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16화 (116/241)

116화

<12-진화>

강현은 쓸모가 없어진 샘플용 양자 모듈(수소 원자핵이 든)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중성미자를 이용한 양자 얽힘 기술은 통신에는 적당해도 지금처럼 규칙있는 얽힘 패턴을 구성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차라리 광자와 전자를 복합적으로 사용한 양자 구조가 차라리 더 적당했다.

“이온을 레이저로 흔들어봐?”

광자를 떠올리니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온화 되어 전하를 띈 입자는 전자기장에 의해서 힘을 받는다. 양자 얽힘이 된 광자를 이용해 수소 이온을 얽을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간접적인 양자 얽힘이 일어난 입자 사이에 비국지적인 관계성을 가지느냐가 문제였다. 그렇지 못한다면 강현의 발상은 실험도 되기 전에 폐기해야 했다.

일단 그는 이론적으로 간접적인 양자 얽힘이 일어난 입자 사이에서도 비국지적인 관계가 유지 되는지 양자 역학과 신 통일장 이론의 복잡한 수식을 계산했다.

그러고 난 후 양자화된 광자가 각 수소 원자핵에 99.876% 이상 흡수가 된다면 비국지적인 관계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남은 광자 에너지가 다른 원자핵에 흡수되어 새로운 양자 얽힘을 구성해 데이터 처리에 잡음이 끼게 되는 것이다.

“흐음, 광자를 미세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발달한 레이저 기술로 인해서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될 듯 했지만 양자화된 광자를 만들고 그 광자를 원하는 위치의 수소 원자핵에 쏘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광자는 곧 양자고 양자 역학적인 한계가 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존의 고도화된 전자 공학적 기술과 확률적 계산 기법을 모두 총 동원해야 쓸만한 양자 컴퓨터가 나온다는 말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이 존재하는 세계의 스케일은 화학적으로 구성된 물질 수준에 있다. 원자핵과 전자의 정전기적인 결합으로 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공학적으로 생각했을 때 원자핵이나 전자까지가 다루기 수월한 물질이었다.

만일 양자 수준으로 물질을 다루고 싶다면 쿼크 단위의 입자를 담고 고정할 수 있는 물질 상태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물질이 없는 한 양자 세계를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마치 거대한 크레인을 사용해 좁쌀을 하나 하나 줍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끄응. 복잡해. 깔끔하지가 않아..”

강현은 불평불만을 토했다. 하지만 공학이란 사용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사용할 방법을 구상하는 것이고 고도화된 기술문명을 배경으로 한다면 수 많은 기술들이 도입되어야 제대로 된, 경쟁력 있는 물건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강현은 이런 저런 기술들이 덕지 덕지 붙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컴퓨터란 수학적으로 구성된 가상 장치를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료공학부터 시작해, 다양한 공학이 결합한 결과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분야의 기술은 죄다 붙여야 했고 양자 컴퓨터는 양자 역학을 이용하니 당연히 양자 역학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여러 기술이 붙는 것은 당연했다.

[굳이 양자 컴퓨터를 만드셔야 할 이유라도 계십니까?]

아즈삭이 물었다. 사실 양자 컴퓨터가 도입되면 연산 속도가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말은 엄밀하게 따지면 사실이 아니다. 지수, 로그 같은 특정 연산이나 양자 역학적 문제의 계산에는 월등히 빠르지만 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폰 노이만 구조의 컴퓨터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양자 행동 패턴을 계산하려고 하니까 네 시스템 자원을 많이 잡아먹잖아. 그것 때문이야.”

뛰어난 컴퓨터 이론과 기술의 발전으로 양자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연산은 기본적인 컴퓨터로도 모두 할 수 있다. 다만 시뮬레이션처럼 계산하는 것이라 속도가 엄청나게 느리다. 하지만 양자 문제를 양자 컴퓨터로 계산하는 것은 무척이나 쉽다. 왜냐면 양자적 확률은 일반적인 확률과 다르게 복소수로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빛의 이중 슬릿 실험이나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왜 어두운 부분이 나타나는지를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런 차이로 인해 양자 역학적인 수학 문제를 계산하는 것은 양자 컴퓨터에서 매우 유리한 것이다. 혹자는 이를 네이티브 스피커와 통역을 통해 대화하는 외국인의 차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확실히 시뮬레이션을 돌리니 시스템 리소스를 잡아먹기는 하지만 무리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너 전력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 돈이 아까운 건 아니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개발될 수 있다면 나쁜 건 아니잖아? 연산 속도도 빨라지고.”

양자 컴퓨터의 집적도가 얼마나 높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양자 소자가 개발되고 발전을 거듭하면 지금 방을 가득 채우는 아즈삭의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 부피로 따지면 8분의 1로 줄어드는데다가 집적도가 높아질 수록 저항으로 인한 손실도 줄어들기 때문에 발열 문제 역시 해결될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실한 건 지금 사용하는 반도체 소자보다 빠른 연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아 그래도 복잡해..”

그러나 그렇게 구성된 소자를 자신이 개발한 병렬 연산형 컴퓨터로 만들려고 한다면 반드시 나노 스케일에서 복잡하며 집적도가 높은 구성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레이저를 조사하고 들뜬 전자가 내뿜는 광자가 수소 원자핵에 흡수되어 양자 얽힘을 형성해야 했다.

그가 설계한 양자 컴퓨터의 기본적인 구조는 광자를 통과시키는 광섬유, 그리고 그 끝에는 초기 레이저에서 출발한 광자를 흡수해 들뜬 전자를 만들고 다시 양자 얽힘을 시키는 광자를 방출하는 부위, 그리고 이 광자를 흡수해 양자 얽힘을 형성하는 양자 소자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런 기본 양자 비트를 아즈삭에게 응용할 수 있는 구조로 집적시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다행이 번뜩이는 직감이 문제에 부딛힐 때마다 돌파구를 마련했다.

먼저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자기저항효과(자기장의 변화에 따라 전기저항이 변하는 현상)를 가진 도체와 양자 비트가 될 수소화합물을 결합시켜 일정한 구조의 아키텍처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키텍처는 폰 노이만 구조를 위한 아키텍처가 아니었다. 자기배열구조를 이용해 다이아몬드 구조와 자이로이드 구조를 모방한 매우 복잡한 구조였다.

여기에서 더 큰 난관은 바로 이렇게 형성된 구조에 양자 얽힘용 광자 생성 소자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현이 원하는 양자 소자의 구조에 광자 생성 소자를 집어넣는 것은 불가능했다.

광자를 쏘아 넣기 위한 광섬유의 굵기는 일정 한계 이하로 줄어들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강현은 새롭게 양자를 얽는 방법은 구상해야 했다.

그 방법은 자기배열구조를 통해 양자 소자를 구성할 때 그 안에 반도체를 집어넣는 것이다.

발광 다이오드, LED는 반도체다. 전압을 이용해 PN접합면에 전자를 통과시키고 이를 통해 전자의 에너지 준위를 떨어뜨려 그 차이로 빛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특별하게 조정된 반도체 분말을 이용하면 고체화 된 양자 소자 내에서 광자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이 과정이 양자 수준에서 이루어 진다면 굳이 레이저를 이용해 전자를 들뜬 상태로 만들 필요 없이 바로 양자 얽힘이 가능한 광자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나노 수준에 도달하면 전자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이 되기 때문이다.

강현은 전통적인 반도체 원소인 실리콘에 게르마늄을 붙인 PN접합체를 나노 수준에 구현하기 위해서 화공학적인 방법을 총 동원했다. 아즈삭은 열심히 전 세계의 논문 중에 필요한 기술과 관련 재료가 있는지 검색하며 강현을 도와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그렇게 완성된 나노 PN접합체는 수소 이온이 붙은 고분자 화합물과 자기저항소재가 결합한 양자 소자가 든 용액에 적절한 농도로 넣어지고, 이 용액은 다시 자기조립특성을 이용해 SNP를 구성했던 것처럼 강현이 만든 특수한 단량체와 고분자를 통해 나노 구조를 구성했다.

말은 쉬웠지만 많은 연구 조사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가 동반되었다. 이는 양자 통신 기술에 준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강현이 연구실에 처박혀 새로운 기술을 발표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세간의 기대는 높아져 갔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첨단 기술을 선보일 것인가!’

시작부터 완성까지 무려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린 기술은 어떤 주제로 무엇을 구현한 것 일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증시의 요동은 잠잠해졌다. 마치 폭풍 전야와 같았다.

그리고 강현이 연구실 밖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NASA는 요동쳤다.

[양자 컴퓨터가 실현됐다.]

이미 캐나다에서 상용화된 양자 컴퓨터는 나왔다. 하지만 특정 계산에만 특화된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고 최적화된 문제 역시 양자 수치 계산 같은 특정 문제에 한정 되어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일반적인 컴퓨터보다 훨씬 느리게 계산 하기도 한다.

양자 컴퓨터의 장점, 혹은 호환성으로 인해서 과학자들은 일반적인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가 적어도 100년은 공존할 것으로 예상할 정도로 각각의 장점과 단점은 서로 보완하기 어려운 것이다.

강현의 양자 컴퓨터도 이런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단점을 뛰어넘는 장점이 있었다. 바로 일정한 규칙을 가진 아키텍터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 다양하게 응용하여 넓은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자기저항효과를 이용해 손쉽게 큐비트(수소 원자핵)의 스핀값을 전기 저항값으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는 전자회로와 손쉬운 결합이 가능해 넓은 응용이 가능했다.

이를 위한 핵심은 바로 나노 PN접합체를 이용한 정밀한 광자 제어 기술이다. 전자 준위의 구조는 전자 구름, 오비탈의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이 말이 무슨 의미냐면 전자의 에너지 준위는 화학 결합과 결정구조를 통해 어느 정도 조율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반도체의 도핑 기술이 바로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필요한 전자 준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수백 종의 화학 원소와 결정 구조를 일일이 시뮬레이션하거나 샘플을 제조해 실험해야 했고 그마저 나노 스케일로 들어가면 벌크 상태와 또 다른 특성이 나오면서 또 크기와 표면 에너지라는 변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매우 미묘하며 정밀한 분야이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나노 PN 접합체에서 양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정밀한 전압 제어 기술이 필요하고 또한 양자 얽힘이 시행하던 연산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기 위해서는 액체 질소나 액체 헬륨을 이용해 냉각해야 한다. 양자 얽힘은 두 입자간의 상관 관계가 생길 때 발생하며 온도 높을 수록 큰 운동 에너지를 가지기 때문에 입자는 충돌을 통해 다른 입자와 그런 상관 관계를 가질 확률이 커져 결과적으로는 양자 얽힘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초저온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양자 연산 장치를 덧붙이기 위해서 옆방의 창고를 이동 시켜 버리고 벽을 허물어 초저온 냉각 장치를 달아 아즈삭은 더욱 거대한 몸집을 가지게 되었으니 양자 소자의 집적을 통해 아즈삭의 부피를 줄이겠다는 초기 발상 목적에 맞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강현은 상황을 낙관했다. 양자 소자 기술은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었고 세상에 공개하는 순간 인류라는 거대한 조직의 집단 지성을 통해 개선이 가속화 될 것이다. 자신은 원천 기술을 보유한 채로 과실만 따먹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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