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25화 (125/241)

125화

유명한 공과 대학에서는 비싼 유지비 때문에 몇 곳에서 함께 컴소시엄을 구성해 인공지능을 구입하고 연구와 학술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미국 소속의 인공지능 수가 불어나기 시작하자 세계 각지의 대학과 연구소들 역시 자신들 역시 질 수 없다며 인공지능의 구입 및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미국에게 전략 물자로 지정된 SNP의 수출량을 늘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미국은 엄격한 자격 심사와 관리 능력을 기준으로 인공지능용 하드웨어 부품을 팔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은 확실히 양날의 검이었다. 잘 쓴다면 인류 과학 문명의 발전을 가속시켜주는 촉매가 될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SNP를 제작할 수 있는 물질을 미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는 건 무척이나 바람직한 일이었다. 만일 그런 물질들이 사유화 되어 있었다면 어느 곳에게 인공지능을 만들다가 어떤 미친 인공지능이 탄생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미 정부의 엄격한 자격 심사는 의외로 많은 국가들의 불만을 샀다. 그들은 기술력에서 미국에게 뒤쳐질 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물론 제우스 사태의 재발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분이 각 국가의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면 미국에게 강력한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

한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미국은 최대한 공정하게 SNP를 분배하기 시작했고 각 대학에 설치된 인공지능은 기술 문명을 꽃 피우기 시작했다. 신기술의 개발 시간이 축소되며 자본도 절약되었기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는 선순환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개발도상국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빴다.

미국의 엄격한 자격 심사는 경제력, 기술력 등 여러가지 요소가 들어있었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리 능력이었다. 정보화 시대에 그런 정보를 엄청난 속도로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가히 전략핵과 맞먹는 파급력이 있었고 만일 전산화된 자산 기록들이 미친 인공지능에 의해서 삭제된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인공지능은 정부 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했다. 사기업이 관리한다고 해도 어떻게 관리하는지 정부 차원에서 점검하고 그 과정을 투명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어떤 문제점이 발생해도 누군가가 지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완전히 사기업에 책임을 떠넘기면 만에 하나 어떤 문제가 발생할 시에 그 피해는 사회전체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로 인해 정부의 투명성이 무척이나 큰 이슈가 되었다. 더 많은 인공지능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그에 걸 맞는 민주적인 시스템이 필요했다. 때문에 아무리 친미파 정권이라고 해도 독재 정권이나 부패 정권에서 이런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고 복잡 제약 조건과 인공지능의 사용과 관리에 미국측 요원의 감사감리를 주기적으로 받는다는 내정 간섭에 가까운 조약에 서명을 한 뒤에야 기껏 한 두기 정도의 인공지능 정도를 얻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 붐이 다시 일기 전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기술개발에도 응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다가 주변국들이 같이 인공지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기술 개발용 인공지능이 없다는 것은 기술 개발 속도가 떨어진다는 뜻, 경쟁력 있는 기술을 선점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 그래서 수많은 나라들이 미국에 로비를 하기 시작했지만 미국은 이번 일 만큼은 철저하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들은 무분별하게 인공지능을 확산시켜 핵과 같이 통제 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를 위해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협약이 맺어질 정도였다.

인공지능의 가치와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저런 엄격한 자격 요건을 요구한 미국은 인공지능 컴퓨터의 구입을 요청한 대상 국의 정부 시스템을 면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고 미 정보부는 넘쳐나는 일거리에 비명을 질렀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실무팀의 실사를 핑계로 해당 국가의 내밀한 속사정까지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잭, 오랜만이네.”

“현! 하하하!”

이번에 찾아온 잭은 로또를 맞은 듯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다. 하긴 모두가 일에 치이고 있는 상태에서 혼자만 강현을 만나러 온다는 핑계로 여유를 부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둘은 잠시 신변잡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역시나 요즘 핫이슈인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기술 특허란 게 중요하기는 중요한가봐.”

“돌맹이를 황금으로 만드는 지식이니까.”

반도체의 중요한 재료인 단결정 실리콘. 그 단결정 실리콘을 만드는 재료인 순수한 금속질 폴리 실리콘은 석영같이 산화규소(SiO2)가 풍부한 재료에서 만들어진다. 즉, 반도체를 만든다는 것은 모래로 유리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높은 부가가치를 형성한다.

“정부에서 이번에 크게 실무진을 만들어서 각 국가의 정부 시스템을 점검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잭의 물음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어.”

“그렇지?”

잭은 강현이 미 정부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확실히 강현은 투명하게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관리하려고 하는 미 정부의 노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잭은 그런 강현의 태도를 확인했다. 이는 나중에 그의 인사고과에 기록되어 보너스를 탈 수 있을 수준의 일이었다.

“혹시 뭔가 조언할 건 없어?”

“글쎄.. 인공지능의 관리는 정치적인 시스템의 비중이 무척 크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래도 만일에 문제가 생겼다면 기술적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놓는 게 좋아. 조커는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그렇군. 혹시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내가 저번에 청문회에서 제시했던 방법 기억나?”

“다수의 인공지능을 이용해 폭주한 인공지능을 제압해 무력화 시킨다는 거?”

“그래. 가장 확실한 대처 방법은 그거지.”

“그것도 일종의 정치적인 방법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건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그렇고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인간의 관점에서는 기술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지. 단지 정치역학이 적용되는 새로운 형태의 기술이지만.”

지금까지 정치에 과학기술이 이용하는 모습은 많이 있었다. 진화론, 우생학, 그리고 이를 이용해 수 많은 유대인과 그보다 더 많은 집시를 학살한 나치는 정치가 과학을 이데올로기로 사용한 가장 최악의 예였다. 반면에 과학기술이 정치를 이용하는 모습은 별로 없었다. 왜냐면 정치는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가장 높은 층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고 과학 기술은 그 사회의 기저에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기반암과 그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반암의 크기와 재질에 따라 그 위에 형성되는 건축물의 무게와 높이가 결정되는 이치와 같았다. 근본적으로 사회를 변화 시킨 것은 기술이지 정치가 아니었다. 농업 기술이 없었다면 인류는 잉여생산물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그로 인한 교역, 상업이 발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화약과 총이 없었다면 프랑스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대중은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인공지능의 세계가 구현되었다. 그리고 그 인공지능 자체를 이용하는 인간에게 인공지능간의 입장차에 의한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였고 정치적 기술을 인공지능의 관리 및 제작에 접목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앞으로 인공지능의 숫자가 늘어날 수록 더욱 실감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었다.

잭은 강현의 설명을 꼼꼼하게 기억했다. 인공지능에 관한 강현은 전문가다. 그러한 전문가의 의견과 예측은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 실무팀이 들어갔는데 말이야..”

잭은 은근하게 한국의 일을 꺼냈다. 강현에게 한국에 대한 애착은 없지만 그가 설립한 제현 그룹이 여전히 한국에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인가를 받기 어려울 듯해.”

잭의 말은 미 정부가 인공지능용 부품의 추가 판매를 거절할 것이란 소리였다. 자체적으로 인공지능을 제작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는 단서가 붙어 있지만 RNP나 SNP 또는 뉴로칩이 없다면 어느 세월에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부품 판매의 거부는 곧 인공지능 제작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래?”

강현은 한국이 기술개발용 인공지능을 구입하지 못한다는 말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실사를 하다가 원전 관리 능력에서 엄청난 마이너스 점수를 받았나봐.”

“원전?”

잭은 강현이 관심을 표하자 신나게 한국을 까대기 시작했다.

한국 수력원자력 공사의 사장부터 부장급 간부까지 줄줄이 얽힌 금품수수와 불량 부품의 납품, 거기에 혐의를 적발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은 물론 부실 수사와 함께 감추기 급급한 한국 정부의 태도에서 완전히 낙제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반감기 가속장치가 개발되기 이전부터 그랬으면 정말로 미친 놈들이구나.”

강현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새삼 미국행을 잘 선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잭과 미 정보부가 원한 대로였다.)

“하긴, 반감기 가속장치의 개발에 가장 기뻐한 이들이 원전 비리에 얽힌 이들일걸?”

잭이 이죽댔다. 원전이 잘못되면 완전히 끝장이다. 그런 부담을 가지고 비리를 저지르는 것과 뒷수습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비리를 저지르는 건 심리적 부담 상태가 완전히 다르다.

“어쩐지.. 웃돈을 줄테니 먼저 팔아달라고 애원할 만하네.”

“큭큭.”

잭은 지독한 블랙코미디에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강현의 질문에 다시 진지해 질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이 그 정도면 중국과 러시아도 인공지능 컴퓨터를 확보하는 것이 어렵겠네?”

“아아. 우리 미국을 맹 비난 중이지.”

공산당 독재를 하는 중국의 관료주의는 비리가 만연하다. 뭐 수 천 년 역사 중 관리가 무섭지 않은 경우가 없고 뇌물을 받는 풍조가 사라진 적을 보기 드문 나라이니 당연했다. 그러니 인공지능을 투명하게 관리하기는 커녕 문제가 생기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발을 빼려고 들 가능성이 높으니 문제 해결 능력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 소련 붕괴와 공산주의의 실패로 인해 쌓여있던 내부 부패와 여전히 지속되는 독재 체제 아래에서 마피아가 번성하는 등, 자정능력의 쇠퇴로 인공지능을 잘 관리할 수 있는지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국가들이 친미파 정권이 들어서 있는 국가들처럼 내정 간섭에 가까운 조약에 서명하면서까지 인공지능을 구입할 리가 없었다. 그것은 굴욕이었다. 미국을 견제할 국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두 나라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일본은?”

“일본은 몇 가지 제한된 조건으로 인공지능을 구입할 수가 있었다. 그 핵심은 인공지능의 관리를 정부 직속으로 하기로 한거야. 필요하다면 미국의 감리로 주기적으로 받기로 했고.”

“그쪽은 그런 식의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

일본의 정경유착은 매우 심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사회의 수직구조로 인해 정치권력이 더 막강하다. 대를 이어 정치가가 되고 대를 이어 기업인이 된다. 그런 나라이다 보니 인공지능을 사적으로 구비하는 것을 막고 정부가 관리하고 기업에게 사용 허가를 내주는 식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정치권력을 자본권력보다 더 위에 놓기 위해 기술개발형 인공지능을 일본 기업들의 목줄로 쓰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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