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12-모색>
이러한 자들은 증오를 주저하지 않고 이용한다. 대중들의 목에 증오의 사슬을 달아 이리 끌고 다니고 저리 끌고 다니며 제 입맛대로 다루려고 든다. 이것이 인종과 국경을 넘어 인류가 화합할 수 없게 만드는 근본적인 인류의 한계가 아닐까? 누구나 권력자가 되면 높은 가능성으로 사이코 패스가 된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존재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인류와 문명이 더욱 발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권력자들을 모조리 끌어내려 권력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면 될까? 높은 자리가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게 되면 어떨까? 시스템적으로 권력의 자리가 충성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로 만들면 어떨까? 누군가 영원히 권력을 누리지 못하게 사회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나 그것이 실현되기에는 갈길이 멀다. 대중은 미개했고 권력자들은 교활했다. 이 관계의 구조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계몽이 필요했지만 대중의 계몽을 바라지 않는 권력자들은 끊임없이 방해할 것이다.
3S 정책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스포츠, 섹스, 스크린에 대중이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들어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스스로의 인지 변화와 사회 개선을 위한 여력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쾌락이라는 당근만 제시해서는 대중이 말을 잘 안 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공포를 채찍으로 사용한다. 범죄, 사고, 질병, 전쟁. 실제로 선거철만 되면 한국 주류 정치가들이 가장 잘 써먹는 것이 바로 북한 미사일이다.
권력가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한 번 코가 뚫린 대중들을 다루는 것은 쉽다. 아니, 대중을 그런식으로 길들이는 것은 흐름을 만드는 것이며 어떤 흐름이라도 한번 생성되면 관성을 가지게 되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한 쪽으로 날아가는 공의 방향을 다른 쪽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 두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관성의 법칙이다. 그러니 우민화 정책에 코뚜레가 걸린 대중은 권력자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다가 스스로 걷게 된다. 미개화는 가속되며 권력의 구조는 공고해진다.
이렇게 이미 공고해진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 반대의 움직임이 일어나야 하며 흐르는 물이 반대로 흐르기 위해 반드시 난류가 발생하듯이 혼란과 붕괴가 일어,
[박사님.]
아즈삭이 사고의 바다에 침잠해 들어가던 강현의 의식을 수면 밖으로 꺼내왔다.
“아, 이야기 하다가 말았지?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 했지?”
[종교와 그것을 강요할 때의 폭력성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아무튼 내가 헨델 회장의 말에서 불쾌감을 느낀 이유는 바로 그거야. 자신의 믿음과 신념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거지.”
강현은 과학을 종교의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종교와 과학이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헛소리다. 예민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날조다.
종교는 믿음을 근거로 한다. 과학은 의심을 근거로 한다. 성서에 적힌 말은 부정하거나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에 해석의 변화란 방법으로 시대에 적응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과학은 절대적인 법칙이라고 생각되는 원리라고 하더라도 그 반대의 사례가 나타난다면 틀렸다고 지적받고 수정된다.
이 변화의 방법론이 가져오는 차이는 극명하다. 종교는 그 패러다임의 변화가 불가능하거나 시대에 뒤쳐지거나 혹은 변화를 위해 피를 흘리는 수 밖에 없다면 과학은 변화를 위해 증거만 존재하면 된다. 이는 패러다임의 혁신을 불러오며 인류의 힘을 비약적으로 끌어오린 힘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종교는 삶의 원리를 가르쳐주기 때문에 인간의 도구에 불구한 과학과 대등하게 취급하면 안된다고. 그러면 강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종교라는 것도 인간의 도구에 불구하다고. 신앙에 파묻힌 이들에게 오히려 도구에 파묻힌 삶을 사는 것이 누구냐고 물을 사람이 바로 그였다.
강현은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과 문명을 위해 신을 분석하고 이용하고자 할 사람이었다.
[불쾌하시다면 개입하실 겁니까?]
“글쎄.. 개입하기에는 너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저들은 거대한 네트워크다. 반면에 강현은 개인이다. 저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흐름을 조작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강현의 자본력은 저들을 상대할 수 없으며 가장 큰 무기인 과학 역시 그들의 입장에서는 상품에 불과했다.
“불쾌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 그들을 돕는다는 것은 집안 기둥뿌리를 뽑아 기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신의 안위와 영광을 던지고자 하는 행위는 넓고 파도치는 바다에 바위를 던진 것과 마찬가지다. 잠깐 물이 튀고 물보라가 일어나고 그 뒤에는 거대한 조류의 흐름에 쓸려 사라진다. 아무리 강현이라도 지금 그가 가할 수 있는 영향력이란 고작 그정도란 뜻이다.
그래서 강현은 이번 일에 침묵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학살을 당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엽기는 하지만 인간이 악의에 희생당하는 이는 그들만이 아니다. 수 많은 범죄에 희생당하는 사람을 전세계적으로 계산해보면 팔레스타인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다만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유지해야하는 국가가 나서서 학살을 자행한다는 비난,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견제하려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보다 덜 비극적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아즈삭. 돈이 얼마나 있지?”
[약 2조 달러 정도 있습니다.]
“그렇게나 많아?”
강현은 상상을 초월하는 자신의 재산에 깜짝 놀랐다. 귀찮아서 그 동안 신경 쓰지 않았는데 무려 2조 달러(약 2천 조원)이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미국 한 해 국방 예산이 약 6천억 달러 정도 되고 만수르 왕가의 재산이 약 1조 달러 정도 되니 혼자서 미 국방 예산의 약 4배, 만수르 왕가의 두 배 정도 되는 재산을 형성한 것이다. 더 무시무시한 점은 이 모든 돈이 거의 다 현금이라는 점이었다.
비현실적인 숫자였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전 세계의 부자들과 다국적 기업,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각종 로열티로 현금을 벌어 들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특히 방사능 반감기 가속 장치가 한 대에 거의 1억 달러 씩 벌어 들였고 또한 석유 제조 특허로 전 세계에서 돈을 갈퀴로 끌어 모았다. 전세계인 60억명, 한 사람이 천 달러씩(약 100만원)만 강현에게 로열티를 주면 6조 달러니 2조 달러라는 현재 재산이 그리 비현실적이지는 않았다.
“그 정도면 유대인과 돈 싸움을 할 만한가?”
강현은 비현실적인 숫자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가늠해 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빌 게이츠의 개인 재산만 해도 약 700억 달러 정도. 유대인의 숫자와 전 세계란 범위를 생각해 보면 강현의 개인 재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돈을 더 모아 유대인을 상대하는 것도 문제다. 강현은 자본가가 아니다. 그는 과학자다. 자본가의 방법으로 자본가를 찍어 눌러봤자 곧 새로운 자본가가 탄생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일은 단순히 땅 싸움에 민족주의가 얽힌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이익에 얽힌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도도한 흐름의 하나였다.
즉, 자본가의 방법으로 유대인을 상대하는 것은 UFC 경기장 안에 바둑 기사가 들어가는 만큼 무모한 일이라는 것이다. 설사 승리한다고 해도 바둑기사가 승리한 UFC 경기가 인정이 될 리가 없다. 강현이 그 승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UFC 선수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바둑 기사’인 그를 찍어내어 UFC 경기(=자본주의)를 지키려고 할 것이다. 아무리 강현이라도 대세를 거역하는 것은 힘들다.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를 파괴해?”
강현의 머릿속에 매우 재미있는 발상이 떠올랐다. 자본주의가 붕괴되기 위한 전재 조건은 무엇인가? 한 가지 발상이 떠오르자 그에 맞추어 그의 머릿속에 지금껏 없었던 초 장기 계획이 구상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방법은 자신의 적성에 아주 잘 맞는 듯 했다.
“재밌겠네. 아즈삭.”
[네, 박사님.]
“땅 좀 사자. 이것 저것 만들게 많아.”
[네, 박사님.]
= = = = =
“박사님, 부르셨습니까?”
제이슨 킬덤은 강현이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하자 그의 연구실로 찾아왔다.
“다름이 아니라, 제 통장 잔고에 돈이 꽤 많이 들어 있어서요. 그냥 묵혀두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요. 돈은 돌고 돌아야 하는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재산 관리를 맡길 만한 사람을 킬덤 씨 이외에는 별로 떠오르지가 않아서요.”
“영광입니다.”
킬덤은 세기의 천재의 신뢰를 받는 영광을 느꼈다.
“여기요.”
그는 강현이 넘겨주는 서류를 확인했다. 재산관리를 맡기기 위한 위임장과 강현이 관리를 위임하기로 한 재산 목록을 살폈다.
목록을 살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딱 현금 항목 하나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 십, 백, 천, 만... 조... 히익!”
동그라미를 하나하나 샐때마다 킬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다가 새파래져갔다. 동그라미가 총 12개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냉정한 태도도 버리고 깜짝 놀라버렸다.
“이, 일 조 달러라니요..”
미 국방 예산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액수에 킬덤의 표정이 새파래진다.
“그 동안 깜박하고 묵혀두고 있다가 얼마전에 알게 됬어요.”
강현의 말에 킬덤이 멍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강현은 무안한 듯 귀 밑을 긁적였다. 하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관심도 두지 않는 자신이 이질적인건 당연했다.
“어, 어떻게 운용할까요?”
아메리카 뱅크를 살까요, 아니면 골드만삭스를 살까요? 킬덤의 목구멍으로 나오려던 말이 다시 넘어갔다. 1조 달러면 아메리카 뱅크든 골드만삭스든 경영권을 빼앗아 오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강현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 그와 인연을 맺고 지내온 시간 동안 그는 뼛속까지 학자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삼 돈 맛을 알아서 기업인이 될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냥 손해 안 나게만 운용해 주세요. 금융권 출신이시니까 잘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월가에 있을 때 자산관리를 배우지 않았을 리가 없다. 주식 트레이딩은 자산 관리의 하부 항목일 뿐이다. 게다가 강현에게 고용된 이후 한국 제현 투자회사, 미국 제현 투자회사를 거치며 여전히 자산관리에 대한 감을 잃지 않고 있었다.
재산 관리의 리스크는 재산이 많아지면 많을 수록 줄어드는 법이다. 돈이 없는 이는 하나의 달걀밖에 없어 하나의 바구니만 담을 수 있지만 강현의 경우에는 하나의 바구니에 달걀을 수 백 개씩 담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바구니가 엄청나게 많아진다.
만에 하나 하나의 바구니가 떨어져 달걀이 모두 깨어져도 다른 바구니에 담긴 달걀들이 부화해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되어 또다시 달걀을 씀풍씀풍 낳게 된다. 그러니 자본주의란 돈 많은 사람이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인 것이다.
“그럼, 돈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손해보지 않고 자금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아직 1조 달러 더 있어요.”
“....”
딴에는 강현을 흡족하게 해주기 위한 립서비스였지만 또 1조가 더 있다는 말에 킬덤은 눈만 끔뻑끔뻑 깜빡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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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힘들다..
PS- 빌 게이츠 유대인이라는 오류를 수정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