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76화 (176/241)

176화

“그럼, 이제 뭐하지?”

[신 통일장 이론은 어떠하십니까?]

아즈삭은 자신의 프로젝트 리스트에 남은 가장 최우선 사항을 꺼내 들었고 강현은 표정이 멍했다.

“또?”

아무런 아이디어나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는 고통을 아즈삭은 모르는 모양이다.

“잠시 휴식.”

강현은 아즈삭의 은근한 재촉을 피해 준을 보러 나갔다. 재택근무는 이래서 좋은 것이다.

= = = = =

시간은 흘렀고 세상은 변해갔다. 거의 완공 직전인 우주 도시 제1호에는 아폴로티움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우주 공항 도킹 시설과 대기 조성 및 내부 단장만이 남아 인부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유럽 연합과 동 아시아 연합(중일러)에서도 우주 도시 건설을 시작했다. 강현과 같이 원통형의 구조물이었다. 다만 다른 점은 아폴로티움이 최외곽 부분을 건설하고 내부를 건설하도록 되어 있다면 이들 도시는 내부 구역을 먼저 건설하고 점차 밖으로 확장하도록 설계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작게 나마 빠르게 우주 도시를 건설해 우주 진출 속도를 미국에 맞추려는 이들이 고민한 결과였다.

하지만 한 편 지구에도 개발할 곳이 넘치는데 우주에 쓸데없는 돈을 투자한다며 비난하는 여론이 일었다. 우주 도시 건설을 위한 비용 지출에 이해 관계가 걸려있는 유럽에서는 더욱 그랬다.

미국에서도 동일한 여론이 일었는데 한 기자에게 강현은 이렇게 일축했다.

‘극히 생각이 짧은 주장이다.’

우주에 투입하는 비용을 사막화 방지 등에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사막화를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주 도시 건설을 비난하는 것과 동일한 여론이 형성될 것이다.

‘아마존의 원시림을 보존하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아마존을 끼고 있는 나라의 경제 성장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막으면서 원시림을 보존할 일을 누가 할 것인가? 또한 그 비용은 누가 댈 것인가?

이해관계란 바로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얽혀있는 지구 환경에서 전 지구적 규모의 해결책이 필요할 때에는 반드시 이해 관계가 얽히게 되어 있다. 도쿄 의정서의 이산화 탄소 배출 규제안은 그런 이해 관계의 환경적인 분야고 핵무장 완화 문제는 그런 이해 관계의 정치전략적인 분야였다.

사막화 방지? 좋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땅부터 사막화 방지를 시작할까? 누구의 땅부터 녹지로 만들기 위해서 수자원을 분배할까? 수자원이 모자라면 담수를 생산해야 하는데 그 비용은 누구에게 부담 시켜야 할까?

이런 복잡한 이해 관계를 조율하는 건 골치가 아프다. 시간도 필요하지만 시간을 들인다고 반드시 해결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우주 도시는 상황이 다르다. 건설을 위한 대부분의 자원을 우주에서 충당한다. 지구와 얽힌 이해 관계는 극히 단순하며 예측하지 못할 변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환경주의자들의 비난 여론도 상정 내였다.

제어 가능한 이해관계라는 것 만으로 우주 도시는 가장 유력한 해결책이다. 환경 주의자들이 원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는 지구의 환경이 인간에게 우호적일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없는 지구는 언제나 허리케인, 지진, 태풍 따위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다.

비록 위험하지만 인간이 스스로의 생존을 책임질 수 있는 환경만이 생명과 생명 사이의 조화를 누릴 수가 있다. 인류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 환경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인류가 모두 우주로 나가버리는 것 만큼 자연에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자연 파괴의 주범은 다름 아닌 인간 그 자체다.

“아빠! 아빠!”

이제 빠르게 걸어다니는 3살 배기 준이 강현에게 달려들었다.

“어이쿠!”

강현은 엄살을 피면서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러면서 준의 겨드랑이를 잡아 들어올렸다.

“꺄하하!”

즐거운 한 때지만 강현의 마음에는 고민이 쌓였다.

가진 게 많아도 너무 많다. 정신적인 행복이라면 상관없지만 무려 4조 달러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액수에 가만히 있어도 정재계 인사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쪽과는 되도록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알아서 기어 들어오는 상황이라 더 불안했다.

만일 욕심 많은 누군가가 준을 인질로 잡고 무언가를 요구해 온다면.. 강현은 참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사람의 탈을 쓴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아니 사람은 자신의 행동만큼 대접받아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악의에 대해 악의적으로 대응하는데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었다. 여전히 갈라진 채로 사이가 나쁜 시오니스트와 반시오니스트 유대인은 바로 그의 작품이 아니었던가?

거기에 준이 학교에 다닐 나이가 점점 다가오자 불안감은 더욱 강해졌다. 집이라면 CIA 요원도 있고 아즈삭이 조종하는 안드로이드도 있고 개조한 로봇 견도 있지만 학교에서는 그런 철통 보안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아, 이래서 돈 많은 사람들이 자식들을 상류층 학교에 보내고 싶은 건가?’

비단 인맥과 끼리끼리 노는 인간의 습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슷한 부류가 모이는 명문 사립 학교는 다양한 환경의 아이들이 모이는 공립 학교보다 안전할 수 있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 가혹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폭력성과 비행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명문 사립 학교에 보내는 것도 마음에 들진 않는다. 사람은 보고 듣는 것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혹시나 준이 세상에 그런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편견에 빠져 들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차후 그런 환경과 다른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질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준이 어떻게 될지는 강현도 짐작할 수 없었다.

왕자였지만 인간의 생로병사를 목격하고 번뇌에 빠져 끝내 출가하고만 고다마 싯다르타처럼 선의에 의해 강현이 물려준 모든 것을 베풀 수도 있었다. 아니면 저들과 나와는 다르다면서 계급주의적인 귀족이 되어 자신의 권리를 마음껏 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도 강현의 마음에 드는 방향은 아니었다. 그는 준이 자신과 같이 객관적이고 냉철하며 가치 판단이 제거된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보기를 바랬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좋은 일도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이라 강현은 준이 인생을 희극으로도 비극으로도 보지 않았으면 했다.

분명한 것은 준이 평범한 삶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혹시 몰라 언론에 가족을 노출시키는 것을 극히 막았지만 강현 자신은 이미 여러 번 언론에 노출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인의 자리를 3년 째 공고히 하고 있었다. 이른바 시대의 아이콘이란 의미였고 준이 점점 커가며 아빠의 영향력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준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게 될 지 강현은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아빠. 배고파.”

“아. 응? 아빠가 달걀 프라이 해줄까?”

“싫어. 아즈삭이 해준 스파게티 먹을래.”

샐리가 있었다면 식사를 차려줬겠지만 그녀는 지금 둘째를 출산하고 몸조리를 하는 중이었다. 준과 다르게 난산이라 꽤나 고생했으나 강현은 준을 혼자 둘 수 없어서 그녀는 병원에 혼자 있어야 했다. 준을 맡길 장인 장모가 내일 도착하기 때문에 샐리에게 가고 싶지만 참고 있는 것이었다.

강현은 아즈삭이 해준 스파게티라는 말에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자존심도 좀 상했다. 그도 스파게티를 끓일 줄 안다. 다만 그가 할 줄 아는 건 스파게티 면을 삶은 후 마트에서 파는 스파게티 소스를 끼얹는 것 정도였다.

반면에 수많은 레시피를 보유한 아즈삭은 실험 도구를 만지작 거리던 능력을 바탕으로 양파를 썰고 햄을 썰고 토마토도 볶고 뒤집어 더 맛있는 요리를 할 줄 알았다.(샐리가 밥 차리기 귀찮을 때에는 아즈삭의 스파게티가 나왔다.)아이의 입맛은 정직했기 때문에 강현의 스파게티보다 아즈삭의 스파게티를 선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즈삭, 그럼 부탁해도 될까?”

[요리를 시작하겠습니다.]

강현이 아빠로서의 뭔 가를 상실한(아빠는 뭐든 할 수 있는 슈퍼맨이다라는 자부심) 기분을 느끼며 아즈삭에게 부탁했다.

아즈삭은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안드로이드를 조작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준은 그 익숙하지만 여전히 신기한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했다.

“아즈삭! 나 피망 싫어!”

아즈삭이 초록색 야채를 하나 꺼내어 썰기 시작하자 준이 소리쳤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꿈쩍도 하지 않고 빠르게 피망을 썰어갔다. 준의 볼이 불퉁해졌다. 아즈삭은 자신의 말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빠아!”

요리하던 모습을 보던 준이 강현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좀 해달라는 뜻이다.

“골고루 먹어야 키가 자라지.”

“한 번만.. 응?”

준이 강현의 배에 얼굴을 부비며 애교를 피우자 강현은 머뭇거리면서 아즈삭에게 말했다.

“아즈삭, 피망 빼면 안돼?”

[안됩니다.]

“....”

단칼에 거절 당했다. 강현은 당황했다. 아래쪽에서 지그시 자신을 올려다 보는 준의 시선이 그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왜?”

[샐리가 신신당부하고 갔습니다. 영양적으로 잘 먹이라구요. 오늘 낮에 과잉 지방을 섭취하셨으니 저녁에는 야채를 드셔야 합니다.]

과잉 지방이란 기름진 피자를 뜻한다. 강현이 한국 출신이라 한국이 많이 알려지고 한국 요리도 미국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불고기 토핑이 올라간 불고기 피자가 불티나게 팔렸고 불고기 맛을 아직 기억하고 있던 강현은 오늘 낮 불고기 피자를 시키고 말았다. 그 만큼 불고기 피자 메뉴가 미국 전역에 퍼졌는데 비단 한국인의 입맛에만 맞는 요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튼 강현은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아빠의 위엄을 최소한도나마 지키기 위해서는 준의 목적 만큼은 성사시켜야 했다.

“준에게는 안 그래도 되잖아.”

아즈삭의 관심사는 강현의 건강이지 준의 건강이 아니다. 게다가 준은 아직 어리니까 기름진 음식으로 인한 성인병을 걱정할 나이도 아니다.

[준의 접시에서 피망을 집어가는 것까지는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

강현은 쓴 입맛을 다셨다. 어째 더욱 망신살을 뻗친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강현의 건강 관리에 관해 아즈삭에게 명령할 권한을 샐리에게 넘겨줘 버린 것을.. 덕분에 강현의 식사는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운동을 즐기지 않는 강현의 건강을 식이 요법으로 관리하고 있던 것이다.

샐리 혼자서 그런 곳까지 신경을 쓰면 힘들었겠지만 인터넷으로 전 세계의 레시피를 수집하며 항시 강현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아즈삭이 있으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즈삭도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건강관리에 관심을 쏟지 않는 강현 때문에 샐리의 존재가 반가웠다. 식사에 관련된 명령권한의 이양도 둘이 공모한 결과였고 그리하여 강현의 입안에는 필요한 것이 반드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강현은 별로 불만이 없었다. 일단 자신을 위한 일이었으며 건강을 위해서 맛없는 것을 먹이지 않고 오히려 맛있는 요리가 제공되었으니 말이다.(이제 사모님 소리를 듣는 위치에 있는 샐리가 후원하는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요리 업계다. 맛있고 건강한 레시피를 모으기 위해 샐리와 아즈삭이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기도 했다.)

“히잉.. 아빠..”

준이 접시에서 초록색으로 가늘게 채썰어진 피망 조각을 포크로 찍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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