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그리하여 유명 배우는 움직이기가 힘이 들고 무명 배우는 움직이기가 편해진다. 여기서 유명 배우는 무거운 입자이고 무명 배우는 가벼운 입자가 된다. 그리고 바로 팬들이 바로 힉스 입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질량을 가진 입자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속도가 증가할 때 질량이 증가하는 이유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물리적 현상도 빛의 속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상대성 원리를 염두에 두고 힉스 입자가 가득한 우주 공간에서 입자를 가속시키는 사고 실험을 해보자. 속도가 올라갈 수록 이 입자가 만나는 힉스 입자의 수는 많아지게 된다. 즉, 질량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힉스 입자는 자체적인 속도가 없는 것인가? 기체와 같이 대류와 같은 거동을 하진 않는 것인가? 힉스 입자로 이루어진 바람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이 힉스 입자의 흐름에 편승해 빛의 속도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물질의 이중성을 떠올리면 또다시 양상이 바뀐다. 양자 세계에서 입자와 파동은 구분할 수 없다. 힉스 입자는 또한 힉스 장(場)으로 표현되기도 하기 때문에 장(場)이 펼쳐진 공간에서의 파동적인 해석을 할 필요가 있었다.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에 의하면 입자는 에너지 파동이 공간내에서 특정 차원축 방향으로 정상파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진동 모드(mode)와 차원에 의해서 입자의 성질은 변화된다. 하지만 질량을 가진 입자는 적어도 힉스 장(場)에 의해서 간섭을 받는다.
그 간섭은 어떻게 받는 것일까? 그 간섭의 과정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질량을 없애는 방법도 가능할지 모른다. 아니면 특정 방향으로 작용하는 관성만을 제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 EM 드라이브!”
강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주체가 객체에 간섭을 하면 주체 역시 객체에게 간섭을 받게 되는 것이 양자 얽힘이 지배하는 물리 법칙의 원리다. 입자가 힉스 입자에 의해서 질량을 부여받는 ‘간섭’을 받는다면 입자 역시 역으로 힉스 입자에 간섭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현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 EM 드라이브였다. 전파도 파동이고 힉스 입자도 파동이다. 이 두 가지 파동이 같은 공간의 한 지점에서 겹쳐져 서로 간섭해 일시적으로 힉스 입자의 성질이 사라지거나 약화되었다면? 그렇다면 전체적인 운동량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럼 매개입자는 전자?”
하지만 차원축이 전자기장 축인 전파와 중력장 축인 힉스 장이 그냥 겹칠리는 없다. 반드시 그 두 개를 연결시킬 연결고리가 필요했고 가장 적절한 것이 전자기장에 의해 힘을 받으며 또한 미세한 질량을 가진 전자였다. 원자핵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높았지만 너무 무거웠다. 전자기장에 의한 영향력보다 힉스 장의 영향력이 더 강해 전자기장과 힉스 장 간의 간섭이 일어날 여지가 전자(電子)보다 적었다.
“흐음. 고주파가 반사되기 위해서 전자가 흡수할 때 급격한 속도 변화가 생긴다면.. 힉스 입자의 공백 현상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전자의 급격한 모멘텀 변화가 전자기장 축과 중력장 축을 일시적으로 연결시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빛이 반사될 때 물체가 그냥 튕겨낸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빛의 반사, 투과 등 물체와 만나는 모든 과정에서 반드시 전자 밑 원자핵과 상호작용을 하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광학적 현상은 원자의 배치와 전자의 준위에 의해서 결정이 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 바로 나노 홀로그램 기술이었다. 멀쩡한 하얀색의 물질이 단지 크기가 나노가 된다고 색깔이 변하는 것이다.
즉, 빛이 순간적으로 질량을 가진 가볍고 전하를 띈 입자와 간섭할 때 힉스 입자에도 간섭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강현이 추측하는 원리였다.
“파동적 해석은 신 통일장 이론으로 가능할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 양자 색역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색역학적인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해. 간단히 설명을 하다면 빠르게 움직인 전자가 순간적으로 힉스 입자를 밀어내 공백 현상을 만들었다고나 할까?”
[수식적으로 표현해 원리를 확립한다면 EM 드라이브를 개량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하자!”
강현은 신이 났다.
= = = = =
힉스 제로(0) 현상.
요즘 물리학계를 강타한 이슈다. 그간 베일에 쌓여있던 EM 드라이버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가설 중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초고주파가 구리로 만들어진 기하학적인 모양(원뿔대 모양)의 챔버 안에 들어가 반사를 거듭하는 동안 전자와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물질 내에 존재하는 전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 속도는 m/s 단위를 훌쩍 뛰어넘어 1000km/s를 넘나드는 속도로 원자핵 주변을 움직이고 있다. 물론 물질의 종류와 온도에 따라서 이 속도는 변한다. 하지만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속도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무려 빛의 속도의 1%에 근접하는 속도로 항시 움직이고 있는 이 전자 궤도가 외부에 의해서 간섭되는 것이다.
질량을 가지며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입자의 궤도의 순간적인 변화는 힉스 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특정 방향으로 힉스 장을 일그러 뜨리게 되는데 이것이 전자의 질량을 등방성에서 이방성으로 만들어 버린다. 3차원 공간 어느 방향으로나 일정한 관성의 법칙이 일순간 특정 방향에 대해서만 성립하는 법칙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니 질량의 이방성에 의해 운동량 보존의 법칙이 깨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전자가 이동하게 되고 정전기적인 인력에 의해 원자핵도 끌려가 전체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 바로 힉스 제로라는 가설로 설명한 EM 드라이버의 원리였다.
이 이론대로라면 초고주파가 원뿔대의 넓은 면을 더 많이 때리기 때문에 추진력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스듬한 옆면에서 이 힉스 제로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추진력이 생기는 것이다. 전자파의 전기장은 진행 방향에 수직하게 유도되기 때문에 평평한 아래 위의 원반에서는 힉스 제로 현상이 면에 평행한 무작위 방향으로 생겨 서로 상쇄되고 따라서 깔대기 모양의 비스듬한 옆면에서 추진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학계는 술렁거렸다. 강현이 내어 놓은 논문의 내용이 사실인지 검증하기 시작한 연구실이 있는가 하면 논리적인 오류를 다시 한 번 검증하는 연구실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이 힉스 제로라는 가설이 EM 드라이버의 추진력을 설명하는 가장 근거있는 가설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 일단 수식적인 설명에 큰 오류가 없다. 또한 이 가설을 발표한 이가 바로 강현이라는 점이다.
얼마 있지 않아서 이 이론을 바탕으로 개량한 EM 드라이버가 나온다고 하니까 충분히 검증이 가능할 것이다. 강현은 특이하게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는 방법을 실험이 아니라 실 제품을 제작하여 증명해 왔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물론 기업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강현은 힉스 제로 효과를 효과적으로 일으켜 EM 드라이버의 출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전자 오비탈부터 차근 차근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했다.
전자 오비탈은 이른바 전자 껍질을 구성하는 각 전자 궤도 혹은 전자 구름을 지칭하는 것으로 다양한 모양이 있다. 탄화수소나 공유 결합이 바로 이 오비탈에 의해서 구성되고 물질의 결정구조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친다.
힉스 제로 효과가 잘 일어나는 전자 궤도와 전기장 주사각을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찾고 결정 구조를 조직해 최종적으로는 자전관으로 초고주파를 쏘지 않고 재료 내부에 전기장만을 투과시켜 추진력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당연히 난관이 없을 수가 없었다. 전기장은 반드시 교류나 펄스파여야 했다. 왜냐면 전자 궤도에 지속적인 변화를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재료 고유의 특성, 투과율, 상자성, 반상자성, 유도기전력 등 전자의 움직임에 의하거나 영향을 주는 다양한 물리적 현상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현상들이 힉스 제로 현상을 일어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되었다.
덕분에 재료 내부에 직접 전기장을 가해 힉스 제로 현상을 일으키겠다는 목표는 난항을 거듭했고 결국 나노 기술에까지 눈을 돌리게 되었다. 재료 고유의 특성이 사이즈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나노 세계에서 힉스 제로 효과가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방해하지 않도록 재료를 변조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강현은 일단 실리콘 기판 위에 특정 결정 구조를 가진 금속 합금 박막을 특정 결정면이 올라오도록 증착한 후에 원하는 결정 방향으로 전기장이 흐르도록 전선을 연결했다. 그리고는 실에 매달아 초고주파 전류를 흘렸다. 만일 제대로 된다면 실이 어떤 방향이든 흔들리게 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 실패네.”
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추진력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왜지?”
[전자의 스핀값 역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까요?]
“직선 전기장 주위에 원형으로 생기는 자기장이 전자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강현은 다시 신 통일장 이론으로 정리한 힉스 제로 효과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을 확인했다. 전자가 들뜬 상태에서 다시 안정 상태로 돌아갈 때 생기는 급진적 속도의 변화가 힉스 제로 효과가 일어나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재료에 전기장을 가하게 되면 전기장에 의해 전자 오비탈 자체가 변형된다. 전자기파에 의한 들뜬 현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흐음... 일단 직접 전기장을 가해서 힉스 제로 효과를 일으키는 건 양자적인 관점에서는 불가능 하겠구나.”
전기장은 전기장에 불과하다. 전자기파는 광자라고 해서 입자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양자 세계에 간섭하려면 거시적인 방법으로는 무린가?”
강현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힉스 입자에 간섭하는 것도 양자 세계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않은가?
결국 그는 전기장만을 재료 내부에 가해 추진력을 만드는 방법을 포기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어라? 근데 왜 내가 이걸 만들고 있지?”
원래는 힉스 장을 이용한 물질 분석 레이더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던가? 질량을 가진 입자가 힉스 장에 의해 받는 영향을 검측하기 위해서 힉스 장에 대해 이론 연구를 하다가 엉뚱한 작업으로 넘어갔다.
“아즈삭. 일정이 밀렸겠지?”
[물론 입니다.]
우주 개발을 위한 실질적인 기술 개발이 EM 드라이버 개량에 뒷전이 되자 아즈삭은 자연히 우주 도시 건설 일정을 늦추었다. 우주 도시의 안전을 위해서 물질 수준으로 위험을 탐지하는 물질 분석 레이더는 반드시 개발되어야 했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창조주가 유인 우주 도시 건설을 재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동안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과 그로인해 구축된 세계 정세에서 창조주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다시 창조주에게 시비를 걸 인간들이 하나 둘 씩 등장할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즈삭에게 그런 자들을 자율적으로 제거할 권한은 없었다.
아즈삭이 할 수 있는 것은 일정을 최대한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이고 우주 개발 일정이 연기되는 것은 창조주에게 붙은 천재라는 타이틀과 힉스 제로 효과라는 이슈의 폭발력에 묻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