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54화 (154/241)

154화

[아!]

기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무겁고 튼튼한 자재를 궤도 상에 올리는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높다. 또한 매스 드라이버의 감가 상각을 생각하면 비용은 더 커진다.

하지만 소행성 궤도에서 생산한 자재라면 말이 달라진다. 지구의 중력권을 이미 벗어나 있는 자재들을 지구의 위성궤도로 당긴다면 비용적인 측면에서 지구에서 생산된 자재에 대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거기에 우주 시대에 돌입했으니 각국은 빠르게 우주 기지를 건설하고 싶을 것이고 속도 경쟁이 붙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대량으로 자재를 공급할 수 있는 소행성 제련 공장이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언제든지 제련 공장에 필요한 부품을 수송할 수도 있지 않은가? 위성 공장에서 카낙을 경우를 딴 스마트 컨테이너 시스템이 여전히 건조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경제 기자는 없었다. 또 그 스마트 컨테이너 시스템이 소행성대의 자원을 지구로 가져오는 임무를 담당할 예정이라는 것도 말이다.

기자들은 눈 앞의 남자가 우주의 패권을 가름할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허락한 국가가 빠르게 우주로 진출하고 이권을 선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몇몇 눈치 빠른 기자들은 왜 그가 그토록 타인이 우주 개발의 참여를 거절했는지 감을 잡았다. 미래 세계의 모습을 좌우할 열쇠를 남과 공유하고 싶은 남자가 어디 있을까?(명백한 오해였다.)

[그럼 개발이 진행되고 자재의 안정적인 수급이 된다면 현재의 경제 위기에 크게 도움이 될까요?]

한 기자가 현재의 세계 경제와 우주 개발을 관련시켜 물었다. 강현은 살짝 고민을 하고는(하는 척한 것 뿐이다. 기자의 물음은 강현이 기다리던 질문이었고-그래서 경제지 기자를 부른 것이다.-이미 대답할 내용은 정해져 있었다.) 입을 열었다.

[경제 위기라.. 글쎄요. 저는 현재 세계 경제가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혼란스러울 뿐이죠.]

[무슨 말씀이죠?]

[위기와 혼란은 자주 혼용됩니다. 하지만 혼란이 먼저인지, 위기가 먼저인지에 따라 사건의 본질과 해결 방법은 첨예하게 달라집니다. 실제로 실물 경제 지표는 우주 개발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우주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관련 산업과 기술이 발달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현재의 경제 혼란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득권 다툼이죠.]

[[[[???]]]]

강현은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들을 위해서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몇 가지 큰 변화가 생긴 건 아시죠?]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석유가 유한한 자원이 아니고, 전기가 화학연료의 대항마로 떠오르며, 전쟁을 수행하는 기계는 전쟁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으며 우주 개발은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인공지능은 전기문명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고 기술의 격차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더욱 벌리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큰 변화는 강현이라는 존재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세계의 환경을 영구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기회를 생산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유대 자본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경쟁 자본 세력이 도전을 했고 턱밑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었죠. 유대 자본 입장에서 예전 같았으면 미국의 패권에 기대어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지만 저 때문에 미국의 정치권이 둘로 갈라져 제대로 협조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자들은 홀린 듯이 강현의 입술에 집중했다. 경제지 기자로서 거대한 경제 흐름의 배경에서 일어나는 일의 전모는 특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연방준비은행을 움직여 세계적으로 경고를 한거죠. 비록 우리가 지금은 힘들지만 너희들을 엿 먹일 힘 정도는 남아있다라고 보여주기 위해서요. 그것이 경제 혼란이 발생한 겁니다.]

[그, 근거가 있습니까?]

한 기자가 입을 열었다. 증거가 없다면 강현의 말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다.

[아! 증거는 없고 심증만 있으니 말을 바꾸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실수한 말은 적절하게 편집해 주세요.]

강현이 검지와 중지로 가위질하는 시늉을 하자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렸다.

[그럼 지금의 경제 혼란은 언제쯤 가라앉을까요?]

[글쎄요.. 아마 시간이 약일 것 같지만 혼란이 길게 이어지면 혼란 그 자체로 위기가 발생할 우려가 높죠. 혼란은 투자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자금 흐름을 경직 시키거든요.]

돈이 돌지 않으면 경제 활동이 위축된다.

[마땅한 방책은 있으신가요?]

[저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딱히 이거다라는 방법은 없지만 나름 생각해본 방법은 있습니다.]

강현의 말에 기자밥 오래 먹은 기자들의 눈에 빛이 돌았다. 경제지 기자의 직감으로는 이번 발언은 필시 대박 특종이란 촉이 왔다.

[그러니까 일종의 선물채권인데, 저는 이것을 Resource Point(RP)라고 명명했습니다. 그 개념은..]

강현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자들의 손가락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RP! 우주 시대의 새로운 화폐가 되나?]

[기축통화의 기준점이 될 RP란 무엇인가?]

[RP의 발행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

학자들은 주요 경제지에서 소개한 RP를 금본위제도의 부활이라고 정의했다.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주 소행성 광산에서 채굴된 자원, 그리고 채굴될 자원에 대한 채권을 수치화해서 팔기 좋게 숫자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것은 이 RP의 발행은 철저히 인공지능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 기준은 소행성대에서 생산된 생산량으로 결정된다. 물론 자원의 소실, 생산되는 자원의 비율, 운반 비용, 국제 환율 등 수많은 변수들로 최대한 각 화폐의 가치를 객관화시킬 수 있도록 복잡한 공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RP의 영향력을 의심하는 학자들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때문에 달러의 영향력을 감소 시킬 것이 분명한 RP 제도가 정치적으로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또한 현물이 대상이기 때문에 그 한계 역시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복리의 이자로 빚이라는 자산을 기하급수적으로 생산하는 현대 자본주의를 따라잡기에는 현물의 가치는(비록 태양계 일지라도)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강현은 그런 의견에 동의했다. 그런데 왜 굳이 RP라는 것을 홍보한 것인가? 그것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서 달러화의 영향력을 약하게 만들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주의 질서를 주도하면 달러의 우주에 대한 영향력이 강해질 것은 당연한 일. 자본의 영향력이 확고하게 굳어지기 전에 모든 이들에게 생존자원을 획득하는 수단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는 달러 발행권을 가진 이들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즉, RP는 원래 시나리오에 미리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1000억 규모의 달러 발행에 대응하기에 적절한 수이기에 사용한 것이다. 어차피 늦기 전에 우주의 패권을 쥘 화폐의 등장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강현은 개인적으로 이런 시나리오를 선택한 유대 자본이 고마울 정도다. 덕분에 더 큰 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세력과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는 시간이 부쩍 줄어들었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RP의 등장과 소개에 난감함을 표했다. RP는 미국의 국력 중 하나인 달러화의 약세를 가져온다. 하지만 거부하기에는 반대 여론이 만만하지 않았다. 경제 혼란의 주범이 된 연방준비은행의 존재와 그것이 사기업이라는 사실에 경제 혼란으로 손해를 본 많은 이들이 정부를 비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많은 국민들이 비난할 만 했다. 화폐 발행권이 없는 미국 정부는 이자를 충당하기 위해 국민에게서 세금을 걷어야 한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이자 역시 달러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미국 정부가 연방준비은행에 100달러 어치의 국채를 팔아 100달러를 시중에 풀면 나중에 연방준비은행에 105달러를 갚아야 한다. 그런데 연방준비은행에서 100달러 밖에 발행하지 않았으니 나머지 5달러는 어떻게 구해야 하나? 답은 다시 연방준비은행에서 5달러를 빌리는 것이다. 빌리지 않으면 빚을 못 갚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복리 이자의 마술을 사용하면 이자는 계속 늘어난다.

화폐 이용료를 지불하기 위해 또다시 화폐를 빌릴 수 밖에 없는 구조는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된다. 미국 정부가 연방준비은행에 무한정 빚을 지는 상황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화폐 발행권이란 바로 신용이란 이름의 빚을 만드는 권한인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왜 미국의 화폐를 사용하는데 미국 정부가 빚을 져야 하는 구조가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빚이라는 커다란 목줄을 쥔 이가 민의에 의해서 공적으로 뽑힌 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화폐 발행권은 곧 거대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난 여론에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 다시 떠오르며 음모론이 부각되었다. 그리고 연방준비은행에 대한 이슈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여론의 압박이 심해졌다. 적어도 연방준비은행에 정부가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걸 확실하게 요구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RP를 도입해 사유화된 달러 발행권을 견제하든지, 아니면 연방준비은행을 다시 국유화하든지....

미국 정부로서는 차라리 전자가 더 쉬울 것이다. 자본가들은 절대로 화폐 발행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에 숫자를 매기는 자본주의, 그 기준을 조절하는 통화량, 그리고 그 통화량을 결정하는 화폐발행권. 자본가의 궁극은 바로 이 화폐발행권에 있었다.

그렇다고 전자가 쉽냐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중요한 국력 요소인 달러화를 약화시켰다는 비난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며 정부의 골치를 썩이는 한편 외국에서는 벌써 RP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방안에 대해 국제적으로 검토 중이었다. 특히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공정한 발행기준이 많은 국가의 손을 들게 만들었다. 이들은 연방준비은행의 장난에 손해를 보아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았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 연방준비은행의 의장인 옐리는 자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연방준비은행이 맞이한 위험은 과거 마음대로 화폐를 발행했던 왕들의 실책과 닮아있었다. 아니, 사사로운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경제를 혼란시켰다는 본질은 완전히 동일했다. 결국 화폐의 본질은 신용. 신용을 잃은 화폐는 가치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국제적으로 연방준비은행이 사기업이라는 사실이 암묵적으로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정부에서 화폐 발행권을 휘두를 수 없다는 점이 한 몫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본가들은 권력자의 독단으로인한 화폐 가치의 붕괴로 무수히 많은 손해를 보아왔다.

이번에도 비슷할 것이다. 달러가 패권국인 미국의 화폐이기에 그 가치가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국제적인 영향력은 RP나 다른 화폐에게 나누어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전조는 환율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달러의 가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세계가 달러의 공정성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딱 한 번의 남용인데도 그에 대한 반응은 칼처럼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복잡한 세계의 이권, 이해 관계는 큰 흐름을 주도하는 유대인으로서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RP가 달러라는 세계 기축 통화의 대안이 될지 아니면 단순히 견제 수단이 될지 지금은 확언할 수 없지만 옐리는 RP의 존재가 차라리 달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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