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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55화 (155/241)

155화

달러 발행권의 남용으로 잃어버린 신뢰를 지탱할 수 있는 (비록 그 방식이 견제라고 할지라도)수단이 있으니 달러의 가치가 상실되어 생기는 경제 혼란이 겨우 이정도로 그친 것이다. 시장의 혼란을 원하지 않는 경제 학자들에게 RP 시스템의 존재는 적절한 시기에 내려진 처방임과 동시에 앞으로 그것이 세계 경제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흥분되는 연구 소재이기도 했다.

옐리는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고 확신했다. 무소불위한 달러의 가치는 반드시 견제 당할 것이다.

그는 서랍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탈만이 내민 서류에 사인하고 난 직후 작성한 사퇴서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지 않겠는가? 아무리 압박을 받았다지만 최종 결제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 = = = =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재고하기로 여러 국가가 합의해 나가는 중에 아담은 드디어 강현을 만날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네. 미스터 강. 한 번 만나기가 참 힘들구먼”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그동안 사적으로 바빴습니다.”

정말? 강현이 임신한 아내를 위해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알고 있던 그은 강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반갑기라도 한 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작년에 받았던 것과 똑같은 것을 받은 소년의 표정을 보면 절대로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담은 그런 소년의 표정을 보고는 불쑥 물었다.

“만족하나?”

“만족은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죠.”

왠 선문답인가? 그래서 만족했다는 건가 못했다는 건가? 아담은 후자에 주안점을 주고 말을 이었다.

“미국의 유대 세력은 엄청난 위기에 빠졌네. 회심의 한 수로 사용했던 것도 결국은 극약처방이 되었어. 연방준비은행에서 유대 자본의 입지가 엄청나게 줄었네.”

“유대 자본이 아니라 시오니즘의 입지겠죠. 미국 헌법에 적시되어 획득한 합법적인 화폐 발행권인데 그런 연방준비은행의 주식을 팔 유대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네요.”

“... 맞네. 결국에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기존 유대인 기득권의 입지가 줄어 들었지. 자네 덕분에 유대 민족 내부에서 분열이 생기고 말았지.”

분열로 인한 의견 대립이 연방준비은행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 IMF에 관련된 유대인들이 이번 일을 저지른 인간들에 대한 불신이 컸는데 달러의 위상이 격하되면서 상대적으로 IMF의 역량 역시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금 제 탓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건가요? 아님 한 번 찔러 본 건가요? 분열은 이미 2차 세계 대전 때부터 있던 거라고 알고 있는데요?”

강현은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방관한 시오니즘 지도부를 언급했다. 그의 노골적인 말에 아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군. 그걸 노렸던가?”

“유대 세력은 강하니까 분열시키는 것이 제 입장에서는 편하죠.”

“요즘 사울이란 로비스트의 이름이 자주 귀에 들리던데 자네의 입김이 들어갔던 건가?”

강현은 대답하지 않고 그냥 웃었다. 사울을 이용해서 유대 민족 내부의 모순을 끄집어 낸 것이 주효했다.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여론, 또한 근거지인 미국에서의 배척, 연방준비은행으로 상징되는 실질적인 자본 권력의 감소. 이 총체적인 위기는 유대 민족 모두가 단결되지 않으면 넘을 수가 없지만 지금 그들은 두 개로 갈라져 있었다.

이스라엘에 얽매이지 말자는 부류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부류였는데, 후자 쪽에서는 당연히 전자를 민족의 배반자라고 비난했고 전자 쪽에서는 오히려 이스라엘에 집착해 저 세계 유대 민족에게 큰 위기를 가져왔다고 후자를 비난했다.

인식과 입장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왜냐면 이스라엘에 얽매여서는 유대인의 미래는 없다는 논리가 사람들이 모이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점차 강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건설에 많은 희생을 한 기존 기득권들에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단 시오니즘적인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건국부터 관여한 기득권들이기에 이스라엘에 얽힌 많은 이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형세는 유대민족을 이스라엘과 분리하다는 개혁세력과 그럴 수 없는 기득권간의 갈등이 되었고 그 일에 기름칠을 하고 있는 것이 예전에 킬덤이 소개했던 사울이라는 유대인 남자였다.

강현과의 갈등으로 위기가 왔고 일련의 사건에서 패배한 유대 자본의 영향력은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거기에 분열이란 쐐기를 박았으니 최소 몇 년, 길게는 한 세대 동안 유대 민족 내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홀로코스트를 방관인 시오니즘 지도부의 원죄를 꾸준히 틀추기만 한다면 분열된 유대 민족은 합쳐지지 못하고 갈라질 것이다. 시오니스트와 그렇지 않은 이들로..

아담은 웃음이 머물렀다가 사라져 담담해진 강현의 얼굴을 보면서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그것인가?”

“뭐가요?”

“유대인의 분열.”

“아니요.”

“그럼 왜?”

“고여있던 것이 흐르는 것 뿐이에요. 거기에 의도가 있었다면 제게 유리하다는 것이죠.”

“우리의 분열도 목적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자, 생각해봐요. 예전처럼 저와 당신네들이 부딪히기 전이었다면 당신네들의 분열이 저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어요.”

결국 유대인의 분열은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그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똥을 처리하도록해 강현에게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였다. 그 왜에는 강현에게 별다른 이득이 없었다. 미 의회의 정치 세력 역시 강현이 주도한 것이 아니고 경쟁 자본 세력을 부추겨 압장 세운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도 그리 커지지 않았다. 굳이 끄집어 내자면 대량으로 매입한 언론사 주식 정도? 앞으로 그에 대한 언론 플레이가 일어난 가능성을 대폭 줄인 것이 그의 이득이라면 이득이었다.

“결국은 우리가 자초했다는 말인가?”

“적이 되었으니까요. 적의 약점을 찌르는 것이 잘못인가요?”

아담의 얼굴이 벌게졌다. 순간적으로 화가 올라왔다. 강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냉정한 비지니스 세계에서 비일비재 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하지만 막상 자신이 당해보니 여간 화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모든 잘 못이 우리쪽에게 있다는 말이군.”

“아닌 줄 아셨어요?”

“자네는!”

아담의 언성이 올라갔다. 그는 간신히 마음을 잡고 어조를 평상시로 돌렸다.

“자네는 꼭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가져야겠는가?”

“우주요?”

아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우주를 독점하겠다고 한 적 없는데요.”

“우리의 투자를 결사코 받지 않았지 않은가?”

“투자를 받으면 우주는 당신들이 독점했겠죠.”

“.... 그런 의도는 없었네. 단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적절한 투자처에 투자를 하려고 했던 것 뿐일세.”

“투자에 따른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자본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 당연히 이윤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차단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그것이 기득권이 생기는 이유다. 이익을 창출하려고 보존하려는 인간 본연의 욕심이 기득권을 만든다. 없애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없애려면 인간에게서 욕심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것이 사람일까? 아니 생물이기는 할까? 생존 본능 역시 욕심, 욕망에 근거하고 있다.

강현은 대답을 듣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들의 행동 방식 그대로 했을 뿐이에요.”

“....”

아담은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에 강현을 만나러 왜 왔는지, 그 이유조차 희미해서 떠오르지 않았다.

간단히 강현과 화해를 하고 서로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다음 유대 민족 내부의 일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강현이 그와 한 이야기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상위의 개념에 하위 개념이 포함되는 대화를 하다보니 처음 목적한 방향을 잃어버렸다.

“그럼 자네는 우주의 기득권이 되겠군.”

“그렇기는 한데 나누는 것에 인색하지는 않을 거에요.”

“모순되는군. 그럼 어째서 우리의 투자는 받지 않은 건가?”

“말했잖아요. 그렇게 되면 반드시 독점이 일어난다고요.”

“이해하기 힘들군.”

강현은 설명해 줬다.

“생각해봐요. 투자를 받으면 그들의 지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죠. 그러니 자연히 우주에서 창출되는 수익과 자원은 그들을 의식하면서 배분되겠죠.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배분된 우주 자원으로 우주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증대시켜 나갈 거고요. 그런데 당신들이 뭐가 이쁘다고 더 줘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주고 싶다?”

이 무슨 공산주의적인 사상인가? 아담은 강현의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공평하게 주고 싶은 것이 아니죠. 단지 그럴 수 있는 선택지를 주고 싶을 뿐이에요.”

“난 자네가 공산주의자인지는 몰랐네.”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니까요. 저는 단지 보고 싶을 뿐이에요.”

“무엇을?”

“우주 시대라는 조건에서 인간이 여전히 인간으로 남을지, 아니면 새로운 인간이 되기를 선택할지..”

인간이 여전히 인간으로 남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새로운 인간?”

“아, 그건 공상과학소설 같은 곳에 나오는 돌연변이나 사이버네틱스가 적용된 강화 인간 같은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긴 시간이 지나면 그런 쪽으로도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근본적인 것을 말하는 거에요.”

“근본적인 것?”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무엇인지 먼저 정의해야겠지만 참으로 힘들더군요. 인간의 모습은 개체마다 다 차이가 있어서요. 그래서 저는 인간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소거법으로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

강현은 말을 이었다. 아담은 침묵했다.

“인간에게서 무엇을 제외해야 인간이 아니게 되는가? 자긍심을 제거했다고 인간이 아닌가? 팔 한 쪽 없어졌다고 인간이 아닌가? 무수히 많은 가정을 통해서 저는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단어를 찾아냈어요.”

“그것이 무엇인가.”

“사회요.”

“사회?”

“사회가 없는 인간을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

“.... 그래서 사회가 변하면 새로운 인간이 탄생한다?”

“정답이에요.”

“웃기는 소리군..”

“말이 되요. 과거 왕정시대때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이 있었나요? 민주주의 시대인 요즘 시대에 왕정시대로 돌아가자고 부르짖는 사람이 있나요? 인간을 규정하는 건 사회죠.”

“그래서 결국은 그 사회가 변한다는 말이 아닌가?”

“어쩔 수 없잖아요. 우주는 실시간 통신이 되는 장소가 아닌걸요. 지금 지구촌이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되지만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어떤 것을 찾지 못하는 이상 우주로 나간 인류의 모습은 과거 전파 통신 기술이 없던 사회와 비슷하게 될 거에요. 각자 밀집된 곳에서 고유의 문화를 성장시켜 나가겠죠.”

“....”

아담은 이쯤 되니 할 말이 없었다. 스케일이 커도 너무나 컸다. 그러나 스케일이 너무 커서 실감이 나지 않고 이쯤되니 강현이 몽상가로 보일 지경이다.

그래서 이런 몽상가에게 당장 인류의 미래가 걸려있다는 사실에 기가 찼다.

“그래서 자네에게는 무슨 이익이 있는가? 그때쯤에는 먼지가 되어 버릴 텐데..”

“저는 자본가가 아니에요. 물질적 이익은 저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담 씨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볼까요? 왜 그렇게 이익에 집착합니까? 죽을 때 가지고 갈 수도 없는데..”

============================ 작품 후기 ============================

일주일간 휴식을 취하고자 합니다. 내공이 딸리는 군요... 슬럼프인 것 같습니다. 뭘해도 아무런 의욕도 안 생기네요. 헐... 다행이라면 명절이 끼어있다는 것? 어차피 명절에는 바빠서 글을 못쓰니 쉬는 날이 줄어든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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