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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63화 (163/241)

163화

그래도 강현이 이번 연구 용역으로 받을 액수만 해도 약 10억 달러는 되었고 로열티를 가만하면 그 수 백 배를 벌어 들일 수 있을 테니 그의 재산은 더 불어날 전망이다.

지분에 대한 말을 꺼냈던 할렌은 다시 기술 개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런데 박사님. 혹시 수직 이착륙용 엔진으로 개조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과연 무기에 미친 남자답게 벌써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할렌이었다.

“없어요.”

강현은 딱 잘라말했다. 물론 질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방법이 떠오르기는 했다. 전자석으로 로렌츠의 힘을 통해 플라즈마가 쏘아지는 방향을 바꾸면 된다. 물론 기술적으로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것 때문에 거절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플라즈마 엔진과 매스 드라이버를 결합해 저렴한 유인 우주 여행이 가능하도록 기술을 개발하고 나서 물질 분석 레이더도 만들어야했다. 겸사 겸사 여유를 찾아 아들인 준과 보내는 시간도 늘려야 했다.

강현의 대답에 할렌은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하긴 강현이 도와준다면 기술 개발이 빠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능력에 걸맞게 그만이 개발할 수 있는 기술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나온 무수한 발명품들과 이론들은 강현이 없었다면 언제 탄생할지 예측할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물리학자 파인만은 이렇게 말했다. 정보가 복잡해서 일정 임계점을 넘으면 스스로 복제를 시작한다고. 초기 아미노산 배열의 생물로 진화한 원리가 복잡성의 증가라고 한다면 인터넷을 배경으로 한 현대 정보 기술 사회의 기술 개발 영역 역시 슬슬 생물의 행동원리를 따르고 있었다.

유력하게 떠오르는 기술, 사장되는 기술, 대세가 되는 기술, 반드시 필요해 보이는 기술 등 연구자들의 네트워크, 학회, 협회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과 자연도태의 원리를 통해 기술 개발의 흐름이 정해진다. 그래서 소위 전문가, 경험많은 권위자들은 앞으로 미래에 어떤 기술이 대세가 될 것인지 미리 예측하고 그 식견에 따라 많은 정부와 연구소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그 와중에 불쑥 튀어나온 이물질이다. 기술 개발의 흐름, 대세에 난류를 일으키고 급격하게 속도를 올려버리니 대세가 되는 연구가 사장이 되거나 사장되려던 연구가 다시 빛을 보는 등 이른바 기술 개발 생태계에 심각한 혼란과 변화를 야기했다.

마치 고생대 초기(캄브리아대)에 있었던 종의 폭발을 보는 것처럼 강현이 제안한 신 통일장 이론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미 인공 베타 붕괴로 방사능 제거를 실행시켰듯이 신 통일장 이론의 가능성을 이용해 좀 더 안전한 핵분열 발전 기술을 개발하기도 하고, 수소를 이용한 핵융합 발전을 연구하기도 했다. 생명의 나무처럼 하나의 종이 다양한 종으로 분화하는 것처럼, 강현이 먼저 만든 발명 역시 다양하게 응용되고 진화되는 것이다.

신 통일장 이론, 다중연산 장치를 이용한 인공지능은 그야 말로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물건이었지만 기술이란 생명의 계통을 보면 전혀 없던 것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비록 파충류가 조류가 되는 정도의 진화에 비유될 정도지만 통일장 이론은 이미 아인슈타인이 연구하던 과제였고, 다중연산 장치는 네트워크 컴퓨팅으로 유사한 것이 이미 있었다.

고로 강현은 신 통일장 이론과 인공지능으로 기술이란 종의 진화를 이끌었을 뿐 그 기술들이 어떤 형태로 살아남을지는 그 기술에 생존할 인간 사회에 달려있었다. 강현이 대세를 만들 수는 있지만 세세한 흐름까지 모두 조절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할렌은 그런 강현에게 고작(?) 수직 이착륙형 플라즈마 엔진 개발을 도와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지금 강현은 우주를 개발하고 있었고 우주의 전략적 중요성은 플라즈마 엔진보다 수십 걸음 앞서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바쁘시군요. 그렇다면 저희 쪽 연구원들을 쪼아야 겠습니다.”

“과제만 던져주면 잘 할 사람들이니까 너무 쪼으지는 마세요.”

공밀레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사실 단순 노동을 강압하면 금새 반발한다. 왜냐면 일이 너무나 단순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때문이다. 왜 내가 이런 일을 이런 대우를 받으며 해야하는가?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고도의 지적 활동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문제가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잡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급여나 업무 시간에 관한 건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잠깐 잠깐 여유가 생길 때나 생각나지 그 외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골머리를 싸맨다.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의 의욕을 고취시키면 절반쯤 공밀레가 성공한다. 거기에 보너스라는 당근과 승진 무산 따위의 채찍을 곁들이면 완벽한 공밀레 체계가 완성된다.

여기까지는 일반 연구소 따위의 경우고 팬타곤에서 섭외한 연구원들은 채찍 따위 필요없다. 체질적으로 자발적 공밀레인 이들은 흥미가 돋는 과제가 있다면 스스로 퇴근 시간도 반납하고 연구를 할 것이다. 그런 열정이 없다면 유능한 인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팬타곤 무기 개발부에서 섭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력과 열정도 재능인 것이다.

“그러죠.”

강현의 말에 할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이란 빠르게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 권리가 인정된다. 그걸 모르는 연구원들은 없다. 그렇다고 서둘러서 허겁지겁 연구하는 반푼이들을 섭외하지도 않았다.

간디가 말했다.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의미가 없다고. 방향을 잘 잡기 위해서는 여유와 안목, 능력이 필요했고 그 방면으로는 할렌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쪼은다는 이야기는 말빨로 그들의 의욕을 자극한다는 말이었다. 멍청한 농부는 노새에게 채찍질을 하고 현명한 농부는 노새 눈앞에 당근을 매달아 놓는다. 가장 좋은 공밀레의 방법은 스스로 공밀레 당하는지 모르고 당하는 공밀레다.

할렌이 플라즈마 제트 엔진 테스트의 결과에 만족하고 돌아간 이후 강현은 곧바로 플라즈마 제트 엔진을 장착한 유인 우주선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개발 목표는 두가지. 매스 드라이버의 출력을 보조 할 수 있을 만큼 우주선의 출력이 좋을 것. 두 번째는 귀환시에 원하는 장소로 돌아올 수 있을 능력이 있을 것.

각각의 목적에 부합하는 설계를 하는 것은 쉬웠지만 둘 다를 만족하는 설계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쏘아올리는 것도 매스 드라이버에 실리는 우주선의 중량이 매스 드라이버가 버틸 수 있는 정도인지, 그렇다면 필요한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출력은 얼마인지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했다. 대부분 이런 문제들은 변수가 세 개 이상인 미분 방정식으로 나타나는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세 개 이상인 미분 방정식의 엄밀해(수학적 공식으로 표현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도출한 해)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얻을 수가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컴퓨팅을 통한 근사치를 계산하는 것이고 이는 아즈삭이 있으니 아토 단위(백경 분의 일; 0.000 000 000 000 000 001) 혹은 그 이하의 오차로 값을 도출하는 것도 가능하니 별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여기에서 다시 귀환하기 위한 추가 설계가 들어가면 또다시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안전성, 중량, 시간, 비용 등의 변수들이 또다시 더해져 변수가 두 배가 되기 때문이다.

“일단 귀환 방식을 정하는 게 먼저야.”

[기존 발사체의 방식은 어떻습니까?]

“동체 변형식?”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우주 궤도 공장에 자재와 로봇들을 쏘아 올려 보내는 발사체는 귀환 시에 CNT 섬유로 짠 날개를 펼쳐 글라이딩으로 바다에 착육한다. 육지가 아니라 바다에 착륙시키는 이유는 바퀴 따위의 착륙 시스템을 달아야 해서 무게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단단한 날개가 아니라 펄럭이는 피막과 같은 날개, 그리고 딱히 추력을 내기 위한 시스템(엔진, 프로펠러)이 없기 때문에 때문에 착륙을 위한 동체 제어가 어려워 파손될 가능성이 있었다. 차라리 충격 완화가 가능한 물위에 착지시키는 것이 더 안전했다.

“글쎄.. 나쁘지는 않은데 말이야.. 변형할 때 동체의 중량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날개 축을 만들 수 있을 지가 문제야.”

발사체는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유선형으로 만든다. 날개는 가속하는 도중에 막대한 압력을 받아 피로가 누적되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구로 귀환할 때 이 날개의 이점은 엄청나게 크다. 일단 떨어지는 위치를 조절할 수 있고 공기 저항을 이용해 성층권을 돌파하는 시간을 늘려 마찰열을 줄일 수 있었다. 내열 시스템에 여유가 생기고 안전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인 우주선의 중량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길어질 수는 있는가? 글쎄.. 지금 네바다 매스 드라이버 기지에서 사용하는 발사체처럼 CNT 섬유 피막과 그것을 지탱하는데 이용되는 막대기의 성능으로는 무리다. 무게가 늘어나는 만큼 날개는 커져야 하고 막대기 역시 굵고 튼튼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글라이더로는 안되겠다. 그냥 비행기 날개는 어떨까?”

[미 해군에 F-14기가 가변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변형이라.. 쯧! 중량이 늘어날 것 같은데.. 패러글라이더는 어때?”

항공 스포츠인 패러글라이더는 사람의 발로 착지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가 완화될 수 있고 동력 장치도 사용할 수 있다.

[나쁘지 않습니다만 문제점은 없습니까?]

“2000도씨를 넘나드는 열권에서 견딜만한 내열 섬유가 필요해.”

[CNT 섬유로는 무리군요. 하지만 굳이 열권에서 낙하산을 펼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낙하산이 엉키면 죽는거지.”

[예비용 낙하산을 달면 괜찮을 겁니다. 거기가 플라즈마 제트 엔진이 달려있으니 어느정도 방향을 조정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무게 중심을 잡는 게 어려울 거야. 밸런싱 시스템을 추가해야돼.”

[가변형 날개 시스템보다는 가벼울 겁니다.]

“또 속도가 느리잖아.”

[그건 운영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여객선 항공로처럼 우주 도시를 중심으로한 운송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유인 매스 드라이버가 한 곳에만 건설될 리 없으니까요.]

강현은 아즈삭과 문답을 해가며 패러글라이더라는 아이디어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방법을 구체화했다. 그러다가 가변형 날개 시스템은 어떤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무래도 첨단을 달리는 시대에 패러글라이더는 시각상 좀 기분이 그랬다.

“가변형 날개를 설치하면 좋은 건?”

[본격적인 우주-대기권 운송 능력이 생길 겁니다.]

“나쁜건?”

[무게가 늘어나기 때문에 플라즈마 엔진의 출력이 더 좋아야 하고 고도가 올라가며 희박해지는 공기로 인한 출력 부족이 문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압축 공기를 플라즈마 엔진에 분사해 추진제로 사용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무게도 더 늘어나겠군. 신소재를 사용해 무게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을까?”

[CNT 시트를 이용한 항공기 제작 기술은 이미 존재하고 개발 중에 있습니다.]

CNT 섬유로 만든 CNT 시트는 이미 F1 경기용 자동차에 사용되는 구조용 재료다. 그걸 그 큰 비행기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은 대단히 도전적인 내용이었으나 실현된다면 여객선의 연료 효율을 대대적으로 개선할 것이다. 물론 플라즈마 제트 엔진이 발표된다면 그 계획이 일단 뒤로 미뤄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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