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녹지조성, 통신 시설보강, 전기 시설 보강, 광합성 칩을 이용한 임시 산소 생성 시설, 환기 시설 등 많은 일들이 남아있었다. 그야말로 도시를 하나 새로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주 인부들의 마음에는 걱정보다는 희망이 가득차 있었다.
비록 지금 지은 건물은 간이 건물에 시설도 형편없지만 그래도 비전이 있었다. 차후 첨단 우주 도시에서 즐겁게 사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우주 도시는 하나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 = = =
[13차 인원,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진행율은?”
[전체 계획 중 0.23% 완료입니다.]
“생존 시스템 구성 중 인가?”
전기, 산소, 보급. 우주 도시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선결되어야할 과제였다.
펜타봇만으로 정교한 전력 시스템의 구성은 어려웠다. 일단 케이블 연결만으로도 서너기가 달라붙어야 했다.
우주 도시 내부에 바둑판 형식으로 LED 조명을 달기 위해 일직선으로 케이블을 연결하는 것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도시 규모를 보았을 때 로봇들이 작업한 전력 시스템은 불충분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인부들이 여기에 매달리고 있었다.
산소의 경우에는 기술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강현이 일찍이 개발하고 NASA에 라이센스를 제공한 광합성 칩을 이용하면 이산화탄소와 산소문제는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했다. 다만 전력과 연동되기 때문에 전력 시스템의 보강에 수반되어 진행되는 수 밖에 없었다.
보급의 경우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올라간 인원의 수가 그리 많지 않고 5천명이 상주하더라도 기존의 매스 드라이버로 충분히 보급이 가능했다. 게다가 NASA에서 개발 중인 우주 정거장 재활용 계획이 시작되면 시간은 들겠지만 더 싸고 대량으로 물자를 보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만족할 편의시설이 같이 지어지고 있었다.
“일단 주택이 충분히 완공되면 소방 시스템이나 조명 시스템, 공원을 다시 한 번 손봐야 할 것 같아.”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니 각종 문제와 건의 사항들이 올라올 것이다. 그것들은 행정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기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급자족이 가능해지려면 일단 물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획기적인 정수 시스템은 몇 십만의 인구를 족히 수용할 수 있는 도시 규모로 볼 때 반드시 필요했다.
“숲을 조성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야...”
숲 뿐일까? 정수 능력은 숲보다는 늪이 더 좋다. 하지만 늪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기술적 난제들이 너무 많았다.
일단 물이 새지 않게 고분자 코팅을 하고 방벽을 세우고 충분한 햇볕과 함께 수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늪이 조성될 경우 늘어나는 대기중 수분을 조절할 방법 역시 찾아야 했다. 전기 시스템에 수분이 맺히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물론 모든 전선을 케이블 헤드로 연결하도록 되어 있어 사고가 생길 확률은 낮았지만 그럴 수록 한 번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가 난다.
“생태학자의 도움을 받아야겠어.”
[NASA가 기존에 진행하고 있던 바이오 스피어 프로젝트가 책임자라면 적당할 것입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는 이미 바이오 스피어 2를 진행했었고 실패로 끝냈다. 실패의 원인은 산소부족. 토양의 미생물이 소비하는 산소를 식물들의 산소 생성 능력이 따라 잡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구조적 결함으로 충분한 광량을 제공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강현은 이 문제는 일단은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공원은 일단 우주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한 복지적인 측면이 더 강했다. 산소는 광합성 칩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공원의 자연 생태계를 이용한 정수 시설을 만든다면 정수 비용이 무척 절감될 것이다. 물론 적절한 식생의 조성이 필요했고 안타깝게도 강현은 이 분야쪽으로는 전문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초청된 NASA의 우주 생태계 조성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메니쉬는 난색을 표했다.
“정수 시스템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도시 급 규모에서 배출되는 폐수는 상상을 초월해요.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설이 필요합니다. 유지비도 장난이 아니구요.”
“저도 압니다. 하지만 하수 시설이 없다면 어떨까요?”
“하수 시설이 없어요? 그게 말이 됩니까?”
“정확히는 공공적인 하수 시설이 없다는 거죠. 주택은 물을 구입하고 폐수를 자체적으로 정화하거나 비용을 지불하고 폐수를 처리 시설로 보낼 수 있습니다.”
“흠..”
강현의 말은 메니쉬의 생각을 깊게 만들었다. 강현의 방법은 기술적인 방법이라고 하기 보다는 인간의 이기적인 특성을 이용한 방법이다.
각자가 물을 사서 쓰고 폐수를 비용을 지불해 폐기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폐수의 배출이 급감할 것이다. 게다가 땅도 아니고 하수구도 없는 우주 도시다.
폐수를 몰래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있는 곳이 마땅찮다.비용만 합리적이라면 폐수의 범람은 없을 것이다.
강현의 말이 이어졌다.
“뭐, 획기적인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의 임시 방편에 불과하죠. 폐수를 0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폐수 문제는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되겠죠.”
기술적 난제를 행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건 역시 취향에 맞지 않다. 그러나 인간의 기술적 정수 능력이 자연의 수용력을 따라잡지 못하는 한 우주 도시의 빠른 정상화와 존속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럼 지금 짓는 건물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수구가 없는데요.”
“하수 시스템은 안 만든다니까요. 무게를 골고루 분산할 수록 우주 도시의 전체적인 밸런스도 맞고 내구성도 늘어나요. 기반 구조물 수리는 정말 만만찮은 비용과 귀찮음이 들어가거든요.”
강현은 주거 지역에는 거대 시설을 최대한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 곳이 무거워져서 질량 밸런스가 깨지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부담이 어딘가에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부담은 곧 스트레스(Stress)이고, 스트레스는 곧 힘(Force), 힘은 곧 부하(Load)이다.
“그런 문제가 있군요.”
“물리학에도 대칭성이 중요하듯이 우주 도시에도 대칭성이 중요해요. 한 군데 거대 시설을 지으면 반대 쪽에도 거대 시설물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럼 백화점이나 상업 지역도 규제하실 겁니까?”
“글쎄요. 시설의 질량으로 따질 것이기 때문에 적정 질량만 갖춘다면야 별로 문제는 없겠죠. 하지만 공업시설은 그런 질량 제한을 맞추기가 정말 까다로울걸요?”
“시설 경량화 기술에 관련된 회사들의 주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아. 저는 미리 투자해 놨습니다.”
“저도 빨리 투자해야 겠군요.”
역시 시대를 주도하는 사람은 투자가 쉽다. 어느 것이 중요하게 될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메니쉬는 강현과의 대화에서 발견한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에 럭키!를 외치며 구체적인 기술 토론에 들어갔다.
강현이 생각하는 정수 시스템의 구상은 크게 이원화 되어 있다. 가정에서 완벽한 폐수 처리를 할 수 있는 기술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주택 차원과 공공적인 차원에서 각각 폐수 처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정용 폐수에서 가장 많은 오염물은 무엇인가? 바로 유기물이다. 몸의 때, 머리카락, 유기 화학 기술로 합성된 물질들. 이것들을 처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바로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법이다. 미생물들이 유기물을 먹으며 제거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가정에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필터하고 남은 농도 높은 폐수를 거대한 정수 시설에서 정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수 시설이 커지면 반대쪽에도 비슷한 질량을 가진 대형 시설이 필요했다. 하지만 대량의 물을 처리하는 공장과 비슷한 비중을 가질 수 있는 업종의 시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강현은 전체적으로 대량으로 조성될 공원을 생각했다. 하나 하나는 정수하는 데 작을진 몰라도 모두 합치면 우주 도시의 전체 면적 중 약 20%를 차지할 녹지 생태계를 이용하면 어떨까? 모든 늪지를 파이프를 이용해 정수 시설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늪지 자체의 정화능력을 총 동원하면 정수 시설의 크기가 줄어도 되지 않을까?
“공원에 조성할 늪을 이용해서 물을 정화한다고요?”
강현의 말에 메니쉬가 고개를 갸웃했다.
“흠.. 복잡한가요?”
“글쎄요. 박사님께서 지금까지 들려주신 계획과 뭔가 상충된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어디가요?”
“지금까지 들려주신 이야기는 전부 방향이 소형화 기술을 이용해 주택단위로 처리하는 방법으로 가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대형 시설 이야기가 나오니까 좀 위화감이 드는군요.”
“아!”
강현은 감탄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고정 관념에 빠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그는 메니쉬의 손을 잡고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응?”
덩그란히 남겨진 메니쉬가 어안이 벙벙할 때 샐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응접실로 들어왔다.
“저이가 또 시작이군요. 죄송합니다.”
“아니 저기.. 그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좋은 생각이 났다는 거죠. 저렇게 되면 제대로 서재 밖으로 나오지도 않아요.”
준이 문을 두드리며 큰 목소리로 아빠아빠하고 불러야 나온다.
“어.. 그러면..”
“그만 돌아가 보셔야겠어요.”
“그렇군요.”
메니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샐리의 옆에서 준이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빠빠이.”
= = = = =
“너무 생태계에 집착했었어!”
강현은 자신이 범한 오류를 인지했다. 우주 도시는 지구가 아니다. 그런데 지구의 생태계를 완벽하게 구현하려고 했으니 마치 난장이가 거인의 옷을 입으려고 한 것처럼 뭔가가 맞지 않은 것이다. 아마 대형인 우주 도시의 전체적인 밸런스에 신경 쓰다보니 어느새 규모가 큰 것에 집착한 것 같았다.
기술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그것은 편리성이다. 산업혁명 시절에 편리성은 인간에게서 힘든 노동을 덜어내는 동력 기관의 발전으로 이루어졌지만 현대의 정보화 시대에 편리성은 개념이 바뀌었다.
바로 이동성과 즉각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집적화와 소형화로 구현되었다. 스마트폰, 포터블 태양 충전 장치는 가장 대표적인 물품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일어난 변화는 누구나 인정하는것이었고 포터블 태양 충전 장치는 그것이 낮이 아니라 밤에도 충전되었다면 인간의 문명은 진작에 혁명을 맞았을 개념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수 시스템을 대형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 단위로 구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었다. 그것을 억지로 규모를 키울려고 하는 것은 쓸데없는 오만이었다.
각 가정에서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을 굳이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인간이 빗물만으로 생존하고 생활할 수 있었다면 강이란 거대한 수자원 근방에서 문명이 태동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관점을 바꾸니 늪지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정수 시스템의 수많은 단점이 눈에 보였다. 일단은 관리 보수의 문제다. 파이프로 연결된 정수 시스템이 고장나면 정상화에 많은 시간이 들 것이다.
두번째는 미생물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유기물을 정화하는 데에는 미생물처럼 좋은 방법은 없다. 단, 지구에서라는 단서가 붙는다. 지구보다 물이 부족할 게 뻔한 우주 도시에서는 물 소비 속도에 걸맞는 빠른 정수 역량이 필요했다. 거기에 미생물은 맞지 않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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