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51화 (151/241)

151화

강현은 샐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샐리의 옆머리에 부벼지는 그의 얼굴에서 강현이 동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샐리가 강현과 같이 살게 된 이후에 알게 된 것은 강현이 생각보다 더 과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의 입에서 로맨틱한 말 한 마디 나오는 걸 듣긴 참 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나면 그녀와 체온을 나누는 스킨십으로 말로 할 수 없는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더 걱정이었다. 샐리에게 말할 수 없는 문제는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민을 함께 할 수 없는 건 그를 사랑하는 아내의 입장에서 매우 섭섭한 일이었다.

그와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고 싶었지만 샐리는 그러기를 포기했다. 남편은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다. 남편을 중심에 두고 일어나는 요즘 일들도 샐리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좀 더 강현의 마음이 편해지도록 내조를 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노력에 언론의 공격에 날카로워졌던 강현의 분위기가 다소 온화해졌다. 그 자신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신에 사고 속도는 더 빨라졌다. 심리적인 안정감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 방법을 구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대비를 해야지.’

강현은 샐리의 등 뒤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옆 얼굴과 부푼 배를 내려다보며 다짐했다. 만일의 상황에 대한 안전책은 가능한한 모두 설정해 놨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방심 때문에 소중한 존재를 잃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저들이 할 수 있는 수단을 모조리 시나리오로 작성해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수립해 놨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직 그런 변수는 보이지 않았다.

저들은 상황이 왜 이렇게 돌아갔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정작 강현은 그 모습을 몇 번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모든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니 말이다.

처음 언론을 움직여 간을 볼 때에는 별 생각 없었을 것이다. 강현이 미국-이스라엘 관계를 노골적으로 인터뷰 했을 때에는 진땀을 흘렸겠지만 곧 무마할 수 있었다. 주식 시장의 이상 기류도 백기사들과 우호 지분, 발빠른 대처로 미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이슈들이 워싱턴에서 막 부각되기 시작했다.

언론 권력으로도 가라 앉힐 수가 없었다. 친 유대적인 정치인들이 나섰지만 반 유대적인 발언(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의 국익을 주장하는 발언)을 하는 정치인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고 꺼내기 싫은 이슈들이 매일 같이 부각되었다.

짜증나는 그 정치인들을 후원하는 아랍 자본이나 화교 자본 등에게 경고도 하고 때로는 실력 행사에도 들어갔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즉시 대응해 건실한 기업 몇 개의 경영권을 빼앗겨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터번 두른 중동인과 동양인이 전문 경영인으로 교체되자 위기감은 더욱 강해졌다.

다 아즈삭과 강현이 그 엄청난 정보력과 자본력으로 반 유대 정치인들을 후원하는 이들의 뒤를 봐줬기 때문이고 오히려 강현에 대한 그들의 신뢰만 높여준 꼴이 되었다.

이쯤되면 돈을 퍼부어 무마하고 싶지만 강현은 세상에서 가장 자본이 많은 개인이었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함부로 돈을 쓰지 않고 자산을 보호하고 현금을 축적하려는 유대인들이 늘어가니 유대 단체의 활동액이 눈에 띄게 줄었다.

확실히 촉이 좋고 능력이 있는 이들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실탄을 마련해 놓으니 말이다. 안 그랬다면 벌써 아즈삭의 농간으로 자산에 커다란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로서 언론, 정치, 자본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적들은 점점 몸집을 불리며 유대 자본을 위협하기 시작했는데 정작 당하는 입장에서는 언론으로 물타기를 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정치권에서부터 담론이 터져나오니 물탄 소금물에 소금을 왕창 끼얹는 격이었다.

어쩌다가 이지경까지 왔을까? 곤란한 지경에 빠진 이들은 그 원흉을 알고 있었다. 바로 강현. 모든 일의 시발점.

그렇다면 강현을 제거한다면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올까? 그렇지는 않았다.

강현이 유대 세력에 대처한 방법은 약점을 찔러 쑤시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들이 더 이상 그들의 약점을 보호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 것 뿐이었다. 반 유대 감정이 솟구치는 여론, 더 이상 유대인들의 딸랑이가 아닌 정치인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후원하는 경쟁 자본 세력.

마치 도미도가 무너지듯이 그동안 쌓인 이해관계와 갈등이 힘이 되어 분출되고 있었다. 물론 그 방향성을 적절히 조절해 큰 시너지 효과를 만들 시나리오를 짠 것은 분명히 강현이었다.

과학자의 눈으로 사회를 보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이 대략 짐작이 간다. 특정 상황에서 인간과 대중은 높은 확률로 미리 정해진 행동을 하게 된다. 강현이 한 일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잘나서 유대 자본을 물 먹이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스스로의 모순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들이 이스라엘의 국익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미국인으로서 미국이란 나라에 충실했다면, 미국에서 유대 자본이 이렇게 궁지에 몰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강현은 단지 그런 모순으로 인해 쌓인 화약고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이제 유대인 지도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 의회에서 발생하는 이슈들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미국-이스라엘 관계에서, 미국의 국익을 중요시 여기려는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이스라엘의 고립을 불러온다. 중동 외교 정책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과의 우호관계가 재고될 수 밖에 없다. 그건 이스라엘의 영향력이 감소됨을 의미한다.

과연 유대인 지도부는 이스라엘이 쇠퇴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젖과 꿀이 흐르는 오래전 잃어버린 약속의 땅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강현은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국가 그 자체에 대한 집착과 오랜 한(恨)을 떠나서 보자. 딱히 중요한 자원도 없는 땅에 유대 민족을 위한 나라를 건설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대인들은 어딜가나 잘먹고 잘 살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고 이스라엘을 지원했겠는가? 유대인 단체들과 지도부들이 과연 그동안의 투자를 허공으로 날려버릴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무척이나 낮았다.

그렇다면 차선은 무엇인가? 여론, 정치, 자본 등 마땅히 쓸 카드가 없는 상황이다. 협상을 할까? 지금 미국 국회에서 반 유대적 이슈를 생산하는 이들을 후원하는 세력과?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또 그 세력들은 유대 세력을 한 풀 꺾어 놓기 전에는 협상을 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애시당초 그것이 목적인 세력이니 협상을 위해서 무엇을 내어 놓아야 할지 유대인 지도부로서는 생각하기도 골치 아픈 일이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해결책이 없는 이상 이들은 계속 얻어맞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들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뭐가 있을까?

강현은 상상만으로 그치기를 바라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단이 있었다. 바로 무력, 또는 실력행사.

케네디 대통령은 연방준비은행을 폐지 혹은 국유화하려고 했던 마지막 미 대통령이다. 그리고 암살된 두 번째 미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이유가 연방준비은행의 국유화를 반대하는 거대 자본 세력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단 그에 관련된 음모론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넘어가자. 강현에게는 그런 음모론의 진실 여부보다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어야 했던 배경이 더 눈에 들어왔다.

만일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이 정말로 연방준비은행 때문이라면? 화폐발행권을 두고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 사이에 일어난 암투의 결과였다면?

어쩌면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화의 화폐발행권을 쥔다는 것은 세계 경제를 일순간에 공황에 빠뜨릴 수 있는 경제적 핵폭탄을 쥐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막대한 권력에 더해 케네디 대통령만 사라지면 연방준비은행의 국유화가 무마되는 상황이 더해지니 암살이라는 가장 효과적인 카드가 생각나지 않을까? 더구나 주류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에 진실을 호도할 수 있는 세력이라면?

강현은 여기에 자신의 상황을 대입해 보았다. 강현이 유대 자본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것은 사실이니 이를 갈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럼 강현이 사라진다면 유대 자본이 다시 건재해 질 수는 있는가? 글쎄. 그러기는 힘들 것 같다.

왜냐면 이번에 일어난 일은 강현이 억지로 흐름을 만드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적절한 시간을 두고 케케묵은 이해관계를 촉발시켜 만든 일종의 화학반응이기 때문에 강현이 사라진다고 해도 유대 자본에게 불리한 상황은 계속 지속될 것이다. 즉, 강현을 죽였을 때 딱히 상황을 획기적으로 반전할 가능성이 적다는 말이었다.

물론 강현의 죽음으로 국면을 전환시킬 기회는 가질 수 있겠지만 기회는 기회일 뿐이다. 경쟁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눈이 벌게진 경쟁 세력들을 상대로 그 기회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강현을 암살하겠다는 생각을 할 리가 없다. 샐리를 납치해도 강현을 미쳐 날뛰게 해서는 손해만 생길 뿐이다.

그런고로 무력 개입이 일어난 확률은 약 2.5%미만.(아즈삭이 시뮬레이션으로 계산했다.)평범한 사람이라면 안심할 수 있겠지만 강현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먼저 인공위성과 CCTV 등을 해킹해 그의 집을 중심으로 반경 1km 이내에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 그리고 그들이 거주지, 거주 시간 등을 따져 보안 등급을 매겨 관리했다.

불법적인 행동이 분명했기에 아즈락의 경고가 있었지만 아즈삭의 첩보 협조라는 카드에 아즈삭과 샤바샤바했다. 첩보만 담당하던 아즈락은 여러 국가의 아즈삭 시리즈들과 협상을 하며 정보를 수집했던 아즈삭에게 협상력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안심하지 못한 강현은 K 시리즈 수준으로 개량한 HA 시리즈 50기(CNC 장갑 대신 IAPP(충격 흡수 단백질 플라스틱; 71화 참조) 방탄복 소재로 전신을 감싸고 화기로 무장한)를 비밀 창고에 두고 C4 50kg에도 견딜 수 있는 벽으로 둘러 쌓인 패닉룸을 지하에 설치했다. 이 패닉룸은 집 중앙, 1, 2층을 관통하는 비상 엘리베이터로 즉시 내려갈 수 있게 되어 있어 신속하게 피신할 수 있었다.

여기가 끝일까? 아니다. 만일에 패닉룸까지 침입 당하려고 하고 준비한 HA 시리즈로 침입자를 격퇴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집안 여기저기에 설치한 폭발물이 폭발해 집과 함께 침입자를 완전히 날려버리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패닉룸은 폭발에도 안전하다.

위성까지 이용하는 감시망, 개조한 HA 시리즈, 자폭 시스템까지.. 편집증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준비 태세였지만 졸렬하고 탐욕스런 인간들의 악의에 부모를 잃은 강현에게는 이마저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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