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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83화 (183/241)

183화

그러나 그만큼 큰 단백질을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헤모글로빈이라는 훌륭한 예가 있다.

탄소 3000여개, 수소 4000여개, 산소 800여개, 질소 700여개에 황 원자와 철 이온 몇 개로 구성된 엄청난 분자량의 거대 단백질이다. 산소 원자를 운반하니 만큼 거기에 수소 두 개가 붙은 물 분자도 통과시킬 수 있는 단백질의 합성은 불가능하지 만은 않았다.

다만 노력과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강현은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 = = =

“이 새끼가!”

최 이사는 도저히 믿을 놈이 없어서 분통이 터졌다. 말 잘듣는 놈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주위에는 온통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하이에나만 존재했다.

최근에 일어나는 수상한 일들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뒤통수 맞을 뻔 했다. 김 부장이라는 새끼가 회사의 기술을 빼내서 새롭게 회사를 차릴 계획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들 그러지 않은가? 자신이 관련 기술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그 기술로 만드는 생산품을 구매하는 바이어들을 잘 알고 있다면 따로 회사를 차려서 거래선을 빼앗아 가버리는 일들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주로 중소 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샘성 같이 거대한 대기업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완제품을 만들어 유통까지 시키는 샘성에서 고작 기술 하나 빼서 회사를 만든다고 타격이 올까? 첨단 제품은 여러 기술을 집약 시켜야 만들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조 차장, 아니 조 부장. 잘했네.”

“감사합니다.”

“조웅 전자 사장이 희사할 것일세.”

김 부장의 계획을 꼰질러 부장 자리를 낚아챈 조 차장, 아니 이제는 조 부장이 된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역시나 자신의 예리한 감은 맞았다. 이렇게나 빨리 승진 기회가 오다니 말이다. 조웅 전자의 사장은 눈앞의 최 이사와 사돈 사이였다. 그리고 김 부장이 세우려고 했던 회사는 바로 그 조웅 전자의 거래선을 빼앗아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회사였다. 그러나 그런 회사가 부하였던 사람의 꼰지름에 시작도 못하고 좌초했다.

김 부장은 사실 억울했다. 조웅 전자는 그저 몇 년 전에 샘성에 있던 임원이 나가서 만든 기업에 불과했다.

그들의 조악한 기술로 만든 부품은 샘성의 이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김 부장이 자신이 몇 년간 실무를 맡으며 얻은 아이디어라면 조웅 전자보다 더 좋은 부품은 비슷한 가격에 납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리고 그것이 샘성 전자에게는 더 좋은 일이었고 개인적인 성공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실수는 사내 정치, 임원들간의 이해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니 예정된 성공에 눈이 멀어 한국인의 치열할 정도의 정치적 성향을 무시했다.

사내 정치에서도 힘을 쓰려면 인맥이 필요했고 샘성에 납품하는 퍼스트 밴드 하청의 사장은 매우 좋은 인맥이었다. 더구나 그 인맥이 전 샘성 임원이어서 여전히 샘성에 인맥을 유지하고 있으니 아니 그런가?

조 부장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가자, 그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신뢰어린 눈빛을 보내던 최 이사의 인상이 확 찌뿌려졌다.

“쓰레기 같은 새끼.”

김 부장이 지를 얼마나 챙겨줬는데 기회가 생기자 마자 이렇게 뒤통수를 때리는 조 차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최 이사였다. 하지만 시설이 하 수상하다. 아무렇지 않게 상급자의 실수나 비리를 이용해 뒤통수 치는 새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얼마전 비서와 불륜관계가 드러나 사퇴한 이 이사의 경우도 믿었던 아랫놈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었다.

하아.. 믿을 놈 하나 없었다. 그나마 김 부장이 가장 믿을 만 했는데 사내 정치의 실수로 나자빠 떨어졌다. 새롭게 믿을 인간을 구하기 전까지 저 조 부장 새끼를 잘 구슬려서 써먹어야 했다.

“후우...”

그는 한숨을 지었다.

군사 독재와 정경 유착으로 성장한 기업에서 부조리한 일이 한 둘이겠나? 비자금 조성도 그중 하나였다.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차떼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5만원권의 발행을 가장 좋아한 곳은 결국 비자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는 이들이었다.

5만원권 덕분에 트럭에 실려야 할 사과박스가 승용차로도 배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실상 이번 김 부장 같은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었다. 아니 일어나도 이런 식으로 아랫놈에게 뒤통수를 맞으며 발각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김 부장이 회사를 설립하고 나서야 사건이 알려져야 했다. 그렇게 되면 처리에 골치가 아프니까 이렇게 조기에 발견된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사건의 이면에 자리한 변화가 최 이사는 불편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폭로를 꺼리지 않는다.

다 제현 그룹 그놈들 때문이다. 우주 시대의 엘리트가 되어 보겠다고 발악하는 간사한 놈들이 여기저기서 폭로전을 벌이면서 시작된 일이다.

사회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그깟 미국 영주권이 뭐라고..

이미 기득권 세력에 달라붙은 이들에게는 별다른 이득이 없는 유혹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밑의 경계선에 있는 이들이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될 것 같은데 TO가 나지 않았다. 과거라면 상황을 파악하고 기회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겠지만 시대의 풍토가 변했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주부와 연예인, 공무원까지 폭로를 하는 시대다. 올라갈 자리가 없다면 만들면 된다는 기회의 시대가 왔다.

실패로 인한 불안도 폭로를 통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은 이들을 제현 그룹이 은밀하게 방문해 면접을 보고 데리고 간다는 신뢰성 있는 소문이 인터넷과 증권가 찌라시로 나돌고 있으니 많이 감소되었다. 물론 손해를 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주류 사회 진입에 대한 야망에 불타는 이들에게 그 정도 손해는 감수 해야 하는 일이었다.

“흐음...”

최 이사는 이런 풍토가 다시금 잠잠해 질 때까지 몸을 사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 판단은 그 혼자만 내린 것이 아니었다. 폭로할 거리가 많은 사람들은 더욱 그랬다. 그들은 몸을 사리면서 자신들의 하부 인맥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자신의 이득이 곧 그들의 이득인 이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협조하는 이들이 문제다.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상황과 적당히 타협하여 눈감고 입 다물고 사는 이들이 문제다.

최 이사의 경우에는 최 이사 라인을 제외한 이들 모두가 문제다. 다른 라인을 탄 이들의 경우에는 동류 의식 때문에 폭로할 가능성이 적었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식의 폭로전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사내 정치에 발을 디디지 않는 이들이다. 내 일만 제대로 처리하고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내며 골치 아픈 사내 정치 따위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이들이 문제다. 이들은 당연하게도 승진같은 일에서 라인을 탄 이들에게 번번히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더 많은 실적을 냈는데 왜 밀렸을까? 불만이 생기지 않을리가 없었다.

그런 이들이 뭔가 기회를 잡아 폭로를 시작하면 더 골치다. 분명히 합당한 이유로 승진에서 제외됬는데 자신이 납득하지 못한다고 앙심을 품는 놈들이 생길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막장 직전이다. 회사 분위기가 엉망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가속화 되면 좋을 꼴 못본다.

그러나 튀어나온 못이 망치를 맞는다고 누가 나서서 뭘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확히는 비리나 부조리에 연관되지 않아 폭로에 맞설 수 있는 이가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최 이사 같은 입장에서는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규모가 큰 샘성이다. 분명 이사진들 중에서도 덜 더럽고 양심있는 이가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게 되면 흩어진 힘이 무섭게 그런 사람을 중심으로 모일 것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런 식으로 새롭게 권력이 나타나는 걸 반가워 할리 없다.

결국은 다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잠시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최 이사 같은 이들 중에서는 과거에 저질렀던 일들을 수습하느라고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의 사람도 있었다.

따르르릉.

“여보세요. 응? 뭐라고? 빈 이 자식이 또 일을 저질렀다고?!”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최 이사는 소리를 질렀다. 몸을 사려야 하는 이때에 자식 새끼가 도무지 도와 주질 않는다. 이번에는 무면허 운전이라고 한다. 저번에는 학교폭력이라 여기저기에 인맥을 써서 간신히 집행 유예로 풀려났는데 또 사고를 치다니..

딸깍.

“거기.. 아닐세.”

비서를 부르려던 최 이사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인터폰을 다시 꺼버렸다. 이번 일도 약점이 될 일이다. 함부로 남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사람을 믿을 수가 없게 되니 직접 발로 뛰어야 했다. 기득권도 결국에는 인간 사회의 일부에 불과했다.

= = = = =

미 영주권이 불러 일으킨 폭로의 광풍에서도 제현 그룹 만은 조용했다. 태풍의 눈이 조용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제현 그룹은 인사 문제 따위로 사내 정치가 성립될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일단 임원진이 외국인이다. 한국 특유의 유교적 전통이나 인맥, 학연, 지연이 얽힐 일은 없었다.

거기에 인사 시스템에 인공지능이 관여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인맥이라는 요소에 상관없이 임원진이 정한 기준으로 실적을 판별하고 여기에 인차관리처는 물론이고 해당 직원의 상급자의 평점 등을 분석하여 이상 유무를 판단한다. 그러니까 조직 구성원들은 각자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되도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이직해 온 직원들 사이에서 인공지능이 개인의 실적을 판별해서는 인화(人和)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비난한 적이 있었다. 또한 개인의 실적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특히 팀의 팀웍이나 수치화 되지 않는 무형의 공로는 상급자의 판단에 의해서 정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랄니는 고작 인맥이나 서로의 감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인화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에게 프로 정신을 요구했다.

프로 사무직이 되어 인맥이나 학연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만큼 기여하라고 당부했다. 인사 시스템에 인공지능이 관여하는 것은 그러기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한 것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폭로전의 뒤숭숭한 분위기로 위축된 각 기업에 대해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제현 그룹이 우세를 점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제현 그룹에게는 제 2의 도약이었다.

[우주 시대를 이끕니다. 제현 그룹.]

[젊은이들이여! 세계가 아닌 우주를 꿈꿔라!]

각종 광고가 이어졌다. 대기업이 대기업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선점 덕분이었다. 미세한 기술력의 차이는 브랜드 파워로 뒤집어 엎을 수 있다. 어차피 첨단 기술 상품에 적용된 기술의 좋고 나쁨을 일반적인 소비자가 분별하는 건 어렵고 귀찮은 일이다.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우주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매우 주효했다. 반도라고는 하지만 북한 때문에 실질적으로 섬나라나 마찬가지인 남한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 수단은 바다와 하늘 뿐. 그리고 두 축 중 하나인 항공이 우주 항공으로 개념을 변화시키고 나가고 있는 상황이니 우주 진출은 물류 시장에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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