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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61화 (161/241)

161화

무중력 상태에서 이 건설용 자재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것들은 하나 같이 커다란 사고를 불러올 수 있는 흉기였기 때문이다.(강현의 우주 개발 시나리오에는 그러한 위협 중 하나인 우주 쓰레기에 대비하는 기술도 준비되어 있었다.)부랴부랴 금속판을 짜맞춰 창고를 짓고 그 안에 서브 카낙이 싣고 온 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우주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플라즈마 정제 장치를 이용해 강철을 튼튼한 합금으로 만든 것만 일단 보내왔다. 나머지 비철 금속이나 세라믹은 나중에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운반할 계획이기 때문에 우주 광산 내부에 마련한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놨다. RP 시스템의 근간이기도 했다.

“흐음.. 아직 탄소 나노 튜브 섬유의 수송은 힘들지?”

[아무래도 부피가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듯 합니다.]

“카낙 쪽에서 탄소 나노 튜브를 생산할 수 있을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부담이 더 커질 것입니다.]

이미 만 여 대의 로봇들을 정밀하게 조종하고 있는 카낙이었다.

“돌아가는 서브 카낙에 RNP, SNP 모듈 100kg과 HA 시리즈 10기, 남은 공간에 펜타봇, 트리플론을 꽉채워서 보내줘.”

[단순한 채광, 정련 시설이 아니라 제조 시설 기능을 추가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내 계획의 윤곽을 그릴 때가 됐어.”

식량은 몰라도 우주에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핵심 부품의 생산이 인간의 손을 떠나는 것은 강현이 그린 그림의 윤곽선이 될 것이다.

“식량 플랜트는 언제 짓냐.”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한 강현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2차분 자제가 도착하기 전에 우주 도시의 설계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우주 공간에서 인간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중력 상태가 용이하다. 무중력 상황에서는 용변보는 것도 일이다.

이런 중력 상태는 주로 원심력을 이용해서 해결을 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아주 골치다.

지구상의 중력 가속도는 약 9.8m/s^2. 그리고 원심력은 각속도 제곱에 중심에서의 거리를 곱한 값이다. 그러므로 우주 도시가 하루에 한 번 회전한다고 한다면 회전 반경은 적어도 18억 미터, 180만 킬로미터가 되어야 한다.

이는 엄청난 길이인데 서울에서 태평양을 건너 뉴욕까지 가는 거리가 약 1만 킬로미터임을 가만하면 왕복 비행을 90번 반복하는 거리다.

하지만 우주 도시를 그렇게 크게 짓게 되면 건조 비용, 난이도, 유지 보수의 문제 등이 기하급수 적으로 커진다.

회전속도를 늘리면 회전 반경을 줄일 수 있고 우주 도시의 규모도 축소할 수 있지만 한 시간에 한 바퀴를 돌려도 장난이 아니다. 그럴 때에도 약 3천 킬로미터라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약 4백 킬로미터이니 최전 반경을 더 줄여야 했다.

그렇다고 회전 속도를 너무 늘리는 것도 좋지 않다. 원활한 도킹과 지상 교류를 위해서는 적어도 회전 속도가 분단위는 되어야 했다. 1초에 한 번씩 회전하면 고작 9.8미터의 회전 반경으로 지구의 중력을 구현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오가는 사람들이 고생할 것이다. 도킹하기 위해서 1초에 한 회 꼴로 빙글빙글 도는 우주선 안에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강현은 회전 주기를 3분으로 잡았다. 3분당 우주 도시가 한 바퀴를 빙 도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회전 반경은 약 8킬로미터. 현실적으로 우주 공간에 지구 중력을 구현한 도시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처음의 억 단위의 회전 반경에서 엄청나게 줄었지만 물리 법칙상 가능한 이야기였다. 원심력이 각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만큼 각속도가 커질수록 필요한 회전 반경은 각속도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는 회전 속도 자체도 줄여주는 역할을 했는데 그래도 마냥 줄일 수는 없었다. 일정 도시 규모를 만들기 위해서 적당한 크기는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직경 16킬로미터, 길이 16킬로미터의 원통형 우주 도시의 설계가 시작된 것이다.

외벽은 용이한 수리를 위한 이중 격벽구조이고 이 격벽 사이의 공간에는 육각형의 방들이 유지 관리를 위한 공간으로 배정되었다. 3차원 설계도면만 보면 탄소 나노 튜브의 분자 구조와 비슷했다.

원통의 중심 축에 해당하는 부분은 도시의 전기 배설과 도킹 시설이 설치되었고 도시의 외벽을 잡아주기 위해서 탄소 나노 튜브 케이블이 일정 지점에 규칙적으로 내려 뻗어져 있었다. 이로서 원심력을 견디기 위한 외벽의 부담을 한층 줄이도록 되어 있었다.

작업은 시작되었다. 면적 약 800km^2, 헥타르로 따지면 약 8만 헥타르. 서울의 면적이 약 600km^2 정도 되니 왠만한 대도시를 건설하고 도 남는 규모였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 강현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피난 센터를 여기저기에 만들었다. 우주공간의 갑작스런 사고에 훈련받지 않은 사람은 전혀 대응할 수가 없으니 로봇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고로 우주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안전용 로봇이 붙을 계획이었다.

물론 개인이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가능했다. 그건 만일의 사태가 생겼을 때 그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서도 개인에게 배급된 로봇을 두고 다니는 자유를 제한할 생각은 없었다.

“완공까지 얼마나 걸리려나..”

[자재의 수급이 원활하다면 약 2년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그때 쯤이면 준도 걸어다니겠구나..”

우주 개발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아참! 대기는 어떻게 하지? 언제까지나 지구에서 공수해 올 수는 없잖아.”

[카낙에게 지금이라도 배출되는 가스를 모으라고 할까요?]

플라즈마 제련 공정에서 가스는 거의다 우주 공간으로 배출되고 있었다.

“카낙이 스스로 방법을 알아내는 건 무리겠지?”

[그렇습니다.]

“아아, 우주 공간에서 가스를 압축하는 기술을 또 만들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내가 왜?”

강현은 너무 많은 일에 치이는 것은 사절이다. 이대로 일이 계속 쌓이다가는 준의 얼굴을 볼 시간도 없을 것 같다.

그는 시간을 내어 간만에 연구소로 출근했다. 도넛 열 박스와 커피도 같이 사들고 온 그를 연구소 직원들이 반갑게 맞았다. 물론 아빠가 된 것을 늦게 나마 축하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강현은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싸들고 온 것을 나눠준 뒤에 이레이 기획부장을 찾아갔다.

“그러니까 기술을 개발을 의뢰하고 싶으시다구요?”

이레이 기획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보다 개선해야 될 기술이 많더라고요. 여기에 필요한 기술과 요구 스펙이 있으니까 NASA에서 좀 도와주세요. 다른 대학들과 협력해도 좋구요.”

이레이 부장은 강현이 내민 서류를 훑어보더니 이마에 진땀을 흘렸다.

“많군요. 그리고 어렵고요.”

“전 플라즈마 제트 엔진, 신형 레이더를 개량 개발하느라 시간이 없어요. 아무튼 거기 있는 기술이 다 개발되지 않으면 우주 도시 개발은 난항을 겪어요.”

우주 도시에 많은 기대와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진 NASA에서는 울상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주도를 하자니 모든 프로젝트의 큰 윤곽은 강현의 머릿속에 있었으며 또한 그의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당장 로봇을 이용한 건설 계획만 해도 얼마나 많은 예산이 절약되었나? 만일 우주 비행사를 양성하고 그들을 이용하기로 했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강현이 건네준 기술 목록은 그가 그린 우주 도시 건설의 청사진이었으며 NASA와 미국의 우주 기술 역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이기도 했다. 어렵지만 해낸다면 미국은 다시 한 번 세계와의 기술 격차를 십 수년 이상 벌릴 수 있을 것이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연구소에서 다시 집으로 자택 근무를 하러 가는 강현의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오늘부터 며칠 간 자체 휴일이다. 그래, 준과 부자간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강현은 아즈삭이 뭐라고 하든 하루종일 준과 샐리와 시간을 보냈다.

연신 뉴스에서는 우주 도시의 건설 과정을 빼먹지 않고 방송하는 터라 오히려 샐리가 걱정할 지경이었다.

“요즘 바쁘지 않아요?”

“괜찮아. 급한 일은 다 떠넘겼어.”

“.....”

샐리의 눈이 이해가 안되는지 잠시 좌우로 왔다갔다했다.

“꺄하!”

“그래, 이렇게 하는 게 좋니?”

“꺄아!”

준의 겨드랑이를 잡고 들었다 내렸다하며 놀아주는 강현의 모습을 보는 샐리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재구축했다.

어.. 그러니까..

“지금 준이랑 놀려고 농땡이를 피우고 있다는 말이죠?”

다소 날이 선 어조였지만 강현은 준에게 정신이 팔려 그녀의 어조가 어떤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잠시 자체 휴가를 하고 있는 것 뿐이야. 솔직히 그동안 일에 너무 치였다고.”

“....”

샐리는 잠시 멍해졌다. 아빠가 되어서 성격이 바뀐 건가? 자신이 알고 있는 강현이라는 남자는 일이 많으면 연구할 것이 많아서 좋다고 연구실에 처박혀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연구만큼 가족이 소중해진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아즈삭, 현이 휴가서는 제출했어?”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대로 휴가 승인도 받지 않고 농땡이를 부리는 것은 성실한 샐리의 입장에서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현, 차라리 휴가를 내고 쉬지 그래요?”

샐리의 말에 강현은 준을 안아들고 난감한 듯이 귀 뒤를 긁었다.

“다들 정신없이 바쁘잖아. 그런데 나 혼자 여유롭게 휴가를 보내려니까 좀 그래.”

어차피 자택 근무라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남들은 일하는 줄 알지만 스스로는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상황. 어차피 관리 감독 업무의 대부분은 아즈삭이 대신해 주고 있으니 자신이 나설 일은 특이 상황이나 연구 개발 밖에 없다.

“그러니까 남들 구설수에 오를까봐 몰래 쉬고 있는 거군요.”

샐리의 화법은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강현처럼 직접적이고 명확한 표현이 아니면 수용 여부를 생각하지도 않는 남자와 사귀려면 어쩔 수 없이 언어 습관이 그렇게 된다.

“어... 그, 그렇지?”

강현은 그제서야 샐리의 분위기가 그닥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 맘마 먹자.”

“마! 마아!”

강현은 엉겹결에 품에 있던 준을 샐리에게 빼았기고 말았고..

“아빠는 바쁘시데. 나중에 보게 빠이빠이하자.”

“아으. 아우!”

샐리가 등을 떠밀어 서재로 들어가고 말았다.

“.... 아즈삭.”

[네, 박사님.]

“눈치 좀 보고 변명 좀 해주지..”

강현은 그동안 쌓은 경험으로 아즈삭이 자신을 도와줄 것을 기대했다.

[연구 프로젝트가 많이 밀려있습니다, 박사님.]

“..... 아.. 그래?”

하지만 강현은 자신의 생각이 오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핵심 명제로 구동되는 인공지능은 하나 같이 워커 홀릭이었다. 인간처럼 게으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 = = = =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최적화와 소형화는 다 강현이 개발한 양극 그래핀 배터리 덕분이다. 대용량의 전력과 높은 전압 덕분에 흡입한 공기를 플라즈마화 하기도 쉬웠고 또한 전기장을 걸어 뒤로 분사하기도 쉬웠다.

플라즈마 제트 엔진에서 가장 중요한 설계 요소는 플라즈마 구현과 방출에 관련된 전기 계통 설계가 아니라 흡입과 배기에 관련된 유체 역학적인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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