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아즈삭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EM 드라이버의 개량형이 정말로 힉스 제로 효과를 입증한다면 인류의 이동 방법은 크게 변할 것이다. 그건 바퀴를 발명한 것과 마찬가지의 혁명을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
[일정 조정은 했으니 EM 드라이버를 마무리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늦어졌니?”
[적어도 6개월은 늦어졌습니다.]
“흐음. 빨리 레이더와 우주 여행 기술을 완성해야 하는데..”
강현은 약간 고민을 하다가 일단 시작한 일은 마무리 하기로 했다. 기존의 EM 드라이버를 개량하기로 한 것이다.
새로운 EM 드라이버는 챔버의 모양부터가 달랐는데 옆의 단면이 W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초고주파가 가운데 움푹 파여진 중앙으로 주입되도록 되어 있었다. 반대쪽 원판 중앙에는 작은 원뿔이 붙여서 직진해 들어오는 초고주파를 옆 면으로 산란하게 되어 있었다.
이로서 안쪽 비탈면과 바깥쪽 비탈면이 추진력을 생기기 때문에 기존 EM 드라이버보다 두 배에 가까운 효율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해서는 강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는 챔버 안쪽 비탈면에 얇게 구리-비소 합금을 입혔는데 결정면에 의해 전자의 오비탈 방향을 조정해 놓았다. 이 방향이 조정된 오비탈을 도는 전자는 힉스 제로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며 거기에 박막의 투과율과 기판 재료의 투과율 차이를 이용한 광학적 보강 간섭을 이용해 초고주파 광자의 효율을 극대화 했다.
다양한 측면을 노린 이 합금 코팅은 박막의 결정 방향을 의도한 대로 만들 수 있어야 하는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 만큼 효율을 기존의 5배까지 올렸다.
강현은 완성품을 학회에 제출하자마자 반응도 보지 않고 바로 레이더 연구에 들어갔다.
덕분에 강현의 이론이 정말인지 검증하는 건 다른 과학자들의 몫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구리판에 강현이 했던 것처럼 코딩을 하고 실에 매달았다. 그리고 진공 상태에서 자전관을 이용해 다양한 입사각도로 초고주파를 쏘았고 구리판에서 일어나는 힘을 정밀하게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광자의 운동량에 의해 받는 힘, 광전 효과로 인한 정전기적인 반발력, 실 자체에 걸리는 토크 등 수많은 오류의 원인들을 유추하고 실험을 반복해 결국 그들은 힉스 제로 현상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 힘은 너무나 작았으나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챔버의 형태로 인해 초고주파가 감쇄 될 때까지 수십 수억 조번의 힉스 제로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추진력이 생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챔버는 힉스 제로 효과의 미세한 힘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전자를 매개로 힉스 장에 영향을 주는 발상은 반중력 현상을 실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기도 했기에 이 힉스 제로 효과를 발견한 강현이 내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과연 이번에는 노벨상을 받을 것인가?
인공 베타 붕괴 기술로 노벨상을 수여자의 위치에 올랐지만 연구가 바쁘다는 이유로 받지 않은 천재의 위엄에 다들 놀랐다. 과학자로서 엄청난 명예인 노벨상을 그렇게 쉽게 내친다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미 전례가 있으니 다음 노벨상 수상 때에도 거절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우주 개발 때문에 매우 바쁜 매일을 보내고 있다는 정보가 과학계에 파다했다. 실제로 강현은 통신 네트워크를 통해서 NASA와 우주 개발에 관련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런 그의 신변에 대한 이야기가 NASA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의 인맥을 타고 과학계에 퍼져있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운가? 명예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천재가 노벨상보다 그의 관심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이상 두번째 노벨상 수상을 거절할 가능성은 너무나 높았다.
하지만 스웨덴 왕립 과학원장 포루먼은 두 번째 거절을 반드시 막을 생각이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 과학원의 책임자로서 강현의 행동은 오랜 전통을 가진 과학계의 미덕을 훼손하는 행위였다.
물론 개인의 가치관이 그렇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강현이 그가 노벨상을 거절해서 생기는 여러 불쾌한 일을 듣고 이해해주기를 바랬다.
“어.. 그러니까 내년 노벨상 수상 대상에 선정되면 행사장에 나와서 받아 달라고요?”
“그렇네.”
머리 희끗한 백인 노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러니까 작년에 제가 안 받아서 차상위 대상자가 받아야 하는데 그 사람도 탐탁치 않게 받았다고요?”
“학자가 자존심이 있지. 아무리 노벨상이라도 남이 버린 걸 받을 학자는 없네. 그놈의 상금 때문에 받은 거지 상금이 없었다면 안 받았을 거네.”
“어.. 그래서 다들 기분이 많이 나쁘셨다고요?”
“그랬지.”
“쩝..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강 박사의 연구에 대한 열의는 높이 사고 있네.”
간단히 일을 정리하자면 인공 베타 붕괴 기술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된 강현이 수상을 거절하자 차순위 수상자에게 상이 돌아가게 됐는데(노벨상은 수여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사람이 수상 소감을 하면서 상금이 아니었다면 안 받았을 거라며 썰을 풀어놓으니 참관객들의 얼굴에 쓴 웃음이 지어졌다는 그리 아름답지 못한 에피소드였다.
“이거 아들 보기가 부끄럽군요.”
“늦었지만 아빠가 된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포루먼은 젊은 혈기가 넘치던 천재가 자식을 낳고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포루먼의 말을 들은 강현은 저번에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사회는 격식과 예의범절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쌓은 일종의 규범이다.
그 이면에 있는 경쟁 원리를 꿰뚫어 본 강현은 실리주의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규범을 지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로 인한 부작용 역시 힘이 있다면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규범과 격식을 충실하게 따라서 쌓아올린 사회적 인망과 명성은 그것 하나로 또 하나의 자산이었으며 상황에 따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카드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강현이 그런 사회적 자산을 적극적으로 쌓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차려준 밥상을 마다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나중에 준이 ‘왜 그때는 안 받았어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냥 솔직하게 귀찮아서 안 갔다고 하면 아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럼 이번에 노벨상 수상자가 되면 받으러 올 건가?”
“어... 그러니까 스웨덴까지 가야 되죠?”
노벨상 시상식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벌어진다.
“정부에서 허락해 주려나?”
“허! 미국이 자네가 가진 거주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말인가?”
포루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인류의 과학적 진보를 첨단에서 이끌고 있는 남자를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는 정황에(과장과 오해다.) 격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게 아니고 제가 워낙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서 사전에 경호 계획 따위를 조율해야 하거든요.”
“그런가?”
“하하! 자랑은 아니지만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 따로 첩보 위성 자원도 배분해 놨데요.”
“그, 그렇군.”
하긴 강현이 이룩한 것을 보면 미국 정부가 강현을 애지중지 보호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쩝. 자네도 귀찮겠군.”
“뭘요. 저야 집과 연구실 이외에는 나돌아 다니지 않으니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든든하게 보호해 주니까 안심이 되죠.”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만일 그랬다면 제가 이렇게 얌전하게 있겠어요?”
“그, 그렇군.”
포루먼을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강현과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떠나면서 다시 한 번 시상식에 참석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박사님, 시상식장에 참석하실 겁니까?]
“그야 노벨상 수상이 되면.”
[그때를 대비해서 경호 레벨을 올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자율적인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K 시리즈하고 HA 시리즈가 무기로 분류되어 있으니 함부로 가지고 갈 순 없고.. 그렇다고 또 다른 건 만들기에는 쌓여있는 일이 많고..”
[펜타곤에서 사족 보행형 무인 병기를 개발했습니다. 그걸 서너기 정도 얻어서 적절하게 개조하면 어떨까 합니다.]
“흐음.. 그러자.”
시상식은 일년이나 더 남았지만 준비는 미리미리 해두는 습관이 있는 강현은 펜타곤에서 비밀리에 사족 보행 무인 병기인 메탈독(Metal dog) 세 기를 구입했다.
원래 기종은 머리와 목 부분에 서브 머신건과 탐지 시스템이 달려있었는데 당연히 강현에게 보낼 때에는 그것들을 제외하고 보내졌다.
강현은 메탈독의 개조를 전적으로 아즈삭에게 맡겼다. 개조 목적은 가족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위험 요소 인지 시스템, 비살상 제압 무기를 탑재하도록 했다.
위험 요소 인지 시스템의 경우에는 아즈삭과 연동하면 쉽게 처리되고 비살상 제압 무기의 경우, 테이저 건, 급속 경화수지 총 등 이미 나와 있는 기술을 사용하면 되므로 아즈삭 혼자서 최적화 설계를 통해 개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강현이 깨어있을 때에는 강현과 일정에 있는 프로젝트를 소화하고 강현이 자고 있을 때에는 메탈독의 개조 작업을 진행하니 약 한 달 뒤에 셰퍼드 모양의 로봇 견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강현은 완성된 로봇 견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음에 안드십니까?]
“뭔가 빠진 느낌이 들어서.”
강현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로봇 견의 관절 부위를 보았다. 단단한 금속질의 외갑이 딱 보기만 해도 위압감을 주었다. 샐리와 아이의 주위에서 언제나 근접 경호해야 하는 로봇의 외관으로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듯했다.
“털이 없어선가 좀 그렇네.”
[벨벳은 어떻습니까?]
“나쁘지는 않네.”
강현의 말에 아즈삭은 나노 탄소 튜브로 짠 벨벳 원단을 주문해 HA 시리즈로 밤을 새워 재단하고 재봉했다. 역시 재봉은 일반적인 기계보다는 사람과 닮은 HA 시리즈를 이용하는 것이 압도적인 효율성을 보였다.
그렇게 로봇 견의 외피에 검은 벨벳 원단이 씌워지자 좀 웃긴 모양이 되었다.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큰 개 인형 같았기 때문이다.
강현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즈삭에게 이보다 더 수준 높은 디자인을 원하는건 무리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겉보기에 불과한 일에 직접 나서기에는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의외로 샐리는 이 로봇견을 마음에 들어했다.
“아주 귀여워요.”
감시 장치와 대인 제압용 비살상 무기가 탑재된 개머리 모양의 두상은 입이 벌어지지 않아서 필요한 구멍을 제외하고는 봉제인형 머리처럼 벨벳 원단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유치한 모양과 동화적인 분위기가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이다.
“이건 애완견이 아닌데..”
“괜찮아요. 준이 좋아 하잖아요.”
“꺄~아하!”
아기는 새롭고 신기한 장난감에 벌써 정신이 팔렸는지 팔을 흔들며 난리가 났다.
강현은 그런 아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다가 샐리의 뺨에 키스를 했다.
“그럼 나는 계속 일할게.”
“수고해요.”
샐리 역시 남편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서재로 돌려 보냈다.
평화로운 한 때였다.
= = = = =
[박사님. 1차 분량의 자재가 도착했습니다.]
소행성대로 출발했던 서브 카낙이 컨테이너에 건설용 자재를 잔뜩 싣고 돌아왔다. 그동안 위성 공장에서는 이 건설용 자재를 수납할 장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