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그렇게 되면 강현에게 미국을 배신한 한국인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작업이 불가능해지지만 그런 식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면 자신들이 더 큰 피해를 입으니 어쩔 수 없었다. 자이드 빈 알막툼이 강현과 연락을 했는지 안했는지, 했다면 어떤 밀약을 맺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더 이상의 충돌은 무리였다.
일단 그들의 노력에 언론의 촛점이 강현에게서 벗어나 사태는 일단락 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CNN, 폭스 TV, 블룸버그, AP 통신에 각 100억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
[왜 강현은 그들을 공격하나?]
[유대인에 대한 증오? 한국인인 그가 왜?]
강현이 다시 진흙탕에 끌어들였다. 백억 달러 규소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각 언론이 화들짝 놀라 강현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다. 사람 셋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 만일 강현이 평범한 이였다면 이들 언론과 금세 타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평범하지도 않아도 평판에 크게 신경쓰지도 않았다. 오히려 일부러 구설수에 올랐다.
도덕적인 성인군자보다는 제멋대로 구는 폭군이 행동하기 쉬운 법. 대중의 지지가 필요없는 강현은 명예보다 실리를 택했고 그런 점을 간과한 주류 언론은 자신들의 힘과 협동성을 과신했으며 언론 플레이로 강현을 압박했다. 소송을 당한 언론은 강현을 인종주의자로 몰아갔다.
그리고 그에 대한 카운터 펀치는 타임지에서 가장 먼저 확인했다.
[주가가 심상치 않다!]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특히 언론과 영화 배급사 쪽 주식들이 더 많이 올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소행성대 개발의 성공에 배팅한 투자자들로 인해서 금속 가공과 관련 제조업 분야는 몰라도 미디어 관련 분야의 주식이 뜰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끄지 않고 있었던 이들은, 특히 고급정보를 접하고 있던 이들은 강현이 행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당사자인 언론사들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 생각보다 사정은 더 나빴다. 자본이 들어오는 곳이 아랍 쪽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강현이 벌인 일을 알고 있는 이들은 강현이 이들 회사의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직접적인 응징이라고 생각했다. 아랍 자본 쪽과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갑자기 아랍이 이런 식으로 실익이 없는 일을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도 언론사주들은 (처음에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우호 지분을 확인하고는 그다지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든든한 백기사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주 회사의 지분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아랍 쪽에서 부지런히 돈 낭비를 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주가를 올려주니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뿐, 곧 소액주주 중에 상당한 인원이 정체도 모르는 이에게 위임장을 넘겼다는 첩보를 입수하고는 비상 태세에 들어갔다. 유보금을 풀어 주식과 우호 지분을 더 확보하려고 소액주주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지만 오히려 더 경각심을 받았다. 반응이 시큰둥 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미지가 좋은 제현 투자 회사 직원이 일일이 약소하나마 선물을 들고 찾아와 직접 부탁을 하는 것과 전화로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물론 고된 일이었지만 그동안 미국 제현 그룹이 해왔던 ‘인재투자’가 여기에서 빛을 보았다. 적당한 보수로도 열성적으로 위임장을 확보하는 임시 고용인들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일처리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한 주주 명단은 아즈삭이 확보했다.
나날이 긴장이 커지고 긴장이 커지는 것 만큼 주가도 지속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말로 경영권 싸움이 시작되는지 투자자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영권 확보를 위해서 돈쓰기를 아까워하지 않았던 강현의 지난 일을 기억하고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한편, 강현과 주류 언론과의 긴장감이 상승하자 유대인과 강현의 사이에 낀 헨델 회장은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좋은 동반자 관계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사태가 너무 커져버렸다. 일단 그는 강현부터 설득하기로 했다. 왜냐면 그는 혼자고 그 반대편에는 이해관계가 얽힌 많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며 헨델 회장의 혀는 하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강 박사. 왜 이러나?”
말을 하면서도 면목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이 엄청난 인재와 척을 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전혀 좋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강현에게 손대는 것을 말려왔었다. 물론 우주의 막대한 이권에 눈이 먼 지인들을 강제할 수단은 없었다.
“왜 이러긴요. 아시면서..”
“그냥 자극적인 이슈를 쫓는 언론이 그런 것일세. 어여쁘게 여겨주게나.”
“하지만 악의가 담겼죠. 부정하지는 마세요. 단 한 명도 저에게 사과 하러온 사람이 없었으니까죠.”
“이러면 자네만 손해야.”
“잠재적 적대 세력을 솎아 낸다면 남는 장사죠.”
강현의 표정은 담담했다. 불쾌감이나 적의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헨델 회장의 얼굴이 굳었다.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진의가 뭔가?”
“흐음.. 그냥 애국심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안될까요?”
“애국심?”
헨델 회장의 표정에 어이없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강현에게 애국심이라고? 글쎄.. 그가 해 온 행동이 미국의 국익에 지대한 이익을 끼친 것은 맞지만 그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같은 지독한 연구광이 바로 강현이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애국심?
“솔직히 그동안 이스라엘로 미국이 많은 손해를 봤잖아요. 염치가 있으면 이쯤 선택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무엇을?”
“이스라엘인이냐 아니면 미국인이냐.”
“....”
시오니스트인 헨델은 입을 열지 못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한다고 중동에서 깊은 증오심을 얻었어요. 이는 미국 위주의 헤게모니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 그렇지 않네.”
“왜죠?”
“그건 미국이기 때문이지.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낳지. 대국이 침략당해 무너진 적 있나? 천만에. 내부로부터의 붕괴로 망가졌지.”
“그거랑 이스라엘이랑 무슨 상관이죠?”
“미국은 다민족 국가일세. 내부에 갈등도 심하고..”
“내부의 단합을 위해 적이 필요하다?”
“그렇네.”
어이없는 말에 강현은 피식 웃었다. 그럼, 호주는? 캐나다는? 그들도 미국처럼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하지만 그들이 적을 만들었나? 헨델의 말은 위정자의 편리한 핑계일 뿐이다. 대중에게 국가의 모순을 인지시키고 설득해 현명하고 온건한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관심을 돌릴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간편하다. 묻혀버린 사건과 이슈들은 대부분 썩어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비록 너무 많이 그런 방법을 사용하면 썩은 내가 진동하겠지만 강현은 그런 방법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미국 내부의 갈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문제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문제다.
빈부격차, 사회문제, 계층갈등. 어느 것 하나 풀기 힘든 문제가 정치 경제적으로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극도로 난해하다. 이는 단순히 기득권을 깔아뭉갠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기득권에게 희생을 요구하기에는 그들이 그렇게 악하지도 않았고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그러니 민감한 문제는 삭혀서 없애버리는 것도 미국 입장에서 필요하기도 했다. 국익 앞에서 개인의 권리는 종종 무시된다.
강현은 미국에게 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전쟁으로 자신감을 얻었다는 (멍청하고 덜떨어진) 이들도 있다. 그래서 일단 헨델 회장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으로 전제를 깔았다.
“적이 필요하다는 발상에는 동의하죠. 하지만 회장님의 사고는 편협해요.”
“편협?”
“왜 굳이 특정 민족, 특정 국가를 적으로 삼아야하죠?”
“?”
어리둥절한 헨델의 표정에 강현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미국은 이제 우주를 정복할 겁니다. 좁은 지구에 얽매여 투닥거리는 건 낭비에요. 이젠 우주가 적입니다.”
헨델은 강현의 말에 표정이 굳었다. 적이 필요하다면 만들면 된다는 발상. 그리고 거기에 이스라엘의 필요성에 의해 이슬람권을 잠재적 적군으로 만드는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보자. 우주에 진출하게 된다면 이스라엘에 연연하는 것이 이득인가? 헨델 회장은 억지로 입을 열었다.
“동의하네. 하지만 자네가 누구의 투자도 받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닌가?”
“필요 없으니까요. 악질 고리 대금 수법 중 하나가 원치 않는 대출을 해주고는 높은 이자를 받는 거 아닌가요?”
“....”
반박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헨델 회장님께서 남의 밥그릇에 침 흘리지 말고 자기네들 밥그릇을 풍성하게 할 생각을 먼저하라고 전해주면 안될까요?”
“하아..”
헨델 회장은 한 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냉정하고 자신감 넘치는 지인들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그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강현은 헨델 회장의 지친 기색을 이해했다. 그가 자신과 유대인 자본가들과의 갈등을 막기 위해 여러모로 힘써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물거품에 불과했다. 혹시나 하던 강현의 부질없는 기대 역시 물거품이 되어 날아갔다.
이미 저들이 이빨을 드러낸 이상, 강현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헨델 회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들을 희생량으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그 이빨은 트로피로 공개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건들고 싶은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고민하겠지..
“정말 타협할 생각이 없나?”
“제가 뭘 잘못했다고 양보를 해야하죠?”
강현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헨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아.. 나는.. 더 이상 이 일에 끼고 싶지 않다네..”
“다행이네요. 누군가와의 친분이 깨지는 건 참 서글픈 일이거든요.”
“...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수는 없겠나?”
“경우도 없고, 염치도 없는 작자들과 타협할 생각은 없습니다.”
“많은 손해를 볼걸세.”
“금전적인 손해는 신경 안써요.”
그래, 이런 남자였지..
헨델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돌아갔다.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날려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바로 강현이다. 돈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자들과 애시당초 섞일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헨델은 이번 일에서 중립을 지키기로 했다.
헨델 회장이 돌아가고 강현은 일의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아즈삭. 작업은 어디까지 진행됐어?”
[우호 주식은 약 35% 확보했습니다만 시나리오 A를 진행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쯧.”
역시 만만한 이들이 아니다. 쉽게 쉽게 가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럼 시나리오 B를 진행해야지. 아! 자이드 씨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연락해.”
[네, 박사님.]
시나리오 A는 최대한 신속하게 주주를 동원해서 주류 언론의 사주를 교체하는 방법이다. 아랍의 거물인 자이드 빈 알막툼은 이를 위해서 자금을 지원했다.
그는 강현으로부터 건방진 유대인들에게 한 방 먹이는 데에 손을 보태어 달라는 요청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주류 방송에 터번 두른 앵커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