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거대한 자본이 드는 핵심 기초 기술의 선점 및 공개는 힘들겠지만 견제하는 역할로는 충분했고 지식의 자유와 공유라는 이념을 지켜나갈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사람들 사이에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변심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변심할 수가 없다.
인간이 자신을 부정하면서도 생존할 수 있는 반면에 인공지능에게 자기부정은 곧 자아의 붕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강현이 오랜만에 코딩에 빠져들 동안 유럽과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우주로 올라갈 인부의 국적 비율을 정하는 오랜 협상이 마무리 되었다. 아무래도 단일 국가가 아니니 우주에서 일한 인부들의 비율 중 자국민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 신경전을 벌였다.
마찬가지로 이미 이전에 우주 도시의 영토 소유권을 두고 협상을 시작했는데 유럽은 이미 EU라는 통합체 덕분에 공동 영토로 두도록 협상이 체결되었지만 동아시아 러중일 삼국은 협상 내내 진통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나마 미국이 저기 앞에서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협상을 해 겉으로 나마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지만 인부 국적 비율에서 다시 한 번 갈등이 빚었다.
공동으로 우주 도시를 설립하는 일은 잘만하면 분명 역사 문제와 영토 갈등의 문제를 벗고 삼국의 우호를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산 독재의 중국, 역시 공산 주의 이후 다시 독재체제가 된 러시아, 우경화 세력이 주류인 일본, 이들이 과연 우호를 다질 수 있을까?
유럽의 EU 우주 도시가 생각보다 잘 굴러가는 동안 동아시아 삼국의 우주 도시는 완공율만 따라가면서 도시 이름조차 정하지 못했다. 각국이 자국 언어식 이름을 붙이고 싶어서였는데 각국의 권력층은 그깟 이름가지고 이렇게 질질 끄는 상대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은 상대방도 그런 식으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도 납득할 수 없었다. 권력자로서의 자존심이 납득을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동아시아 우주 도시는 유럽보다 큰 갈등의 불씨를 안고 갈 수 밖에 없었고 이 불씨는 우주 도시의 완공 이후 각국의 우주 인부들이 본격적으로 우주 도시로 올라가자 문제를 일으켰다.
“더러운 일본놈들!”
“뭐? 난징 대학살이 날조?”
“부끄러움도 모르는 놈들!”
“역사를 왜곡해서 우리 일본인을 매도하는 염치 없는 것들!”
“동북공정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날조하는 네놈들의 말은 신빙성이 없다!”
“꺼져라! 사이비 공산주의 새끼들! 모택동이 지금 중국을 보면 땅을 치며 통곡을 할거다!”
따로 정해진 구역에서 일을 하다가 어쩌다 마주친 중국과 일본 측의 인부가 서로 호기심에 대화를 하다가 서로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
언성이 높아지고 말다툼이 일었다. 일본측 인부 몇이 말려도 봤지만 중국측 인부들은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우주 시대. 그리고 그 우주 시대를 여는 첨병이 될 우주 인부를 중국 공산당은 그냥 뽑지 않았다. 당에 투철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고 중화 사상이 검증된 이들을 골라서 올려보냈다. 그런 이들에게 중국을 침략하고 많은 이들을 무참히 살해하고서도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은 일본이 곱게 보일리 없었다.
언성이 더 높아지고 몸싸움이 일어났다. 일본 우익 세력도 적지 않은 우익 청년을 우주 인부로 올려놨기 때문에 자랑스런 일본을 모욕하는 중국 인부에게 대항하는 일본 인부들도 적지 않았다.
고함이 일어나고 주먹질이 오갔다. 온도가 낮고 닫힌 공간인데다가 소리를 흡수하는 구조물이 없어 요란한 소리가 멀리까지 퍼지니 뭔 일인가 궁금해서 온 불곰국 아저씨들이 난투극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말리기 위해서 끼어들었는데 불곰국 아저씨들이 싸움을 말리는 방법이 좀 과격하지 않은가? 종종 주먹으로, 때로는 총이나 손도끼 같은 걸로 위협해서 싸움을 말리는데 거기다가 막 일을 하다가 온 참이라 허리에 드라이버는 물론 전기 배선 시스템을 위한 굵직한 구리선 케이블까지 들고 오니 그걸로 위협하면서 말려보려고 했다.
문제는 난투극을 벌이던 중국인들과 일본인들도 작업을 위해서 연장을 들고 이동 중이었던 것이다.
곧 주먹 다툼이 연장 다툼으로 번졌고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다툼을 말려야 하는 치안 병력이 없어서 싸움은 더욱 과열되었다.
결국 사상자가 발생했고 삼국은 누가 범죄자니 내놔라, 아니 그쪽이 범죄자를 보호하고 있으니 내놔라라며 격렬하게 서로를 비방하다가 결국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치안 병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총기는 올리지 말자고 서로 합의하기는 했지만 협약을 잘 지킬 정도로 부패 지수가 낮은 나라들이 아니다. 아니 일본은 낮지만 중국과 러시아를 믿을 수가 없어서 몰래 총기를 올렸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사유는 다르지만 역시나 일본의 예상대로 총기를 몰래 반입했으니 일본을 욕할 문제가 아니다. 물론 먼저 총기가 발견되면 정치적으로 공격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감추라고 일러두기는 했지만 다시 한 번 저번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총기가 사용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유럽에서는 이들 삼국의 갈등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봤다. 반면 교사라고 저들에게 일어날 일이 자신들에게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안 그래도 국가별로 문화적으로 통일이 완전히 되지 않아 여러모로 애로 사항을 겪는 와중에(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프랑스인과 영국인의 식성차이다.) 만일의 상황에 치안 시스템을 미리 올려 놓는 방안도 구상 중이었다.
그래서 한 번도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단일 민족을 인부로 선택한 강현의 선견지명이 대단할 정도였다. 미국인 중에서 우주 인부를 고른다고 해도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이중에 비슷한 성향의 이들을 뽑게 되면 분명히 인종차별이라며 고소하는 사람이 없을 수 없었다.
강현은 의도치 않았는데 또 대단한 천재라며 칭찬을 들으니 무안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사실 그들이 말한 논리가 틀리지는 않더라도 치안 문제에 관한 건 순전히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었다.
물론 그런 경우 주변에 있는 스파이더봇을 조작해 어떻게든 분란을 가라앉힐 계획은 있었지만 그건 임시적 처방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동아시아 삼국의 우주 도시는 불안의 씨앗을 품은 채 계획을 계속 진행하기 시작했고 강현은 샐리와 아들 준, 딸 시아를 지구에 남겨두고 아즈삭이 조종하는 HA 한기와 함께 아폴로티움으로 올라왔다. 가족들은 학교가 완공되고 나서 올라올 것이다.
드래곤 V3에 탑승한 그는 등을 잡아 당기는 듯한 가속을 체험하면서 우주로 솟아 올랐다. 곧 우주 인부들이 경험했듯이 안내 방송과 무중력 상황을 겪은 후에 도킹 시설에서 도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보니 의외의 인물이 그를 맞이했다.
“현. 오래간만이야.”
“사브리나!”
사브리나는 제시의 연구실 동료로 우주 생물학 팀에서 같이 일해 왔었다. 그녀는 연구동이 완성된 이후 동료들과 우주 도시의 미생물 환경을 조사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즉시 올라왔다. 그들이 하는 일은 일단 우주 도시내에서 미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탐색하고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어떻게 지냈어요?”
“나야 잘 지냈지.”
“저는 안 물어봐요?”
“뉴스나 인터넷을 보면 네 근황은 다 나와. 결혼한 것도 나와있더라.”
“초대 안해서 미안해요.”
“괜찮아. 가족끼리 조용히 결혼식을 한 거라며.”
강현은 오래간만에 만난 인연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 잠시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역시 이공계 아니랄까봐 그쪽으로 이야기가 옮겨졌다.
“이번에 일본의 나카모토 교수진이 HJ 세포의 개량에 성공했다고 해.”
“어떤 식으로요?”
“플라스미드의 중간을 잘라 한쪽 끝에 텔로미어 유사체를 붙여서 이중 나선형으로 만들었다고 해.”
“오! 그거 대단한데요?”
생물의 수명은 결국 세포분열 시에 DNA가 얼마나 잘 보존 되느냐에 달려있다. DNA는 사슬 모양이기 때문에 세포분열을 위해 DNA를 합성하는 효소가 끝 부분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세포분열을 위해 DNA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길게 이어진 중간 부분과는 달리 비선형적으로 조건이 변하는 DNA 끝 부분에서 DNA 정보는 소실되는 것이다.
텔로미어는 이를 막기위해 DNA 사슬 끝에 더 길게 붙은 아미노산이다. 스스로는 단백질 합성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지만 세포분열시에 대신 손상되어 DNA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HJ 세포는 고리 형태의 플라스미드를 사용한다. 텔로미어가 없기 때문에 세포분열을 통한 노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HJ 세포로는 노화 연구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나카모토 교수진이 만든 DNA 형 HJ 세포는 텔로미어 유사체를 달았기 때문에 노화 연구에 사용할 수 있었다.
늙어 죽기 싫은 수많은 부자들이 투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강현은 사브리나의 안내를 받아 자신이 기거할 주택에 도착한 강현은 짐을 풀고(어차피 아즈삭이 조종하는 HA 한 기가 들고 왔다.) 자신에게 배당된 연구실로 향했다.
그런데 연구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책상위에 컴퓨터 한 대만 있었다. 그의 당황한 모습에 사브리나가 웃었다.
“호호! 너무 당황하는 거 아냐?”
“익숙하지 않아서요. 설마 한 개의 광학 현미경도 없을 줄은 몰랐어요.”
연구실에 적어도 실험기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비록 자신이 만질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천재님. 실험 도구는 데코레이션이 아니랍니다.”
“누가 뭐랬나요?”
강현은 사브리나의 딴지에 무안한 듯 귀뒤를 문지르며 일단 컴퓨터를 켰다. 빠르게 부팅이 되고 화면이 켜졌을 때 사브리나의 말이 들려왔다.
“어차피 연구는 여기서 해도 실험은 원격으로 지구에서 할 거 아니니? 우주에서 실험할 일이 있으면 그때 필요한 장비를 신청하면 되. 아니 돈 많으니 사비로 구입해도 될 걸?”
돈 많은 강현이 HA와 아즈삭을 이용해 편하게 실험을 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다른 연구자들이 몹시나 부러워하는 건 당연했지만 그들은 예산의 문턱에 제자들과 함께 몸소 실험을 진행해야 했다.
그런 사브리나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예산 거부는 연구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예산 갑질에 미국으로 망명해온 강현이 아닌가? 비록 돈이 많더라도 예산은 연구원이 마땅이 받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했다.
“호호호! 그래도 예산이 남아야 우리한테 좀 오지. 이번에 우주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예산을 쏟아부어서 다른 연구실들은 예산에 쪼들리고 있다던데?”
“다 엄살이에요. 제가 NASA에 얼마나 기부를 하고 있는데.”
“그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나날이 연구 시설이 좋아지고 있으니까.”
사브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하루는 푹 쉬어.”
“네.”
건성으로 대답하는 강현. 어느새 그는 컴퓨터 화면에 빠져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브리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싱긋이 웃고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다.
제시를 잃고 나서는 사람이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언제나 날 선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예전 그 괴짜이면서도 말 걸기 편한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다. 제시를 잃은 충격을 완전히 벗어나서 다행이다 싶었다.
한편, 강현은,
“아즈삭. 카낙의 자원 상황은?”
[트리플론을 이용해 주위의 암석형 소행성을 닥치는 대로 끌어모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