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아즈삭은 강현이 끄적이던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을 저장하고는 새롭게 창을 띄웠다. 우주 도시 건설 현장이다.
반경 8km의 거대 원통 구조물이 이젠 그 형상을 오롯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일단 외골격이라고 할 수 있는 옆면은 거의다 완공되었다.
물론 이 상태로 가장 중력을 만들기 위해 회전시키면 산산조각 분해될 것이기에 아직 정지해 있는 상태다. 차후 카낙에서 수송해 올 고장력 CNT 섬유 케이블이 조달되면 원심력을 견딜 수 있도록 내부에 중심축을 지나도록 직선으로 설치될 예정이었다.
물론 거구 공간이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전체 면적에 비하면 극소에 불과했기 때문에 감수할 만했다.
NASA 측에서는 이런 공간도 아까운지 내부에 케이블을 설치하지 말고 차라리 케이블로 원통형의 도시를 돌돌 감아버리듯이 외곽을 감아버리는 건 어떻냐고 제한했지만 강현에 의해서 거절되었다. 만일의 상황에서 신속한 수리를 위해서는 외곽이 최대한 단순한 구조여야 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줄어드는 공간은 몇 개의 층위로 증축할 수 있도록 해서 NASA의 아쉬움을 달래 주었다.
강현의 케이블 지지 방식은 현수교에서 다리의 하중을 케이블로 지탱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는 없다. 다만 중심축을 지나는 직선으로 연결했기 때문에 동심원을 그리듯 보다 작은 직경의 원통형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이 원통형의 하중은 새롭게 케이블을 추가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지탱할 수 있기에 더욱 면적을 넓힐 수가 있었다.
물론 회전 반경이 작기 때문에 걸리는 중력 가속도는 최외각보다 작지만 차후 공업 시설이 들어서면 무게가 적게 나가는 이점을 역이용할 수도 있었다.
고로 서울시 두 배가 되는 면적의 도시에 다시 서울시 만한 면적의 공업 지역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우주 도시 정도가 아니라 작은 소국에 해당하는 규모의 구조물이 건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술적 난이도에 대해서 이해도가 낮은 관료측에서는 차라리 3단으로 건조하면 어떻겠냐고 물을 정도로 차후 우주 도시의 확장성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런 견해에 NASA의 연구자들은 긍정적으로 답했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높이가 8km나 되는 공간이고 길이가 16km 나 되는 공간이니 만큼 CNT 케이블의 장력을 고려하면 얼마든지 추가 케이블을 설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행성 광산에서 생산되는 자원이 이제 슬슬 다른 국가에도 팔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계획은 장기 계획으로 전환하는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서브 카낙의 화물칸은 지구로 올 때 만큼이나 무겁게 소행성대로 향했다. 추가 시설을 짓기 위한 부품과 필수 자재였다.(아무래도 전선을 만들기 위한 고분자 화합물 만큼은 액체 공법이기 때문에 중력이 있는 지구에서 만들기 용이했다.)강현은 화면으로 로봇들이 들락 날락하는 휴지심 같은 구멍을 보았다. 차후 우주 공항이 설치될 장소다. 그 주변에서는 로봇들이 천천히 자재를 들고 날아다니면서 금속판의 면적을 넓히고 있었다.
이 부분을 잘 만들어야 우주 도시의 생존성이 보장받는다. 차후 내부에 대기를 조성하게 되면 대기압 및 원심력을 꾸준히 받게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외벽보다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 했다. 설계상 CNT 케이블의 지지를 받는 부위가 적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그리하여 우주 도시의 양 평면은 오목하게 들어가도록 설계되었다. 탄산 음료가 든 캔의 아랫면이 오목한 것과 같은 이유였다. 아치형의 구조가 대기압으로 인한 압력을 고루 분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중에서 가장 시급하고 강현이 가장 신경쓰는 부위가 있었으니 바로 중심축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직경 1km의 가장 작은 원통은 지구와 우주 도시간 물류를 연결하는 우주 공항이자 CNT 케이블이 감기고 장력을 조절하는 장치가 달릴 핵심 부위였다.
“축은?”
[완공율 99%입니다. 로봇들이 비파괴 검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로봇이라고 다 완벽한 건 아니야. 나중에 사람들의 손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어. 도시 엘리베이터는?”
[기존의 CNT 케이블을 주축으로 강화한 엘리베이터 부품이 이번 달 안에 올려보내질 계획입니다. 단순 구조용 부품은 카낙에서 벌써 도착해 있습니다.]
우주 도시에서 물류 이동의 핵심이 될 엘리베이터는 원통의 중심부터 최외곽의 거주 지역까지 오르내리도록 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자체적인 동력을 가지는 것은 비효율 적이기 때문에 중심축에 동력 모터를 설치하도록 설계했다.
강현은 아즈삭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사항을 체크했다.
“방열판 상황은?”
[ 약 100대의 트리플롯에 의해서 잘 제어되고 있습니다.]
우주 도시의 건설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역시나 태양이었다. 대기의 보호를 받지 않는 자재들은 태양열에 의해서 너무 쉽게 온도가 상승했다. 물론 용융점 이상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태양광을 모두 골고루 받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건조에 큰 난관이었다. 패널들이 동일한 치수로 제작되었다고 해도 열을 받아서 팽창한 것과 열을 받지 않아 수축한 것이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조립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태양광을 막는 거대한 우산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우주 공장이 더욱 확장되었다. 입체적인 확장이 아니라 평면적인 확장이었다. 그래도 우주 도시 건설 현장을 다 가리지 못해서 컨테이너를 평면으로 배치하고 예비용 태양열 패널을 다 조립해 그 옆에 또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도시 건설용 패널을 넓게 조립해 태양광을 막았다. 직경이 16km나 되니 그만한 크기를 가리기 위해서는 서울의 반 정도나 되는 면적을 가려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가리고 나니 작업을 위해 빛을 조달해야 해서 따로 광원을 써야했지만 다행이 미리 로봇에 설치한 LED가 충분히 제 역할을 해주었다. LED의 전력대비 광량 생성은 가히 마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주 도시에 방열 코팅 및 등온 코팅을 하기 전까지 방열판을 유지할 계획입니다.]
방열 코팅은 세라믹 입자가 포함된 겔(Gel)로서 방열 효과가 좋은 다공성 세라믹을 넓은 면적에 적용할 수 있게 만든 기술이고 등온 코팅은 마찬가지로 열전도성이 뛰어난 다이아몬드를 나노 입자로 만들어 넓은 면적에 적용할 수 있게 만든 기술이다. 둘 다 졸겔법이지만 밀도의 차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용되는 고분자의 종류는 달랐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계획된 일의 진척보다는 새롭게 확인 사실에 더 관심이 갔다.
“스페이스 넷이 이젠 제법 능숙한가보지?”
로봇 관제용 인공지능인 스페이스 넷은 확장을 거듭했다. 지구와 우주 도시를 정보적으로 연결할 핵심이기 때문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미 정부에서 손가락 물고 강현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스페이스 넷은 강현의 사유물이다.) 선심써서 따로 정부용 회선을 할당해 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미 정부는 할당된 회선을 통해 우주 도시의 행정을 관리할 수도 있었다. 행정에 대해서 잘 모르는(사실은 거기까지 신경쓰기 귀찮은) 강현에게는 win-win 전략이었다. 사람이 많으니 치안력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네, 제어 속도가 처음에 비해서 200배가 빨라졌습니다. 실시간으로 계산을 하고 즉시 로봇들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차후 진행 상황은?”
[CNT 케이블 설치와 환기 시스템 및 조명 시스템 작업이 남았습니다.]
환기 시스템은 차후 내부 공사를 위한 인력 투입을 위해 최소한이나마 있어야 했다. 또한 조명 시스템 역시 최소한이나마 있어야 했다.
“숲을 조성하는 건 무리겠지?”
[태양광 광원 기술을 전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낭비입니다. 구역별 소규모 공원은 몰라도 식물이 없는 지역에까지 태양광을 비추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강현은 우주 도시를 설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해로운 광선만 막는 투명한 천장으로 태양빛을 받는 녹지의 우주 도시.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재료가 없었다. 태양열로 인한 구조적인 스트레스와 피로를 견딜 수 있는 강도와 연성을 가진 물질이 없었다. 아니 강도는 충분한 것이 있었지만 연성이 없었다. 비용은 둘째 치더라도 연성이 없는 물질은 뒤틀림에 의해서 깨져버릴 수 있었다. 충격을 흡수 할 수 있는 능력이 금속에 비해서 현저하게 떨어졌다.
투명한 금속이 있다면 좋겠지만 투명한 금속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글쎄..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광처럼 넓은 스펙트럼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합금 조합 만으로는 불가능했다.
플라즈마 주파수라는 것이 있다. 이는 재료의 원자내에서 전자를 여기 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주파수를 뜻한다. 전자기파의 주파수가 이 플라즈마 주파수 밑이라면 전자의 움직임이 가볍고 쉬워서 쉽게 이 전자기파를 차단한다. 하지만 전자기파의 주파수가 이 플라즈마 주파수를 뛰어넘는다면 전자의 움직임이 이를 따라 잡지 못해서 전자기파를 차단하기 힘들어진다.
금속 대부분의 플라즈마 주파수가 자외선 영역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금속이 회백색 반사광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모든 영역의 가시광선을 반사해 버리기 때문에 수은으로 거울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이 금속의 플라즈마 주파수를 적외선 영역으로 할 수 있다면 투명한 금속도 만들 수 있겠지만 아직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유 전자라고 하는 금속의 고유 성질을 크게 제어해 반도체에 가깝게 만들어야 했다. 움직임이 쉬운 전자로 인해 플라즈마 주파수가 높으니 움직임을 어렵게 해서 플라즈마 주파수가 떨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정도로 조절을 해버리면 자유전자의 특성을 상당부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금속의 연성이나 질긴 정도가 과연 구조용 재료로서 우주 공간에 적용해도 될 정도로 튼튼한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로 강현의 공상은 공상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렇게 원통형의 설계로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녹지는 반드시 필요했다. 태양광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가 없다면 인공적으로 태양광 스펙트럼을 내뿜는 광원을 설치할 생각이었고 당연히 이런 종류의 광원 장치는 비싸다. 그런데 그런 광원을 녹지가 아닌 건물 외벽 따위에 비추는 것은 낭비가 아닌가?
“흐음..”
강현은 고민했다. 차후 우주 농업 플랜트를 건설하기 위해서 풍부한 태양광은 선결되어야 할 필수조건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투명하고 넓은 창을 내구성 있게 만드는 비용이 너무 들었다. 기존의 사파이어 유리창을 사용하기에는 필요한 양이 너무나 많았다. 오히려 태양광 조명을 싸게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현실적이었다. 그냥 우주 농업 플랜트에 태양광 조명을 잔뜩 달아 놓는 것이 더 편했다.
“업체 중에 좋은 태양광 조명 기술을 가진 곳이 있어?”
[네, 있습니다. 선라이트 회사라고 중소 규모의 제조 회사입니다.]
“흐음. 거기 주식도 좀 사야할 것 같으니까 킬덤에게 부탁하자.”
[네, 박사님.]
강현의 제태크 수단은 쓸만한 기술을 가진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다. 혹자는 사기다, 내부자 거래다라고 하지만 강현은 자신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쓸만한 기술을 가진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미리 확보하여 누군가가 자신보다 그 기술과 회사를 먼저 선점해 자신을 휘두를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