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그래서 따로 우주 도시를 위한 수리 관리용 로봇을 만들었는데 이름은 스파이더봇이었다. 총 8개의 팔다리에 강력한 전자석이 부착된 스파이더봇은 우주 도시 겉에 달라붙어 결함이나 흠집 따위를 확인할 수 있도록 카메라와 초음파검사장치와 비상시 용접 및 절단을 할 수 있도록 전기 용접 및 절단 장비와 고용량의 배터리가 내장되어 있었다.
거기에 9.8m/s^2의 지구 중력을 견딜 수 있도록 펜타봇은 상대도 되지 않을 튼튼한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펜타봇처럼 신축형 팔다리가 아니라 고성능 모터와 기어가 관절부위에 자리한 다각 다족형 로봇이었다. 물론 우주 도시 외벽 뿐만 아니라 안쪽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갖추었고 튼튼하고 강력하게 만들다 보니 성인 남성 둘 정도의 크기를 가지게 되었다.
(몸통만 성인남성 부피다.) 그래서 이 큰 스파이더봇을 어떻게 우주 도시에 공급하냐가 문제였는데 이 정도로 복잡한 일렉트로 메카닉스가 장비된 물품을 카낙에서 제작하기는 아직 무리라 지구에서 만들어 올리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완성품을 올리는 건 무리였다.
상용화가 된 드래곤 V3라고 해도 한 번에 5대 이상을 실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건 사람을 올리는 것 만으로 거의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해야 했다.
즉, 분해해서 기존에 펜타봇들을 올렸던 방식으로 우주 도시에 올리는 방법이 가장 무난했다.
그래서 한국 제현 그룹에 고용된 우주 인부들이 우주에 가서 가장 먼저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스파이더 봇을 조립하는 일이 되었다.
이들은 일단 드래곤 V3가 있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물론 한 번에 일 만 명이나 되는 인원을 다 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200명 단위로 보냈다.
드래곤 V3의 수용 인원이 10명 정도고 하루에 5번씩 쏘아 올릴 계획이라(아무래도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다 보니 쏠 때마다 비파괴 검사를 포함한 정밀 점검이 이루어 진다.) 하루에 올라가는 인원은 약 50명 정도. 일 만 명을 다 쏘아 올리려면 200일, 미국 측 인원을 고려하면 일년이 훌쩍 넘어간다.
하지만 일 만 명이 언제나 우주 도시에 있을 수는 없기에 교대 형식으로 운용하면 별다른 문제가 될 일도 없다. 다만 그들이 올라가서 생활하기 위한 물자를 또 올려 보내려면 다른 매스 드라이버가 풀 가동을 해야 할 지 모른다. 유럽에 이어 NASA가 국제 우주 정거장의 가능성을 재탐색하는 이유였다.
일차로 200명이나 되는 우주 인부들이 미국으로 향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것은 바로 이들의 신분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들에게 취업비자를 부여했다. 취업비자를 가지면 취업 이민을 신청해서 미 영주권을 획득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취업 이민에 대한 순위가 있는데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이 관련 업무로 적어도 5년의 경력을 쌓지 않으면 3순위가 된다.
승인이 될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전기전자 공학과 학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 중 스파이더봇 조립 업무를 맡은 사람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련 업무에 대한 경력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차후 2순위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순위도 힘들기는 하지만 3순위와의 격차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학과에 걸맞는 보직을 잡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물론 이공계열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특히 건설 쪽은 보직이 남아 돌 정도였다.
반면에 문과쪽은 어느 보직을 잡아도 학위에 맞는 경력이 보장이 안 되었다. 그래도 미 영주권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다시 수능을 쳐서 지방 대학의 공과대로 다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교대로 우주를 들락거리면서 야간 대학이라도 나와 학위를 따자는 생각이었고 이런 수요에 맞추어 발 빠르게 맞춤형 커리큘럼을 내세운 대학도 있었다.
우후 죽순으로 생겨난 ‘우주 건축학과’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미 영주권!
이 얼마나 혹하는 이야기인가? 특히 필리핀 같은 곳에서 셋업 범죄를 당한 사람을 지인으로 둔 사람에게 국민에 대한 보호가 철저한 미국의 시민이 된다는 건 귀가 솔깃한 이야기였다. (영주권과 시민권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영주권이 있다면 시민권을 따는 건 엄청나게 쉽다.) 대한민국 영사관이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지키는데 관심이 없다는 건 필리핀 공무원도 아는 이야기다.
부패지수 높은 필리핀에서 돈 많은 한국인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서 경찰까지 셋업 범죄에 가세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비단 그런 사람뿐만이 아니다. 세계 패권을 짊어진 국가의 국민이 되는 것에 환상을 가진 사람도 적잖았다. 한국에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는 적지 않았다.
[무려 1만 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미국 영주권을 획득한다?]
이슈를 찾아나서는 기자들이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할 만했다. 그러자마자 한국 제현 그룹에 우주 인부 모집 계획을 문의하는 전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한국 제현 그룹은 더 이상 공개적인 모집은 없다고 밝혔다.
어? 그럼 비공개적인 모집을 한다는 말인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몇몇 글에 의해서 우주 인부의 모집을 스카우트식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 비리를 고발한 예비역 소령을 남편으로 둔 주부입니다. 얼마전 제현 그룹에서 제 남편을 데리러 왔어요. 자기네 회사에 꼭 필요한 양심있는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남편은 한국을 버릴 수 없다면서 계속 군 비리를 사회에 알리는 사회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해요. 남편의 뜻과 마음은 심정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제현 그룹의 제안을 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남편의 마음을 돌릴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한국 사회에서 양심적이며 그 양심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만 골라서 데리고 가겠다는 제현 그룹의 발상에 식자들은 소름이 끼쳤다. 세계적인, 아니 이제는 우주적인 강대국이 되어 향후 최소 몇 십년간 패권을 누릴 나라의 국민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양심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현실적으로 떠날 수 없어서 계속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이 유혹에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 좋은 조건이 생겼다고 바로 태도를 바뀌는 양심은 양심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제현 그룹도 그런 가벼운 양심따위는 별로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현 그룹은 끈질겼다.
직접적으로 대상을 설득하지 못하면 가족을 공략했다. 정말로 신념이 강한 사람도 흔들릴 정도니 얼마나 많은 양심들이 한국 사회를 떠나겠는가?
아파트 난방비 비리를 폭로한 연예인이 제현 그룹에 스카웃 되었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무수하게 퍼졌고 당사자가 이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충격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건 한국 사회의 위기다!]
평범한 시민들이 경각심을 느낄 정도였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가 무너진 국가는 존속될 수 있는가? 양심있는 목소리가 사라진 사회는 정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가?
[제현 그룹은 당장에 양심있는 인재를 빼가려는 작태를 중지해라!]
급기야는 몇몇 군중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모습을 드러낸 한국 제현 그룹 대표이사 카랄니는 이렇게 일축했다.
‘그럼 당신들이 빠진 사람을 대신해서 양심적으로 행동하던가.’
언제부터 개인의 양심이 인재의 기준이 되었는가? 언제부터 양심있는 이가 사라지는 것에 공포감을 가지게 되었는가?
카랄니는 개인이 가진 거주이전의 자유를 돼도 않는 논리로 막으려는 시위대의 작태에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양심적으로 행동하기는 싫다. 하지만 사회의 안정과 유지, 정화를 위해서 누군가는 나서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떠나는 것은 싫다.
극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제현 그룹의 스카우트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간사한 동물이다. 양심적으로 행동하면 제현 그룹이 스카우트 해줄 수도 있을 거라며 사기업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공직 사회까지 내부 고발이 잇달았다. 우주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잘먹고 잘 살려먼 우주 산업과 관련되어야 한다는 예리한 감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양심의 가책 때문에 비리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 양심에 눈을 돌렸던 사람들이 그동안 이만 갈며 모으기만 하고 차마 터트리지 못했던 자료를 하나하나 터뜨렸다.
이런 식으로 간사한 기회주의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도 내부 고발을 시작했으니 한국 사회의 곪은 부분이 그대로 대중에게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기회주의자와 정말로 양심있는 이들을 구분하는 건 온전히 제현 그룹의 몫이었고 매일 터지는 비리와 비리를 막기 위해 언론에 대한 영향력을 총 동원하느라 진땀을 빼는 건 기득권의 몫이었다.
양심론.
제현 그룹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에게 던진 골치 아픈 문제였다.
= = = = =
과거 백수였던 백영길은 심장이 두근 거렸다.
[발사 시퀀스 준비. 10, 9, 8,..]
약 3년간의 전문화 교육 끝에 드디어 우주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가 맡은 업무는 간이 시설 건축이다. 토목 공학과를 나온 그에게 경력으로 인정되는 업무라 차후 미 영주권 신청에 유리할 수도 있었다. 차후 우주 시대를 이끌어갈 주역이 되는 꿈도 가졌다.
백영길은 이런 기회를 제공한 제현 그룹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그런 심정은 같이 올라가는 팀원들도 마찬가지리라..
[발사.]
“웃!”
놀랄 정도로 몸이 무거워졌다. 시트에 몸이 파고 드는 것 같았다. 수십 초 동안 그런 압력을 받은 이후 일순간 중력이 미약해졌다. 드래곤 V3에 달린 4기의 플라즈마 제트 엔진이 푸르스름한 섬광을 빛내며 하늘로 동체를 밀어올렸다.
몇 초만에 성층권, 중간권을 돌파한 드래곤 V3의 내열 타일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열권에 도착하면서 점차 느려지더니 외기권에서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작동이 멈췄다. 이온화 시킬 기체라고는 희박한 수소나 헬륨따위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중력 상태에 들어갑니다. 음료를 소지하신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백영길은 몸이 둥둥 뜨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교육 때 들었던 무중력 공간이구나.. 물의 부력을 이용한 가상 무중력과는 감각 자체가 달랐다. 물이 귀에 들어가지 않은 이상 중력을 느끼는 감각을 무효화 시킬 순 없기 때문이다.
[궤도 데이터 전송을 받습니다. EM 드라이버 작동 시작. 가속합니다.]
백영길의 몸이 다시 시트에 안착했다. 꼭 방바닥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가속도가 등 뒤 방향으로 작용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주 도시의 선착장에 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추진제 없이 끊임없이 가속할 수 있는 EM 드라이버로 인해 드래곤 V3의 속도는 마하 6을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목적지 도착까지 앞으로 5분. 승객 여러분께서는 헬멧을 착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백영길은 안내 방송에 의자 밑에서 헬멧을 꺼내 착용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하얀 색의 권총 탄환처럼 생긴 드래곤 V3가 속력을 줄이면서 하얗고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의 중심으로 향했다. 몇 개의 빛이 유도등이 되어 드래곤 V3를 배정된 선착장으로 안내했다.
반짝이는 전등이 일정 간격으로 배치된 거대한 파이프 같은 선착장 내부는 미래 세기를 이끌 첨단 시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둠침침했다. 내산화 코팅이 된 검은 광택의 벽은 내열 코팅 처리도 되어 온통 하얀색인 외관과 대조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