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18-흐름>
“....”
헨델 회장은 소름이 끼쳤다. 인종학살로 시오니스트들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인가?
강현은 분명히 그럴 인간이 확실했다.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쿠데타 사건을 유도하기도 한 그때에 비추어보면 인종학살로 시오니스트 같은 잠재적인 ‘적’을 제거할 수 있다면 시도라도 한 번 해볼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좀 더 해보자. 그건 정말로 유효한 방법인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다. 그런 짓을 하면 수많은 이들에게 비난받고 하나의 적을 없애더라도 백의 적이 생겨버린다. 적을 없애기 위해서 과도할 정도로 강경한 방법은 오히려 부작용만 양산한다.
“그래서 둘의 결혼으로 화해하자는 의미인가?”
헨델 회장의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의문이었다. 생활 방식이 전혀 다른 둘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던가? 아무리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딸아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기르고 가르쳤다.
사랑이 눈을 가려고 결혼을 생활이며 조건을 맞추어 보는 것을 간과하지 않을 딸아이였다. 차라리 딸아이와 비슷하게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 의사회의 의사라던가 아니면 봉사 단체에 소속된 사람과 결혼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월가 출신의 사업가와 결혼한다고? 헨델 회장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결혼의 뒤에 강현이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오해 하시는 것 같은데요. 둘의 결혼 소식에 저 또한 놀랐습니다. 상상 밖이었거든요. 그리고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이걸 계기로 저를 경계하는 그쪽 이들의 불안감도 좀 낮춰보고 싶었어요. 그쪽도 저에게 과도한 심력을 쓰는 건 손해잖아요.”
“으음..”
헨델 회장은 침음성을 삼켰다. 한 편으로는 딸아이가 음흉한 음모의 희생양으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확언에 안심이 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들의 사정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강현의 식견에 다시 한 번 경각심이 일었다.
강현의 말대로 나날이 입지가 약해지고 있는 시오니즘 지도부들은 과거의 영광은 커녕 현상 유지와 생존에도 힘이 겨웠다. 과거 정점의 시절에 만들어낸 무수한 원한과 악의가 추락한 그들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현에게까지 신경쓸 여력은 없었지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 또한 강현이라는 점이 그들의 신경을 피로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유가 뭔가? 자네가 이쪽에 아쉬운 건 없는 것 같은데..”
헨델 회장은 가장 핵심적인 의문을 던졌다. 솔직히 돈과 기술력, 미국 정부란 권력 배경까지 모두 갖춘 강현이 유대인의 반 이상이 떨어져 나가고 정계 라인까지 모두 잘린 시오니스트 조직에 아쉬울 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특별히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동양에는 의심암귀라는 말이 있죠.”
“무슨 말인가?”
“의심이 귀신을 만든다는 말이죠.”
자매어로 믿음이 신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제가 그쪽에 완전히 관심을 끊었지만 그쪽에서는 여전히 저의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그쪽과 상관없는 의도로 일을 해도 그쪽에서는 오해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특히 서로 적이라는 입장에서 그런 오해는 반드시 적의를 생산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자네에게 우리가 더 이상 무슨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라? 인간의 악의와 증오를 엄청 무시하시네요. 과학 기술이 발달하는 만큼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큰 피해를 만드는지 본 적 없으세요?”
막말로 미친 사이코 패스가 대형 트럭을 몰다가 인도로 질주해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어떻게 될까? DNA 합성 기술이 적용되어 질병을 연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치를 테러리스트들이 구해 인류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에요. 적의나 악의를 품을 존재가 없다면 어떤 인공적인 위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폭력적인 방법은 말살이 아닌 이상 결국 적을 더 양산하죠.”
“그래서 우리와 타협을 하겠다는 건가?”
“타협을 하는 게 아니라 오해를 하지 않도록 제 입장을 확실히 밝히는 겁니다. 저는 솔직히 시오니스트들의 선민사상이 웃기지도 않아요.”
“.....”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요? 솔직히 저는 정신분열증 환자같은 여호와의 선택을 받는다는 게 그리 좋아보이진 않아요.”
불의한 자들만 있다며 소돔과 고모라를 불벼락으로 지워버렸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황무지는 십 년이나 돌아다닌 모세에게 결국 너희는 그런 땅을 찾을 수 없을 거라며 이집트의 왕자 신분을 버리고 평생 자신을 섬긴 그의 희망을 뭉게버렸다.
이쯤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지다 못해 정신 분열증 환자로 보일 정도다. 하긴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성전이다 뭐다 학살을 자행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다 보면 자신이 사랑과 자비를 설파하는 신인지 아니면 악신인지 헷갈릴 것이다.
강현은 침묵하는 헨델 회장에게 계속 이어서 말했다.
“과거의 시오니스트들은 과연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죠. 그리고 그에 걸맞게 오만하고 겸손하지 않았어요. 자신들을 비난하는 미국 정치인들의 주둥이를 그 경쟁자를 지원해서 닥치게 만들 정도였죠.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돈만 먹는 미국 정계가 아니다. 아랍의 돈도, 화교의 돈도, 일본의 돈도, 강현의 돈도 먹는 미국 정계가 되었다. 더 이상 돈지랄로 정치가들의 입을 막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유지되고 강화될 겁니다. 시오니즘 지도부가 다시는 미국 정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거죠. 저는 오히려 전통적으로 미국 정계에 영향력을 발휘해온 시오니즘 지도부가 급격하게 몰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인가?”
“화교 자본이 득세하고 있거든요. 아무리 백인 우월 주의의 미국이라고 하지만 흑인 대통령이 당선될 정도로 인종주의에 대해서 잘 대처하고 있어요. 거기다가 이런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제가 황인종이라는 걸 이슈로 화교 자본에서는 다음 미 대통령은 황인종 차례라면서 여론을 만들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황인종 혼혈 계열의 정치가들을 찾아서 지원도 시작하고 있구요.”
미국은 우주 패권 국가다. 그런 미국의 정계에 영향력을 가지고 싶지 않은 자본가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화교 자본은 그 정체성이 문제였다. 다른 나라에서도 난 중국인이요하고 뭉치고 차이나 타운을 만들어 낸 자들의 세력이다. 배타적이고 끈질기기는 유대 자본에 뒤지지 않는다.
본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중화 사상도 상당히 강현을 거슬리게 만드는 요소였다. 분란을 일으킬 잠재성만 보면 차라리 소수의 독재자, 왕족이 핵심 세력인 아랍 자본이 더 안전해 보일 정도였다.
강현의 말에 헨델 회장은 쓰게 웃었다.
“그래서 우리를 견제용으로 쓰시겠다?”
“견제되는 요소들은 많을 수록 안정하니까요. 혹시 완충 용액이라고 아세요?”
완충 용액은 강 산성과 약 염기, 혹은 약 산성과 강 염기가 혼합된 액체로 산성도의 변화가 매우 적은 용액이다. 일반적으로 강 산성과 강 염기의 중화 적정 실험(용액을 pH 7 중성으로 만드는 화학 실험)을 할 때는 몇 방울 만으로도 pH의 변화가 급격하다. 하지만 완충 용액에서는 pH의 변화를 크게 하려면 그만큼 많은 용액을 첨가해야 한다.
이런 완충 용액은 pH 변화가 적어야 하는 환경, 특히 미생물학 실험에서 요긴하게 쓰이며 생명체의 혈액은 천연 완충용액이다.
완충 용액의 변화성은 결국 산과 염기가 가진 고유의 이온화 상수(또는 해리 상수/평형 상수)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데 다양한 종류의 산과 염기가 섞이면 섞일 수록 용액에 적용되는 이온화 상수의 개수가 많아지고 복잡한 상관관계가 생겨 변화가 서로 상충된다. 강현이 말하는 건 바로 그런 원리인 것이다.
헨델 회장은 불쾌했지만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단순히 자비심에 근거한 방관과 필요에 의한 방관은 방관의 대상인 그들에게는 상황을 인식하는 심리 상태를 완전히 바꾸어 버릴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전자는 언제 강현의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불안이 있다면 후자는 필요하니까 강현이 자신들을 건들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믿음과 신뢰가 있었다. 돈이 많지만 오히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진실을 알고 있는 그들이 안심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였다.
“제왕학이라는 건가?”
헨델 회장은 적이었던 자들까지 다시 한 번 끌어들여 서로를 견제시키는 강현의 방법론에 적잖이 감탄했다. 자신도 그런 방식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적개심을 일순간에 흩어버리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여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는 이들은 병신인가? 뻔히 이용을 당하게? 그런데도 그런 일을 이토록 쉽게 해내는 것이 바로 강현의 역량이었다.
“제왕학은 무슨. 그냥 필요하니깐 하는 겁니다.”
강현이 겸양을 떨었지만 그게 더 무서운 말이었다. 필요하니깐 한다라... 헨델 회장은 강현이라는 천재가 과학자임을 너무나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가 권력 지향적 인물이었다면 숨 쉴 틈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제 입장은 확실하게 이해하셨죠?”
강현의 말에 헨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정부의 아낌이 큰 영향력의 축을 구성하는 강현이다. 그런데 미국 정계에 혼란이 일면 그건 그거데로 강현에게 손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줄 것은 뭔가?”
“이렇게 화해해 줬잖아요. 더 뭔가를 바라세요?”
“....”
헨델 회장이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강현과 화해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지인들이 마리아와 킬덤의 결혼을 적극 환영했던 것 아닌가?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시 피로연을 즐기기 위해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이 웃으며 정답게 악수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시오니즘과 강 박사, 타협하나?]
[천재의 돌변! 왜?]
이런 강현의 입장 변화는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했다. 반 시오니스트 유대인 세력의 핵심인 사울은 바로 강현을 찾아왔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아아. 실망하셨겠군요.”
“실망한 정도가 아닙니다. 화가 날 정도입니다. 아니 이미 화가 났습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를 악물고 울그락 불그락 하는 사울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흐음.. 정말 시오니스트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아닌 제가 왜 그걸 도와야 하죠?”
“네?”
사울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애시당초 이 모든 일을 벌린 건 강현이 아니었던가? 강현 때문에 자신은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과거에는 홀로코스트에 동포를 방치한 미친 시오니스트들을, 유대민족의 더러운 얼룩을 제거하는 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저는 누가 제 연구를 방해하지 않으면 건들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일을 벌이신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은 시오니스트들이 저를 다시 공격하는 경우죠. 시오니스트들의 존속 여부는 유대인들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솔직히 저의 압박으로 시오니스트들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게 유대민족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신앙은 곧 신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