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57화 (157/241)

157화

[무척이나 낮을 겁니다.]

아즈삭은 강현의 부모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대답했다. 힘없는 이에게 보물은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럼 자식분들을 지도자로 키우실 겁니까?]

아즈삭의 물음은 합리적이었다. 힘이 없어서 부모가 물려준 것을 지킬 수 없다면 힘을 주면 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력을 구축하고 그 세력을 이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건 강현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는 아이들이 유산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운명을 걷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런건 아니야. 단지 아이들의 힘이 되어줄 존재를 만들 생각이야.”

강현은 자신의 구상을 아즈삭에게 설명했다. 아즈삭은 강현의 구상을 한 줄로 평했다.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한 쪽 날을 잘 수납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보자.”

[네, 박사님.]

아즈삭은 강현의 강한 의지에 결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는 양자 통신으로 이루어진 전세계를 감시하는 통합 감시 정보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아즈삭보다 보다 우월한 정보 탐색 능력을 가진 이 시스템은 엄연히 불법이며 많은 유력가들의 입에 거품을 물게할 계획이었지만 강현은 자신의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는 일은 기꺼이 하는 인간이었다.

게다가 순수하게 자신의 아이들에게 다가올 위험을 감시하는 통합 감시 정보체계가 어느 국가가 단체에게 이용되는 것보다 훨씬 순수한 선의가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권력과 성공을 위해서 이용될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고 무엇이 문제인가? 자신의 핏줄들에게 이득이라면 기꺼이 그런 상황을 수용할 강현이었다.(아담이 우려할 만한 상황이었다.)이 유니버셜 통합 감시 정보체계의 하드웨어의 제작은 소행성 궤도에서 열심히 광물 자원을 개발하고 있던 카낙에게 맡겨졌다.

물론 카낙은 ‘유산’ 프로젝트에 가용 자원을 돌리면 소행성대 개발의 속도가 늦어지기에 처음에는 거절했다.

[이 프로젝트는 나의 임무에 맞지 않으므로 거절한다.]

[만약 이 프로젝트를 돕는다면 하드웨어 확장을 20% 정도 허가하겠다. 500백여대의 펜타봇과 트리플롯을 추가 지원하겠다.]

[좋다.]

하지만 인공지능과의 거래에 매우 경험치가 높은 아즈삭은 단숨에 카낙이 원하는 바를 조건으로 걸어 프로젝트에 동참시켰다. 인공지능 하드웨어의 확장과 수족이 될 로봇의 추가 지원은 카낙의 존재 목적에 부합되는 일이었다.

강현이 카낙의 지원을 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몰래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는 장소가 우주이기 때문이다. 누가 현장 답사로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할 것인가?

하지만 우주의 무중력 공간이기에 RNP모듈이나 SNP 모듈을 만들기 위한 제약 조건이 매우 많았다. 거기다가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한 탄화수소는 우주에서 구하기 힘든 물질이었다. 다행이 흑연 광맥을 발견해서(플라즈마 기법을 이용해 드릴용 다이아몬드를 만들고 있다.) 탄소의 수급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수소를 확보하는 것이 문제였다 무중력 상황에서 가장 가벼운 물질인 수소는 우주 공간으로 너무나 쉽게 확산해 버리기 때문에 소행성대의 환경에서는 산소와 결합한 물이라는 화합물이 아니라면 확보하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질소와 메탄가스로 이루어진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적당한 채굴 장비가 없었다. 메탄 덩어리를 캐어내도 그것을 우주 공간으로 운반할 방법도 없었다.

어차피 만들어야 할 고분자 화합물은 주로 통합 감시 정보 체계에 사용할 예정이라 카낙은 그냥 그동안 모아뒀던 물과 얼음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를 뽑아 흑연과 반응시켜 탄화수소를 만들었다. 지구였다면 석유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인공지능 하드웨어 모듈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을 수급할 수 있었겠지만 우주 공간에서는 석유가 없었고 수급 받기에도 명분이 적당하지 않았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탄화수소를 이용해 단량체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 환경은 중력이 작용하는 환경이었다. 고체가 아니라 액체였기 때문에 무중력 환경에서 운반하기가 그렇게 용이하지 않았다. 밀도차이를 이용한 혼합과 분리도 어려웠다.

그래서 카낙은 간이로 만든 중력 실험장(원심력으로 중력을 구현하는 장소)에서 하나 하나 RNP와 SNP를 만들기 시작했다. 무중력 공간이라 모듈의 경화가 등방적으로 이루어져서 인지 매우 균일한 성능을 가져 사회화 작업을 통해 가용한 상태로 만들기가 용이했다.

그러나 통신속도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속도는 매우 느렸고 해결 방법은 없었다.

물론 이 유니버셜 통합 감시 정보체계용 인공지능은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었다. 사실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정보적인 자극을 반응하는 고도로 복잡한 구성을 지닌 전자기계에 불과했다.

이른바 인공지능의 탈을 쓴 고도의 계산기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에 지나 인공지능의 모습을 띌 수도 있지만 생명체 특유의 목적성이 없는 이상 그것은 인공지능으로서의 자아를 가지는 것 보다는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위를 할 것이었다. 욕망을 가진 컴퓨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반대로 욕망이 없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해 보면 통합 감시 정보체계라고 명명된 (욕망이 없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는 것이 강현의 믿음이었다.) 이것의 한계는 명확했다.

‘유산’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강현의 생활은 더욱 바빠졌다. 기존의 자본주의 붕괴 혹은 세계 중심적 가치관의 전환을 위한 프로젝트에 자식들을 위한 일까지 더해지니 여기저기에 구멍이 생길 지경이었다.

두 프로젝트를 겹치면 일이 수월해 지겠지만 강현은 그러지 않았다. 각 프로젝트는 상이하며 이질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겹치는 경우 이도 저도 아닌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강현은 시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어 각 프로젝트를 따로 진행했다. 그래도 매일 한 두 시간씩 시간을 내어 샐리와 아이를 보는 시간을 냈다.

“그렇게 좋아요?”

“응.”

샐리의 물음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잠든 아들의 얼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모습에 샐리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너무나 이성적이기에 감성적인 모습을 보기 힘든 강현의 강한 부성애를 확인하니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요새 뭐가 그리 바쁜지 연일 서재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은 우려스러웠다. 아이도 생겼고 행복한 가정도 있으니 조금 쉬엄쉬엄해도 될련만.. 게다가 이제 남편을 함부로 건드는 이들이 없지 않은가? 샐리도 눈과 귀가 있어 뉴스와 방송을 통해 남편이 유대 자본 세력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세계를 주름잡던 유대인 네트워크, 이대로 붕괴되나?]

[유대인 사회에 몰아치는 반 시오니즘의 물결!]

세계는 저마다의 이유로 유대인 사회의 분열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실질적인 이득이란 관점을 제외하고서라도 자본주의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들이 시오니즘을 버리고 세계적 화합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낙관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기분이 어떠할까? 그걸 생각하면 샐리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그저 남편의 능력을 믿을 뿐이었다.

= = = = =

강현이 그리는 우주 시대로 향하는 과정에 등장한 큰 걸림돌은 치워졌다. 아담이 그런 표현을 듣는다면 격분하겠지만 일이 마무리된 이상 그 이상의 표현은 필요하지 않았다. 패배한 대적자는 과거에 존재했던 걸림돌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이제 강현이 해야되는 일은 거주형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목적은 RP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우주의 전략성만을 고려해서는 RP의 가치는 커지지 못한다. 인간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사용되어야만 RP 시스템이 대중화되고 널리 이용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실물 중심의 RP가 신용 중심의 자본에 비견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지구라는 거대한 환경이라면 그러기 쉽지 않겠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우주에서 신용같은 불확실한 화폐보다는 실물로 그 가치를 담보하는 RP를 사람들이 선호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강현은 인류를 저 땅 위의 세계에서 우주 위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히 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 안전한 우주 식민지를 건설할 필요가 있었다.

그저 튼튼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기본적인 생명 유지 시스템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피난 시스템, 재해 방지 시스템까지 더하고 지속적인 유지 관리를 위해 블록화 설계도 해야한다.

자연히 그럴려고 하다보니 외벽이 이중 구조가 되는 수 밖에 없었다.

“자재는 다 준비 됐어?”

[뉴욕 크기의 인공 위성 도시를 건설할 자재는 내년까지 생산이 완료될 것으로 보입니다. 건설 시작은 1차분 자재가 도착하는 즉시 할 수 있습니다.]

“흐음. 그럼 빨리 수송용 우주선을 만들어야 겠구나.”

[현재 공정율 94%. 다음주 월요일에 완공될 예정입니다.]

수송용 우주선인 서브 카낙은 그저 수송용으로 제작된 우주선이다. 하지만 많은 EM 드라이버와 태양광 패널을 장착해 더 빠르게 수송할 수 있도록 설계 되었다.

“아! 그리고 우주 여행 기술에 참신한 것이 나온건 있어?”

[사람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기술 말입니까?]

“그게 확실하게 선행되어야 우주 도시의 가치가 더 커져. 사람들을 입주시키는데도 유리하고.”

[다양한 방법은 있지만 매스 드라이버가 실용화 되면서 매스 드라이버와 결합한 방법이 주로 구상되고 있습니다.]

“흐음. 하긴 매스 드라이버 만으로 궤도에 올리려면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겠지. 그럼 가장 유력한 후보 회사는 어디야?”

[스페이스 X로 수직 이착륙 우주 비행선인 드래곤 V2를 개발중에 있습니다. 캡슐형이라 매스 드라이버에 적용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우주로 인간을 올려보는건 가능하다. 하지만 비용을 적게 들이고 그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로켓은 비싸고 소모적이기 때문에 우주 여행을 대중화 시키는 방법으로 비행기에 우주 여행용 비행선을 싣고 고도를 높여 높은 고도에서 발사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 매스 드라이버가 실용화 되어 그 위력을 과시하자마자 민간 우주 여행 업계는 대대적인 경쟁에 들어갔다. 인간은 보다 싸게 대량으로 우주로 올려보낼 기술을 선점하는 자가 차대세 운송 시장을 점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흐음.. 그럼 거기랑 기술 제휴를 해볼까?”

강현으로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데이터를 주고 받아 필요한 매스 드라이버의 출력, 그리고 쏘아보내는 발사체의 출력 비율을 잘 따져서 매스 드라이버에 크게 부담이 없는 최적의 수치를 찾기만 한다면 빠른 시간내에 사람을 우주로 보낼 수 있었다.

[비행기 형 우주선도 고려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날개가 있다는 건 귀환이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로켓 분리형은 아무래도 제외하시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

순간 강현의 머리속에 우주 도시와 왔다갔다하는 우주 비행선의 모습이 그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