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하지만 여기서 강현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중력이란 무엇인가? 힉스 입자가 없다면 중력은 작용할 것인가? 힉스 입자와 중력의 상관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힉스 입자는 흔히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라고 한다. 그리고 질량이 클수록 당기는 힘, 중력 역시 증가한다. 그렇다고 힉스 입자가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는 아니다. 중력자라고 힘을 매개하는 입자는 따로 있었다. 힉스 입자는 단지 질량을 부여할 뿐인 입자였다.
하지만 강현은 정말로 그런 것인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중력은 공간을 휘게 만드는 힘이다. 공간이 휘기에 중력은 전자기력마저 휘게 만들 수가 있다.
질량이 없는 전자기파마저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것이 블랙홀이다. 그러니 힉스 입자가 공간에 존재한다면 블랙홀에 의해 일그러진 시공간에 의해 어떻게든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힉스 입자가 빛처럼 존재한다면 블랙홀 주변에 힉스 입자의 농도는 계속 상승할 것이다. 농도가 상승하는 만큼 블랙홀의 질량은 다시 커질 수도 있고 또한 블랙홀 주변에 있는 입자들은 그 질량이 무거워 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에너지 보존 법칙에 위배된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설명이 있다. 질량은 부여한 힉스 입자는 사라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질량을 부여하기 위해 공간에서는 끊임없이 힉스 입자를 생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E=mc^2에 의해서 새롭게 질량을 얻은 물질은 질량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시 문제가 생긴다. 양자 역학에서는 진공에서 입자 쌍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고 하기에 전체적인 에너지 보존 법칙이 성립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힉스 입자는 에너지와 상관이 없는 입자다. 힉스 입자의 생성에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힉스 입자를 제거하는 쌍입자가 반드시 존재해야 했다.
그런데 생성에 에너지가 필요없는 입자가 질량을 만들어 낸다? 질량의 형성은 E=mc^2에 의해 에너지가 형성된다는 말인데 이는 무에서 유가 탄생한다는 말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의 붕괴다.
물론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가설은 다양할 수 있었다. 다중 차원 이론, 새로운 모델 등등. 그리고 다양하다는 말은 인류가 힉스 입자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아. 미치겠군.”
강현은 허탈했다.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아직 신 통일장 이론의 태반이 미지수로 남아있었다. 발견한 변수들의 용도와 가능성도 그런 미지수 때문에 완벽하게 알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수학적인 기술로 필요한 변수를 제외한 모든 변수를 상수화하고 제거한 수식에 기대어 힉스 장으로 물질을 분석하는 방법을 구상하는 것 뿐이었다.
‘힉스 장에 변화를 주어 펄스파나 파동을 만든다. 이를 다양하게 검측한다. 컴퓨터 기술로 처리한다.’
말은 쉽지만 기술적으로는 강현도 고개를 젓게 만들 정도였다.
일단 힉스 장 파동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양자 역학적인 설명에 의해서 빠르게 생성되었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힉스 입자는 진공에 가까운 대기에 비유할 수 있었다. 그런 대기에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부채를 휘둘러야 될까? 또 어떤 부채를 사용해야 하는가?
또한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에 의하면 힉스 장은 무작위적인 방향성을 가진 비선형적인 파장이다. 비선형적이고 무작위적이어서 백색 잡음이나 마찬가지인 힉스 장에 간섭해 순간적이나마 깔끔한 파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힉스 장의 변화에 의해서 예상되는 결과는 다양하다. 물리적인 변화는 물론이고 화학적인 변화도 고려될 수 있다. 다만 에너지를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변화는 미미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현이 기대하는 것은 힉스 장의 파동이 질량을 가진 입자에 부딪혀 반향 되어 오는 것을 측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향 되어오는 힉스 장의 비율은 처음의 만 분의 일이 될까 말까하다. 왜냐면 힉스 입자는 오직 질량을 가진 입자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기 때문이고 원자의 대부분이 비어있는 진공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강현이 생각한 방식은 마치 참치 잡이용 그물에 모래알 하나를 던져 걸리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모래알 하나가 아니라 한 트럭을 던져서 해결했다고 치자. 힉스 장의 변동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고작 입자의 운동량 측정이라는 원시적인 방법 뿐이고 그나마 다양한 변수에 의해서 교란될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기술적 난이도는 급증한다. 오차론을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깝다.
“포기하자.”
[네?]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이건 내가 한 100명쯤 있어야되. 아니면 내가 한 40년 쯤 이거에만 매달리거나. 그건 싫어.”
한참을 생각하던 강현은 결국 현실 앞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의 직감이 옳았다. 이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산산히 무산되었다. 강현은 입맛이 썼다. 그의 인생에 있어 몇 안되는 포기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겸손해졌다. 역시 세상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신개념 레이더의 개발을 포기한 강현은 이레이에게 미국에서 사용하는 X 레이 투시 스크린 및 검역 시스템을 우주 도시에 적용해 줄 것을 부탁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단련된 우수한 미국 검역 시스템이라면 우주 도시에 출입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안전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었다.
이레이는 그런 강현의 제안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야 저희가 좋지만 그 물질 분석 레이더는 결국에는 포기하신 건가요?”
“네. 하다보니까 개념 자체가 현재보다 한 100년은 앞선 것 같아요.”
“그럼 100년 뒤에는 가능하다는 말씀인가요?”
“글쎄요. 막막한 지금보다는 확률이 높아지겠죠.”
강현이 물질 분석 레이더의 개발을 포기하자 아쉬운 것은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전자기파를 쓰지 않는 레이더라니.. 미국 정부 쪽에서도 혹시나 중성미자를 사용한 레이더인 줄 알고 많은 기대를 했다. 만일 그렇다면 정보전에서 미국을 능가할 국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강현은 우주 도시의 안전을 위해서 성능 좋은 레이더 및 감시 시스템을 찾아 나서는 한 편 비어버린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증강 현실 기술 개발에 동참했다. 자택 근무라 데이터와 의견만 오가서 널널했다.
그리고 그 널널한 시간은 아들인 준과 보냈다.
“꺄하하!”
“읏챠!”
마음 같아서는 준의 얼굴을 보면서 농땡이를 부리고 싶었지만 샐리의 눈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애들 교육에 나쁘다나?
성실한 면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강현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저절로 성실하게 변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아이에게 성실함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빠를 수 있었다.
“현, 아즈삭이 찾아요.”
“꺄하아!”
“... 에휴.”
샐리의 말에 강현이 준을 넘겼다. 잠깐의 농땡이도 봐주지 않는 귀찮은 아즈삭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런 자아로 만든 것이 강현 자신이었다.
[박사님. 카낙으로부터의 전언입니다.]
통합 감시 체계를 맡을 양자 컴퓨터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SNP에 초전도 현상을 적용하고 중성미자를 이용한 양자 얽힘을 적용해 양자 단위의 메모리 소자로 작동하게 만들었다.
“소프트 웨어를 적용하고 발표하자고.”
강현은 이 통합 감시 체계를 발표하기로 했다. 그건 가족들과 자식들의 안전을 위한 감시망이 노출될 위험이 있지만 이는 그의 계획에도 필요한 일이었다.
이 통합 감시 체계의 가치는 아즈삭처럼 실시간 정보 수집에 있지 않다. 일단 이 통합 감시 체계를 편리한 도구로서 인공지능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인공지능은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하지만 예산이라는 한계에 의해서 종종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타협할 때가 있다.
이때 부족한 성능을 이 양자 컴퓨터에서 빌려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복잡한 데이터의 분석 따위를 자신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안전하게 계산해 준다면?
그렇게 되면 아즈삭이 굳이 정보를 거래하지 않더라고 하더라도 더 많은 정보를 이 양자 컴퓨터로부터 수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암호화된 비트를 우회하는 백도어 프로그램을 깔아 놓았다. 가끔 강현이 원하는 데로 계산 결과를 조작해 첩보의 향방을 바꿀 수도 있었다.
명백한 범죄 행위였지만 그는 제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는 언제든 범죄자가 될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런 발상이기 때문에 통합 감시 체계를 발표하는 건은 반드시 필요했다. 어차피 아즈삭이 삐끼로 나서 인공지능들에게 몰래 몰래 사용을 제안해도 어차피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사람이나 조직에게 알려지게 되어 있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지만 기본적으로 원리원칙을 준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아웃소싱!]
[소규모 인공지능 운영회사들에게 각광받는 통합 네트워크 정보 처리 시스템이란?]
인공지능은 비싸다. 비싼 만큼 유지비도 많이 먹는다. 그런 와중에 강현이 제안한 통합 정보 관리 체계(실상은 관리가 아니라 감시다.)는 연구비가 빠듯한 연구실에서 많은 환영을 받았다. 엄청나게 저렴한 비용으로 시스템 리소스를 대여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각 그룹이 운영하는 인공지능의 성능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건 기술 개발 경쟁이 점차 과열되는 시대 상황과 맞물려 붐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을 일으켰다.
하지만 강현이 던진 파문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플라즈마 제트 엔진이란 무엇인가?]
[연료없이 오직 전기의 힘으로 초음속 항행을 한다!]
플라즈마 제트 엔진을 적용한 매스 드라이버용 스페이스 셔틀의 시제품이 그 모습을 보였다.
드래곤 V3라는 모델명의 스페이스 셔틀은 마치 권총 탄환과 같은 모양이었지만 양쪽에 두 개씩 총 네 개의 플라즈마 제트 엔진을 달고 있었다. 내부는 총 1.5톤의 중량을 실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차후 화물과 사람의 비율을 다시 조절할 수도 있었다.
NASA의 실험팀은 일단 더미를 앉히고 네바다 사막 근처에 또 하나 지은 유인용 매스 드라이버에서 드래곤 V3를 날리는 시현을 했다.
매스 드라이버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자기력의 반발력이 드래곤 V3를 띄우며 반발력을 최소화했다. 가속이 시작되고 플라즈마 제트의 푸르스름한 형광이 궤적을 그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훌륭하게 대기권을 탈출한 스페이스 셔틀은 곧 무중력 궤도에 들어섰다.
내부에 장착된 EM 드라이버는 좀 더 가속해 드래곤 V3를 더 높이 띄울 수도 있었고 아니면 감속시켜 다시 중력으로 지상을 향해 끌어올 수도 있었다.
관제소에서는 더미와 드래곤 V3에 설치한 센서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대기권 진입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개량된 EM 드라이버는 빠르게 드래곤 V3의 속력을 감속시키기 시작했다. 운동에너지가 감소한 드래곤 V3가 중력에 잡혀 지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권을 지나자마자 거대한 패러글라이더가 펼쳐졌다. CNT 섬유로 짠 가볍고 질긴 재질이었다. 넓이도 일반 패러글라이더의 열배가 넘었다.
하지만 패러 글라이더만 덩그란히 펼쳐진 것이 아니다. 패러글라이더와 연결된 줄에 단단한 파이프가 길죽하게 나와 있었다. 줄은 파이프 안으로 들어가 작은 드럼에 감겨있었다. 이는 사람이 패러글라이더를 하면서 줄을 잡는 손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균형을 잡고 미끄러지는 방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