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15-새로운 질서>
그런데 그 연방준비은행에서 알아서 화폐를 찍어내 준단다. 이로서 미국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이 달러를 확보하고 외채를 갚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빚을 빚으로 갚는 상황이지만 나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사기업이라지만 엄연히 연방준비은행은 미국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연방준비은행의 행동이 모두에게 좋을 수는 없었다. 특히 미국의 국채를 잔뜩 사들인(무려 1조 달러 넘는 규모로) 중국 정부로서는 입에 거품을 물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이 발행한 1000억 달러로 중국이 사들인 채권부터 갚아버리면? 1000억 달러는 미국 부채 규모의 약 0.7% 밖에 안되는 금액이지만 1조 달러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만한 금액이 신용이라는 말 한 마디로 치환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채권을 이용한 외교적인 카드, 미국에 대한 견제 등 다 방면으로 노력하는 중국의 심모원려를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운가? 이번처럼 1000억 달러 규모를 찍어내는 짓을 3정도 하면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 중 30% 가량이 그냥 달러로 사라져 버린다.
이는 남이 보기에는 미친 짓이었고, 중국에서는 절대로 가만히 놔두어선 안되는 일이었으며, 화교 자본에서 봤을 때에는 자신들에 대한 경고로 보았다.
세계 경제를 한 순간에 망가뜨릴 수 있다는 위협. 당연이 경쟁 자본 세력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이를 막으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연방준비은행의 위원들의 행동을 제제 해야할 주주들은 분열되어 있었고 위원들은 자신들의 커리어를 걸고 벌인 일이었기에 결코 결정을 무르지 않았다.
차선으로 미국 정부에 로비를 하여 채권을 발행하도록해 풀리려는 달러를 흡수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미국의 국채를 갚는 것이 ‘국익’이다!’라는 명분에 ‘국익’을 주장하던 정치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물론 너무나 근시안적인 명제라 경제 학자들의 집중 비난을 받았지만 대중의 지능으로써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자 어영부영 1000억 달러가 발행되었다.
이렇게 발행된 1000억 달러는 각각 500억 달러씩, 중국에 팔린 채권과 일본에 팔린 채권을 갚는데 주로 사용됐다.(일본 역시 1조 달러에 준하는 미국 채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동안 음흉하게 은근히 기회를 보며 미국의 약점을 후벼 파는데 동조를 한 것이다.)자연히 화교 자본과 엔화 세력의 활동은 위축되었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 아랍 자본의 활동 역시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과 닮은 전술이었지만 유대 자본이 먼저 미친 척하고 나오니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아랍 자본마저 위축되자 그 외 자본 세력도 연쇄적으로 활동이 줄어들었다.
유대 자본에게는 이스라엘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지만 경쟁 자본은 좀 더 큰 기득권을 획득하려고 하는 것 뿐이기에 먹혀 들어간 것이다. 맛있는 먹있감을 앞에 두고 군침을 흘리며 돌아간 자본 세력들은 막강한 화폐 발행권의 위력 앞에서 이를 갈고 후일을 기약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든든한 후원 세력이 갑자기 잠잠해지자 정치인들도 슬금 슬금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성토하는 입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만 존재했다.
당연히 이러한 수단을 사용한 여파는 무척 컸다. 유대인들 중 금융 자산의 비중이 높은 이들은 하나 같이 큰 손해를 보았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너무 했다는 불만이 튀어 나왔다. 옐리가 예상한 그대로 유대인 간의 분열 조짐이 보였다.
국제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았다.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며 금과 같은 실물 자산의 가치가 훌쩍 뛰어버렸던 것이다. 큰 변화로 인해 손해를 본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자본가들은 유대 자본를 이대로 믿어도 될까란 의구심마저 품게 되었다.
자연히 환율 시장, 선물 시장, 주식 시장이 차례로 요동쳤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정치적인 고비를 넘긴 유대 자본의 강현에 대한 응징은 뒤로 미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내부적인 불만을 다스리고 강현이 일으킨 혼란을 정리해야 했다. 그전에 섣불리 움직이면 경제 대공황이 올 수도 있었다. 강현의 우주 개발은 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현은 그들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행스럽게 시나리오 B-4으로 가지는 않았군.”
[인간은 역시 가진 것을 쉽게 놓지는 못하는가 봅니다.]
시나리오 B-4는 유대 자본 세력이 자신들에게 이빨을 드러낸 경쟁 세력들을 뿌리 뽑기 위해 극심한 경제 혼란을 일으키는 상황에서의 시나리오였다.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달러화로 극심한 인플레가 일어나면 경제 활동이 거의 마비된다. 그리고 자산과 수익구조가 튼튼한 이들만 살아남는다. 하지만 살아남기만 한다면 이전보다 더 한 부를 거머쥘 수 있다. 흉년에 큰 부자가 난다고 하지 않던가?
강현은 그렇게 된다면 가장 유리한 건 유대인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의 생존에 가장 특화된 인종이 아닌가? 수 천 년간 돈놀이로 생존해온 이들이 바로 유대인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비는 있었다. 공포에 떠는 자본 세력들을 우주 개발이란 신용을 이용해 결집시키고 전력(戰力)화하여 우량 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다. 유대 자본 세력과 결판을 내는 시기는 뒤로 미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을 주고 시간을 버는 전략을 사용하는 동안 뜯겨나가는 그들의 살점으로 사냥개(경쟁 자본 세력)를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저들은 그러지 않고 화폐발행권을 이용해 약간의 위협만 가했다. 세계 경제 규모로 보았을 때 천 억 달러는 그리 큰 액수가 아니었다. 2조 달러의 재산을 가진 강현이 유대 자본과 돈으로 승부를 보지 않는 이유였다.
그리하여 세계 경제는 혼란스럽지만 공황은 아닌, 공포는 있지만 극복할 수는 있는 미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아마 이 혼란이 가라앉으면 본격적인 유대 자본의 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물론 강현에겐 이에 대처할 시나리오 역시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의 공세가 시작되기 전에 손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의 이 시나리오는 그의 궁극적인 목표로 향하는 시간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다.
물론 시나리오 B-4의 경우에 비해 강현의 정치력과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 강현으로서는 자본 세력과 체질에 맞지 않는 정치경제적인 싸움을 짧은 시간 안에 마무리 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아즈삭과 함께 시나리오를 재검토해 변수를 확인하고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경제적 혼란이 가라앉고 유대 자본이 행동할 여유를 갖기 전에 쐐기를 박아야 했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월 스트리트 저널의 토마스입니다.]
[저는 포브스의..]
[안녕하세요. 포츈의...]
미국의 유명한 경제지의 기자들은 강현의 인터뷰 허락에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달려왔다. 우주 개발의 진행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해 인류의 우주 진출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알고 싶었다. 분명히 크게 영향을 끼치면 끼쳤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그럼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소행성대의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역시나 경제 기자 다운 질문이다. 아니, 누구나가 다 궁금한 상황이다. 강현은 그 질문에 간략히 영상을 띄웠다. 시간차와 공전 궤도로 인해 실시간 영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광산 개발의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 두 달 간의 항해 끝에 소행성 베스타에 도착한 카낙은 구멍을 파고 그 내부에 광산 및 제련 시설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컨테이너 시스템을 분리해서 여유 자원을 동원해 주위 근방에 있는 소행성의 자원 현황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소행성끼리의 간격은 수 백에서 수 천 키로미터에 달한다. 영화에서처럼 빽빽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중력에 의해서 서로 뭉쳤을 것이다.
베스타는 그런 소행성 중에서 두 번째로 무거운 소행성으로 지름이 약 500km 정도이고(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약 400km), 철과 니켈 등을 포함한 암석질 소행성이다.
베스타보다 더 큰 세레스라는 소행성이 있었지만(지름 약 1000km, 소행성 중 가장 크다.) 안타깝게도 주 성분이 물과 얼음이라 아직 개발할 대상이 아니었다.
강현이 보여준 화면에는 카낙에 실은 만 여 대의 로봇들이 행성 표면 여기 저기에서 레이저를 이용해 시료를 채취하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있었다. 다음 장면에서는 불빛이 나오는 구멍에서 로봇들이 나왔다가 들어갔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내부에서 광산을 뚫는 작업 광경이 나왔다.
중력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곳이기에 드릴이 앵커로 고정되어 한쪽 벽에서 암석을 깨고 있었다. 그리고 깨어진 암석은 광산 벽에 고정된 펜타봇들의 릴레이 송구로 깔끔하게 내장 공사가 되어있는 통로로 향했다. 제련 시설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쪽에서는 정련 작업이 이루어진 자원이 판형으로 나와 펜타봇과 트리플론이 베스타 주위를 아주 천천히 공전하는(베스타의 중력은 약 0.22m/s^2으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있기는 있다.) 카낙의 컨테이너로 운반하는 장면이 나왔다.
[어떤 자원이 생산 되고 있습니까?]
[다양합니다. 플라즈마 제련 장치와 우주 진공 상태라는 이점 덕분에 거의 모든 원소를 깔끔하게 분류할 수 있었죠. 철은 물론이고, 황, 실리콘, 니켈, 주석, 마그네슘 등 다양한 자원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생산량은 어떻습니까?]
[아직 생산 초기라 플라즈마 제련 설비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서 하루에 약 1톤 정도의 자원이 생산됩니다. 그 비율은 채취한 광물에 어떤 원소가 들어있느냐가 문제라서 그 때마다 다르죠.]
[그럼 특정 원소가 포함된 광맥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우주는 태반이 빈 공간입니다. 존재하는 물질 그 자체가 소중한 자원이죠.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강현의 말에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전에 실리콘도 생산된다고 하셨는데 반도체에 사용되는 그 실리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다 플라즈마 제련 공정 덕분이죠.]
로렌츠의 힘을 이용해 화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물리적인 방법으로 원소를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대기가 없거나 희박한 저중력 환경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구의 생산량과 비교하면 그리 높은 수치는 아니군요.]
한 기자가 입을 열었다. 남한 포스코에서 한해 생산하는 쇳물 생산량은 약 4천만 톤, 조강(造鋼) 생산 일 위인 인도의 아르셀로미탈이 약 9천 만톤이니, 철 하나만 따져도 지구적으로 한해에 약 1억톤을 훌쩍 넘어 생산되는 것이다. 그러니 일 년에 365톤 정도의 기대치로는 산업전반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택도 안된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죠. 제련 설비가 완전히 작동을 하면 하루에 백 톤 정도 생산할 수 있고 제련 설비를 더 지을 수도 있죠. 카낙은 약 5개의 제련 설비를 설치할 수 있는 장비들을 싣고 출발했습니다.]
[그래도 한 해 18만 톤(100ton×365×5=182,500ton) 정도 밖에 생산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생산된 원료가 다 철이 아닌 이상 생산량은 더 급감하겠죠.]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자재들을 지구에서 쓰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