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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56화 (156/241)

156화

죽음 앞에서는 모든 개인적 가치가 허망하다는 진리에 아담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허허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천재는 천재인가 보다. 말싸움에서 한 번도 지지를 않는다.

그러나 긴 대화를 마치고 그는 결국 목적한 바를 성취했다. 강현과의 불간섭 약속이었다. 물론 강현에게서 나온 대답은 ‘그쪽에서 먼저 건들지 않겠다면..’이라며 불신에 가득한 대답이었지만 말이다.

“후우.”

아담이 돌아가자 강현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성공하셨습니까?]

“글쎄.. 일단 이쪽에 아직 카드가 남아 있다고 인식시킨 것 같아.”

강현이 이 첨예한 기득권의 기싸움에 최후로 사용한 사울이라는 패는 사실상 끝내기 패였다. 그 외에 남은 강현의 한 수는 바퀴벌레 스파이를 이용해 폭로에 폭로를 거듭하여 불신의 시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틀키지 않더라도 세계를 지배하는 기득권들의 불안과 불신이 어떤 일을 일으킬지 강현으로서도 미지수였다.

그러나 그러한 카드마저 준비했던 것은 샐리의 출산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 이득없는 소모전을 끝내고 싶어했고 그래서 사울을 이용한 분열이라는 패를 내밀었던 것이다.

유대인 네트워크가 분열을 빠르게 정리하고 역습을 가할 때의 최후의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시나리오는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결국 강현과 강화를 맺었고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기로 했다.

그동안 강현이 뿌린 씨앗들과 이 사건에 관련된 경쟁 자본, 각 국가들의 입장 변화, RP로 대변되는 달러의 위상 변화들이 결코 시오니즘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내부의 혼란을 봉합하는 것은 더 어려워 보인다.

비록 유대인 네트워크 내부에서 많은 인망을 얻고 있던 아담이라고 해도 시오니즘의 원죄를 강조하는 대항마인 사울을 상대로 반 시오니즘 유대 세력을 포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마 홀로코스트를 통해 동포에게 배반당한 입장의 유대인들로서는 절대 시오니즘 세력과 함께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합치느니 차라리 갈라질 가능성도 높았다.

시오니즘 세력이 이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 세력을 부각시키는 방법이 가장 유력한데 강현은 아즈삭을 이용해 이런 행위를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했다.

그런 식의 모략은 보기에 유쾌하지도 않을 뿐더라 유대인들의 힘을 감소 시키려는 목적에 걸림돌에 불과했다.

미국 제현 투자 회사에서 유대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인화(人和)를 헤치는 심각한 모럴 헤저드로 규정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유대인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모두를 싸잡아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힘을 모을 계기만 줄 뿐이지 상황을 개선하는데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현! 배, 배가!”

아담과 강화를 약속한 이후 현은 샐리의 태교를 도우며 여유롭지만 불안한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결국 진통이 시작되었다.

강현은 돈이 많다. 그래서 굳이 위험하게 병원까지가서 출산을 할 생각이 없었다. 여러 분만 방법 중에 산모와 아기에게 가장 부담이 적은 출산 방법을 찾고 그에 관련된 업체와 계약했다.

수중 분만은 말 그대로 여성이 무균 처리된 욕조에 앉아서 출산을 하는 방법인데 집중력, 충격완화 등 몇 가지 뛰어난 장점이 있다. 가장 수중 분만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는 영국으로 강현이 고용한 회사 역시 영국의 회사로 수중 분만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강현의 연락을 받자마자 희희낙락했는데 이는 ‘세기의 천재가 선택한 회사’로 이름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러한 예는 하나 둘이 아니었으니 경영자 입장에서는 입가가 찢어질 정도였다.

며칠 전부터 인근의 호텔에서 거주하며 휴가를 보내던 스텝들은(강현이 호텔 비용도 대주었다.) 샐리의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소식들을 듣자마자 바로 강현의 집으로 왔다. 이미 출산을 위한 세팅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도록 장비는 다 설치되어 있었다.

도착한 스텝들은 욕조에 무균 처리된 물을 채우고 출산용 의자를 설치하고는 샐리를 앉혔다.

그리고 곧, 샐리의 뾰족한 비명성이 울렸다.

“아아악!”

강현은 여느 아버지가 그렇듯이 불안함에 제대로 앉을 수가 없었다. 냉철한 두뇌가 새하얗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낮에 시작된 진통은 해가 한 참이나 기울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응애응애.

강현은 간호사가 안겨주는 쭈글쭈글한 아기를 품에 안고는 말없이 샐리의 손을 잡았다.

“울어요?”

“....”

강현은 목이 잠겨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샐리는 이마가 땀에 젖은 채로 미소 지었다.

“둘째는 언제 낳을까요?”

그의 남편은 외로운 사람이다.

= = = = =

유대인들이 내부의 내흥을 봉합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그런 흐름을 막기 위해 반 시오니즘 세력을 화교, 일본 자본, 심지어 아랍 자본마저 돕게되니 시오니즘 지도부와 반 시오니즘 유대 세력간의 틈은 점점 벌어질 뿐이었다. 이러다가는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유대인 네트워크가 반토막나게 생겼다.

아담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분열을 봉합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로비스트로 활동하던 사울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아담이 유대인의 통합을 강조했다면 사울은 유대인의 변화를 강조했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유대인은 시오니즘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의 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책임있는 세계의 구성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온 아담이라도 반 시오니즘의 명분에 동조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힘들었다.

[2조 달러의 황태자 탄생!]

[세기의 천재가 아들을 낳다!]

[천재의 행보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사울의 공세를 어떻게 막아낼지 연일 고민하던 아담은 강현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에 미간을 약지로 위아래로 문질렀다. 무언가를 생각할 때 그의 버릇이엇다.

그는 강현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의 성향을 떠올렸다. 이상주의자. 모든 이들을 동등하게 대하려는 박애주의자. 하지만 사실 타인이 어찌되든 신경쓰고 싶지 않은 이기주의자.

그런 그의 성향이 자식에게는 어떻게 표현될까? 가족애가 그의 이기적인 부분을 뛰어넘을 것인가? 아니면 그의 이기적인 면은 여전할까?

최악의 상황은 강현의 이기적인 면이 그의 가족에게 한정되어 가족 이기주의적 성향을 띄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유대인은 ‘패밀리 강’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경쟁자를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우려대로 강현은 아들의 탄생과 자신의 마음에 일어난 변화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아즈삭.”

[네. 박사님.]

“기분이 이상해.”

[동공이 확대되어있고 심박수가 평소보다 높은 것으로 보아 약간의 흥분 상태에 있으신 것 같습니다. 아드님이 생긴 것이 심적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켰습니까?]

“그래.”

[죄송하지만 제가 알아도 되겠습니까?]

“아아. 말해주고 싶지만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감정의 문제군요.]

“그렇지. 그래.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감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단어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걸 반도 표현하지 못하고 있어.”

[그렇다면 그 문제는 넘어가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으신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즈삭이 상황을 정리하자 강현은 잠깐 생각을 했다가 떠오르는 데로 입을 열었다. 이런 경우에는 그냥 생각나는 데로 말하는 것이 진심에 가까웠다.

“준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강준. 아들의 이름이었다.

[행복이라.. 제가 답을 내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니까.”

강현은 준이 어떤 사람으로 자랄 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해주고 싶은 것은 많지만 그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섣불리 행동하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평범한 상류층 가정처럼 철저하게 교육시킬까? 아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성공과 행복을 자신의 목표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마음대로 하게 놔둘까? 돈 많고 뛰어난 아버지의 보호 아래에서 개망나니로 자라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지 못할까 봐 두려워진다.

강현의 머리는 이런 경우의 최악과 저런 경우의 최악을 떠올리느라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쓸데없을 정도로 과도한 비약이 여기저기에 있었지만 완벽주의자인 강현에게는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단 0.01%라도 행복해지지 못할 가능성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샐리는 남편이 서재에 박혀 하루종일 무언가를 골몰하는 모습에 결국 입을 열어 그를 타박하고 말았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기쁘지 않느냐?

아니 그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준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풋!”

샐리는 어벙한 강현의 면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현. 지금 행복해요?”

“... 행복해.”

강현은 잠시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는 막힘이 없었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소중한 아들도 생겼다. 행복하지 못하다고 말한다면 100%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 옛날과 비교해서 얼마나 행복이 변했나요?”

“많이 변했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강현의 눈빛이 과거를 회상하느라 아득해졌다. 부모님을 잃고 과학의 창을 통해서 우주의 신비함을 엿보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창의력에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충실했던 시간이었고 보람이 넘친 생활이었다. 아픔도 있었지만 과거에 후회는 없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부모님을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렇다고 제시와의 추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제시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지금의 샐리를 버릴 수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언제나 행복했다. 불행했던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행복했다.

“강현이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하잖아요. 절대적인 건 없다고요.”

“아!”

강현은 감탄사를 떠올렸다. 상대성 이론은 절대적인 기준이던 시간마저 상대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양자 역학은 논리적 인과관계가 지배하던 우주를 확률적인 우연이 지배하는 우주로 바꾸어 놓았다.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 그저 현재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할 뿐..

“그냥 아이가 삐뚤어지지 않도록 듬뿍 사랑해주면 충분해요.”

샐리가 말했다. 그녀는 아이가 어떤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강현처럼 행복하기만 바랄 뿐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들은 그저 응원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샐리는 나중에 강현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보고 편두통을 앓기 시작했다.

“아즈삭, 프로젝트다.”

[어떤 프로젝트입니까?]

“프로젝트 이름은 ‘유산(legacy)’이다.”

[박사님. 아직 박사님은 젊습니다. 아직 유산을 논할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미리 미리 준비해 두는 거야. 어차피 지적 재산권은 남아있으니까 평생 돈 걱정은 없겠지. 하지만 내 아이들이 마주할 세상은 고작 돈만 있다고 상대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나의 유산은 보물이나 마찬가지고 실력이 없다면 모조리 빼앗겨 버릴 수도 있어. 그냥 빼앗기기만 한다면 나도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수용하겠지만 빼앗기는 과정에서 내 아이들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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