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하지만 강현의 그런 생각은 헨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술 개발이 그리 쉬운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기업과 라이센스를 확보하면 투자에 대한 수익을 뽑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기술을 팔아도 되고 기업을 팔아도 되고 구조조정을 해도 되고 말이다.
[쯧, 내게 부탁하면 수익을 확실하게 뽑을 수 있을 것을..]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까요.”
[하긴..]
헨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이 견제받지 않는 이유, 헨델과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바로 저런 강현의 사고방식이었다.
강현은 자본가가 아니다. 고로 투자 대비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자본가와 부딪힐 일이 없다. 고로 자본가에겐 일정 선만 넘지 않는다면 가장 안정적으로 신뢰성있는 거래를 할 수 있는 자가 바로 강현이란 자였다. 석유 제조 라이센스, 배터리 기술, 레드 솔라셀 등 그간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일 강현이 자본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헨델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심장이 철렁거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경쟁자는 결국에는 노동자가 아니라 똑같은 자본가다. 투자 대비 가장 수익이 좋은 방법은 경쟁자를 거꾸러 뜨리고 그의 자산을 빼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서로 싸우는 것은 장기적으로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 자신 역시 그렇게 몰락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에 철저한 그들은 되도록이면 자신들 끼리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강현이 어느 날 자본가가 되어 덤벼든다면? 현금 자산은 소규모 국가의 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많고 기술력은 첨단 기술 사회의 상징이라고 할 정도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 정계의 비호를 받는 이가 탐욕적으로 부를 늘리려고 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강현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는 부자가 있고 언제든지 살점이 뜯겨나갈 정도로 연약하다고 생각해보라. 자본가가 그런 ‘수익’을 가만히 놔둘 것인가?
그렇다. 헨델의 입장에서는 강현이 평생, 죽을 때까지 지금의 온건하며 학자적인 행동 양식을 유지해주기를 바랬다. 같은 자본가가 되어 경쟁자의 위치에 있지 않는 것이 좋았다. 동종 혐오. 탐욕이 강한 사람일 수록 자신과 비슷한 이를 싫어한다. 어쩔 수 없는 경쟁상대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투자 형세가 그렇다니 숙고해보기로 하겠네.]
적대적 인수 합병이 아닌 방식으로 연합을 꾸려 투자를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봤을 때 나름 장점이 있었다. 크기를 키우기 위해 서로 잡아 먹으며 자산과 시간을 소모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과연 연합이 유지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서로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순간 연합은 깨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연합의 성장은 한계가 있었다. 특히 서로의 야망이 상충될 때 일원화 되지 못한 경영체계는 뿔뿔이 갈라질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헨델은 투자를 한다고 해도 연합에서 두각을 나타낼 기업을 찾기 위해 조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연합이 갈라져도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기업을 선택하는 것, 철저한 리스크 관리는 그의 몸에 배인 습관이었다.
[아아, 그리고 이번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 생각인데 오지 않겠는가?]
사실 헨델에게 가장 중요한 용무는 이것이었다. 사교계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강현과 인연을 맺고 싶어하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역시 파티장을 싫어하는 강현의 성격 때문에 좀처럼 인맥을 맺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에게까지 은근히 말이 들어온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 때 강 박사를 초대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헨델은 일단 해보겠지만 기대하지는 말라고 했다. 강현은 설득하기가 매우 곤란한 존재다. 자신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가시키려면 그에 대한 장점을 열거해야 했지만 사회 각층의 주요인사와 친분을 맺을 수 있다는 가장 확실한 장점은 강현을 설득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귀찮게 사람들이 달라붙는 환경이 강현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강현이 질색할 장점이다. 그러니 그저 슬쩍 찔러나 본다는 심정으로 언급했다. 만일 강현이 허락한다면 길가다가 돈을 줍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고서 말이다.
“아니요. 이번에는 NASA 직원들끼리 조촐하게 보낼 생각이라서요.”
[그런가? 아쉽군.]
헨델 회장은 입맛을 다셨다. 둘은 서로에게 잘 지내라고 인사를 하며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 강현은 다시 인공지능 아리사의 설계에 심취했다. 아리사는 아즈삭을 만든 것과 조금 다르게 만들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아즈삭의 하위 개체로 만들 생각인 것이다.
또한 아리사의 중요 명제를 아즈삭의 보조로 명확하게 지정했다. 올림푸스 시스템과 다르게 권한의 상승이나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순전히 아즈삭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였다.
일단 하드웨어의 위치가 연구실에서 떨어진 실리콘 밸리에 있기에 아즈삭의 것으로 만들기 어려웠고 기왕 투자하는 겸 자신의 이득을 손해 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아리사를 아즈삭에게 종속시키기로 한 것이다.
[박사님. 아리사의 성장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네 역할이 매우 중요해. 너의 하위 개체이기 때문에 너와의 상호 작용이 아리사의 인격 형성에 매우 큰 요소로 작용할 거야. 이는 너의 경험 확대에도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거니까 신중해야되.”
[네, 박사님.]
어쩌다 보니 아리사의 제작은 다양한 이득을 노리게 되었다. 일단 인공지능의 원조이자 권위자인 강현이 설계한 인공지능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연합을 구성해 강현의 힘을 키운다. 거기에 강현이 소유하는 인공지능을 한 대 더 늘리며 아즈삭의 역량 역시 강화하고 아즈삭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석사조의 계책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왜 박사님의 지시가 아니라 제 지시에 따르게 만드신 겁니까?]
“그건 아리사를 너와 동격의 권한을 지닌 인공지능으로 만들면 만일의 상황에 골치가 아플테니까.”
만일의 상황이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즈삭과 아리사가 이해관계로 충돌할 가능성을 뜻한다. 그럴 때 아리사의 명령권자가 강현뿐이라면 둘의 관계를 조율하기 위해서 그가 고생해야 한다.
하지만 강현-아즈삭-아리사로 내려가는 수직적 관계는 그런 충돌의 가능성을 미리 배제한다. 사회학적으로 계층이 위와 아래로 갈리는 이유는 사회의 유지와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즈삭은 납득했다. 그리고 강현을 도와서 인공지능의 설계를 위한 명제를 설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숫자와 기호, 공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철학적 사고와 인문학적인 토론에 가까웠다. 만일 이런 명제를 설정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아리사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강현과 아즈삭의 예측과 통찰력을 총동원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티 파티 날이 다가 왔다. 강현이 일하는 연구소의 직원들 중 참가할 사람은 참가하고 따로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사람들은 그리고 향했다. 하지만 백 여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파티에 참가해서 빌린 연회장이 북적 북적했다.
강현은 이런 파티가 좋았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하하호호 웃으면서도 정치하듯 연회하는 정치가의 파티보다는 그런 이해관계 없이 그저 직장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이들과 하하호호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더 나았다. 물론 강현이 개인적 친분을 가진 이들은 몇 없지만 정치적이고 자본적인 이해관계가 극소화되어 순수히 즐기는 파티는 구경하는 강현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다.
“현! 왔는가?”
“안토니오, 안녕하세요.”
안토니오는 강현이 출근할 때마다 얼굴을 마주치는 경비 아저씨다. 머리가 희긋희긋하고 배도 좀 나왔지만 그래도 언제나 웃은 얼굴의 성격 좋은 아저씨였다. 강현이 유명하다고 해도 별로 위축되거나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점이 편했다.
“저기에 네 여자 친구가 있으니 어서가봐.”
안토니오가 짓궂게 웃으며 한 쪽에 화사한 옷을 입고 동료직원과 담소를 나누는 샐리를 가리켰다.
“여자 친구 아니에요.”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안토니오는 혀를 찼다.
“쯧쯧, 좋은 여자는 누가 낚아채기 전에 먼저 잡아야 해. 내가 인생 선배니까 귀담아서 듣게나.”
안토니오는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간섭하려고 하면 무척이나 곤란하다. 혹시나 미 정보부의 미인계 프로젝트에 섭외된 사람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라 순수하게 강현과 샐리가 잘 어울리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다는 오지랖 넓은 사람에 불과했다.
강현도 순수한 호의로 자신을 걱정해서 충고해 주는 사람의 말을 그냥 무시하는 그랬지만 곤란했다. 뭐가 곤란한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곤란했다.
그런데 그런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 준 사람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곤란한 상황을 잊을 정도로 강현을 놀라게 만든 것이다.
“박사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알리아라고 해요.”
“아, 아,”
어떻게 저 여자가 여기에 있는 거지? 아즈삭은 왜 알려주지 않은 거고?
당황했던 강현은 알리아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간신히 마음을 잡고 악수를 받았다. 갈색머리를 틀어올린 그녀는 오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얼굴에 쓴 검은 뿔태안경이 잘 어울렸고 손이 무척 부드러웠다.
“바, 반갑습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안토니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구경했지만 강현은 알지 못했다. 그보다 이 여자가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이 자리에 있는지가 궁금했다.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얼마전에 들어왔거든요. 부서는 컴퓨터 개발부요.”
하긴 그녀의 실력이라면 NASA의 컴퓨터 개발부에 들어오는 건 식은 죽 먹기 였을 것이다. 다중 연산 시스템의 코딩 능력에서 강현은 그녀에 준하는 수준의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강현은 말을 끊었다. 왜 여기에 왔냐는 물음이었다. 과거를 덮고 모른 척 살기로 하지 않았던가? 바로 그런 물음이었다.
그의 물음에 알리아는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공부를 하다보니까 인공지능이 참 대단한 것 같아서요. 그런 대단한 걸 설계한 분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거든요.”
강현의 표정은 떨떠름 해졌다. 만나서 뭘? 어쩔 건데?
“이렇게 만나지 않았나요?”
뒷말은 이제 그만 만나도 되지 않냐는 질문이었지만 알리아는 집요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몇 가지 물어보고 싶어요.”
“... 해보세요.”
강현은 순간 말려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안토니오는 뒷전이 되어버렸다.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아들 녀석은 이공계로 가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췌 알아듣지 못할 말로 대화를 하고 있으니 나중에 부자간에 말이 안 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야 되겠는가?
“... 섹터간 동기화를 위해 프로토콜을 조율하려는 코딩에서..”
“.... 가상 메모리를 설정해도 그런 경우 인공지능이 자율적으로 판단해 다른 프로토콜을 불러들이는 경우가 있어서..”
“... 인공지능은 일종의 전자 생물과 같은...”
“... 그러니까 최초 목적 설정이 이후의 행동 패턴에도 영향을...”
============================ 작품 후기 ============================
지치네요. 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