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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26화 (126/241)

126화

하지만 웃긴 일이었다. 구입에 사용하는 비용과 유지비를 기업에서 뜯어내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따지자면 인공지능은 그 기업들의 자산이 되어야 하지만 법적으로는 일본 정부의 소유로 남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결정했으니 따르라는 식의 상명하복이 주류 질서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매우 효율적인 자원 사용이 가능하나 민주주의의 자정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독재나 파시즘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에만 팔게 되면 항의가 더욱 심할 텐데 어떻게 대처할 거야?”

잭은 강현의 말에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아무래도 시간을 끌려고 할 거야. 사실 네가 청문회에 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술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거든. 그렇게 인공지능의 위험성이 낮아지게 되면 굳이 이런 식으로 수출을 제제 할 필요가 없기에 그때까지 최대로 필요한 이득을 볼 생각인 것 같아.”

“잘 하고 있네.”

“네 덕분이지.”

“어차피 그로 인해서 생기는 이득의 일부는 로열티 명목으로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거잖아. 미 정부가 잘해주면 나야 좋지.”

인공지능을 만드는데 가장 필요한 SNP의 핵심 기술과 물질 특허를 가지고 있고 또한 기술 개발용 인공지능을 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 저작권도 가지고 있으니 언뜻 보면 미국 정부의 규제가 그의 수익을 갉아먹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일단 강현은 돈에 연연하지 않았다. 타인이 보기에는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에게는 딱히 큰 손해가 아니었다. 오히려 미 정부의 규제로 자신에게 청탁을 해오는 이들이 있어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강현은 그 중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서나 견해서를 써서 도움을 주고 있었다.(물론 그 모두다가 미국인이었다. 미국인인 강현이 미국인이 아닌 이들의 청탁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설사 그 외국인이 모국이었던 한국에서 온 정부 특사라고 해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미국내에서 강현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었다.)잭은 강현의 말에 피식 웃었다. 미 정부를 상품 판매를 대행하는 트레이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가 아는 한 강현이 유일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강현의 존재로 팍스 아메리카가 더욱 공고해 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강현이 오래 오래 미국인으로서 살기를 바랬다.

= = = = =

미 정부의 구입 자격 심사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각 나라의 정부 시스템에 가치가 매겨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반미주의자들은 이런 미국의 행태에 내정간섭이다, 오만함의 극치다라고 외치며 격분했지만 제우스 사태와 같은 비극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충분히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의 비난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로 인해서 경제적 성장을 해야 하는 개발 도상국들이 정치적 성장도 해야 한다는 이중고를 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열악한 경제 상황에서 허덕이는 각 국가의 국민들에게 거대한 짐이었다.

정치? 그보다는 일단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정부는 잘하고 있지 않나? 응? 잘하고 있지 않다고? 비리가 만연하다고?

정치적인 혼란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물론 부패에 눈을 감고 정치적 성장보다 경제적 성장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기술용 인공지능을 도입하지 못해 기술 개발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국가의 앞날은 뻔하다.

하청 국가.

국민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과실이 각종 로열티 명목으로 외국으로 나가버린다. 경제 구조가 언제나 외국에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는 형태가 될 개연성이 너무나 높아진다.

하지만 그러한 흐름을 막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대세는 도도하게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고 일단 굶어 죽는 국민부터 추스려야 하는 곳이 너무 많았다.

원전 비리로 인해 구입 요청이 기각된 한국 역시 마찬가지 수순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는 추가로 구입되는 인공지능의 사용처와 상태에 대한 정밀 감리 등을 미국으로부터 받는다는 문서에 서명하고 나서야 기술개발용 인공지능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전에 구입한 케이즈락을 기술개발용으로 전용하기에는 케이즈락이 보호하는 국가기관과 금융기관의 중요한 정보가 너무 많았다.

그런 미국의 평가에 의해 한국의 정부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지만 의외로 주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투자가들은 한국 정부보다 이미 한국 기업을 신뢰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수익을 창출하는 그들의 능력을 신뢰했다. 물론 제현 그룹의 경우에는 그 배경에 존재하는 강현이란 보증이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강현은 신 통일장 이론의 양자 변수 두 개를 발견하고 이를 응용해 기존의 양자 컴퓨터보다 범용성이 높은 양자 컴퓨터를 만든 성과로부터 신 통일장 이론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더욱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특히 요즘에는 메타 물질에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을 응용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오랜만에 마리아 헨델이 찾아왔다.

[박사님. 마리아 헨델이 접견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응? 그 여자가 왜? 뭐, 만나보지.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도.”

강현이 아즈삭을 통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지만 그로 인한 맹점이 발생했다. 인터넷같은 통신망이 잘 깔려있지 않은 국가에서 아즈삭의 정보 수집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또한 그로 인해 아프리카에 첩보망을 펼힌 첩보용 인공지능의 정보만을 얻을 수 있을 뿐 그것을 검증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야생의 아프리카가 아닌가? 수도권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심지는 몰라도 농가가 외곽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 수가 없었다. 로봇 바퀴벌레를 뿌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야생에 가까운 지역이라 바퀴벌레를 뿌리면 얼마나 생존할 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로봇 바퀴벌레라는 히든 카드가 들킬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순환 방목으로 얼마나 큰 효과를 보았는지 실제 눈으로 확인한 마리아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박사님.”

둘은 간단히 안부를 주고 받은 후 본격적으로 바로 본론을 시작했다.

“오늘 이렇게 찾아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버지를 설득해 주세요.”

? 응?

강현은 의외의 말에 머리가 갸우뚱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무차별 폭격을 계획하고 있어요! 부탁이에요! 막아주세요!”

“그거랑 헨델 회장님을 설득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곡물 카르텔 1위인 카길의 힘이라면 그런 비극을 막을 수 있어요.”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버지가 인맥이 있으니까 아버지만 결심하면 가자 지구 학살을 막을 수 있어요.”

“아버지와 이야기는 해봤습니까?”

“해봤지만 제 말은 듣지 않으세요.”

“딸의 애원도 듣지 않는 사람이 타인의 말은 들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박사님의 영향력은 막강해요!”

마리아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렴풋이 자신의 영향력이 클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유대인 네트워크의 중추 중 하나인 헨델 회장에게 그 정도로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향력을 생각하기 이전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왜 저입니까?”

“네?”

“미국 대통령도 있고, 워싱턴의 의원들도 있는데 왜 제가 그래야 하나요?”

“그 사람들은 다 한통속이에요. 유대인의 돈을 먹지 않은 정치인이 없고 정치기부금을 받지 않는 조직이 없어요.”

“그럼 제가 헨델 회장님을 설득하다가 수틀리면 그 사람들 모두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강현의 중얼거림에 마리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역시 안되는 건가?

“마리아 씨.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왜 가자 지구를 공격하는 것에 반대를 합니까? 이스라엔은 유대민족의 국가잖아요.”

“모두.. 미쳤으니까요.”

“미쳤다?”

“그 나라 사람들은 폭격하는 걸 관람하게 위해 의자를 가져다 놓고 맥주를 마셔요. 팔레스타인의 모든 어머니를 강간하고 죽여야 한다는 미친 놈들이 국회의원으로 있어요. 모두 미친 것 같아요.”

마리아는 말을 하다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뚝뚝 떨어졌다. 그녀로서는 그녀의 동족들이 그런 사이코 패스 같은 이들이라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혈관에도 그들과 같은 피가 흐른다는 동질감이 그녀를 더욱 슬프게 했다.

“그 정도라면 좀..”

강현 자신도 한국에 살고 있었고 한국인이 그렇게 미친 짓을 하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았다. 한국의 땅에서 한국인으로서 동포가 살인을 자행하며 낄낄 웃을 때 그 사람의 몸에 흐르는 피가 자신의 몸에도 흐른다고 생각하면 편안히 있을 수가 있을까?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마리아를 보았다. 그때는 그저 이상을 쫓는 철부지 부잣집 따님같았지만 그녀가 고뇌하며 흘리는 눈물을 보니 유대인이 상실한 도덕률이 그녀에게 다 모아진 것 같았다. 만일 자신이었다면 스스로가 유대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핏줄을 혐오했을 것이다.

“제발 부탁이에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는 그제서야 그녀가 자신에게 온 이유를 알았다. 그녀는 정말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머리를 굴리다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녀의 절박한 마음을 이해는 했지만(공감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정말로 그 정도의 역량이 있는가? 또 그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난 뒤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강현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그녀의 요구를 적당히 넘기기로 했다.

“일단 헨델 회장님께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고 설득할 수 있다면 해보겠습니다. 거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감사합니다.”

그의 말에 마리아는 그의 두 손을 꼬옥 쥐고 고개를 숙였다.

강현은 손에서 느껴지는 약간은 거칠지만 말랑하고 따스한 느낌에 슬며시 손을 뺐다. 집안일을 한다고 손에 약간 주부 습진이 있었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하지만 그는 짧은 감상을 뒤로 한 채 마리아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자신이 기부한 순환 방목의 결과를 알고 싶었다.

“... 그러니까 짐바브웨에서..”

“... 위성 사진으로 녹지 확장은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 외에...”

그녀의 말을 정리하자면 확실하게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성장한 경제를 이용해 무기를 구입하고 있었다. 하긴 치안이 불안하고 여기저기서 반군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을 생각해 봤을 때 군대 조직의 정비와 확장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럼 그 외의 지역은 역시 해결이 안 됬군요.”

“네. 비가 오지 않은 지역은 목초지 확장 속도가 너무 늦어요.”

“그럴 수 밖에요.”

비가 오지 않는 지역에도 풀은 자라고 성장한다. 어떻게? 바로 이슬이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새벽이 되면 촉촉하게 풀을 적신다. 풀을 구성하는 셀룰로이스의 비열과 친수성으로 인해서 풀의 표면은 수증기가 응축하기 위한 핵(nucleus)이 된다. 이 원리는 어떤 기체가 액체로 응결 할 때, 또는 액체가 고체로 응고할 때 반드시 응축의 핵이 필요한 물리적 매커니즘에서 나온 것이다. 응축의 핵이 없이 굳어버리면 액체 상태의 분자 배열이 된다. 이를 비정질 물질이라고 하며 실제로 유리를 굳은 액체로 표현하기도 한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두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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