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NASA에서는 매스 드라이버의 완공율을 67%라고 알려왔다. 그리고 로봇도 계속 생산 중이고 곧 발사체도 완성될 것이니 발전소와 함께 완공되면 곧장 우주 개발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까지 위성 공장에서 사용할 용접 장치, 조립 공구나 플라즈마 절삭 장치 등을 소형화하고 우주 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특수 자재들을 축적해 놓는 것도 중요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강현의 우주 개발 프로젝트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을 것 같았다.
[잭. 그게 무슨 말이야?]
강현의 목소리가 딱딱해 졌다. 전화기 넘어로 들어오는 어조에 잭은 강현의 상당히 굳은 표정(화난 표정)을 상상할 수 있었다.
솔직히 잭도 유감이었다. 의회에서 추경 예산안이 기각된 것이다. 그래, 그것만이라면 강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부에 돈이 없다니 어쩌겠는가? 급한 대로 자신의 돈이라도 써야지. 물론 그만큼의 매스 드라이버의 운영권에 대한 지분은 당연히 얻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권리니까.
하지만 의회에서 꺼내든 ‘네바다 프로젝트 추경 예산안 확보를 위한 민간인 투자 방안’은 말이 다르다. 그 이름 그대로 강현 뿐만 아니라 민간 자본을 유입하도록 하는 안이 나와있었다.
그건 강현이 전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현, 진정해. 너도 알다시피 우주 개발은 엄청나게 이권이 많이 남을 사업이야. 특히 네가 만들 위성 공장이 실현이 되고 우주 식민지 시대가 열리게 되면 엄청난 경기 부양 효과가 일어나지.”
[내가 그걸 몰라서 이렇게 화가 난 것 같아?]
“그럼 왜..”
[엄청나게 이권이 많이 남을 사업이라고 누가 중간에 허락도 없이 숟가락을 올리려고 한다는 게 문제지.]
“아!”
잭은 그제서야 왜 강현이 화가 났는지 알 것 같았다. 강현은 자신의 연구에 누가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리고 네바다 프로젝트는 전적으로 강현이 주도하는 일련의 연구 과정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 누가 정치권에 야료를 부렸다. 우주 개발은 엄청난 전략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민간이 진출하기 이전 먼저 군사적으로 진출하는 것이 수순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군사 대국인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우주 진출의 핵심이 될 매스 드라이버에 민간인 자본이 투자 된다는 것은 국가가 마음대로 사용하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흔히 민영화된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가? 물론 강현의 자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강현이란 천재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상업적으로 매스 드라이버를 사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적인 부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었다.
하지만 민간 자본을 통해 우주 진출이 된다면 우주 군사 기지를 건설해 우주를 군사적으로 선점하는데 자본을 투자한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은 거대한 이권이나 도움을 약속 받았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발을 뺄거야?”
[필요하다면.]
극단적인 대답에 잭은 당황했다.
“자, 잠시만 그렇게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말고 잠시만 있어봐. 내가 윗선에 알려서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 볼게.”
[국가 정보 조직이 그렇게 정치에 관여할 수 있어?]
“...”
강현의 말에 잭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국가 정보 조직이 정치에 관여한다? 물론 할 수 있다. 정치는 곧 각자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영향력이 부딪히는 역학, 미국의 안보를 위한 갖가지 정보를 다루는 정보부의 영향력이 약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공무원이 정치에 관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리스크를 져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황상 막대한 로비를 받은 것이 분명한 의원들이 정보부의 간섭을 결코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확실했다.
결정적으로 잭이 알기로는 현 정보부 책임자는 정치적 부담을 지고 강현의 입장을 대변해 줄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하지.]
“자, 잠깐만! 어떻게 하려고! 정말로 따로 매스 드라이버를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
[필요하다면 그래야지.]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잭은 갑자기 머리가 찌근찌근해지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누르고 아스피린은 한 알 먹은 다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애라! 모르겠다! 내 할 일만 하련다!
앞으로 강현이 얼마나 스케일 큰 일을 벌일지 어렴풋이 짐작한 그는 관련되어 뒷수습을 하기 싫었다. 자그마치 우주가 걸린 일이니 그 스케일이 얼마나 큰가? 겨우 지구촌에서 놀 뿐인 잭이 감당할 건덕지가 아니었다.
= = = = =
“아즈삭. 바알제붑 프로젝트를 가동해.”
[네, 박사님.]
바알제붑, 혹은 바알. 원래 농경공동체인 가나안 인들의 신으로 풍요와 폭풍우의 남성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대립되던 야훼 신앙, 즉 기독교에서는 바알을 지옥의 악마군주로 정의했고 악마로 알려졌다. 흔히들 파리대왕으로 묘사되는 존재가 바로 바알이었다.
그리고 파리로 묘사되듯 파리와 역병의 이미즈를 가지고 있어서 강현이 자신의 로봇 바퀴벌레로 구성된 첩보망에 붙인 이름이었다.
일단 첩보망이 가동되었으니 이제 워싱턴 정가에서 얌전히 생존에 힘쓰고 있던 바퀴벌레 로봇들이 이제 무차별적으로 자신들이 기거하는 곳을 도청해 그 자료를 아즈삭에게 보낼 것이다.
그러나 아즈락이라는 미국 첩보를 대표하는 인공지능이 생겼기 때문에 과거처럼 그냥 데이터를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암호화된 정보를 보낼 수 있도록 일련의 바퀴벌레 로봇의 교체가 있었고 좀 더 교묘해 졌기 때문에 ‘프로젝트’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조직화 된 체계가 잡힌 것이다.
그래도 조심하기는 해야 했다. 평소와 다르게 급증한 데이터 출입량은 아즈락의 경계심을 살 가능성이 있었다.
바알제붑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워싱턴 정가에서 네바다 프로젝트에 관련되어 로비를 벌이는 이들의 면면을 확인하자 강현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이것들이..”
유대인, 아랍 자본은 물론, 전통적 미국인 자본까지 미국 내 자본 세력이 거의다 로비를 진행 중이었다. 물론 서로 견제를 하기는 하지만 우주 진출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었다. 네바다 프로젝트에 관한 로비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아. 역시 세상 돌아가는 걸 보는 눈이 있으니 지금껏 생존할 수 있었던 거겠지.”
우주에 진출하게 되면 인간의 세상은 바뀐다. 인간이 생활하는 환경이 바뀌면 사회 시스템 역시 바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그 바뀌는 시스템을 선도하거나 혹은 자신들의 입맛에 만들고 싶어할 것이 너무나 자명했다. 그렇지 못하면 도태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강현 역시 그들이 행동에 나설 것을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무척이나 빨랐다. 적어도 위성 공장의 완성과 성과가 드러난 이후에서나 움직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자신에 대한 자본가들의 신뢰가 높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성공 여부가 완전히 확인되지 않는 일에 많은 돈을 쏟아부으려고 하고 잇지 않은가?
하지만 강현은 그들을 참여시킬 수가 없었다. 자본의 힘이 우주 진출에 관여하게 되면 공유지를 무한대로 늘려서 자본주의를 붕괴시켜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금이 가게 된다.
우주시대란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일조한 자본주의와 그 세력은 생존할 것이고 사람들에게 여전히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더 강해지면 정치권과 연대해 우주의 무한한 자원을 두고 무슨 개발권이니, 무슨 유통권이니 하며 이권사업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이른바 정경 유착을 통한 사어비다.
물론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자본가란 존재의 집요함과 이권에 얽히며 수백년간 전통을 지켜온 유서깊은 가문들의 힘을 파악한 강현에게는 그런 미래가 그리 가능성 없어 보이지 않았다. 유대인이라는 종족도 수 천 년간 나라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나라를 건설하지 않았는가? 목적을 위해서 세대를 잇고 결국은 쟁취해 내는 인간의 집념, 그리고 그를 위한 전통있는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그들은 시간이라는 요소에 대해서는 강현에 대해 압도적인 강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니까 강현은 한 방에 대대적인 자원 증대를 통해 신용 화폐의 힘을 축소시키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중심의 세계질서를 붕괴시킬 수가 없었다.
그런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공격이 들어온다? 강현에게는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얼마나 달갑지 않았냐면 EM 드라이버를 설명할 기초 이론을 연구하던 작업도 멈추고 자본가란 하이에나가 그 더러운 군침을 흘리지 못하게 할 방법을 생각해 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것이다.
한 참을 고민하던 강현은 정치적 문제의 훌륭한 조언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파셀 의원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강현이 연락하자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하하. 그래, 강 박사. 이번에는 또 어떤 일 때문에 연락을 한건가?]
“누가 제가 차려둔 네바다 식탁에 함부로 포크를 들이밀려고 하더군요.”
[하! 그 일인가? 나도 잘 알고 있지. 나한테도 로비스트가 왔을 정도이니..]
미국에서 로비스트가 불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거를 앞둔 후보가 로비를 받는다는 것이 이미지가 별로 좋지는 않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자는 물론 대중까지 아울러야 할 파셀 의원이 그런 로비스트로 인해 부자 지지당이라고 불리는 공화당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해지는 것이 달갑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랬어요? 아무튼 저는 누가 함부로 제 권리를 침해하는 일에 무척이나 불쾌해 졌어요.”
[허허, 하지만 NASA는 허락해 주었지 않은가?]
“미국 정부야 신용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권에 미친 자본세력은 신뢰와는 거리가 멀어요. 미국 정부는 저의 이익이 곧 미국의 이익이 될 수 있으니까 함께 할 수 있지만 자본세력에게 저의 이익이 항상 그들의 이익으로 연결된다고 볼 순 없으니까요.”
강현은 미국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강현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마다 미국의 국력은 신장된다. 또한 그는 절세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는 성실한 납세자였다.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강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자본세력은 다르다. 그들은 국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쫓는다. 월가의 모기지론 사태는 그들이 얼마나 탐욕적이고 이기적인지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사건이었다.
[자네도 돈이 많지 않은가?]
“돈이 많은 거랑 돈 버는데 미친 거랑 완전히 다르죠.”
[흐음..]
파셀 의원은 신중하게 생각했다. 강현의 말은 그야말로 자정주의 세력이 뻗어나간 시발점이었다. 강현은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네바다 프로젝트에 걸리는 수작에 이렇게 민감하게 나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파셀 의원이 전적으로 강현의 편을 들기도 어려웠다. 아무리 자정주의의 물결이 몰아쳤다고는 하지만 공화당은 공화당. 부와 권력을 향한 인간의 탐욕은 명예만으로는 완전히 어쩌할 수가 없었다. 공화당원들이 모두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라 명예만으로 만족하는 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