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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33화 (133/241)

133화

그건 강현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그의 능력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곳이 바로 NASA였다.

강현은 철저하게 검증된 이론과 학문적인 방법론에 입각해 모든 가능성을 따지고 일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계획하는 매스 드라이버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까 벌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일에 NASA가 빠져서는 안된다. NASA의 존립 목적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박사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NASA도 참여시켜 주세요.”

“싫어요.”

“박사님. 그렇게 나오시면 저희 NASA가 여론에게 어떤 비난을 받을지 상상이나 되세요?”

“흐음..”

일개 개인이 하는 일을 거대한 조직이 따라잡지 못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기 시작하는 순간 정치권은 NASA에 예산을 분배하는 일에 부담감을 느낄 것이다. 막말로 예산이 깎이거나 한다면 그 날로 오랫동안 우정을 다져온 NASA와 강현의 관계가 갈라질 수 밖에 없다.

강현은 재밌는 일을 나눠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NASA와의 관계가 더 소중했다. 그의 청소년기가 꽃피웠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막대한 돈을 기부하지 않는가?

“어쩔 수 없죠. 같이 해요.”

“감사합니다.”

“그럼, 일단 땅부터 따로 구입하세요.”

“네?”

“어디까지나 같이 참여하는 건 매스 드라이버까지에요. 그 외에 제 땅에서 제가 만드는 것에 관여 시킬 일은 없어요.”

“쩝...”

이레이는 아쉬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 진출에 중요한 매스 드라이버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강현이 그의 공장에서 무엇을 만들든지 그의 자유였다.

NASA는 이레이의 설득에 힘입어 강현과 함께 매스 드라이버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그리고 벡텔은 땅을 치며 분통해 했다. 매스 드라이버 프로젝트가 사실은 NASA에서 강현의 개인 프로젝트에 얹혀가는 것이라는 뒷 이야기가 몇 몇 직원의 입에서 퍼져나갔던 것이다.

만일 강현이 NASA와 함께 하기로 하지 않았다면 매스 드라이버의 건설은 전적으로 벡텔 혼자 맡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세계 유일의 매스 드라이버 건설 경험이 있는 회사로 엄청난 이득을 올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짱 황이었다. 미 정부는 매스 드라이버 건설을 어느 한 회사에 맡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건설 역량이 있는 주요 미국 건설사들을 상대로 골고루 경험을 쌓도록 할 생각이었다.

아무튼 허락을 받자마자 미 정부는 즉시 강현의 말대로 따로 네바다 주의 땅을 구입했고 네바다 주에서는 옳다구나 팔았다.

그들이 구입한 땅은 강현이 구입한 땅의 바로 이웃에 위치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부가 자기 마음대로 매스 드라이버를 건설할 땅을 선택했을 때 강현이란 존재는 그건 그것대로 놔두고 자신만의 매스 드라이버를 만들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정부에게 부담이 된다. 매스 드라이어의 건설 비용 중 상당 부분이 강현의 어마어마한 재산에 힘입고 있었기 때문에 강현이 따로 매스 드라이버를 만든다고 하면 갑작스레 재정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일단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건설사들이 입찰을 받자 먼저 기반을 닦고 정지 작업을 하기 전 공사하는 인부들을 위한 편의 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치수시설이 가장 급선무였다. 인부들에게 제공할 물은 물론이고 정부로서도 매스 드라이버 시설을 결코 무인 시설로 놔둘 수 없었기 때문에 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 백 키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로를 만들기에는 예산이 빡빡했다. 또한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어 수 자원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 상황에서 물 사용에 대한 갈등이 빚어질 빌미도 있었다.

그래서 NASA는 어쩔 수 없이 매스 드라이버의 운영 방침을 기간제 파견으로 하기로 했다. NASA의 직원 중에 추첨으로 몇 사람을 뽑아 매스 드라이버의 관리를 맡기기로 한 것이다. 물론 영구적인 것은 아니며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엔지니어에게만 해당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차후 네바다 매스 드라이버 기지는 ‘수용소’란 악명을 가지게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일단 기간제로 직원을 파견하기로 하자 그 뒤는 간단했다. 그저 물을 저장하고 제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추가로 건설하고 중간중간 물 탱크로 손실되는 물만 채워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대규모 우주 정원 실험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기 때문에 우주에 자연 생태계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햇빛 없이 인공 조명으로 각종 식물을 키우고 물을 정화하는 자연 순환을 모방하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아무튼, 편의 시설이 거의 다 지어져가자 이제는 본 공사를 위한 설계도가 필요했다. 과연 천재는 어떤 매스 드라이버를 구상했을까?

“.... 작네요.”

로켓 엔진 개발부 소속 백전홍 연구원이 설계도에 나온 치수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뭐지?”

화성 과학 연구실의 수석 연구원인 오로곤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현이 설계한 매스 드라이버를 봤을 때 그들이 받은 인상은 롤러코스터 같다는 것이다. 공중에서 봤을 때에는 중심에서부터 밖으로 소용돌이를 그리고 있었고 옆에서 봤을 때에는 깔대기 모양처럼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튜브 형태였다. 총 길이는 길었지만 이런 매스 드라이버로는 도저히 우주 왕복선을 날릴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강 박사님. 이 정도면 우주 왕복선은 쏘아 올릴 수 없겠는데요?”

누군가의 질문에 화상 통화로 그들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사람을 쏘아 올리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니까요.]

사람을 쏘아 올릴 정도로 가속하는 건 정말로 못할 짓이다. 레일의 길이, 발사체의 마모 정도를 생각하면 레일이 짧은 것이 좋다. 하지만 레일이 짧아지면 사람에게 걸리는 중력 가속도가 커져야 한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부담없을 정도로 레일의 길이를 늘리는 것도 어렵다. 발사체와 레일 사이의 마모 정도, 그리고 공기 저항과 전력량 등 그에 수반하는 각종 비용을 생각해야 했다.

“사람이 아니라면 역시 로봇인가요?”

[그렇죠.]

“하지만 로봇을 쏘아 올린다고 해도 너무 작은 것 같은데요. 위성 한 기만 쏘아 올릴 생각인가요?”

[아니요. 여러 번 쏘아 올릴 생각이라서요.]

“여러 번 쏘아올린다? 하지만 어떤 장비라도 최소 크기라는 게 있습니다.”

[괜찮아요. 우주에서 조립할 생각이거든요.]

“네?”

[무인 우주 공장을 만들기 위해 로봇을 대량으로 쏘아 올릴 거에요.]

그날 NASA는 뒤집어졌다.

= = = = =

매스 드라이버가 필요한 이유는 로켓 엔진의 단점 때문이다. 로켓 엔진은 기본적으로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로 추진력을 얻는다.

만일 로켓 엔진에 싣는 물자의 무게가 크다면 어떻게 될까? 로켓 엔진의 출력과 실어야 하는 연료의 양이 많아지게 된다. 이는 단순히 싣는 물자의 무게가 증가되는 만큼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많아지는 연료의 양만큼 다시 더 큰 출력과 그에 필요한 연료의 양이 많아져야 하기 때문에 물자의 무게와 필요한 연료의 양은 일차미분방정식의 문제가 되고 그 해는 반드시 지수 함수가 된다. 즉, 무게가 증가할 수록 제곱차수가 높아지는 수준으로 연료의 양도 증가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지구에서 우주로 쏘아 올리는 화물의 무게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매스 드라이버를 사용한다면 매스 드라이버가 지탱할 수 있는 무게 만큼 화물의 무게도 증가할 수 있다. 물론 공학적으로 한계는 존재했다.

핵심은 바로 우주로 물자를 올려 보내는 비용이 대폭 줄어든다는 것이다. 현재의 3단 로켓 기술에서 1단 만 줄어들어도 비용이 3분의 1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게 가능성이 있는 소린가요? 궤도상에 무인 공장을 만들겠다니..”

항공우주 기술부의 책임자 마이클이 어이가 없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더 황당합니다.”

우주비행부의 썬이 입을 열었다. 우주 무인 탐사 계획은 이미 진행되고 있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우주 환경에서 로봇은 인간을 대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우주 공장의 건설에 사람의 손이 필요 없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강 박사의 인공 근육은 우주에서는 작동하지 않지 않소?”

강현의 인공근육이 나오자 마자 이를 응용하기 위해서 NASA의 연구원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공근육은 지구상의 온도와 압력 범위에서 제대로 작동했고 우주에서는 내구성이 형편없었다. 너무나 낮은 온도 때문에 인공근육을 구성하는 핵심 고분자들이 딱딱해져서 금방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강 박사가 어떤 로봇을 만드느냐에 달려있겠죠.”

그들이 예상한 대로 강현은 일반적인 로봇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HA같은 이족 보행 로봇은 무중력에서는 쓸모없는 고철덩어리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무중력인 위성 공장 건설 환경에서 인간대신 일할 가장 적절한 로봇의 조건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신축성이 있는 팔이다. 늘었다 줄었다해서 구조물에 달라붙어 본체를 지지하고 한 번에 먼거리를 이동하거나 다른 로봇에게 자재를 효율적으로 건내주기 위해서는 팔이 길쭉하게 늘어나는 편이 매우 유리하다. 괜히 화성침공의 외계인이 문어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신축성 있는 팔을 만들 수 있을까? 폴리머? 절대 영도 수준으로 떨어지는 온도에서 폴리머의 탄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 피스톤? 어렵다. 피스톤을 움직일 유체가 얼을 수가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낮은 진공으로 인해 끊임없이 유출이 되어 오래 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강현은 가장 고전적이면서 안전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모터와 톱니바퀴가 바로 그것이다.

이 로봇팔의 구상은 바로 접히는 삼단봉에서 얻었다. 직경이 다른 파이프가 다른 하나의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에서 파이프 내부에 모터를 설치하고 그 모터에 톱니바퀴를 달고 안쪽 파이프의 표면에는 그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는 톱날을 새기면 모터의 움직임에 따라 길어졌다가 줄어드는 구조인 것이다.

원래 강현이 원했던 모습은 만화 영화처럼 팔에 가로로 줄이 나있고 자유자재로 휘는 로봇팔이지만 그렇게 수준 높은 로봇팔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모터만 가지고 설계를 하기에는 기계공학적인 한계가 있고 전자기적인 반발력 등을 사용하려고 해도 이런 힘들은 장(場 ; Field)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정밀한 조정이 힘들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은 우주 공간에서도 탄성이 좋으며 피로강도가 높은 폴리머를 개발하는 것이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필요 없었다. 아즈삭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약 100대의 로봇을 올려놓기만 한다면 소행성까지 진출할 수 있는 위성공장을 약 2년 안에 완성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강현은 곧 우주 공장용 로봇을 완성했다. 두꺼운 5각형 판자처럼 생긴 몸통과 옆면에는 회전 관절과 신축성 로봇팔을 달았고 카메라는 윗면과 아랫면에 각각 달려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6면방위로 우주 부영을 위한 슬러스터, 위치 탐지를 위한 GPS 장치와 송수신기가 달려있었다.

덕분에 로봇의 크기는 강현의 가슴 높이까지 왔지만 매스 드라이버로 위성궤도에 쏘아 올리기 어렵지 않을 듯 했다.

강현은 이 로봇에 펜타봇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팔이 5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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