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아무리 강현이라고 하지만 신이 아니기에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건 천재성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다. 그리고 강현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사람은 아니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김 원장의 삶과 같은 방식을 존경했다. 결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애원을 들어준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생판 남인 사람을 위해서는 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울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너무 이성적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이기적인 자신의 속성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인가? 자신과 친분 있는 사람 이외의 사람은 그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굳이 붙이자면 잠재적인 적 혹은 아군, 혹은 이용물, 혹은 아무런 관련이 없을 사람 등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었다.
그런 강현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남을 돕는다? 사회적인 명예나 대중의 지지를 노리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돕는다는 건 참 힘들어요.”
타인을 동정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강현은 함부로 남을 동정하지 않는다. 동정은 때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정부 인사의 예산 갑질에 홀로 미국행을 선택할 정도로 자존감이 강했던 강현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타인을 동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도움이 동정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책임을 져야한다. 김 원장이 보육원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동정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럼 자금은 제 배당금에서 충당해 주세요. 그리고 불편없이 보육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아참! 세간에 알려지면 잡음이 낄 테니까 조용히 처리하셔야 돼요.”
“그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카랄니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엇인가가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앞으로 약 3년 후에 우주 도시가 완공될 거에요.”
“그렇군요. 대단하십니다.”
지금도 한달에 한 번씩 수송선 서브 카낙이 대량의 물자를 운반해 와서 수 천대가 넘는 펜타봇들이 매일 일하고 있었다. 소행성 광산에서는 흑연을 이용한 탄소 나노튜브 케이블(CNT 케이블)제조 시설도 완공되어 계획에 탄력이 붙었다.
“그래서 말인데 도시가 완공되고 나서 내부 단장을 해야 하는 인원이 필요해요.”
“그래요? 혹시 인원을 한국에서 충당하실 생각인가요?”
“미국과 한국 양쪽에서요. 미국 제현 그룹에서만 뽑을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셨군요.”
“네. 아무래도 부모님이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한국인에게 뭔 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있네요.”
강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스스로가 민족주의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족의 일원으로써 태어나 생긴 인연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천 교수, 김 원장. 그리고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이들이었기에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현은 나름대로 한국인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강현이 미국으로 돌아간 한 달 뒤, 한국 제현 그룹은 대대적인 인사 모집을 시작했다.
[절이 싫은 중이여! 떠나라! 우주로!]
엄청나게 자극적인 카피 문구로 시작된 제현 그룹의 대대적인 인사 모집에 드디어 본격적으로 핵심 인재를 빼내가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한 기업들이 일제히 긴장했다.
역시 우주 개발을 진행 중인 강현과 라인이 끊어진 것이 아니었는지 우주 도시 완공을 앞두고 내부 단장 및 거주 시설을 짓기 위한 인력을 모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원수는 약 1만 여명에 달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인력이 빠져나갈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우 조건에 다소 안심했다. 성과급이나 보너스가 없다는 문구에 인재의 유출이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안심한 것은 모집 요건 때문이었다.
[모집 요건 : 대한민국 부적응자. 특히 자신이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친 사회적이고 성실한 사람일 경우 면접 및 인적성 검사를 통해 선발.]
부적응자? 하지만 취업을 해서 승승장구하고 있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핵심 인재가 부적응자일리가 없다. 그러니 기업 차원에서는 안심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대한민국 부적응자라니! 마치 대한민국이 사람 살 곳이 안 된다고 말하는 광고같지 않은가?
정부 기관에서 제현 그룹에 강력하게 광고 시정 조치를 내렸다. 제현 그룹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광고 문구를 바꾸었다.
[평범한 한국인에겐 흥미 없습니다.
이중에서 백수, 좌파, 빨갱이, 내부고발자가 있다면, 저희에게 오세요. 이상!]
도대체 누가 뽑았는지 알 수 없는 요상한 광고 문구였지만 더욱 노골적인 표현에 이전보다 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도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저런 사람들을 모집하려는 건가? 대체 우주에는 어떤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 = = = =
백수 생활 3년차에 접어는 백영길은 취업하라는 부모님의 등쌀에 진저리가 났다. 왜 취업을 못하냐고? 그걸 알면 취업을 하겠지. 하지만 그 원인은 결국 경쟁에서 뒤쳐졌다는 것이고 남보다 뛰어나게 되는 확실한 방법이란 인류 뿐만이 아닌 지구 상 모든 생명이 갈망하는 방법론이며 결코 완성되지 않을 이론이었다.
아무튼 제현 그룹에서 모집하는 모집 요강을 본 그는 비록 연봉이나 혜택 따위가 중견 기업에 비해서도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지원서를 냈다. 그만큼 그는 절박했다. 지독한 경쟁뿐인 대한민국 사회를 떠날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 만으로 지원을 결심하기에는 충분했다.
“3132번 면접자, 들어오세요.”
자신의 번호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동안 기억에 남는 걸 말해보세요.”
“어.. 그러니까..”
그는 면접관의 질문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자신의 인생에 기억에 남는 것? 학창 시절에 공부했던 기억 외에는 딱히 나지 않는다. 공부와 성적이라는 서킷에서 경쟁하는 여느 학생들처럼 공부하고 친구들과 놀고 딱히 어긋나지 않은 삶을 보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에 가고 평범하게 술마시고 놀고, 평범하게 농활도 해보고..
하지만 그런 걸 인상에 남는 기억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는가? 입을 떨어지지 않고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회상이 주마등 같았다.
“따, 딱히 기억에 남는게 없습니다.”
“흐음.. 그런가요?”
“네, 네.”
“범죄 경력은 전혀 없으시군요.”
“네, 없습니다.”
질문은 이어졌고 말을 당황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질문에 다시 당황했다. 왜 이런걸 묻는 거지?
“학창 시절에도 소년법에 저촉되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으셨죠?”
“가, 가끔 PC 방에 가기는 했습니다만 평범하게 학교, 집, 학원을 오가며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폭력이나 왕따에 관련된 사실도 전혀 없으시고요?”
“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만일 지금 면접시에 한 대답이 나중에라도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즉시 계약은 해지 됩니다.”
“알겠습니다.”
백영길은 면접관의 말에 오히려 안심했다. 그는 그 자신이 그런 일을 저지를 깜냥이나 배짱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에 기회가 오더라도 스스로를 불쾌하게 여길 일을 외면할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죄책감 같은 걸 가진 일은 없나요?”
“있습니다.”
백영길은 이번 질문에는 망설이지 않았고 대답할 수 있었다. 죄책감은 지금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인가요?”
“취직을 못해서요.”
부모님에게 자랑스런 아들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 백수는 죄명이었다.
백영길은 면접 시간을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왔고 양복을 벗지도 않고 이불에 엎어졌다. 고작 십 여분에 불과한 면접 시간이었는데 긴장이 확 풀렸다. 그리고 며칠 뒤 인적성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 = = = =
“에.. 그러니까, 김조창 씨. 모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셨다고요?”
“네. 그러다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서 활동하다가 근무 태만으로 해고당했습니다.”
“그러시군요. 인적성 검사 날짜에 맞추어 시험치러 오시면 됩니다.”
타칭 좌파가 합격했다.
“음.. 블로그에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다가 불법 사찰을 당했다는 말씀인가요?”
“조사 받는 중에 저보고 빨갱이 아니냐고 묻더군요.”
빨갱이도 합격했다.
“회사 납품 비리를 윗선에 알렸다가 해고 당하셨다고요?”
“알고보니 불량 부품을 납품하던 하청을 운영하던 사람이 회장 동생이더라구요. 그래서 정부에 알렸죠. 해결해 줄거라고 생각했는데 눈가리고 아웅하고 저는 대기 발령을 받았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내부고발자도 합격했다.
한국 사회는 제현 그룹이 정말로 그런 사람들을 뽑자 기가 막혀했다. 기득권층은 인재를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아예 사회 풍토를 바꾸어 버리려고 하는 의도라고 생각했고 심각하게 우려했다.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한 이들이 결집하고 정치 세력화 한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무려 일 만 명에 달하는 사회 부적응자를 모집했다. 거기에 그 가족들. 그런 이들이 결집되면 무섭다. 레지스탕스가 무서운 이유는 숫자가 아니라 그 조직력에 있었다. 흩어진 대중의 힘은 전혀 무섭지 않다.
국회의원들이 그룹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묻고 정부 기관 차원에서 감시를 시작하기도 했다. 이들을 이용해서 폭동이라도 조장하지는 않을까란 도가 넘는 상상을 하는 이들이 고위 공무원 중에서도 적지 않았다. 하긴 기득권에서도 쿠데타를 벌인 작자들이 있을 정도인데 한 기업이 폭동을 조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용역 깡패같이 집회하는 노조를 해산시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는 기업도 있지 않은가?
극도의 불안속에서 제현 그룹은 가상 시뮬레이션과 NASA에서 파견 온 사람의 도움을 통해 뽑은 이들을 교육 시키는데 주력했다. 덕분에 본사 근처에 급하게 기숙사도 짓고 교육 시설에도 투자를 했다. 물론 강현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급하게 일을 진행하느라 처음에는 모든 것이 지지부진했고 어설펐지만 3년 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빨리빨리가 특기인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빠른 시간안에 교육 시스템이 매끄럽게 잘 돌아갈 것이다.
정부에서는 제현 그룹이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고 모집한 인원들의 교육에만 신경을 쓰고 그 교육 내용까지 입수하자 다소 안심했다. 저들은 다른 의도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우주 도시에 일할 사람을 뽑아 교육하고 있었다.
“왜 저희같은 사람을 뽑은 건가요?”
내부고발자가 되었다가 결국 해고 당한 천정호가 강사에게 물었다.
“우주에는 어떤 사람들이 필요할까요?”
“뛰어난 사람이요.”
“하지만 그 뛰어난 사람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문제를 만든다면요?”
“문제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지 않나요?”
“무엇을 위한 생존인가요? 우주에 대해 생존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타인에 대해서 생존하는 것인가요? 우주는 위험한 공간입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모두 죽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같은 사람을 뽑은 겁니다.”
한국 사회는 치열한 경쟁 사회다. 하지만 우주는 경쟁보다는 화합이 더 중요하다. 사람의 생존을 책임지는 시설을 관리하고 유지 보수하고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협동하는 마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