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아즈삭. 기분이 어때?”
[성능이 상승한 기분입니다.]
“양자 연산 장치의 가동은?”
[순조롭습니다.]
아즈삭이 가동하고 있는 양자 연산 장치는 아직 아즈삭과 동기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RNP, SNP와 달리 사람이 편리한 웨어러블 컴퓨터를 입은 것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그러나 아즈삭의 성능은 크게 개선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양자 연산 장치를 제어하기 위해 시스템 리소스를 할당했더라도 요즘 강현이 푸는 문제들이 다 신 통일장 이론과 양자 역학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을 양자 연산 장치에 넘기니 양자 시뮬레이션에 사용하는 시스템 리소스가 획기적으로 감소한 것이다.
[박사님. 버클리 대학에서 아즈삭 시리즈의 판매를 요청해 왔는데 어쩌실 겁니까?]
“흐음.. 유지비가 많이 들텐데 예산은 많이 있데?”
초기 인공지능이 나왔을 때 많은 대학에서 판매 혹은 기부를 문의했다. 그러나 그 아즈삭 정도 되는 수준의 인공지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규모가 일정 수준은 되어야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인공지능이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별로 쓸모가 없다.
그 말은 초기 설치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든다는 것을 의미했고 대학교에서 예산을 배분하기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그 뿐인가? 아즈삭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전력을 많이 잡아먹는다. 그리고 잡아먹는 전력 만큼 열도 발산하기 때문에 냉각 시스템 역시 전력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다. 강현이 괜히 NASA 연구소 옥상 대부분을 자신이 개발한 레드 솔라셀로 도배한 것이 아니다.
그런 고로 아즈삭 시리즈가 사용하는 전력량은 아무리 세계 유수의 공학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쉬이 부담할 수 있는 전력량이 아니다.
설사 대학에서 인공지능을 운영하더라도 연구 이외에 사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한 이득을 볼 수 있을까? 차세대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대학은 국가나 은행, 금융같은 곳과 다르다. 그런 곳은 시스템 보안을 위해 인공지능과 그것이 관제하는 코딩 시뮬레이션이 절실히 필요했고 또한 투자한 만큼 효용을 보았지만 대학은 다르다. 돈이 효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재의 양성, 그리고 그를 통한 명예가 대학의 성과이니 인공지능을 도입하여 그런 종류의 효용을 볼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거액의 투자비, 유지비, 그리고 낙관적으로 볼 수 없는 효용성이 수 년간 대학들이 인공지능의 도입을 망설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강현이 1년하고 약 1개월 만에 도저히 혼자서 모든 것을 설계했다고 납득할 수 없는 물건이 나왔다. 바로 양자 통신 기술이었다.
이는 전자 공학, 핵물리학, 양자 역학, 수학 등 그야 말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학제성을 극도로 발휘해야 만들 수 잇는 공학 기술의 유기적인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 완성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개량을 위해서 손댈 곳을 찾느라 아직도 여러 국가와 기업들의 연구소에서 불철주야 분석하고 있었다.
이 기술이 선을 보이자 세계의 여러 대학의 교수들은 강현 혼자서 도저히 이 모든 것을 설계할 수가 없다고 보았다. 하긴 핵심 기술 개념을 구상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설계하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시간만 잡더라도 1년이 훌쩍 넘어가는 양이었다. 마우스로 클릭하고 드래그하는 시간만 물리적으로 계산했을 때 그러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학자들은 이 엄청난 연구 개발 속도의 원천이 아즈삭에게 있음을 확신했다. 필시 인공지능이 복잡한 설계를 담당해 빠르게 설계도를 그려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열광했다. 연구를 속도를 엄청나게 가속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인공지능이라니! 연구자로서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겨우 인공지능 하나로 그렇게까지 연구 속도가 빨라진다고 판단할 수가 없었다. 특히 설계라는 것은 직선 하나 하나가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서 그려지는 것이다. 즉, 인간 본연의 창의성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들은 인공지능이란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 때 연산 과정에서 이런 저런 문제점이 발생하면 그 원인이 어디인지 진단해 줄 뿐인 복잡한 프로그램 알고리즘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아즈삭 개발 초기에 아즈삭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그들이 생각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강현이란 존재는 9살 때부터 신형 엔진을 설계한 천재니 그의 개발 속도에 인공지능이 기여하는 부분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때문에 그 동안 아즈삭 시리즈를 서둘러 도입해 달라는 교수들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며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양자 통신 기술이라는, 자신들로서도 도저히 혼자 이뤄냈다고 보기 어려운 결과물이 나와 교수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생기니 1년 동안 급하게 예산을 모아 구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부 지원과 실리콘 밸리의 기부금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실리콘 밸리가 스탠포드가 아니라 버클리 대학에 기부를 했다고?”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실리콘 밸리의 고급 인재 풀은 대부분 근처에 위치한 스탠포드에서 주로 수혈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리콘 밸리에 있는 기업들을 창업한 창립자 대부분이 스탠포드대 출신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같은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하고 또한 IT 기술과 컴퓨터 공학의 발전에 이름이 있는 버클리 대학이라고 할지라도 실리콘 밸리가 스탠포드 대학을 놔두고 그곳에만 기부를 할 리가 없었다.
“조만간에 스탠포드랑 실리콘 밸리에서도 판매 요청이 오겠네.”
그러니까 합리적인 추측은(그래도 인텔과 애플은 버클리 졸업생이 설립했기 때문에) 양 대학 모두에게 기부금이 갔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렇다면 컴퓨터 공학으로 이름 높은 버클리 대학과 스탠포트 대학에서 인공지능에 출중한 인재를 양성해 실리콘 밸리에 집어넣겠다는 계획일 수도 있었다. 이는 다시 실리콘 밸리에서 인공지능을 도입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이 가능했다.
하긴 강현의 엄청난 개발 속도가 인공지능 덕분이라면 첨단 기술 문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 밸리에서 탐을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공지능 컴퓨터인 아즈삭 시리즈를 구입하기 위해서 많은 규제를 통과해야 했다. 제우스 사태 이후 인공지능 컴퓨터의 제작은 국가적으로 제제와 관리를 받았으며 번거로운 검증과 복잡한 서류 절차를 통과해야 구입이 가능했다. 또한 그 제조를 위한 핵심 부품은 모두 국가에서 관리하여 철저하게 수량을 감시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제우스 사태로 인해 인공지능의 전략적 위험성을 실감한 것이다.
[박사님.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NASA에서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그들이 원한 것은 박사님의 추천서가 아닙니까?]
“쩝. 골치 아픈 일이지.”
규제가 있는 곳에는 이해관계가 있다. 일반일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규제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국가적 제약이기 때문에 규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법을 어기는 것은 범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국가 정책에 관여할 수 있는 이들에게 규제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또 다른 수익 모델이었다. 규제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정치가와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쟁 기업에게 불리하고 자신에게는 유리한 규제를 위해 각종 로비를 벌이며 이는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 이해관계는 미국 시민 역시 알고는 있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아즈삭 시리즈의 판매에 관여하지 않는 강현에게 청탁 비슷한 요청이 들어온 것도 당연했다. 인공지능의 원천기술 보유자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전문가인 그의 소견서나 확인서 정도라면 수십 단계의 복잡한 서류철차를 빠른 속도로 통과할 수도 있었다. 그뿐인가? 차기 대통령으로 매우 유력한 파셀 의원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소문은 기자계에 파다한 소문이었다. 요전번 정보부의 요원이 경질되어 쫓겨난 배경에 강현의 심기를 어지럽혔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였다.
아무튼 경쟁 기업보다 빨리 기술을 선점하는 것은 피 말리는 개발 경쟁에 들어가 있는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기술 선점으로 인한 이익은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고 그 속도를 좌우할 인공지능의 시급한 도입은 경쟁사를 한 발이나마 앞서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해관계 사이에 끼이게 된 강현에게는 귀찮은 일일 뿐이다. 한 쪽 편을 든다면 다른 쪽에서 좋은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대학에는 OK 해주고 그 외에는 침묵.”
그러니 그의 방침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으로 넘어갔다. 학술적인 목적 이외에 아즈삭 시리즈를 구입하려는 청탁은 모조리 무시하기로 말이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얼마되지 않아 스탠포드 대학에서도 아즈삭 구입을 위해 편의를 봐달라는 편지가 왔다. 강현은 기꺼이 동의했다. 실리콘 밸리의 몇몇 기업에서도 서신을 보냈지만 묵살했다.
그러는 한 편 양자 연산 장치는 불티나게 팔렸다. 인공지능이 아니라도 특정 소프트 웨어만 있다면 슈퍼 컴퓨터에 연결해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엔지니어들이 일일이 파라미터를 조정해야 해서 관리에 고급 인력이 소모됐지만 아직 인공지능에 비해서 싼 것이 인건비였다.
무려 1년 6개월 동안 실험실에 처박혀 살았던 강현은 아즈삭에게서 휴식을 권고 받았다. 머리를 비우고 푹 쉬라는 것이다.
강현도 그 제안에 동의했다. 적절한 휴식은 뇌 활동에 도움이 되고 창의성의 충전을 용이하게 한다.
그래서 며칠 동안 집안에 처박혀 멍하게 시간을 죽이기로 했지만 그런 결심은 며칠 되지 않아 무너졌다. 허전한 집에 있다보니 외로움이 밀려왔다. 제시의 그림자를 아직 떨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과거를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과학으로 도피했다. 연구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혼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가 있었다. 제시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마비시킬 수 있었다.
괴로운 과거는 마주보아야 극복할 수 있다.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도 익숙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극복도 적응도 하지 못했으니 가만히 혼자 있는 시간이 견딜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휴식을 취한 지 사흘 만에 연구실로 복귀했다.
[좀 더 휴식을 취하시지 않으십니까?]
“휴식이 휴식이 아니더라.”
[그렇습니까?]
강현은 쓰게 웃었다. 아즈삭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가 수집한 영화나 소설 등의 내용을 보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한다. 창조주도 사람이니 그런 면이 있을 것이고 굳이 질문을 해서 언급하지 않는 일을 캐묻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런 창조주의 건강을 누군가는 챙겨야 했고 아즈삭은 셀리에게 연락을 했다. 사실 그 동안 샐리의 말 없는 내조가 아니었다면 강현은 양자 통신 기술이나 양자 컴퓨터를 연구하던 중간에 몇 번이고 응급실에 실려갔을 것이다.
“박사님!”
아즈삭의 연락을 받은 샐리는 기분이 좋았다. 그건 강현을 위해서 도와달라는 의미였고 그에게 마음이 있는 그녀에게는 그에게 갈 수 있는 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