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27화 (127/241)

127화

현대 공학에서도 이 매커니즘을 극대화하여 사용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재료공학이다. 이 응축의 핵은 각각이 단결정을 형성하기 때문에 철강 따위에서 마이크로 구조를 정밀하게 조작하기 위해 조성과 응결 온도 같은 다양한 변수를 조정한다.

또 다른 예로는 반도체 실리콘을 제작하는 곳이다. 반도체용 실리콘 와이퍼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결정 실리콘 잉곳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핵생성 매커니즘을 이용해 불필요한 핵의 생성을 막고 유일한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단결정 실리콘 조각을 실리콘 융해물 위에 띄워 성장을 시킨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풀이 이슬을 맺히게 하는 응결 매커니즘에 길쭉길쭉하게 생긴 풀의 넓은 친수성 표면적을 생각하면 비가 오지 않은 지역에서도 초목이 생존할 수 있는 이유가 짐작된다. 지표를 덮은 풀들은 알렌 세이버리의 말대로 땅의 수분을 유지하는 국지성 기후를 만들어 내고 여기에 풀들이 지속적으로 수분을 공급하니 풍요로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은 지역의 경우 사실상 수분을 풀이 수급하는 시스템이 이루어져 있고 그런 풀들이 사라지니 당연히 황폐화되는 것이다. 아마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이 과거처럼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변하려면 사람의 새심한 손길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거나 아니면 오랜 세월이 지나야 할지도 모른다.

마리아는 강현과 대화를 다 하자 일어나면서 부탁했다.

“꼭 아버지를 설득해 주세요.”

“최선을 다해보죠.”

그것이 강현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 = = = =

“.... 크흠..”

헨델 회장은 심기가 불편했다.

[아프리카에 집중하기 위해 팔레스타인과는 잠시 휴지기를 가지신다면서요?]

강현이 불편한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그게 사정이 바뀌었네.”

[사정이요?]

“자네가 투자한 순환 방목의 성과가 지인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리 뛰어나지 않은 듯 한 모양이야.”

곡물 시장, 즉 식량을 꽉 잡겠다는 유대계 곡물 카르텔의 입장에서 강우량이 풍부한 지역에서만 순환 방목의 성과가 나타난다는 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비가 풍부한 아프리카의 해안지방과 일부 내륙 지방만 장악한다면 여전히 식량 시장에서 그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였고, 이는 그들이 ‘완전한’ 이스라엘 건설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조약에 훗날을 대비해 붙였던 조항을 빌미로 가자 지구 봉쇄를 시작했고 이들의 빠른 행동에 팔레스타인 측은 화들짝 놀랐다. 가자 지구 봉쇄에 대비해 그쪽에 있던 사람들을 점진적으로 이동 시킬 생각이었는데 이스라엘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버렸던 것이다.

팔레스타인 측의 항의에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들먹이며 그들을 빠져나가게 둘 수 없다면서 군사력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무력충돌과 함께 사상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는가?”

헨델 회장은 의문스러웠다. 세상과 단절한 채 자신만의 세상에 파묻혀 살아가는 천재가 왜 갑자기 세상에 관심을 갖는지 걱정되었다. 그가 만약 세상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면 반드시 혼란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따님이 다녀갔습니다.]

강현의 말에 헨델은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 뭐라고 말하던가?”

[이스라엘이 자행할 학살을 막기 위해 손을 보태 달라고 하더군요. 눈물을 흘리면서 가장 먼저 회장님을 설득해 달라고 했습니다.]

“....”

헨달은 강현의 말에 말을 할 수 없었다. 가슴에 무엇인가가 맺힌 듯이 답답해져 왔다. 그는 굳은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글쎄요.. 저도 감정적으로는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입장 차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허!”

헨델 회장은 강현의 말에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의 말은 나치에게도 그럴만한 입장이 있었을 거라는 뜻이 담긴 기세였기에 일순간 불쾌감이 일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냉정함을 유지하고 판단하자 다소 안심이 되었다. 강현이 특별히 무언가를 할 의도는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헨델 회장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일에 강현이 간섭하지 않을 거라는 확언을 얻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 어디로 뛸지 모르는 천재에 대해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여는 것보다 강현의 말이 더 빨랐다.

[회장님께서는 죄책감 같은 게 안 느껴지십니까?]

그의 딸인 마리아조차 유대인의 잘못에 고개를 숙이며 죄를 씻는 기분으로 아프리카의 평화와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었고 이번 가자 지구 봉쇄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호소할 정도였다. 마리아 뿐만 아니었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유대교를 버리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비난하는 사람이 적잖았다.

그런 행위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배신과 다름없었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박애 정신의 표출이었다.

헨델은 그의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자네.. 유대인의 한을 아는가?”

나라를 잃고 고향 땅에서 쫓겨나 수 천 년을 돌아다녔다. 기독교 세력에게 핍박받던 그들은 기독교 세력이 천시하고 금기시하는 금융활동으로 주로 살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그렇게 꿋꿋하게 살아갔지만 유럽 어느 국가도 자신들을 대우해 주고 같은 국민으로 인정해 주는 나라는 없었다. 심지어 워털루 전투로 엄청난 돈을 거머쥔 로스차일드마저 독일 어린이가 지나가면 모자를 벗고 예를 표해야 할 정도니 유럽에 만연한 유대인 혐오주의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까?

그런 유대인 혐오주의는 현대에 와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유대인 가문의 대표적인 로스차일드가 워털루 전투의 결과를 왜곡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그들을 음해하기 위한 낭설이다. 로스차일드는 생각보다 빠른 전쟁 종결에 국채의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보고 대대적으로 투자했고 이것이 성공했던 것으로 결과적으로는 경제의 흐름을 잘 읽는 유대인의 특성에 기인한 결과였다. 현대에서도 그런 낭설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오랜 기독교적 전통을 지닌 서양 문명에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스라엘을 건국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네. 유대인이라고 해서 차별 받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를 얻기 위해 못할 것이 뭐가 있겠나?”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 건국을 열망하던 시오니즘 지도부는 독했다. 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의 건설을 위해서 유럽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는 것을 필수적인 전제로 삼았다. 땅이 있어도 국민이 없다면 지킬 수 없는 법.

심지어 그들은 반유대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유대인을 핍박하여 정권을 유지하려는 나치와도 손을 잡고 조약까지 맺었다. 더 나아가 유대민족에 대한 동정여론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저지르는 유대인 학살에도 눈을 감았다.

[흐음..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자네라면 자네의 민족이 땅도, 나라도 없이 수 천 년을 헤맸다면 나라를 갖기 위해 어떤 일을 하겠나?”

[글쎄요.. 저는 민족주의자가 아니지만 만일 제가 민족주의자라고 가정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네요.]

강현은 솔직하게 답했다. 한국도 일제에 의해서 식민지가 된 이후 수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싸웠다. 그러나 그중에 대세에 순응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봉창 의사. 그는 지금은 폐교된 효창초등학교(당시 문창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가게 점원 등으로 일하다가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에 건너간 그는 오사카에서 어느 일본인의 양자가 되고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고쳐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딱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겨도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본이 주장하는 내선일치는 허구였으며 한국인은 영원히 일본인의 하위 계층이었다.

이봉창 의사도 이를 깨닫고 말았다. 비록 능숙한 일본어를 할 수 있어 수많은 일본인 지인이 있었으나 결국에 그 간극을 메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일왕 암살 시도를 하게 된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그가 남긴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가 한국인이었지만 일본인이 되려고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한국인이 완전히 일본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라 없는 민족이 맞닥뜨리게 될 경멸, 혐오, 무시, 차별, 불이익. 일본인으로 살 각오를 한 사람을 다시 한국인으로 만든 민족주의의 배타적인 특성. 그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고뇌를 고작 50년도 안 되는 동안 받은 한국인의 한을 고려한다면 5000년 가까이 나라 없이 떠돌아 다닌 유대인의 한은 어떠할까? 그 독기는?

“... 고맙네.”

아이러니 하게도 강현의 솔직한 대답은 헨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같은 유대민족으로부터 얻는 공감대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다른 민족으로부터 유대민족의 입장을 이해 받는다는 것은 헨델의 마음 속에 있던 일말의 죄책감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면 좋았을 터이다. 강현의 말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고마워 하시는 거죠? 저는 제가 민족주의자라는 가정 하에 그럴 수 있다고 한 겁니다. 하지만 저는 민족주의자가 아니죠.]

“무슨 말인가?”

[민족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의 관점에서 시오니즘으로 정신무장을 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유대민족을 곱게 볼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특히 다원주의가 일반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서요.]

민족주의자가 아닌 이들에게 이스라엘이 하는 일은 어떻게 비칠까? 나치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주제에 피해자인 척 하는 이스라엘의 태도가 가증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민족주의자가 이스라엘의 행동을 이해하고 환영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민족주의자에게는 자신의 민족이 중요하기 때문에 세계를 주무르는 강력한 민족의 탄생을 좋아할 리가 없다. 더구나 자신들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시오니스트들을 곱게 볼 리는 더욱 만무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 대한 공격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다시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텐데 괜찮겠습니까?]

또한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유럽 서구 중심적 세계 질서는 확고하다. 따라서 여전히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이 남아있는 그 곳에서 팔레스타인 일을 빌미로 반유대주의가 싹을 틔울 가능성이 있다. 아니 이미 피고 있었다.

그건 유대인들이 꽉 잡고 있는 미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민자에 의해서 탄생한 미국의 입장에 인종 차별 주의자들은 미국을 분열시키려는 암종양이다. 그래서 그동안 인종 차별 주의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실제로 그 성과도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국가 정책에 의해서 교육받은 미국 국민이 선민주의 사상의 시오니스트들을 혐오하리란 건 너무도 자명했다.

이는 미국을 통해 세계 질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의 힘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었다. 결국 팔레스타인 사태를 해결할 키는 미국에게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헨델 회장의 말은 잔인했다.

“그전에 마무리하면 된다네.”

[그렇군요.]

============================ 작품 후기 ============================

한 독자분께서 저번 화에 오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국회의원의 발언은 정확히 말해서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테러리스트의 어머니를 두고하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스라엘 국회의원의 발언은 일본인 전체가 아니라 일본 전범을 두고 욕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러리즘을 범죄로 보냐, 아니면 약자의 전쟁 수단으로 볼 것이냐는 거죠.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구도는 일제-식민 조선과 같은 구도입니다. 실제로 더 힘 있는 쪽이 이스라엘이고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쪽도 이스라엘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에 무력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테러밖에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테러지만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민족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의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뻔히 일본놈들이 이웃 가족을 죽이고 있는데 목숨걸고 자살폭탄테러를 할까요, 안 할까요?

실제로 팔레스타인 모든 어머니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를,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관점에서는 독립지사를 낳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고려해보면 모든 테러리스트의 어머니를 그래야 한다는 발언은 곧 모든 팔레스타인 여성에게 그런 짓을 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테러리즘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구도를 뒤집어 봅시다. 그럼 이스라엘이 목숨걸고 테러를 할까요 안 할까요?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끝이 안 보이는 분쟁의 씨앗을 제거하기 위해 이스라엘 테러리스트의 모든 어머니를 죽이자는 발언을 하는 이가 분명히 나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든 이스라엘 여성을 죽이는 것이 될 겁니다.

결국 테러리스트란 입장의 차이입니다. 미국이 테러리즘에 범죄의 딱지를 붙였지만 민족과 민족 사이의 간극은 하늘과 땅 만큼 벌어져있죠. 결코 쉽게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전쟁 범죄자인 주제에 핵폭탄 맞았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일본놈들이 존재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민족주의가 일반적인 현대 사회에서 테러리스트만 공격한다는 이스라엘의 말은 허구입니다.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민간인과 테러리스트를 구분 못해서 많은 피해를 입었죠. 즉, 민간인이 곧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테러리스트가 탄생하는 근간인 팔레스타인 민간인 역시 테러리스트로 보이겠죠. 그래서 모든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어머니를 강간하고 죽여야한다는 말은 이스라엘 국회의원의 발언은 결국 인종청소로 테러리즘을 해결하자는 발언입니다.

이렇게 비유하면 쉬울까요? 일본이 한국 테러리스트(독립운동가)의 어머니를 강간하고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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