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세계는 자본주의가 지배할 겁니다. 이미 그러고 있죠. 그리고 그 자본주의의 핵심이자 근간이 바로 기업입니다.”
공산주의는 바로 이런 기업들을 국유화하여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런 기업들을 자유시장체제라는 명목으로 민간에 맡긴다. 그 차이는 극명했고 오늘 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박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기업은 미국 제현 투자 회사뿐입니다. 그것도 별다른 수익성 사업을 하지 않아 박사님의 격에 맞는 기업이 되지도 못했고 오히려 박사님의 돈을 까먹는 소모적 기업일 뿐이라 크게 힘이 되지 못합니다. 기술도 가지고 계시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그 뿐입니다.”
미국 제현 투자 회사는 강현의 자선 사업용 회사라고 인식되고 있다. 킬덤은 이를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뚱뚱하면 자기 관리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도 인사나 면접에서 불이익을 주는 나라다. 성공이 사회적 배경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노력하는 풍조가 주류를 이루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성장한 인재들이 성공을 꿈꾼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 면에서 자선 사업용 회사에 몸을 던질 인재가 얼마나 될까? 회사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할 야망이 없는 곳인데..
게다가 미국 제현 투자 회사 이외에 강현이 가지고 있는 것이 기술 뿐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특허에는 만료 시일이 있다. 지금 강현이 석유 라이센스를 가지고 이리저리 영향력을 행사한다고는 하지만 그 시일도 몇 년 남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은 다르다. 잘만 키우면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고 보호막이 되어줄 수 있었다.
“안전장치로 주요 회사들의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그래도 어려울까요?”
“주식은 그저 권리일 뿐 방패막이 되어줄 수는 없습니다. 기업이 무서운 이유는 기업에 고용된 사람들이 기업을 위해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기업이 부도덕한 기업이라고 해도 먹고 살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 기업을 위해서 일을 해줄 겁니다. 하지만 박사님께는 박사님을 위해서 일을 해줄 사람이 거의 없죠. 기껏해야 한국의 일 때문에 직접 고용하신 사람들 뿐입니다.”
“회사를 만들라는 말씀인 것 같은데...”
“솔직히 그런 마음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박사님께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실 리 없죠.”
강현을 두고 기업인들은 왜 따로 회사를 차리지 않는지 의아해 했다. 그가 가진 기술 몇 개만 이용하면 대상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중견 기업의 연합 형태로 이루어진 투자 제안서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경영권이 누구 하나에게 집중되지 않는 형태의 기업이 연구에만 파묻힌 박사님의 영향력을 존속하면서 박사님을 위해서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세컨드 밴드 연합에서 구상하셨나 보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찍이 한국에서 일을 벌일 때 킬덤은 착취당하던 하청 기업들을 하나 하나 모아 세컨드 밴드 연합을 구성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할 일은 경영 구조는 비슷하지만 그 영향력과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한국의 세컨드 밴드는 유통망이 없기 때문에 생산자의 입장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실리콘의 중견 기업들이 서로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내면 그 상품을 사기 위해서 유통업체들이 줄을 설 것이다. 완제품을 만들면 판매망은 걱정할 것이 없다.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자는 유통업체에 대해 갑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뿔뿔히 흩어진 기업들을 연계시키며 시너지 효과를 내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했고 킬덤은 강현이 투자 제안서를 허락한다면 인공지능을 시작으로 이들을 연합으로 구성할 생각이 있었다. 그는 이를 위한 제반 지식이 상당했다. 아무래도 고용주가 고용주다 보니 증권이 전문이라도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공부했던 것을 이번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강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킬덤의 말대로 강현의 힘은 그를 탐내는 자들이 보았을 때 보잘것 없다. 그런데 어떻게 강현이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는가? 실상 그를 보호하는 것들 중 가장 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치다. 현재에도 미 정부 차원에서 보호와 편의를 취하고 있으며 정치권 인사들과 인맥을 가지고 있다. 매년 막대한 정치 기부금도 내고 있다. 강현이 보물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어떤 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정치적 논리로 공격을 당하면 곤란하다. 정치가는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이들. 언제라도 강현의 입장이 바뀌면 등을 돌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강현은 킬덤의 말을 이해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타인이 보기에는 보물이었다. 보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가 만만치 않다는 힘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첩보망은 보여주기에는 너무나 민감한 것이고 오히려 더 많은 적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 세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미국에서 입김이 강한 기업들을 소유할 필요가 있었다. 킬덤의 구상대로 기업은 좋은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을 적대하려는 이들에게 재고하도록 위협할 수 있는 창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함부로 강현을 어찌하지 못할 경고의 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쪽 경영자들은 하나 같이 자존심이 강할텐데 가능할까요?”
그의 의문은 당연했다. 실리콘 밸리의 창업자들은 하나 같이 수재, 천재 소리를 들었던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남 밑에 들어가고 싶어할까?
“단순히 협력 체제를 구성하는 거라서 말만 잘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강현의 물음은 킬덤에게 설득되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고 킬덤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알았어요. 투자하죠.”
강현은 투자 계획서에 서명했다. 이로서 강현은 새로운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 인공지능의 소유자가 되며 그 인공지능을 중견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대여해 주고 유지비를 부담하는 대신 인공지능을 이용해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그 기술로 수익이 생겼을 때 일정 배분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이는 강현이 인공지능을 투자하는 형식으로 연합이 이루어지며 이 연합의 존속은 인공지능의 효용성이 결속력이 되어 지탱되는 구조로 킬덤이 구상한 계획의 밑그림이다. 좀 더 디테일한 부분은 연합을 운영하고 관리하면서 각 기업들 간의 신뢰나 기술적 시너지 효과들로 생기는 이해관계들로 그려질 것이며 어떤 그림이 완성될 것이냐는 나중에 가봐야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당연히 이런 대규모 투자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킬덤이 연합을 구성하기 위해 만난 이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현 투자 회사, 실리콘 밸리에 대규모 투자 결정!]
[사회적 투자만 하며 복지재단 같은 일을 하던 JH(제현)투자회사가 드디어 본업으로 돌아가나?]
강현의 이름을 언급하는 곳은 좀처럼 없었다. 미국 제현 투자 회사가 그의 것이기는 했지만 그와의 관련성을 지적하는 곳은 좀처럼 없었다. 하긴 오랫동안 방치하다 시피하는 주제에 수익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업만 하며 그저 돈만 붓고 있는 회사라 돈 많은 천재의 괴짜 기질, 혹은 사회적 기부의 일환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번에는 그나마 수익성 사업이기 때문에 강현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나하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별로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굳이 이번에 투자한 회사들이 필요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소유인 아즈삭과 그 아즈삭이 조종하는 안드로이드만 해도 따로 제조 회사가 필요없이 일인 기업을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수익성을 쫓는다는 자본주의적 행동 양식으로 이번 투자를 해석하면 오류가 생긴다. 귀찮게 공장과 고용인, 노조를 만들 필요없이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바로 강현이라는 천재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기술력이 거대 기업에 집중되어 도태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게 손을 내민 것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그 동안 강현의 행보에 비추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우수한 인재를 흡수하는 거대한 기업들 중에는 특허 괴물이라고 불리는 곳이 상당하고 이들이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순간(만일 인공지능의 성능이 정말로 듣던 데로 기술 개발 보조를 확실하게 해준다면) 인공지능을 도입하지 못한 중견 기업들은 이들의 기술 개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다. 때문에 안타까워한(?) 제현 투자 회사가 나섰다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이런 논리는 미국 제현 투자회사의 공익재단같은 행보가 미국 그동안 쭈욱 이어졌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었다. 자정주의 물결에서 제현 투자 회사의 투자를 받은 이들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실리콘 밸리에 인공지능을 투자할 것을 결정한 강현은 그 인공지능에 아리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설계에 고심했다.
일단 자신의 소유이니 그가 원하는 형태, 그리고 기술개발이라는 목적에 맞는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비록 인공지능을 제작하기 위해 라이센스가 필요했지만 인공지능을 위한 전용 하드웨어가 없다면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무의미한 비트의 나열일 뿐이기 때문에 소프트 웨어쪽은 규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안전한 인공지능의 연구를 위해서 정부차원에서 장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강현이 아리사의 제작에 열중하고 있을 때 연락이 왔다.
[하하. 강 박사 오랜만일세.]
“잘 지내셨어요, 헨델 회장님?”
세계 제일의 곡물 기업의 회장인 율리우스 헨델이 전화를 한 것이다.
[나야 언제나 그렇지. 돌아가는 소식을 보아하니 자네도 여전한가 보구먼.]
“그렇죠.”
둘은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헨델 회장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실리콘 밸리에 투자를 한다지? 나도 한 발 끼어들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저야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투자하기 어려우실 걸요?”
강현은 자신이 투자하는 것은 인공지능 그 자체라고 했다. 그를 통해서 차후 수익을 배당받는 형식이라 헨델 회장이 투자를 하고 싶다면 인공지능을 대여하기로 한 회사에 일일이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허, 무슨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헨델 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차라리 인수합병을 하지 그러나?]
“그건 별로 안 좋아서요. 그러다가 경영자들이 빠져나가 버리면 어떡해요? 그들이 기술의 핵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도 회사를 인수하게 된다면 특허권은 쥘 수 있지 않은가?]
“그래봤자 만료 시한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투자를 하면 실리콘 밸리에서 살아남은 능력있는 인재들과 척을 지게 되는데 그건 제현 투자 회사의 투자 이념에도 어긋나는 짓이에요.”
[사람에게 투자를 한다는 것 말인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기술 개발을 중요한 요소로 본다면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실리콘 밸리에서 살아남은 기업을 만든 인재들의 회사를 인수 합병을 한다고 해도 그들을 잡지 못한다면 그들이 외부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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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 났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