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81화 (181/241)

181화

더 큰 문제는 산소가 소비되고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는 것이다. 화학적으로 미생물이 유기물을 먹어치우는 건 물속의 유기물을 태워 없애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기물을 산화시켜 물과 이산화탄소로 만든다? 즉 대량의 산소가 소비된다는 뜻이다.

우주 도시 내의 전체적인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기 조성을 조정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런데 정수 시스템으로 인해 고체 혹은 액체 상태인 유기물이 기체가 되어 산소가 대량 소비되고 이산화탄소가 대량 생성되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 일찍이 바이오 스피어 2 프로젝트도 이 때문에 실패한 것 아닌가?

우주 도시는 기술력으로 세워진 생존 공간. 생존 시스템 역시 기술력으로 보완하는 것이 적절한 방향일 수도 있다. 우주 도시 규모에 지구의 생태계와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맞지 않은 규격과 처리 시간으로 난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강현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다면 일단 미생물을 쓰지 않는 방법, 유기물을 기체로 만들지 않고 물에서 분리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물리적인 필터링 기술이나 증류식 방법이 가장 유력했다.

일단 생각을 정리했다. 필터링 기술은 한계가 명확했다. 필터 원리는 단순했다. 필터의 공극보다 작은 입자는 통과하지 못한다. 필터링하고자 하는 오폐수의 농도가 진할 수록 더 큰 삼투압이 생기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고 더 큰 압력을 가해야하기 때문에 자연히 필터의 수명과 교체 간격도 줄어든다.

그래서 필터링 기술은 대부분 큰 공극을 가진 필터부터 작은 공극을 가진 필터로 차례로 배열된다. 필터의 수명과 정수 효율을 늘리기 위해서다.

여기에 증류법을 최종적으로 도입하면 충분히 마실 수 있는 물이 된다. 아예 처음부터 증류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다.

농도가 높을 수록 삼투압이 증가하듯이 농도가 높을 수록 끓는점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비휘발성 입자들이 용액 표면에서 물분자가 증기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

필터 기술을 통해 농도를 낮춰야 증류법의 효율이 증가하는 것이다.

강현은 쓸만한 기술이 없을까하고 생각하다가 중동과 아프리카 해안 지역 국가에 제공한 삼투압 담수화 기술을 떠올렸다.

특별한 팹티드 결합 네트워크가 이 고분자 삼투막의 기술 핵심이었기 때문에 해수 일정 깊이 이상 집어 넣으면 물의 압력으로 자연적으로 담수가 생성되는 기술이었다. 담수가 생성되는 족족 퍼올리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농도가 높아진 해수를 바다가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는 정수 시스템이었다. 바다만큼 폐수 수용성이 없는 우주 도시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우주 도시에 필요한 필터링 기술의 조건중에 강현이 가장 탐내는 조건이 있었는데 반 영구성이 바로 그것이다.

소모되는 필터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결함이 생기기 전까지는 반복해서 쓸 수 있는 필터가 이물질이 껴서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필터보다 매력적인 건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그러기 위해서 충분한 기계적 강도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조건의 필터는 이미 존재했다. 세라믹 필터가 바로 그것이다.

다공성 재료를 만드는 데에는 세라믹 만큼 용이한 재료도 없다. 게다가 조성의 변화나 제조 공업에 변화를 주면 공극의 크기를 다양하게 만드는 것도 쉽다.

거기에 더해 필터링 방향의 반대로 맑은 물을 고압으로 주입하면 공극에 낀 이물질을 세척할 수도 있다. 가장 정수성이 뛰어난 활성 탄소 필터에 비하면 정수력 측면에서는 떨어지지만 반영구성이란 특성에 가장 가까운 필터였다.

다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깨지면 못쓰고 정수 속도가 활성 탄소 필터같은 소모성 필터나 고분자 반투막을 사용하는 것보다 느리다는 것이다. 세라믹 필터는 2차원 평면 반투막과 달리 3차원 벌크 형태를 띈다.

그 사이로 용액이 스며들어 지나가는 속도가 막 하나만 통과하는 되는 반투막보다 느릴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 또한 소모성 필터에 비해서 공극의 수도 적다. 현재의 기술로 소모성 필터만큼 작은 공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형태를 바꾸어 볼까? 세라믹으로 얇게 반투막을 만드는 건 가능하다. 공극의 조절도 힘들지만 스퍼터링을 비롯한 박막 제조 기법들이 존재하고 있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얇은 막이 정수시에 받는 압력을 그 딱딱한 재질로 견디는 건 어렵다.

그래서 거의 모든 반투막은 고분자로 만들어지는데 이 고분자로 만든 반투막의 약점은 재사용이 어렵고 세라믹 필터보다 내구성이 약하다는 것이다.

강현이 해수 담수화 기술을 위해서 만든 고분자 반투막도 비록 펩티드 결합 네트워크로 인해 기존 반투막보다 몇 배나 높은 내구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정 농도 이상의 폐수를 정화시키기 위한 삼투압을 견디기는 힘들었다.

새로운 재료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일단 3D 벌크 형태는 안되.”

강현은 일단 선제 조건을 그렇게 달았다. 평면 필터와 벌크형 필터의 정수 속도 차이는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럼 평면 반투막 필터나 증류법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증류법은 최소 한도로만 사용해야 돼.”

가정에서 나오는 오폐수를 모두 증류법으로 정수하려고 하다가는 우주 도시 안은 찜통이 될 것이다. 외벽에는 태양열로 인한 열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세라믹 내열 코팅이 되어 있다.

열이 들어오지 못하는 만큼 열이 나가는 것도 힘들다. 가장 열이 많이 빠져나가는 곳은 두루마리 휴지 같은 모양의 우주 도시 중앙에 있는 구멍이다.

내산화 코팅만 되어 있는 이곳에서 열이 복사의 형태로 빠져나간다.

[그럼 평면 반투막 필터 뿐이군요.]

반투막은 말 그대로 반만 투과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크게 액체형 반투막이나 고체형 반투막이 있는데 고체형 반투막이 사람들이 주로 알고 있는 폴리머나 세라믹 반투막이다.

액체형 반투막은 공업적으로 사용하는데 주로 녹은 금속의 산화나 질소 오염을 막으며 다른 불순물의 대기 확산을 위해 표면에 주로 소금 따위의 용융물을 얇게 입히는 방법 등으로 물리적 방법보다는 화학적 특성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물론 액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한계(증발, 용해, 내구성 등)는 명확하다.

가정용으로는 절대 쓸 수 없다. 언제 액체 반투막 필터에 사용한 액체가 물에 섞일지 확신할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반투막만으로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정도의 물을 빠르게 정수할 수 있을까?”

강현이 반문했다. 과연 반투막 만으로 주택에서 배출하는 오폐수만큼 정수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그의 과제다.

일단, 반투막을 사용하게 되면 삼투압을 고려해야 한다. 정수를 통해 오폐수의 농도가 높아지면 자연히 삼투압도 높아지고 역으로 가해야 하는 압력도 커진다. 그러다가 반투막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압력이 높아지면 그때부터는 재앙의 시작이다.

반투막이 찢어지고 오물이 바로 정수 탱크로 쏟아진다. 그때 샤워라도 하고 있으면 오물이 전신에 쏟아질 것이다.

“흠.. 농도가 높아진 상태에서도 견딜 수 있는 반투막이라..”

삼투압은 반투막을 경계로 농도가 높은 액체가 순수한 액체를 빨아들이는 압력이다. 또한 반투막을 통해 불순물을 제외한 액체를 통과시킬 수 있는 압력의 기준선이기도 하다. 반투막으로 여과를 하기 위해서는 여과시킬 액체에 그 액체가 가지는 삼투압보다 높은 압력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현이 만든 중동의 반투막 담수화 플랜트보다 우주 도시의 가정용 반투막 필터가 만들기 더 어렵다. 점점 농도가 높아지는 만큼 가해지는 압력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강현은 반투막의 재질부터 따지기로 했다. 반투막은 주로 고분자 물질로 만든다. 사슬형태의 얽힘 구조가 반투막을 만드는데 매우 용이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용이하냐면 가정에서도 반투막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폴리에틸렌 필름을 찢어지지 않게 최대한 늘리면 그것이 바로 반투막이다. 필름의 군데 군데 결정화 되어 있는 고분자가 늘어지고 당겨져 펴지며 고분자의 사슬 사이로 물분자가 통과할 수 있는 간극이 생기는 것이다.

그물눈이 큰 어망 사이로 치어나 작은 물고기가 빠져나가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그렇다. 반투막이란 기본적으로 분자를 거르는 분자 체인 것이다.

“내구성을 증가시키려면 일단 열가소성이 되보다는 공유결합이 네트워크 구조인 열경화성 고분자를 이용하고 이걸 반투막으로 만들려면...”

폴리 에틸렌은 고분자가 사슬 구조인 열가소성 플라스틱이다. 그런 사슬형 고분자 플라스틱의 강도는 이 고분자 사이의 반데르발스힘(분자간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 하지만 PVC같은 열경화성 플라스틱은 공유결합이 네트워크 그물망을 이루고 있다.

열가소성 플라스틱보다 단단하고 열에 녹지 않으며 가열시 액체 상태로 변하지 않고 곧바로 불에 타는 연소 과정으로 직행하는 이유다.

강현은 자신이 개발한 중동 담수화 플랜트에 적용한 반투막을 떠올렸다. 공유결합의 네트워크 구조는 그때까지 오직 사슬형 플라스틱으로만 제조되는 폴리머 반투막 기술에 혁명을 가져왔다. 세라믹 필터보다 싸지만 폴리머 반투막보다는 더 긴 수명과 신뢰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열경화성 플라스틱으로 반투막을 만들려면 특별한 공법이 요구된다. 열경화성 플라스틱은 경화된 그 순간의 형태를 계속 유지하기 때문에 만들 때부터 반투막으로 만들어야 했다.

강현이 이를 위해서 박막 제조 기술을 사용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기에 사용된 것은 플레이트 위에 아주 얇게 아미노산 용액을 펴지게 하는 표면처리 기술과 아미노산 사이에 네트워크 결합이 가능하도록 한 분자 내에 카르복실기와 아민기가 두 쌍 이상 존재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는 화학 공학적 기술이었다.

물론 아즈삭의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와 원자 단위의 시뮬레이션 능력이 시간을 단축시키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흐음.. 하지만 여기서 더는 손 볼 곳이 없군..”

강현은 자신이 만든 담수화 플랜트용 반투막에 관한 자료를 다시 꺼내어 살펴보고는 감상을 내뱉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모든 결합 중에 가장 강한 결합은 공유결합이다. 그리고 그런 공유 결합을 네트워크 형태로 적용시킨 펩티드 결합 네트워크 반투막은 내구성을 그 이상 늘리기 불가능할 정도였다.

여기서 내구성을 더 늘릴려면 무작위 거동을 하는 폴리머 분자들을 하나 하나 잡아서 마치 어망처럼 균일한 나노 그물을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역시 그런 기술은 원자를 어디에든 원하는 곳에 놓을 수 있을 정도의 기술 수준이 필요하니 지금은 도저히 불가능이다.

“패러다임을 바꿔야해..”

강현은 중얼거렸다. NASA의 동료들이 칭하는 ‘접신’행위가 발동되었다.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직감이 삼투압만으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뭐? 삼투압만으로는 안되? 외부에서 가하는 힘에 수동적으로 작동하는 반투막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아! 나트륨 펌프!”

강현이 비명처럼 외쳤다. 반투막이 능동적으로 원하는 물질을 선별해 통과시킬 수는 없을까? 가능하다. 이미 생물체가 그것을 실현시키고 있지 않은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