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현.”
“그리고 사회적 지위랑,”
“현.”
“뭘 하고 싶은지 파악하고 지원도 해줘야,”
“현.”
강현은 샐리가 자신의 손을 강하게 쥐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런 그를 보고 샐리는 편안하게 미소 지었다.
“너무 일찍이 그런 걸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하게 될 거에요. 누구나 처음부터 아빠 엄마인건 아니잖아요.”
샐리는 그가 아기를 원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가 당황한 이유는 단지 생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너무나 완벽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의 지적 능력과 평소의 일처리 방식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그런 태도로 인해서 샐리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의 말에서 배어 나오는 짙은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가 좋은 아빠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아!”
강현은 샐리의 말에 뭔가를 깨달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누구가 처음부터 부모인 것은 아니다. 부모가 되더라도 충분히 성숙한 한 사람으로 아기를 키울 때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완벽한 부모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의 마음이 좀 정리가 되자 다시 태도가 차분해졌다.
“임신 몇 개월 째죠?”
“사 개월이요. 일주일 전에 확인 받았어요.”
“어.. 그럼 출산 휴가를 받아야겠네요?”
“그냥 사표 내기로 했어요.”
“왜요?”
“가정에 시간을 쏟으려고요.”
“흐음...”
샐리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라면야.. 돈이야 썩을 정도로 넘치니 경제적인 문제는 고려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 둘은 다정스럽게 손깍지를 끼고 서로의 입을 맞추었다.
= = = = =
다소 조심스러우며 뜨거웠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었다.
샐리는 강현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을 차렸다. 간단하게 토스트와 계란후라이에 생과일을 짠 주스가 곁들여졌다.
“현! 지각하겠어요!”
샐리는 강현을 깨우러 침대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와 다르게 그녀의 깨움에도 일어나지도 않고 샐리를 잡아 당겨 침대에 눕히고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며 몽롱한 잠결의 나른함과 따뜻한 체온을 즐겼다.
“지각 한다니까요.”
샐리의 투정어린 목소리에 강현은 흠야흠야 어리광을 피우며 대답했다.
“흐음.. 괜찮아요. 오늘부터 자택 근무를 할테니까..”
“헐.”
강현의 말에 샐리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솔직히 집안 청소나 빨래같이 번거롭고 귀찮은 일은 아즈삭이 집안에 비치된 HA 시리즈를 이용해 말끔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다. 인간형이라 사람용으로 나온 가전 제품도 무리없이 쓸 수 있는 강점이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출근 안 해도 돼요.”
강현은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네트워크 망으로 연결된 세상이다. 강현은 아즈삭과 연결된 단말기만 있다면 세상 어디서든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실험도 아즈삭이 HA 시리즈를 운용하면 원격으로 할 수 있었다. 그동안 그가 연구실로 출퇴근을 했던 이유는 실험 도구를 만지작거리고 실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지 반드시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전 실험 과정은 녹화가 되기 때문에 언제든 반복해서 볼 수 있었고 아즈삭과 함께 금방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아.. 그런 소리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요.”
샐리는 그런 강현을 억지로 일으켰다. 이거 너무 능력이 좋아도 문제였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서 왜 아빠는 출근하지 않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강현은 규격 외의 인간이다. 그의 천재성을 아이가 이어받을 가능성은 무척이나 희박했다. 그것이 아이가 자라면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다. 샐리에게는 이번 일이 새삼 아이의 교육과 가치관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재고하는 계기가 됐다.
“끄응.. 연구실에 안 가도 된다니까..”
“그래도 생활은 규칙적으로 해야죠. 안 그래도 체력이 형편없는데..”
신혼 여행 때 산에 올라가며 비실댔던 건 언제 잊혀질까?
강현은 샐리의 간지럼에 결국 일어났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서재에서 아즈삭과 연락해 연구를 계속했다.
극저온의 우주 환경에서 소행성대의 소행성들은 온갖 고체들이 결합한 덩어리다. 얼음과 암석, 금속 등이 어떤 비율로 어떻게 뭉쳐있는지도 모른다. 즉 채광 자체가 무척이나 골치 아픈 문제였다.
일반적인 드릴로 채광을 하는 방법은 되도록 지양해야 한다. 드릴은 필연적으로 마모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소비가 심하다. 소행성대까지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드릴같은 소모성 물품을 계속 공급해 줄 수가 없었다. 만일에 사용한다고 한다면 자체적으로 만들어 충당할 수 있는 설비가 필수다.
그래서 강현은 대량의 드릴 헤드와 드릴 몸체를 소행성 개발선에 추가하기로 하고 만일의 상황에 드릴 대용으로 사용할 레이저 장비도 추가하기로 했다.
레이저의 국소 에너지 투사 능력은 아주 뛰어나다. 주변과 다르게 일점 집중으로 에너지를 받은 곳은 열팽창을 하며 강력한 응력을 발생시킨다. 다이아몬드를 레이저로 가공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금속판의 레이저 절단 가공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는 비용문제와 광맥을 파내는 형태 자체로 인한 한계가 있었다. 움푹 들어간 곳을 다시 레이저를 이용해 파내는 것은 튀어나온 부분을 잘라내는 것과는 다른 난이도가 있었다.
물론 대안은 있었다. 소행성대에서 자체적으로 금속 가공품을 만들 능력이 있다면 지구에 비해 금속 정련 상태가 나쁘다고 해도 레이저를 이용한 채광보다 몇 배나 빠르게 정련을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소행성대에서 자원을 가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자체적인 제련 능력을 갖추어야 했다. 그래서 강현에겐 무중력 하에서, 그리고 대기가 없는 상황에서 금속원소를 추출하고 성형하는 방법이 반드시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지구에서 금속을 얻을 때에는 환원 과정을 거친다. 산소와 결합력이 좋은 금속원소를 이용하기 위해선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무중력 환경에서 지구처럼 용광로를 만들 수가 없었다. 초고온 초고압의 용융물을 유지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 수도 없을 뿐더러 무중력 상황에서 밀도의 차이로 슬러그를 제거하는 기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녹은 용융물을 식히기 위해서 우주 공간에 놔둘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금속 기체가 되어 다 날라가 버릴 것이다. 또 그 용융물을 어떻게 이동시킨단 말인가? 자력으로? 무중력 상태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금속 덩어리가 천천히 유영하는 모습은 장관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시설물에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강현은 산화환원을 이용한 제련 방법을 모두 폐기했다. 어차피 환원제로 사용할 코크스의 공급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
대안으로 그는 실험실에서나 쓸만한 방법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원리는 사이클로트론에서 따왔다. 대전된 입자를 엄청난 속도로 가속시키는 입자 가속기 중 하나인 사이클로트론은 고주파 전기장을 이용해 입자를 가속하고 이 입자의 궤도를 자기장 속에 놓아 로렌츠의 힘을 받게 하여 나선, 혹은 원 운동을 만들어 초소속의 입자를 만드는 기술이었다.
그러한 원리 덕분에 인류가 방사선 동위원소를 인위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도록 해주어 핵물리학의 발달에 크게 공헌하기도 했다. 좀 더 무거운 동위원소일 수록 똑같은 힘을 받아도 관성의 법칙 때문에 움직임의 변화가 적어 더 가벼운 동위원소에 비해 속도의 변화가 적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강현이 사용하려는 제련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금속화합물을 플라즈마화하여 전기장과 자기장을 통과시키면 자연히 각 원소의 질량과 플라즈마화된 원소의 원자가수를 변수로 해서 도착하는 위치가 달라진다. 이를 이용하면 충분히 금속을 순수하게 제련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은 금속 산화물의 경우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되는데 왜냐면 플라즈마는 일종의 결합이 깨진 이온물질로서 산소 플라즈마는 금속 이온과 반대되는 전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금속 이온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날려버릴 수가 있었다.
물론 이 방법은 지구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제련 방식보다 훨씬 순수한, 방사선 원소 수준으로 원소를 제련할 수 있어 순수한 물질이 필요한 연구에 많이 이용되는 방법이다.
하지만 대기가 있는 지상에서 상용화하기에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방식이기도 했다. 플라즈마를 만들기 위해 진공 환경을 유지하는 비용만 따져도 그렇다. 우주의 진공 상태가 오히려 상용화에 유리한 기술인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고출력 레이저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광물을 기화시켜야 하고 이 기화된 입자에 고주파 고출력의 교류를 걸어 플라즈마화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태양광 패널의 수요가 늘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나날이 소행성대 개척선의 크기와 질량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이 플라즈마 방식으로 제련을 하기 위해서는 공장 서너 개 정도 되는 크기의 시설이 필요했다. 불순물이 낄 수 있으니까 동일한 방식을 연속적으로 수행하거나 아예 규모를 키워서 플라즈마화된 원소들이 다시 원자 상태로 돌아가는 분류 장치의 거리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야 했다.
하지만 이미 소행성대 개척선의 크기는 야구장 5개 크기를 넘었다. 만 여대의 트리플론과 펜타봇, 거기에 이 로봇들이 사용할 각종 기자재들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수리 부품 등을 실으니 그 정도나 되었다.
그러니 질량도 만만하지 않은데 거기에 야구장 2개는 필요한 제련소를 달고 가라고? 제련소가 몇 개나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강현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가 아즈삭의 아주 단순한 제안으로 해결 방안을 구상할 수 있었다.
아즈삭은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우주에 관해 인간들이 축적한 다양한 상상물의 결과물을 수집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효율적이었다. 아즈삭에게 인류는 마르지 않는 발상의 우물이었다.
그렇게 아즈삭이 수집한 다양한 우주 관련 기술들, 영화, 소설, SF애니메이션 등에서 소행성 그 자체를 우주 기지로 개조한 장면이 있었다. 속을 파서 그 안에 시설을 지은 것이다.
참으로 단순했지만 첨단 공학 기술의 집약체를 목표로 하고 있던 강현의 시선 밖에 있던 방식이기도 했다.
강현은 아즈삭의 도움에 힘입어 소행성을 제련 공장으로 만드는 물자들을 더 쏘아올리기 시작했다. 그 부피는 야구장 절반 정도라 공장을 덧붙이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물자들이 올라갈 때 마다 버스 운행을 하는 트리플론이 부지런히 수송을 하고 펜타봇들은 부지런히 물자들을 조립하고 용접했다. 전기 용접은 우주에서 매우 훌륭한 접착 방식이었다. 공기가 없었기 때문에 로봇을 이용한 용접에도 불구하고 기포같은 결함이 거의 없었다.
프로젝트가 차근차근 진행됨에 따라 소행성대 개척선의 크기 역시 점점 커져갔다. 모양은 그동안 SF 영화에 나온 모양과는 완전히 달랐다. 넓죽한 상자 모양으로 한 쪽의 넓은 면은 태양광 패널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그 뒤에 물자를 넣은 상자 모양의 컨테이너들이 밀착해 쌓여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이 컨테이너에 각각 EM 드라이버가 서너 개씩 설치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