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안드로이드 전투 로봇견의 스펙은 그야 말로 시가전에서 완벽했다. K 시리즈를 뛰어넘는 기동성은 계단이나 장애물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게다가 5미터 정도되는 도약 능력은 지붕에서 지붕으로 이동하는데 막대한 이점이 있었다. 거기에 생산 단가가 낮아 대량생산할 수 있었으며 두부에 기관총이나 고폭탄, 또는 작약탄 등을 다양하게 탑재할 수 있어 탱크나 다른 모빌 아머에 대해서 완벽히 대응할 수 있었다.
거기에 열화상 감시 카메라, 소나 탐지 센서를 단 전술지원형 로봇견을 포함시키면 순식간에 육군 1개 중대에 해당하는 전력을 몇 주안에 뽑아낼 수 있었다. 고급화된 인간 병력에 비해 병력이 모자라다는 미군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어 병력 운용에 골머리를 앓던 미 육군 수뇌부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지게 만든 물건이었다.
EMP에게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창과 방패의 경쟁은 하루 이틀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에 대한 대비책은 이미 연구되고 있었다.
“하아.. 하지만..”
샐리는 망설였다. 돈 많고 똑똑하고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까지 가진 남편이다. 생활에 약간의 불만(남편이 좀 더 가정적이었다면 따위)은 있었지만 불편은 없었다. 집안일도 아즈삭이 도와줘서 일이 밀리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편한 이곳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다? 글쎄.. 인간은 보수적인 동물이라 현재에 만족하면 도전을 원하지 않는다. 샐리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위해서야.”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강현의 말에 샐리는 결국 납득하고 말았다. 그녀도 강현만큼 아이들을 사랑했다.
“후우.. 알았어요.”
“그러니까 학교 설립에 좀 신경 좀 써줘.”
느닷없이 나온 말에 샐리의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네? 당신은 뭐하고요?”
“연구가 바빠서. 아차!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나왔겠다.”
강현은 그렇게 서둘러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남겨진 샐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할 일을 나한테 떠넘긴 거지?”
[네, 그렇습니다. 샐리.]
아즈삭이 확신을 사실이라 증언했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래, 바쁘다니까 이해해야지. 어차피 집안일도 아즈삭이 도와서 여유가 넘치는 샐리였다.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것 이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래도 화는 좀 풀어야겠다. 밤이라든지 밤이라든지 주로 밤에 혼을 내줘야겠다. 운동부족인 강현이 남편의 시선을 잡아 두기 위해서 꾸준히 운동을 하며 자기 관리를 하는 샐리의 체력을 당해낼리 없다. 한 삼일 밤 정도 괴롭혀 주면 화가 풀릴 것 같다.
그렇게 샐리는 아폴로티움 제 1 호 사립 학교 설립 준비 위원회의 일에 끼어들었다.
= = = = =
강현은 정말로 바빴다. 능동형 반투막을 만들기 위해서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단백질 구조를 설계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일을 계속 해야했고 우주 도시 진행 과정에서 또 필요한 게 없는지 지속적으로 NASA와 정보를 교환해야 했으며 또 킬덤과 마리아의 결혼식 축하사도 준비해야했다.
축하사는 결혼식장에 나타날 지도 모르는 헨델 회장의 꼬장에 대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강현의 입김이 없으면 헨델 회장이 그 두 사람을 계속 귀찮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현은 독설과 직설에는 소질이 있었지만 원만한 대화를 나누는데 필수적인 우회적 수사나 그에 필요한 문학적 소양은 부족했다. 그래서 축하사에 담기는 메시지의 수위를 조절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낀 강현은 킬덤에게 축하문이나 연설문을 잘 쓰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고 킬덤은 회사 홍보처의 인재를 소개시켜 주었다.
“에~ 그러니까 여기 ‘부모랍시고 자식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생각은 인간의 본질을 망각한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부분은 삭제하시죠?”
리키가 속으로 식은 땀을 흘리며 강현이 작성한 초고에서 수정할 부분을 형광펜으로 가로쳤다.
원래는 자신이 적당히 작성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라며 강현은 끝내 자신이 초고를 작성하고 말았다.
역시 논문을 많이 작성한 학자라서 그런지 글의 흐름은 나름대로 깔끔했다. 하지만 논조가 너무 직설적이었다. 방금 ‘부모랍시고 자식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생각은 인간의 본질을 망각한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부분 이전에는 ‘사랑으로 결합한 두 사람의 결혼은 유대인이니 비유대인이니 하며 차별과 증오를 양산하는 이들에게 교훈을 줄 것입니다.
’라는 문구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공격적이었다. 널리 알려진 강현의 온건하다는 이미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위화감을 느낄 정도였다. 물론 강현에게 독설을 들었던 이들에게는 얌전하다고 할 수 있는 어투였다.
“흐음.. 어떻게 표현해야 공격적이지 않고 원만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아, 안 빼실 생각입니까?”
“빼면 전체적으로 제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전달이 안되잖아요. 그냥 형식상 축하사를 하는 것 뿐이죠. 킬덤 씨와 제가 인연이 얼마나 됐는데 그렇게 섭섭한 짓을 하겠어요?”
리키는 ‘그냥 형식만 차려줘도 좋아할 것 같은데요.’라는 말을 꿀꺽 삼켰다. 자신은 강현같이 유명인이 축하사를 해준다는 것 만으로도 좋을 것 같지만 킬덤의 성향을 모르니 강현의 말도 맞는 것 같았다.
킬덤 역시 지독한 반골로 월가에서 축출당한 사람이었지 않은가? 강현같이 괴짜 기질이 없다면 이상할 것이라는 편견이 리키에게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런가요? 그럼 최대한 순화시켜 보겠습니다.”
리키의 성급한 판단은 결국 강현이 축사를 하는 내내 킬덤이 자신의 신을 부르며 눈을 손을 덮는 일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강현입니다. 오늘 저는 오랜 동지이자 친구이기도한 킬덤 씨의 결혼을 축사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많았다. 회사 직원들은 물론 정재계의 유명 인사들까지 참석했다. 물론 킬덤이 고심해서 청첩장을 보낸 이들이었다.
마지 못해 참석한 헨델 회장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있어서 그런지 딸의 결혼식에 차마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강현과의 화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결혼식이라 손익을 계산해 본 지인들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그중에는 같은 시오니스트이자 현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유대인 세력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담도 있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유대인의 기득권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강현과 화해하는 것은 그들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어떤 것을 시사할 것이고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다.
부정적인 면은 시오니스트 유대 세력이 강현에게 숙이고 들어갔다는 이미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축하사를 헨델이 아니라 강현이 하는 모양새 때문으로 호사가들의 입장에서는 오랜 전통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신흥 강자의 등장으로 보였다.
제멋대로의 해석으로 생긴 오해가 분명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란 제각각인 법이고 강현의 입장에서도 나쁜 해석은 없었다. 그저 킬덤과의 친분으로 축하사를 해주는 것 뿐인데 그렇게 이해해 준다면 따로 힘을 쓸 필요는 없었다.
권력관계에서 상하관계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는 대중의 힘은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보여주는 것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둘의 만남이 어땠는지 어떻게 서로의 관계를 쌓았는지 저는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둘이 이렇게 결혼을 결심했다면 분명히 둘이 서로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 많은 부부들이 사랑에 결혼하고 현실에 실망해 이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그러지 않기 바랍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많은 현실적인 난관과 반대를 극복한 노력이 있습니다. 둘이 서로에게 납득할 수 없는 점을 발견하더라도 그 노력으로 다시 한 번 둘의 사랑을 견고하게 다지는 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약 1분 정도의 축하사가 끝나고 이어서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주례는 킬덤의 대학교 은사이신 머리 희긋한 노신사가 맡았다.
이어진 행사가 모두 끝나고 피로연이 시작되었다. 이젠 부부가 된 킬덤과 마리아가 강현에게 고맙다며 인사하러 왔다. 강현은 샐리와 함께 여기 저기 사람을 만나러 다니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당연히 장인 장모께 맡기고 왔다.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해요.”
마리아가 감사를 표했다.
“별말씀을요.”
이미 부부 생활을 오래한 강현 부부에게 새롭게 부부가 된 킬덤이 이것 저것 물었다. 출산 육아 가정생활 등등. 하지만 조언해 줄 수 있는 영역은 원론적인 부분이 다였다. 강현같은 괴짜와의 부부 생활이 여느 남자와의 부부 생활과 같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호호호. 강 박사 님께서 그런 말을 들으면 많이 섭섭해 하시겠어요.”
“뭘요. 저를 그렇게 마음 고생 시켰으니 앞으로 좀 더 휘어 잡혀야죠.”
연구실에 처박혀 있는 강현을 휘어 잡을 시간이 없는 샐리의 허세였다. 옆에서 강현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오고 가는 와중에 굵직한 남성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남의 딸을 함부로 데리고 가서 재미가 좋으신가?”
헨델 회장이었다. 아무래도 딸아이가 자신이 반대를 하는 결혼을 해서 심사가 잔뜩 뒤틀려 있었다.
그런 그의 말투를 강현이 태연히 받아쳤다.
“재미가 아주 좋고 말고요. 마리아 씨도 즐겁고 모두가 즐겁습니다. 그런데 어째 한 분만은 기분이 영 좋지 않아 보이시네요.”
뼈있는 문장에 헨델의 입가가 비틀렸다. 하지만 강현과 굳이 언쟁을 해서 이득 볼 일이 없기에 그의 시선이 킬덤에게 향했다.
“그래서 정말 내 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네, 넷! 물론입니다.”
“하지만 자네같이 월가 출신의 남자가 아프리카에서 수 년간 활동한 내 딸과 부부 생활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딸은 고집이 너무나 강해서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았어. 나조차도 불가능했지. 그런데 자네가 딸을 미국에 데려와서 신혼 생활을 할 수 있겠나? 응? 자네가 아프리카로 와야할걸?”
킬덤 역시 반골은 반골이라 갈굼과 악담이 섞여있는 잔소리에 속이 부글 부글 끓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래도 장인 어른이라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미 그정도 각오는 했습니다. 마리아와 그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대화로 나눠봤습니다.”
“흥! 대화는 결국 대화에 불과해. 실제로 생활을 시작하면,”
속이 부글 부글 끓다 못해 위장에 구멍이 뚫릴 것 같던 킬덤을 구해준 건 강현이었다.
“회장님. 단둘이 이야기 좀 나눠볼까요?”
“... 그러지.”
강현은 삼폐인과 유리잔 두 개를 들고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잔디 밭에서 피로연을 즐기고 있던 사람들 중 그 두 사람을 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수군대기 시작했다. 유대인과 강현의 갈등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건이었다.
“....”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분위기는 침묵이 돌았다. 헨델 회장은 머리가 복잡해서 할 말을 고르기가 힘들었고 강현은 여유롭게 샴페인을 잔에 따르며 입을 열 타이밍을 가늠했다.
“원하는 게 뭔가?”
헨델 회장이 입을 열었다.
“시오니스트들의 침묵이죠.”
“... 우리를 완전히 없애버리겠다는 의미인가?”
“그럴 수 있다면 그러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죠. 홀로코스트나 인종학살을 벌일 생각도 없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