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그래도 어쩌겠는가? 샐리가 청혼하는 걸 바라는데. 강현의 성격을 파악한 샐리는 그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익혔다. 그러지 않으면 강현은 샐리의 말 저편에 자리한 여심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영부영 연인처럼 지내다가 평생 청혼을 못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기적절하게 청혼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리고 곧 강현은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했고 그 자리에서 샐리에게 반지를 내밀었다. 샐리는 눈시울을 붉히며 승낙했다. 오랜 짝사랑이었고 오랜 기다림이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
둘은 결혼식을 매스 드라이버 완공 이후로 하기로 했다. 약 3개월 정도 남았기에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강현은 결혼식이란 것이 그렇게 신경쓸게 많은지 샐리가 카탈로그를 들고와서야 알았다.
“아아. 번거롭네..”
아무리 웨딩업체라고 해도 직접 선택하는 것은 자신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결혼식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했다. 뭐 강현은 그냥 좋은게 좋은 거라고 빨리 결정하고 싶었지만 샐리는 역시나 꼼꼼하게 따지고 들었기 때문에 결혼에 관한 건 강현이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덕분에 결혼식 준비까지 겹친 강현의 머리는 엉창진창이었다. 아즈삭이 아니었다면 스케줄 관리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매스 드라이버가 완공되었다. 완공식에 강현이 초대가 되었지만 강현은 매스 드라이버의 완공 이후에 더 할 일이 많다며 거절했다. 심지어 대통령도 참석한다는 말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긴 그런 자리는 더 번거롭겠지라며 이 천재의 괴짜성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오늘 드디어 인류의 역사적인..]
아바노 대통령은 NASA와 각계 각층의 인사가 모인 곳에서 축하 연설을 했다.
매스 드라이버는 험난한 우주 개발의 시작일 뿐이었으나 인류의 생존, 그리고 미국의 국력을 상징하는 위대한 업적임을 의심치 않았다.
“강 박사는?”
“못봤어.”
“안 온건가?”
강현 박사를 인터뷰하고 싶었던 기자들은 강현이 오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 그러나 몇몇 기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뭔가의 특종을 원했고 사유지이지만 미군이 보안구역으로 설정해 둔 매스 드라이버 기지 옆에 있는 강현의 공장을 취재하고 싶어했다.
개인의 사유지를 국가가 나서서, 그것도 세계 제일의 군대가 나서서 보호한다는게 수상하지 않은가?
앨리스 역시 그런 기자들 중 하나였다.
그녀는 호기심에 넘쳐서 군인들이 경계하는 철책 너머 공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녀의 동료인 샘은 몰래 잠입해 보자는 그녀의 말에 난색을 표했다.
“앨리스, 위험해. 거긴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몰라?”
“미친! 산업 스파이로 걸리면 몇 년이나 썩을지 몰라.”
“안 걸리면 돼.”
샘은 이 대책없는 여자를 어떻게 설득해 보기 위해 진땀을 질질 흘렸지만 계속되는 변설과 여성의 매력을 가득 품은 애교질에 언제나 그렇듯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때마다 번번히 더 이상 호구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쩌겠나? 반한 놈이 잘못이지.
그리하여 그들은 온갖 장비(주로 위장용 모포와 망원 렌즈)를 챙기고는 구글 지도를 살펴 강현의 공장을 염탐할 수 있는 장소를 확인했다.
“우와! 저기 지구 맞아?”
“응? 뭐가?”
망원 렌즈를 조절하던 파트너의 감탄에 칼로리 바를 씹어먹던 앨리스가 의문을 표했다.
“뭐, 신기한 거 보여? 잠깐 나도 봐.”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서 몸으로 샘을 밀어냈다.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이 샘의 어깨를 밀었고 그 감촉에 샘은 얼굴을 붉혔다. 그가 호구가 된 이유다.
“저게 뭐야?”
카메라 렌즈를 투과해 본 앨리스의 심정은 샘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저곳은 정말로 지구가 맞는 것인가?
큰 공장 건물 앞에 커다란 트럭이 서서는 컨테이너를 열었다. 그러자 건물 안에서 수 많은 로봇들이 나와(처음에는 인체 모형인 줄 알았다.) 트럭에서 물건을 내렸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군인들도 신기한지 연신 그 광경을 구경했고 트럭 운전수도 신기한지 운전석에서 내려서 그 장면을 구경했다. 운전수는 자신의 스마트 폰으로 이 신기한 장면을 찍으려는데 역시 보안 문제 때문인지 곳 군인들에게 제지 당했다.
“이쯤이면 특종이 아닐까?”
그 장면을 본 샘은 은근히 앨리스에게 말했지만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샘은 그런 상태를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호기심에 눈이 돌아갔다.’
정말 그녀는 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악성 파파라치가 되지 않았을까? 샘이 몇번이나 생각한 내용이었다.
“샘. 저기 안에서 뭘 만드는지 알고 싶지 않아?”
“그거 공식적으로 발표되어 있잖아. 우주 개발을 위한 무인화 프로젝트라 우주에서 일할 로봇을 만들고 있다고.”
“그래도 직접 보는 거랑 임팩트가 다르지. 우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풀어줘야할 의무가 있어.”
풀고 싶은 건 네 호기심이겠지.
샘은 초롱초롱한 눈빛에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몇 번이나 저 눈빛에 말문이 막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부정하겠지만 이미 훌륭한 호구다.
그리하여 그들은 일단 공장 앞에 경계를 서는 군인들과 대면하기로 했다. 차후 잠입을 한다고 해도 안면이 있다면 총탄부터 맞을 가능성은 적지 않는가?
“에.. 그러니까 CNM의 앨리스 기자라고요?”
“네.”
“방문 이유는 공장 견학이구요.”
“네.”
“잠시만요.”
앨리스와 샘을 맞이한 군인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철망으로 된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의외로 허락이 떨어지자 당황한 건 앨리스였다.
“어? 중요한 시설 아니었어요?”
“중요하기는 한데.. 산업스파이만 아니면 일반에 공개해도 상관이 없다네요.”
군인의 말에 앨리스는 갑자기 김이 빠져버린 것을 느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샘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래도 그녀는 잠입 액션의 스릴을 느끼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샘에게는 다행스런 일이었다. 무단 침입으로 감옥에 갈 일은 없으니 말이다.
둘은 군인 셋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공장안으로 들어갔다.
치지직. 드르륵.
용접하는 소리와 전동 드라이버 소리가 요란하게 돌아갔다. 사람처럼 보이는 것들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쉴새없이 일하고 있었다.
“우와! 전부 로봇이 만드는 건가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불량이 있을 수도 있는데..”
“완성품은 일단 옆에 있는 우주 기지로 보내서 검수를 한다고 한다더군요.”
아무리 인공지능과 HA 시리즈를 이용해 완전 자동화 설비를 갖췄다고는 하지만 뭐가 검수 과정에서 뭐가 잘못됬는지 판단하는 건 아직 사람의 능력을 따라가지 힘들었다. 인공지능의 학습 속도가 무시무시하다고 하지만 전산화 되지 않는 실무적 경험이나 감각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발달 속도가 그리 빠르다고 할 수 없었다. 직접 부딪히고 데이터를 축적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저건 뭐죠?”
앨리스가 한 쪽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방추형의 물건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마 제가 기억하기로는 우주로 로봇들을 발사하는데 사용하는 캡슐로 알고 있습니다. 일종의 탄환이죠.”
“호오!”
앨리스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샘의 옆구리를 찔러 여기 저기 공장 안을 촬영했고 그날 CNM의 헤드라인이 되었다.
[우주 개발의 진척 상황! 무인 로봇들의 정교한 작업! 우주가 눈 앞에 있다!]
그 뉴스에서 시청자들을 감탄하게 했던 것은 검수가 완료된 발사체와 로봇들이 창고에 줄지어 서있는 광경이었다. 마치 스타워즈의 로봇 병사들이 빽빽하게 서있는 장면을 연상시켰다고나 할까?
사실 정부에서는 강현의 무인 공장을 비밀로 하고 싶었다. 왜냐면 몰래 뭔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현은 자신의 무인 공장의 운영에 누군가가 관여할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군-펜타곤-정부-정보부-잭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연락 체계를 통해 받은 앨리스의 공장 견학 요청을 허락한 것이다. 언론에 한 번 노출되면 정부에서 강현의 무인 공장을 이용하기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급부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우려가 있었지만 강현이 핵탄두를 만들 것도 아니고, 무기를 생산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되자 정부는 무인 공장이 탐이나 따로 몰래 무인 공장을 만들고 싶었고 강현에게 비밀리에 무인 공장을 만들고자 하는데 협력해주지 않겠냐고 요청을 했다.
그들의 요청에 강현은 일단 인공지능부터 완성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복잡한 작업 과정을 안드로이드 로봇이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반드시 지휘통제를 받아야 했다.
정부에서는 인공지능의 중요함과 제작 난이도를 알기 때문에 골머리를 싸맸다. 강현의 인공지능 제작 실력이 있다면 몇 개월 내에 그럴싸한 성능의 인공지능이 나오겠지만 인공지능은 반드시 정부의 통제 아래에 있어야 했다. 그러니 강현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겨둘 수 없었고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강현은 절대로 인공지능 제작에 있어서 타인과 협조 체계를 구성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인공지능을 일종의 생명체로 간주했다. 그래서 인공지능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했다. 아즈삭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러나 이런 방침은 인공지능을 도구로 생각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최악이었다. 하나하나 관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관료체제의 특성이었다. 그래서 설계 개념을 잡는 초기부터 이 둘의 입장은 부딪힐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미 정부는 자체적으로 무인 공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어렵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한편, 돈지랄로 예비 거머리들을 효율적으로 떼어낸 네바다 프로젝트는 막힘 없이 진행되었다. 아니 진행되는 듯 했다.
이번에는 국경을 넘는 태클이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의 축은 바로 중국과 러시아였다.
중국은 위대한 중화사상에 입각해 미국을 경쟁 상대로 여겼고 러시아는 과거 냉전시대부터 전통적인 미국의 경쟁국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미국의 우주 선점은 실제적인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되었고 유엔 회의에서 미국의 독자적인 우주 개발을 맹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은 전 인류를 위한 우주 개발은 선점해 이권을 추구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하지만 미국은 코웃음을 치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지들이 나서봤자 미국 주도의 우주개발을 막을 수는 없다.
[미국은 반성하라!]
[미국은 우주를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러시아와 중국의 반응은 굉장히 격렬했다. 미국이 우주를 선점한다는 것은 미국에 맞먹겠다는 그들의 야망에 찬 물을 끼얹게 된다.
일단 우주를 평화적인 목적에 사용하다는 조약이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국제 조약은 힘의 논리에 의해서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조약 위반을 강제할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국가는 국익 앞에서 언제든 조약을 무시하거나 파기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주를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는 조약이 별 탈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이유는 우주를 개발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이었다. 국제적인 평화적 분위기 없이 우주 개발은 불가능하다. 막말로 타국의 위를 지나가는 인공위성을 족족 쏴버리게 되면 우주 개발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되면 데브리로 인해 인류는 지구에 갖혀 고사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