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전력이 들어가고 실험을 시작하자 NASA의 연구실에서 얻었던 결과와 축이 회전축을 중심으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추진력은 존재했다.
강현은 운동량 보존 법칙을 파괴하지 않은 가설들을 여러 개 설정하기 시작했다. 일단 암흑물질은 제외했다. 존재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예상할 수도 없고 이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인슈타인의 우주 상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암흑물질을 이론적으로 가정하고 풀기에는 너무나 미지수가 많았다.
만일 이론적으로 수식을 전개해 나가다가 무언가 오류가 발생한다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강현은 일단 다양한 모양의 공진장치와 다양한 자전관을 구입해 닥치고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론적인 모델이 없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공학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Try & Error!
과거 근대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지금처럼 기술이 고도화 되지 않아 실험 장비를 꾸리는 데 필요한 비용이 그리 높지 않을 때, 그리고 이론적으로 설명이 불완전해 완벽한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하고 시간을 줄여야 할 때. 바로 그럴 때 쓰는 일종의 노가다였다.
노가다라고 표현하니 뭔가 비과학적인 느낌이 들지만 그렇지 않다. 무수히 반복되는 실제 실험으로 축적되는 데이터는 그 현상을 설명해 줄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해주고 차후 좀 더 나은 공학 기술의 개발을 위한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완벽한 시뮬레이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실제로 실험을 해봐야 한다. 성공하면 성공한 데로 실험 결과를 정리해야 하고 실패하면 실패한 데로 결과를 정리해야 했다. 이공계에게 실험의 실패는 좋은 친구인 것이다.
강현은 여러 실험을 거친 후 추진력의 변수가 되는 것들을 발견했다. 일단 공진장치의 크기와 모양은 확실하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자전관에서 뿜어지는 극초단파의 평균 파장 역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극초단파의 파장과 공진할 수 있는 구조일수록 추진력이 조금씩 더 높아졌다. 나사의 가설대로 어쩌면 양자 요동과 가상 플라즈마 토로이드(도넛 모양)이 상관관계가 있는 듯했지만 단정하지 않았다. EM 드라이버의 추진력을 고전적인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양자 역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만 머릿속에 넣었다.
데이터를 어느 정도 축적하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근사치를 만드는 선형 방정식을 구성한 후 이 선형 방정식에 의거해 가장 효과적인 출력을 내는 공진 장치의 치수와 극초단파의 파장을 추정했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장치를 꾸며 실험했다.
“흐음.. 펜타봇에 이걸 달까?”
슬러스터 추진체를 빼고 대신에 배터리를 넣어도 데스크탑 본체 정도되는 크기의 장치를 달면 꽤나 부피가 나갈 것이다.
“아니야. 그래도 최소한 드라이브가 세 개는 필요하니까 펜타봇에 타는 건 좀 그렇고.. 꼼짝 없이 운반용 우주 유영 로봇을 쏘아 올려야 하는 구나..”
우주 공간에서 자유 자제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개의 슬러스터가 필요하다. 이유는 펜타봇을 지지하기 위해 3개의 다리를 배정한 것과 같다. 3차원 공간에서 직진 운동을 하기 위해 가해지는 힘은 반드시 이차원 평면으로 존재해야 회전 운동와 직선 운동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아, 결국 최적화 설계를 해야되네.”
EM 드라이버를 세 개는 달아야 하니 강현은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문질렀다. 연구하는 건 좋아하지만 일일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야하는 설계는 질색이었다. 그래서 아즈삭을 만들고 가장 먼저 시킨 일이 설계보조였다.
아무리 아즈삭의 능력이 뛰어나게 되었다고 해도 우주에 쏘아 올릴 로봇에 최대한 많은 기능이 들어가도록 부피를 줄이는 작업이었다. 복잡한 선과 파이프 라인의 정리는 물론이고 부품들의 소형화까지 함께 해야하니 설계 작업할 양이 대폭 증가하는 것이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더 나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펜타봇 수송용 유닛의 디자인은 발이 세 개인 부메랑처럼 생겼다. 중앙은 배터리 장치와 자세 제어장치, 위치 전송 장치 및 통신 장치가 들어있었고 각 끝에는 소형화 시킨 EM 드라이버가 하나 씩 달려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결합하는 다리는 각 끝에 회전 모터와 구동장치가 있어 각 EM 드라이버의 방향을 자유 자재로 바꿀 수 있었다.
펜타봇의 이동을 위해 수송용 유닛에까지 로봇팔을 달 필요는 없었다. 중앙 부분에 펜타봇이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빠른 회전을 위해 길이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어진 길이는 강현이 구상한 매스 드라이버용 발사체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강현은 번뜩이는 기지 하나로 이를 해결했다. 스프링 하나 만으로 우주 공간에서 저절로 다리가 펴지도록 한 것이다.
일단 발사체에 넣을 때에는 접혀있던 다리가 우주 공간에서 캡슐에서 개방되면 스프링의 장력에 당겨저 저절로 펴진다. 일단 펴지면 잠금 장치에 잠겨서 그대로 고정되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우주 수송용 유닛의 이름은 트리플론이 되었다. 다리가 세 개라서 트리플이라는 단어와 드론을 합성한 이름이었다.
“아즈삭. 공장의 건설은?”
[일단 관제용 컴퓨터 하드웨어의 설치가 완료 되었습니다.]
“아아, 스페이스 넷 말이지?”
어떤 영화에서 폭주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인공지능의 이름과 비슷했지만 위성 궤도의 로봇들과 앞으로 건설될 소행성군 광산 공장과의 통신을 관장할 인공 지능의 이름으로서 이보다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
“그럼 스페이스 넷은 로봇 제어에 경험을 쌓도록 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발사체를 만들어보자.”
[NASA의 특허 중에 쓸만한 특허가 많습니다. 이를 이용하면 시간이 단축에 용이합니다.]
“쩝. 하긴 혼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긴 하다.”
강현은 조직과 분업의 힘을 맛보았다. 아즈삭과 단 둘이서만 일을 진행했다면 지금 매스 드라이버 건설에만 신경쓰느라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아참! 펜타봇과 트리플론의 제작도 시작해야 하는데..”
[스페이스 넷에게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로봇 제어에 대한 경험과 조립 공정에 대한 경험도 쌓을 수 있을 겁니다.]
“좋아. 그렇게 하자.”
해도 해도 할 일이 많았다. 일단 매스 드라이버용 발사체의 경우에는 펜타봇이나 트리플롯 보다 훨씬 제작이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매스 드라이버의 어마어마한 가속력을 견디면서 성층권을 넘나드는 마찰열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히 거대한 이점이 있었다. 왜냐면 매스 드라이버의 힘 만으로 대기권을 탈출 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로켓 추진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물론 EM 드라이버가 달린 트리플론이 있기에 우주 공간에서도 필요가 없었다.
강현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 로봇들을 축적하고 스페이스 넷을 교육하면서 매스 드라이버의 완공을 기다렸다.
NASA에서는 매스 드라이버를 지으면서 발전소도 건설해야 했는데 당연히 강현이 설계한 작품이었다. 지역이 바닷가 근처가 아니라 터빈을 사용하는 발전소는 건설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터빈을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초고압 증기는 다시 냉각 장치를 거쳐 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열량을 배출하기 위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많은 물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이 황무지에 물을 끌어오는 문제가 다시 불거진다.
그래서 NASA는 마음에 안들지만 강현의 설계대로 거대한 출력을 내기 위해 수 많은 풍력 발전소와 태양전지로 이를 해결하기로 했다. 솔직히 강현의 레드솔라셀은 그 효율이 무척이나 뛰어났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혹여나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근처 도시에서 충당할 계획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강현의 계획에 따랐다.
솔직히 ‘신 재생 에너지만을 이용한 우주 진출 센터’라는 명예가 탐이 나지 않았다면 엔지니어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발전소가 해결되었다고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매스 드라이버의 가장 중요한 기술적 핵심은 전력 제어였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전압을 가해야만 로켓이 성층권을 탈출하는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매스 드라이버의 장점은 바로 이 에너지에 있었다. 로켓 시스템은 그 연료까지 함께 공중으로 쏘아올리기 때문에 원하는 발사체를 우주로 쏘아보내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드는 것이다. 또한 쏘아올리는데 걸리는 시간동안 중력이 당기는 에너지를 지탱하기 위한 연료도 들었다.
하지만 매스 드라이버로 공기저항을 고려한 중력 탈출 속도만 확보할 수 있다면 이 모든 비용이 획기적으로 감소한다.
물론 여기에는 또 하나의 전제 조건이 있다. 매스 드라이버 내에서 발사체가 탈출 속도를 얻는 동안 발사체와 매스 드라이버가 그 어마어마한 압력을 견뎌야 한다는 것, 거기에 거대한 전압을 사용하는 시스템에서 발사체와 레일간의 접촉 부위의 마모도가 최소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출 속도에서 견딜 수 있는 재료는 이 지구상에 없다. 금속은 마찰열에 녹아버릴 것이 분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현은 지속적으로 레일에 윤활제를 붓는 방법을 생각했다. 금속 가공 공정에서 고속으로 쇠를 깎아 낼 때 지속적으로 윤활제 및 냉각제를 붙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최대한의 출력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성층권을 뚫기 위한 내열 타일이 붙어있는 발사체의 반복 활용을 위해서는 마찰 같은 내구성 하락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그래서 매스 드라이버의 내부에는 세 줄의 마그네틱 레일이 깔려있다. 모두 질소 탱크과 냉각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어 초전도체이고 여기에 자기 부상 효과로 매스 드라이버와 발사체의 접촉면을 제거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레일건의 원리를 어떻게 구현한다는 것일까? 레일건은 전압이 걸린 양 레일 위에 도선이 놓이고 이 도선에 전류가 흘러야만 힘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현은 이 문제를 해결할 힌트를 테슬라 코일에서 얻었다. 정확히는 테슬라 코일의 스파크 겝에서 그 힌트를 얻은 것이다.
전압이 강하면 공기를 뚫고 전류가 흐른다. 비록 전류가 공기를 지나가며 전압 강하가 일어나지만 그때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과 마찰로 인해 생기는 에너지 손실을 비교하면 차라리 공기 중을 통과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이 더 작다. 그리고 전압이 강하면 강할 수록 공기의 분자 역시 분극화 되거나 플라즈마화 되어 오히려 전류가 흐르기 쉬워진다. 전압이 높을 수록 손실이 더 작아지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신기할 것도 없다. 임계점을 넘는 순간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는 건 물리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강현이 튜브 형태의, 그것도 인간이 아니라 로봇을 쏘아 올리는 매스 드라이버를 구상하고 실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낼때, 이런 자연 현상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발사체 설계를 검수합니다.]
아즈삭이 강현과 함께 설계한 발사체의 설계도를 물리 엔진에 넣어 시뮬레이션 하기 시작했다매스 드라이버에서 발사체가 견딜 수 있는 내구 한도, 그리고 우주에서 로봇을 사출하고 복귀하는 시뮬레이션까지 끝마쳤다. 시뮬레이션 과정에서는 별로 큰 문제가 없었으니 강현은 만족하고 제작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