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소행성대 개발선이 이런 모양이 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추진체를 이용하는 엔진의 경우 추진체를 주입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에 엔진의 수를 많이 늘릴 수가 없었다. 엔진의 수가 적기 때문에 추진력이 한 곳에 집중되고 그래서 길쭉한 모양이 되어야 선체에 부담이 없이 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EM 드라이버의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추진체를 분사하기 위한 연료 주입 시스템이 필요없기 때문에 그냥 수만 많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가 많기 때문에 여러 곳에 엔진을 분산 배치해 추진력을 골고루 분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굳이 형태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공기저항이 없는 우주 공간이 아니던가?
물론 우주의 돌덩이 같은 것이 날아올 수도 있지만 그건 소행성 공장화를 위해서 준비한 단순 건축자재를 전면에 채워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심각한 데미지를 입어 파손된다고 해도 걱정 없었다. 손쉬운 물자 배치와 수리를 위해 컨테이너 별로 구획화 되어 있어 언제든 구획째로 분리해 버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조립과 분리가 자유롭고 각 구획에 따로 이동 능력이 있는 스마트 컨테이너 시스템이라고 할까? 물론 가장 중요한 관제 시스템인 인공지능 카낙이 없다면 모두 무용지물일테지만 말이다.
[소행성대 개발선 카낙 발진 준비 완료!]
채광 장비, 제련 공장 설비 등을 올리고 나서 금속 성형을 위한 장비 역시 동시에 올리고 각종 물자를 완비한 후 개발선은 소행성대로 떠날 준비를 갖췄다.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2년 반 만의 일이었다.
개발선의 이름은 인공지능인 카낙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사실 카낙이 없다면 이 모든 계획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출발 날짜가 공개되자 미국 국민들은 열광했다. 과학 기술이 국가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는 지식층은 미국이 우주의 질서를 선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애국심에 도취되었다. 타국의 우주 개발은 아직도 지지부진했으며 차세대 궤도 공장의 완성은 유럽에서 일 년 후에나 이루어질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당연히 우주 개발이 뒤처진 나라들은 강현의 로봇 기술과 노하우가 너무나 탐이 났지만 얻을 수가 없었다. 그건 말 그대로 노하우라 일일이 메뉴얼화 시킬 수 없었다. 강현이 그런 귀찮은 짓을 할 리도 없지만 그걸 모두 메뉴얼화 시킨다고 해도 이해할 사람도 없고 다 습득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예를 들어 펜타봇과 트리플론의 중량만 해도 그냥 결정된 것이 아니다. 매스 드라이어에 적용된 기술과 거기에 적용된 재료의 원초적인 한계를 고려해서 결정된 것이고 칸낙에 탑재된 모든 장비들이 이런 식으로 여러 기술의 한계를 고려해 최적화되어 설계된 것이다.
이런 노하우는 강현 특유의 초능적인 직관과 아즈삭의 방대한 연산 능력이 없으면 결코 얻어질 수 없었다. 즉,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오랜 시간 작동한 상호작용의 결과물이었다.
기실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협동성이 최대한의 효율로 발현된 것이었으니 아무리 기술 특허가 공개되어도 그걸 그대로 다루어 우주 기술로 개선하기에는 여러 애로 사항이 꽃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이미 강현의 다음 계획(우주 식민지)을 짐작한 여러 국가에서는 그걸 따라 잡으려 인력과 예산을 배분하는 것도 벅찼다. 거주형 우주 식민지를 결코 미국에 뒤쳐져서 세우면 안된다. 그러면 정말 우주 패권에 도전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카낙이 출발을 하고 다시 다음 연구 과제에 들어간 강현은 오랜 은사의 방문을 받았다. 한국에서 자신을 교육시키던 천마륵 교수였다. 그도 이제는 나이가 더 들었는지 이마에 주름이 지고 머리에 새치도 많아져 검은 머리의 비율이 더 적어져 있었다.
“오래간만이구나.”
“교수님은 여전히 정정하시네요.”
“늦었지만 결혼 축하한다.”
“하하! 감사합니다. 곧 아빠가 돼요.”
“오! 그래? 백금 수저를 물고 태어나겠구나.”
우주에 투자를 하겠다는 1조 달러는 아직 반도 쓰지 않았다. 기존의 우주 개발에 사용되던 로켓같은 비싼 소모성 물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돈이 많이 든 매스 드라이버가 돈 값은 했다. 거기에 제현 투자 회사를 통해 투자한 1조 달러의 자산은 나날이 그 액수를 불려가고 있었으니 태어날 강현의 아이는 돈 부족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강현은 천 교수의 말에 싱긋히 웃으며 천 교수의 근황을 물었다.
“하하! 그동안 어떠셨어요? 다른 교수님들은요?”
“이공계 교수는 다 그렇지 않니. 물론 몇 분이 은퇴하시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지난 시간에 대해 쌓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참, 한 교수가 고맙다고 전해달라더구나.”
“한 교수 님이라면.. 아, 그때 제 은사님이 되겠다고 면접보신 분이요?”
강현은 기억을 더듬어 과거 자신의 은사를 뽑기 위해 면접에 나온 두 교수 중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은사를 면접보고 뽑겠다는 어린 천재의 패기도 패기였고 면전에서 태양 전지를 전문분야로 하는 교수에게 태양 전지의 개발 여지는 더 이상 남지 않았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도 패기였다.
그때의 에피소드를 알고 있는 천 교수는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저에게 고맙다고..”
“덕분에 다시 태양 전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졌다고 하구나.”
“아!”
우주에서 태양 전지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에너지 공급처는 없었다. 출력의 제한만 해결된다면 항성이 있는 곳에서 이보다 뛰어난 스팩의 에너지 원은 없다.
“그거 다행이네요. 생각해 보니까 그때 제가 많이 치기 어렸던 것 같아요. 뭐든 다 쓸모가 있는데.”
그것이 단순히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고 주위에 말하면 모두 목을 잡고 쓰러지겠지만 천마륵 교수는 어렸을 적 지독히도 고집불통이던 강현을(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알고 있었다.
“알았으니 다행이다.”
천 교수는 어린 제자의 성숙에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한 참이나 더 대화를 나누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아.. 그럼 이제 슬슬 본론을 꺼내야겠구나.”
“청탁이죠?”
대번에 핵심을 짚은 제자의 말에 천 교수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오직 연구에만 매진해온 그에게 과거의 인연에 기댄 청탁은 그의 원칙에서 벗어나며 또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무시하기에는 자신을 설득한 그들의 명분이 옳았고 또한 간절했기 때문에 어렵게 승낙을 하고 말았다.
“아마 이 시기에 천 교수님께서 청탁을 하러 오신 건 아마 우주 개발에 대해 협력을 구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네요.”
강현의 이어진 말에 천 교수는 한 숨을 내쉬며 또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시피 자원이라고는 사람 밖에 없는 나라지 않니. 그래서 소행성대의 자원 개발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단다.”
자원이 사람밖에 없어서 강현 자신이 미국에 온건 가라는 상념이 잠시 떠올랐지만 어차피 지난 일이라 금방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이어진 천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여건 상 국가 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어서 외교적으로 힘을 모아보려고 하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더구나.”
한국의 우주 개발 역량은 떨어진다. 왜냐면 기초 연구 부분에서 축적해 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향은 쿠데타 사태가 벌어져도 바뀌지 않았다. 하긴 그 나물에 그 밥에서 나물 몇 개만 건져 냈는데 전체적인 맛이 변할 리가 없었다.
천 교수는 계속 한국의 사정을 설명했고 강현은 이를 몇 가지로 정리했다. 예산 부족은 물론이거니와 기술 인력적으로도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제적인 공조에 발을 낄 수가 없는 상황, 그나마 협력을 하자는 나라들은 동남아시아의 고만고만하고 비슷한 기술 수준의 나라뿐이라 우주 개발에 있어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의 헤게모니를 두고 경쟁이 치열한 우주 개발 선진국에 붙을 수도 없었다. 그들이 얼마나 우주 개발을 얼마나 꽁꽁 싸매고 있는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어쭙잖은 참여 요청은 가차 없이 거절했다. 그 어쭙잖은 요청에 한국이 포함된 것이 문제였다. 한국으로서는 더 제공할 것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인의 자랑이자 미국의 보물인 강현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소행성대의 개발 과정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일이니 강현에게 약간의 시간이 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한국 정부 관계라면 일단 삐딱하게 보는 강현의 성향을 파악해 그의 은사였던 천마륵 교수에게 청탁을 부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저에게 원하는 건 아마 기술 제공이겠죠?”
“그렇지. 네가 참여하기만 한다면 협력국들은 물론 민간 자본도 더 유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저에게 떨어지는 건 뭔가요?”
“우주 개발에서 생기는 이권의 절반을 주기로 했단다.”
“참 대단하신 양반들이네요.”
강현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강현은 혼자서 우주 개발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증명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권의 절반은 강현의 기여도에 비해 많은 것인가 적은 것인가?
“크흠..”
천 교수는 자신이 말해도 억지인 것 같은지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같은 동포이지 않니? 이대로라면 한국은 영원히 약소국으로 남게 될 거란다.”
“같은 동포인게 중요했다면 미국으로 오지도 않았어요.”
역시 안되나? 천 교수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 빌어먹을 장관노무 새끼.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푸대접해서 도망치게 만들어 버렸다. 한 때 강현을 가르쳤던 은사로서 강현의 선택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섭섭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논리로 무장한 강현에게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강현의 고집불통을 잘아는 천 교수는 논리적으로 강현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의 태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 있는 제현 그룹은 어떻게 할 거니? 투자한 금액이 만만치 않은데..”
“제가 지금 돈 걱정하게 생겼나요?”
“....”
다시 말문이 막힌 천 교수다. 한국 제현 그룹의 사외 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고 지분도 나누어준 강현은 그래도 여전히 대주주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에게 성과급을 받은 제현 그룹의 경영진은 강현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어코 강현을 최대 주주로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식의 가치총액은 강현의 재산에 비하면 모래 한 줌도 안된다.
“하아.. 그래도 네 부모님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가 아니니. 부디 가여이 여겨 다오.”
순간 강현의 얼굴에서 표정이 굳었다. 그는 그제서야 천 교수가 로비스트로 온 이유를 알았다.
부모님을 죽인 나라.
그런 나라에 강현이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쉬쉬 하고 있는 그 나라의 기득권층은 그럼에도 우주에 대한 탐욕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천 교수를 방패막이로 슬금슬금 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아.. 이거 참..”
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따뜻한 햇살이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으나 강현의 표정은 싸늘했고 천 교수는 그런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참으로 기분 더럽게 하는 데는 재주가 좋은 작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