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79화 (179/241)

179화

진공 상태인 선착장에서는 특수한 도킹 장치가 필요했다. 벽에서 길게 통로가 나와 드래곤 V3의 외벽에 밀착했다.

[도킹 시작. 밀착 완료. 기압 체크 시작. 기압 체크 완료. 상태 올 그린. 즐거운 여행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문이 열리고 좁은 복도가 드러났다. 활주로에서 여객선에 도킹하기 위한 통로와 근본적으로 동일한 형태의 통로다. 다만 밀폐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첨단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달랐다.

“갑시다!”

천전호 팀장의 말에 따라 팀원들이 움직였다. 무중력에 익숙하지 않아 통로에 붙은 손잡이를 잡고 움직여야 했다.

백영길이 통로를 빠져나와 넓은 공간으로 들어왔을 때 갑자기 뒤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꺄아아! 누가 저 좀 잡아 주세요!”

뒤 돌아보니 팀원 중 한 명이 허공에 둥둥 뜬 채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하나 씨라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만년 백조 였다가 모집에 합격된 동기였다.

흠.. 무중력 실습할 때 주의사항 못 받았나? 백영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그녀의 위치와 자신의 위치, 그리고 벽에 달린 손잡이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가 벽을 살짝 박찼다. 이정도면 됐겠지.. 그의 계획은 운동량 보존 법칙을 이용해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하나 씨를 잡아 벽쪽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무중력 상태는 그의 지례짐작으로는 상상한 계획을 실현시킬 수 없었다.

“으악!”

“꺄악!”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부딪힌 두 사람은 벽에 난 손잡이를 잡지 못하고 다시 튕겨나왔다. 이제는 백영길도 허공을 둥둥 떠다니며 허우적 댔다.

“사, 사람살려!”

백영길의 입에서 절로 터진 소리다.

무중력 상태란 뭔가? 그건 자유 낙하하는 감각과 동일했다. 더욱 무서운 건 어느 방향으로 떨어지는 건지 감도 잡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몸도 뱅글뱅글 눈도 뱅글뱅글 머리 속도 뱅글뱅글.

“““푸하하하!”””

허우적 거리는 모양새가 하도 웃겨서 팀원들 사이에서 웃음보가 튀어나왔다.

“크하하! 뭐하는 겨?”

팀장은 아니지만 팀내 최연장자인 최선도가 성큼성큼 걸어서는 허공에서 허우적 거리는 두 사람의 발목을 잡아 바닥에 끌어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아저씨.”

“자력 부츠를 활성화 시켜야지.”

최선도가 헬멧 한 쪽 구석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아!””

두 사람은 그제서야 헬멧 한 쪽에 나온 부츠 모양의 경고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중력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 도입한 자력 부츠다. 합금철 구조물이라 걷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두 사람은 손목의 패널을 조작해 자력 부츠를 활성화 시켰고 무중력의 허우적 거림에서 안심할 수 있었다.

이런 광경은 그들을 뒤 이어 도착한 팀들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이유는 증강현실용 헬멧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둥그스름한 곡면에 디스플레이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LED를 적용하려니 온통 검은 우주 환경에서 가시성을 제대로 확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빛을 투사하는 프로젝터 방식을 하려고 했는데 헬멧에 적용할 정도로 가볍고 작은 프로젝터 기술이 신통하지 않았다.

작은 스피커를 달아 경고음을 흘리는 차선책이 적용되었지만 처음 겪는 무중력의 신기함에 정신이 팔린 두 사람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훈련 부족이면 훈련 부족이지만 그런 훈련 부족마저 보조하고 채워주는 것이 증강 현실 기술의 목적이니 만큼 제대로 된 증강현실용 헬멧이 나올 때까지 백영길과 하나가 겪은 촌극이 종종 일어날 것이다.

팀장인 천정호는 스크린 패드를 보면서 팀원들을 창고 구역으로 안내했다. 스크린 패드에는 각종 매뉴얼과 업무 리스트가 들어있었다. 지도도 마찬가지다.

“저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스파이더봇을 조립하는 일입니다.”

모두들의 얼굴에는 흥분의 빛이 떠올랐다. 실습으로 배운 일을 드디어 써먹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창고에는 상자들이 벨트에 고정되어 쌓여있었다. 천정호는 박스에 붙은 라벨과 패드에 나온 시리얼 번호를 확인하면서 필요한 부품이 든 박스를 골라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팀원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서려있었다. 스파이더봇의 조립은 익숙했다. 하지만 그들의 자신감은 시작하자마자 산산 조각 났다.

“B2 형 나사 어디갔어?!”

“이것 좀 잡아봐!”

“나사 좀 돌릴 수 있게 제대로 좀 잡아 주세요!”

“나사 어디 갔냐니깐?!”

“자력 부츠에 붙어있을 수도 있으니까 발바닥부터 확인해요!”

“쓴 드라이버는 제대로 제자리에 두세요!”

무중력 공간에서의 작업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부품과 도구들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기 일수였다.

거기에 튼튼한 스파이더봇의 팔다리를 가만히 고정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지구에서의 감각으로 훌쩍 들어버리니 공중으로 치솟았고 그걸 내리겠다고 잡아당기면 자력 부츠의 미약한 자력 때문에 몸이 공중에 훌쩍 떠버렸다.

복잡한 혼란 속에서 팀장인 천정호는 상황을 제어하느라 진땀을 뺐다.

[제어 프로그램 시작. 통신 시스템 설정 확인. 통신 상태 그린. 밸런싱 조정에 들어갑니다.]

기기깅! 기기기기..

[밸런싱 조정 완료. 스파이더봇 SDB-1432C1 스탠바이.]

팀원들은 프로그램 및 소프트 웨어 제어를 전문화한 팀원이 스파이더봇의 상태를 점검하고 나서야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이 입은 우주복 안은 이미 땀으로 후끈후끈 해져 있었다.

철컥 철컥. 스파이더봇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팀원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서 간이 시설을 설치해야 했다.

스파이더봇은 지구 중력 하에서 약 200kg의 중량을 움직일 수 있다. 무중력 하에서는 더 많은 짐을 옮길 수 있지만 안전하게 실을 수 있는 부피 역시 한정되어 있었다.

“자자, 그럼 자재를 옮기고 내려가 봅시다.”

천정호의 재촉에 팀원들은 각자 박스를 들고 도시 엘리베이터 구역으로 향했다. 스파이더봇에 실린 상자는 밸트로 고정되었다.

팀원들이 앞장서서 창고를 나가자 천정호는 스크린 패드를 조작했다. 스파이더봇이 천정호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 엘리베이터는 도넛형이다. 중앙으로 CNT 케이블이 지나기 때문이다. 팀원들은 상자를 바닥에 쌓는 것도 부족해 벽에 밸트로 고정했다. 자신들도 좌석에 앉아 밸트로 몸을 고정했다. 메뉴얼에 나와있는 안전 준수 항목이다.

이런 안전 준수 항목은 도시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린다는 점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원운동을 하는 원통은 중앙과 바깥쪽에서 선속도 차이가 난다. 각속도는 모든 지점에서 일정한데 실제로 물체에 적용되는 선속도는 중심에서 0가 되고 중심에서 멀어질 수록 비례해서 커진다.

그래서 도시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며 변하는 선속도로 인해 충격량을 받게 되는데 충격량은 충격력, 즉 힘을 받게 된다. 엘리베이터 내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팀원들은 도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몸이 옆으로 당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원심력은 중심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선속도는 중심과 직각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와!”

바닥에 엘리베이터가 내려섰다. 도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팀원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사방은 어두웠다. 단지 바둑판처럼 배열된 LED 조명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백영길은 하늘 쪽을 올려다보고는 감탄한 듯이 중얼거렸다.

“저기도 땅이란 말이지?”

우주 도시에 하늘은 없다. 아니 하늘을 발아래 두고 있는 것이다.

팀원들이 감탄하는 동안 팀장인 천정호는 최선도와 함께 임시 거주지를 지을 공간을 물색했다. 아니 물색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도시 엘리베이터에 가까우면서 운행에 방해되지 않는 장소면 족했다.

그가 일행을 불렀다.

“여기다가 숙소를 지읍시다!”

일행은 상자를 열어 조립형 패널을 꺼내어 기숙사를 짓기 시작했다. 물론 여성용 남성용 구획으로 나누었다. 설계도면은 스크린 패드에 저장되어 있고 교육도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앗! 좀 무거워 진 것 같은데요?”

상자를 나르던 백영길이 입을 열었다. 최선도가 말을 받았다.

“중력이 달 정도 된대. 나중에는 지구 중력에 맞추겠지만 그전까지는 원활한 작업을 위해서 적당히 중력을 낮춘다더군.”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교육 시간에 잤냐?”

아니 그게 아니라 머리에 새치가 돋아나기 시작한 분이 그렇게 기억력이 좋으니 신기해서요.

백영길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가는 언제나 그랬듯 꿀밤이 날아오리라..

천정호의 팀원들이 한 창 기숙사를 짓고 있을 때 다음 인원들이 도착했다. 그들 역시 스파이더봇을 대동하고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천정호 팀을 도와 기숙사를 짓기 시작했다.

침대가 설치되고 대충 잠잘 곳이 마련되자마자 실랑이가 벌어졌다.

“욕실부터 설치해요!”

“아니죠! 화장실부터 설치해야죠!”

“지금 땀에 흠뻑 젖어서 불쾌하단 말이에요!”

“똥오줌 안 싸고 살겁니까?”

우주 도시 건설에서 강현이 신경을 쓴 것은 바로 쓰레기 처리다. 특히 공원이 조성되는 이유는 인분을 거름으로 이용해 소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도시형 농업을 도입해 늘어나는 인분을 소비할 계획도 세워 놨다.

분리수거는 기본으로 금속과 고분자로 나뉘도록 되어 있었는데 고분자는 화학 공정으로 다시 재 사용되고 금속 역시 마찬가지다. 불리수거가 어려운 폐기물들은 덩어리로 만들어 카낙에게 보내 플라즈마 제련 장치로 원소 단위로 분류할 생각이라 결과적으로 재활용 되지 않는 폐기물은 0이다.

“여성분들, 욕실 먼저 지으려면 그러세요. 어차피 다 지어야 하니까요. 인원을 나누죠.”

“어.. 그런데 욕실 짓다가 마려우면 남자 구역 화장실 써도되요.”

“물론이죠. 대신 남자도 여자 구역 욕실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평하죠.”

각 팀의 팀장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빠르게 욕실과 화장실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좌변기만 있었다. 기숙사라고 해도 두 사람 당 하나의 변기가 할당되도록 변기의 수가 많았다. 왜냐면 아직 분뇨처리 시스템이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변기는 수세식이 아니라 발효식 변기였다. 변기 밑에 깔린 발효토가 인분을 바로바로 발효시켜 거름으로 만들고 악취를 급감시키는 것이다.

물론 사용할 때마다 양이 많아지고 악취도 쌓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따로 거름통에 담고 발효토를 다시 깔아했다. 그리고 모아진 거름은 차후 공원을 조성할 때 사용될 예정이다.

욕실의 경우에는 문제가 달랐다. 정화시설이 딱히 없기 때문에 간이 정화조를 만들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소형화 시키려다가 보니까 첨단기술이 많이 들어갔다. 삼투압 필터링은 물론 세라믹 필터에 증류법, 생화학 분해조까지 소형화 기술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걸러진 물은 결국 증류수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맛이 지독히 없고 많이 마시면 탈이 난다. 따로 세라믹 필터를 통해 자연과 비슷한 미네랄을 첨가해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물이 된다.

팀원들은 아웅다웅 하면서도 2년 넘게 보조를 맞춰왔던 경험을 살려 마침내 1차 인원이 거주할 수 있는 임시 시설을 완공했다.

완공하고 나서는 기념을 위해서 맥주 파티가 열렸다.

“그럼! 인류의 우주 진출을 기념하며! 건배!”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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