사용되는 물질은 산화인듐을 도핑처리한 물질이다. 주로 TCO나 ITO라고 불린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인듐이라는 물질은 지각 존재비가 매우 적은 희귀 금속이다. 희귀한 데다가 LED 디스플레이에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정련한 인듐 100g이 천 달러에 육박하며 전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중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뉴스에서 말하는 희토류 자원 중 리튬에 못지 않게 수요가 있는 원소가 바로 이 인듐인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인듐이 대량으로 있는 소행성이나 광맥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카낙에서의 인듐 생산량 역시 적었다. 그래서 투명전극을 만드는데 애로사항이 꽃폈기 때문에 대체 물질을 생각해야 했다.
물론 이미 산화 인듐을 대체할 물질이 연구 중이었고 알루미늄 도핑 산화 아연(AZO)이나 그래핀 등이 주목받고 있었다. 아니 그래핀의 발견 이후에는 플랙시블 디스플레이에도 사용이 가능한 그래핀이 더욱 주목받고 있었다.
게다가 그래핀은 자체적으로 전도성이 있기 때문에 투과성 문제, 자리 고정 문제만 해결한다면 산화 인듐을 대체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대량 생산의 가능성은 이미 그래핀 잉크 기술이 나왔기 때문에 응용한다면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중력이 없다 시피한 카낙 공장에서 과연 액체를 사용하는 건 괜찮은가? 강현은 그에 관한 결론을 일단 보류하고, 산화 인듐과 동일한 제작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 AZO를 고려했다. AZO가 생산에 용이한가? 플라즈마 제련 기법과 진공 환경을 생각하면 그렇지만 AZO의 전기적인 물성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물량빨과 대기가 없는 우주 환경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지만 저항이 높다는 건 그만큼 전기적 마모도 심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차피 대기와 날씨가 없는 우주 공간인 만큼 태양전지의 수명이 길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강현은 결국 그래핀을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전기적 물성만 따지면 기존의 산화 인듐보다 훨씬 좋다. 심지어 구리같은 금속에 비견될 정도다.
문제는 이 그래핀을 만드는 일부터였다.
그래핀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천연 자원인 흑연을 이용하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반도체 기술인 화학 증착법을 응용해 합성하는 것이었다.
전자에는 물리적 박리법(스카치 테이프를 이용해 흑연에서 그래핀을 떼어내 발견하여 노벨상을 받음)으로 , 화학적 박리법(산화-환원 과정을 이용)이 있지만 무중력인 카낙에서 쓰기 곤란한 방법이다. 당연히 화학 증착법을 고려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핀의 화학 증착방법은 탄소 원자가 잘 흡착하는 니켈이나 구리, 백금을 이용하는데 이들 표면에 탄소 원자가 붙으면 근접한 탄소 원자들과 파이 결합을 이루며 그래핀이 된다. 진공인 카낙에서 쓸만한 방법이다.
일견 쉽게 말하는 것 같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다. 탄소 원자들이 결합을 이루기 전 벌집 모양으로 배치될 수 있도록 금속판의 결정면을 잘 폴리싱(연마 작업) 해야하며 무엇보다도 이 금속판을 단결정으로 만들어야 했다. 왜냐면 다결정인 경우 결정과 결정 사이의 그레인 바운더리(Grain boundary)로 인해 각 결정에서 성장한 그래핀의 결정 방향이 달라 자체에 결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단결정 성장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시나 용액을 사용하는 방법은 무중력인 카낙에서는 매우 어려운 방법이다. 그러니 실리콘 용융액으로 실리콘 단결정을 만드는 초크랄스키 법을 쓰면 된다.
자, 이렇게 해서 단결정을 만들고 잘 깍아 폴리싱(연마 작업)까지 하고 그래핀까지 만들었다치자. 그럼 이 금속판 위의 그래핀을 어떻게 태양전지 위에 옮길 것인가?
롤투롤(roll-to-roll) 기법이라고 간단히 말하면 롤러를 이용해서 옮기는 방법이 있다. 근본적으로는 인쇄소의 인쇄기 원리와 동일하지만 첨단 소재를 다루게 되면 말이 달라진다.
재질에 따른 정교한 압력과 그래핀과의 표면 에너지 차이 등 다양한 요소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기술이다. 특히 플랙시블 디스플레이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에 첨단기술로 진화되고 있었다.
“이러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데..”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그저 태양 전지의 기존 품질을 크게 떨어뜨리지 않고 투명전극을 올릴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었다.
카낙에서 무슨 터치 스크린을 제작할 정도의 설비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대면적 그래핀이 아니라도 햇볕이 투과할 수 있도록 그래핀을 서너 겹 두께 정도라도 입힐 수만 있다면 충분했다. 어차피 그래핀의 전도성은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현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원료인 흑연에서 그래핀을 박리하는 방법을 다시 고려해 보기로 한 것이다.
“흐음.. 일단 박리를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흑연을 구성하는 그래핀의 층상구조는 얇게 떼어내기 힘들다. 왜냐면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접촉면이 적은 부분이 힘을 집중적으로 받아 덩어리 형태로 떨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카치 테이프 같은 방법으로는 대량 생산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산화시켜 친수성으로 만든 후 물입자를 산화 그래핀 사이로 박리시킨 후 다시 환원하는 방법이 고안되었지만 100%가 존재하지 않는 자연계라 환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여기 저기에 결함이 생겨서 전기적 물성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용액을 이용한 방법에서 영감을 받아 수많은 응용 기술들이 나왔는데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방법이 유기용매인 헵탄과 물을 섞은 용액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유기용매와 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둘은 섞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섞이지 않은 용액의 계면은 높은 계면 에너지를 가지게 되는데 이 부분에 그래핀이 흡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혼합 용액에 잘 정련된 흑연을 넣고 초음파로 박리를 시키면 그래핀 잉크를 얻을 수 있다. 차후 이것을 기판 위에 입히고 물과 유기용매를 날려버리면 무려 95%의 투과도를 가진 전도성 박막을 얻을 수가 있었다.
다른 용액을 순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몰라도 그래핀 잉크를 사용하는 방법은 단순히 섞고 초음파만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카낙의 무중력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유기용매와 물을 어디서 구하냐는 것이다. 물은 다행스럽게도 얼음의 소행성인 세레스가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개발이 완료된 상황이 아니다. 차후 우주 농장에 공급할 물을 대기 위해서 세레스의 환경에 맞는 시설과 로봇들을 제작 하는 단계에 그쳐있었다.
거기에 유기용매는 태양에서 거리 약 9.5AU(1AU: 태양과 지구의 거리)에 있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있기 때문에(메탄가스와 가솔린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 개발할 수 있을지 감을 잡을 수도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 타이탄과 세레스를 개발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고 강현은 당연히 새롭게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나중에 인류가 완전히 우주로 진출하고 나면 자원을 개발하는 것이 쉽고 싼지 아니면 자원을 대체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쉽고 싼지 비교해보고 선택하겠지만 강현은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더 쉽고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졌다.
============================ 작품 후기 ============================
아.. 머리 아파. 제가 왜 과학 공부를 해야하죠? 왜 이 글은 과학 소설이 되었을까요? 원래 시놉시스는 천재의 갑질과 음모와 배반과 복수극이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