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87화 (187/241)

187화

“네?”

“당신들은 저들의 신앙에 지지 않는 훌륭한 신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시오니스트와 반 시오니스트가 유대민족의 발전을 위한 서로의 거울이 되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됩니다!”

“말이 돼요. 수 천 년간 나라 없이 살아오면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한 시오니스트의 공로를 무시하면 안 되죠.”

“그건 그때고 지금은 지금입니다! 선민사상 따위 유대인에게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바로 그런 태도입니다. 잘못된 점을 꼬집어서 고치게 만드세요.”

“.....”

사울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그에게 강현이 말을 이었다.

“세상에 옳은 건 없습니다. 사람의 수 만큼 많은 정의가 있고 작용에는 반작용이 생기죠. 그리고 결국 남는 건 환경에 적응한 개념과 사상 뿐입니다. 진화론은 비단 생물에만 적용되는 개념은 아니죠.”

“하지만,”

“사울 씨.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저는 유대인에게는 부외자에 불과합니다. 시오니즘이 유대인이 아닌 이들에게 고통을 줄 때에는 나설 수는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금 나설 명분은 제게 없습니다.”

사울은 흥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에게는 정의라는 것이 있기는 합니까? 인류를 위해서 인류에게 해가 되는 것을 미워할 생각은 없습니까?”

“정의라..”

강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곧 신념이다. 그리고 신념은 곧 삶의 척도다. 신앙인의 신념이 신앙이라면 강현에게도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우주는 아름답다?”

“우주는 아름답다?”

사울은 그게 무슨 정의라며 선문답같은 강현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네, 인간이 무슨 짓을 해도 우주는 여전히 아름답겠죠.”

“인간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요?”

“네. 인간이 뭘 하든 간에요.”

사울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건 우주가 아니라 인간의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강현은 오히려 그런 인간 사이에서 필요한 입장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 마치 자신은 그런 인간이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박사님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있습니까?”

“그러니까 우주에 집착하는 거겠죠.”

그러나 사울의 그런 이해는 오해였다. 강현은 오히려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홍진 세상에서 눈을 돌려 우주와 세상만물의 진리에 집착하고 호기심을 가졌다.

인간의 욕망, 감정, 감동, 슬픔, 호의, 악의...

악의 없이 어떻게 호의를 구분할 수 있는가? 슬픔 없이 어찌 기쁨을 이해할 수 있을까? 죽음 없이 어찌 삶의 소중함을 말할 수 있을까? 유한한 인간 없이 누가 무한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찬양할까?

사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의는 대의에 묻혀버리거나 의미를 상실한다. 강현에게 사울과 같은 인생관은 그가 어릴 적 감동한 우주의 무한함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없다. 감동하기에는 너무나 생각 자체가 작다고 생각했다.

강현이 시오니즘 세력을 화교 자본을 견제하는데 사용하도록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자칫 허무주의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바로 이런 그의 인생관 때문이었다. 사울이나 샐리조차도 이해하거나 동감하지 못할 인생관이지만, 아니 오직 강현과 같은 천재성과 그와 같은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이만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는 인생관이었다.

정점에 선 이에게 걸맞는 가치관이었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관점으로 편협하지 않고 선악의 모호함을 인지하며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가?

사울과 강현의 선문답은 그렇게 끝이 났고 사울은 별다른 소득없이 돌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사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원한이나 이해득실, 혹은 이데올로기 따위의 이해관계)로 유대 자본의 완전한 몰락을 원하는 이들은 강현이 시오니스트들 완전히 처리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완전히 적이 되어 버린 시오니스트들을 확실하게 처리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이 무너지니 화가 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현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많은 추측적 기사들이 쏟아졌다. 강현은 이미 시대를 선도하는 아이콘이니 그의 성향과 사상을 분석하는 건 권력과 자본의 향방에 민감한 이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고 투자한 만큼 그럴싸한 논평이 나왔다.

[강 박사는 기본적으로 온건하게 행동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더이상 위협이 되지 못하는 시오니스트들을 완전히 말살하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손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은 멈췄고 세계 패권국인 미국에서 유대 자본의 입지는 크게 줄었다. 그러니 시오니즘 지도부로서는 강 박사를 건든 댓가를 톡톡하게 치뤘다고 볼 수 있다. 즉, 이해 관계가 청산된 것이다.

따라서 시오니즘의 존속 여부는 온전히 유대민족과 여태까지 시오니스트들이 만들어낸 원한 관계가 결정지을 것이다.]

매우 논리적이며 합당한 논평이었다. 논평에 시오니스트들을 싫어하는 이들은 강현이 더 이상 시오니스트들을 압박하고 뭉개어 버리지 않는 것에 화를 낼 수 없었다. 강현에게 자신들의 복수를 대신해서 해줄 권리나 의무는 없었기 때문이다.

= = = = =

“완성이다!”

Try&Error.

드디어 노가다 삽질 끝에 강현의 능동형 반투막(PASM ; Protein Active Semipermeable Membrane) 필터 기술이 완성되었다. 아예 아미노산 구조부터 다시 설계하고 단백질을 고정할 고분자의 가지 사슬에 아미노산 사슬을 붙이는, 눈물이 나도록 지겨운 시뮬레이션과 실험의 반복이었다.

물론 실제로 실험하고 합성하는 건 HA 안드로이드였지만 그래도 하루에 수 십개씩 고분자/단백질 모델을 설계한다고 그 대단한 강현도 머리가 빠개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얇은 반투막의 기계적 성질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전기장을 이용한 물 분자의 이동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강현이 합성한 물 분자 이동 단백질에 있는 코발트 이온에 물분자가 흡착하고 이때 가해진 전기장이 단백질의 모양을 바꾼다. 염소 이온과 칼슘 이온이 붙은 단백질이 분극현상으로 물리 화학적 성질이 바뀌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서 단백질의 접힘 구조가 변해 물분자가 흡착한 부위가 뒤집히며 반대쪽 면으로 향한다.

반대쪽 면에는 코발트 이온보다 더 강하게 물 분자를 흡착할 수 있는 히드록시기가 붙어있어 코발트 이온에서 물 분자를 떨어뜨려 버린다.

이렇게 물 분자 만이 이동하게 되는데 그 이동량은 가하는 전기장의 Hz에 비례하며 약 GHz까지 올릴 수 있어서 마치 사람의 피부에서 땀이 송글송글 나듯이 물방울이 맺혀나올 정도였다.

물론 기계적인 성질은 약하다. 아무래도 물 분자의 이동을 위한 단백질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나노 스케일의 두께였고, 또한 앞뒤 면에 다른 종류의 친수성 코팅을 했다. 이를 위해서 나노 박막 기술을 정밀하게 사용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삼투압을 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효율이 좋으니 정수장치의 설계만 손을 보면 바로 적용할 수 있었다.

강현이 구상한 정수 장치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뉘는데 침전부, 여과부, 정수부다.

침전부는 털이나 때덩어리 같은 걸 가라앉히고 여과부는 거름종이 따위로 마이크로 단위의 오물을 거르며 정수부에서는 PASM으로 드디어 순수하게 물을 걸러낸다.

이 과정에서 아래로 쌓일 수 밖에 없는 오물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스크류 같은 장치도 있어서 따로 청소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다만 여과부의 거름종이는 주기적으로 교체해 주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노 단위인 분자 덩어리들은 브라운 효과에 의해서 둥둥 떠다니게 되겠지만 이도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PASM은 이런 분자 덩어리들의 포화 용해도를 넘어서 물 분자를 분리해낼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포화 용해도의 소금물에서도 물분자를 뽑아올릴 정도) 뭉쳐서 침전부처럼 하부에 쌓이게 된다.

역시 침전부와 마찬가지로 이런 오물들을 자동으로 배출해 줄 장치를 동일하게 구성해주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가 있다. 이렇게 배출된 축축한 오염물 덩어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극한의 분리수거가 기획된 우주 도시에서는 이런 오염물 덩어리도 침전부, 여과부, 정수부 오염물로 따로 처리가 되도록 되어 있었다.

침전부의 오물은 차후 우주 농장에서 사용할 사료용(주로 닭같은 가금류 용)이나 거름용으로 만들기 위해서 건조하거나 얼려서 보관하기로 했다. 아니 힘들여서 건조할 필요도 없다. 우주 공간의 창고 안에다가 틀에 넣어 놓기만 하면 어느새 얼어있다. 복사열이 계속해서 우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었다.

여과부 필터의 경우에는 소모품이라 별도의 재처리 공정이 필요했는데 섬유들을 다시 사용하기 위한 세척 과정에서 다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이른바 건조식 재처리라고나 할까? 잘 말려서 초음파를 이용해 말라붙은 분진을 떨어내는 것이다.

완전히 너덜너덜 해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우주 농장의 거름으로 써야겠지만 그전까지는 새것에 비해서 80%의 효율로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정수부의 오염물이 생각보다 문제였다. 왜냐면 대부분 나노 크기의 분자 덩어리, 주로 세제와 사람 몸에서 나온 기름, 또는 샴푸와 린스에 첨가된 유기 화학 물질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얌전하게 가라 앉아 준다면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얌전하게 가라 앉는 것보다는 둥둥 떠다니면서 샴푸나 린스에 든 글리세린 같은 물질과 상호 작용을 해서 오폐수에 점성을 만들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점성은 곧 물 분자가 반투막의 표면까지 이동하는데 시간이 걸리게 만드는 걸림돌로, 정수 효율과 속도를 낮추는 요인이었다. 때문에 정수부의 농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일정 농도 이상이 되면 오폐수를 다시 침전부로 보내도록 했다. 그렇게 하면 침전부에서 배출되는 오물 덩어리에 화학물질이 첨가되어 농도의 증가를 낮출 수 있었다.

물론 침전부에서 배출되는 오물 덩어리의 수분량을 늘리거나 해서 더 낮출 수도 있었다.

뭐? 그럼 그렇게 비누나 세제 따위의 화학 물질에 범벅이 될 수도 있는데 거름이나 사료로 어떻게 쓰냐고? 발효라는 과정은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사료로는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화학 물질의 농도에 따라서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다. 문제가 있다면 다시 그때 확인해서 해결해도 되지 않는가?

이렇게 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나오니 일반 가정용 주택의 설계도도 금방 나왔다. 지금까지 짓고 있는 다세대 주택은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이었다.

차후 제대로 된 주거지가 나오면 허물어질 것들이다. 강현에게 닭장같은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은 사람 살 곳이 안된다.

적어도 아이들이 뛰어놀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히 땅 넓은 곳에서 부유하게 산 사람의 시각다웠다.

[박사님. 학교 설립에 대한 설계도면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다른 건물들이야 NASA에서 입찰 형식으로 다양한 시공 업체들의 설계를 모집했기에 강현이 신경 쓸 일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들이 다닐 학교다. 강현이 신경쓸 이유로는 충분했다.

“흐음..”

설계도를 바탕으로 3D 입체 조감도를 만들어본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우주 도시에 걸맞는 미래 첨단적인 멋있는 설계였지만 중량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 부분이 몇 곳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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