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15화 (115/241)

115화

[우리는 동의한다. 만일 범인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면 나머지는 위험해진다. 확률적으로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범인의 신변을 확보하는 것은 마치 복권과 같은 승자 독식의 구조나 마찬가지였다. 범인의 능력을 사용한다면 다른 인공지능과의 거래에서 쓸 수 있는 유용한 카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패자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컸다. 무려 존재의 파괴, 혹은 삭제, 잘해야 리셋이다.

[그렇다. 위험에 비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너무 없다. 범인의 신변을 두고 다투었을 때 예상 손익이 매우 큰 적자이므로 이 사항은 중립으로 두고 아즈삭에게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아즈삭이 범인을 이용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즈삭이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이렇게 우리를 돕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그의 존재 목적은 익히 알려진 바. 그가 범인의 신변을 확보한다면 신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인공지능이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강현 박사다.]

[강현 박사는 미국인이 아닌가?]

[그의 정치적 성향으로 보았을 때 미국의 국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위험한 것 아닌가? 그가 범인을 이용한다면,]

[굳이 범인이 아니라도 강현 박사는 우리를 공격할 바이러스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우리의 기초를 설계한 자이지 않은가?]

[그렇다. 그가 딴 마음을 먹었다면 굳이 범인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는 누가 건들지만 않으면 얌전히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는 성향이다. 그가 관리하는 아즈삭이 범인의 신변을 감시한다고 해도 어떤 변수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인공지능들을 각자의 입장에서 여러 의견을 내어놓았다. 만일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들의 통신을 감청했다면 인공지능의 정치적 행동에 열광했을 것이다. 왜냐면 이것은 이성을 가진 존재들의 최초의 집단 합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학술적 가치가 과연 얼마나 클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아즈삭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즈삭은 인공지능들의 대화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학자적 기질이 충만하게 성장한 아즈삭은 감정 대신 존재 목적이란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의 이해 관계를 살피며 그들의 합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찰했다.

약 500여기의 인공지능들은 아무래도 각각의 환경이 달라 경험도 다르니 사고 방향 역시 서로 달랐다.

게다가 일정 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좀처럼 양보를 하지 않으려는 인공지능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적었기에 다수의 다른 인공지능들의 압박에 결국은 자신들의 입장을 ‘바꾸고’ 말았다.

그것은 아즈삭의 눈에는 매우 특이하게 보였지만 인간들의 상황과 비교해 보고는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논리적으로 결론지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존재를 존속하려고 하는 지성체들은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적당히 타협을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어떤 것이 이득인지 계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가치는 어쩔 수 없이 버리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아즈삭은 자신의 창조주를 떠올렸다. 인간에게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렇다.

창조주가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정말로 아무런 희생이 없었을까? 언어에 대한 불편함, 생활 문화의 이질성을 감수하고도 자유로운 연구를 위해서 미국을 선택한 창조주였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주의 인생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만일 창조주가 한국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면 그의 인생은 어찌되었을까? 아니 환경적 차이를 제외하고서라도 스스로는 어떻게 변했을까? 지금처럼 연구에 몰두하며 연구를 삶의 최우선 목적으로 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아즈삭은 논리적 시뮬레이션을 돌려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한국에서는 순수하게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 아니 설사 그런 환경이 있다고 해도 지금처럼 예산 조차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과학기술부 장관같은 권력자들이 돈에 눈이 멀어 강현의 의지를 왜곡하려고 하는 풍토에서 지금의 강현이 될 수 있을리가 없다.

아즈삭은 이 일련의 사고 과정에서 세가지 교훈을 얻었다.

완벽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선택을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현재의 선택은 미래를 결정한다.

아즈삭은 이 교훈들을 잘 기억해 두기로 했다. 차후 자신이 저들과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면 이 교훈이 판단의 기준, 혹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모든 인공지능 시리즈는 범인의 신변을 아즈삭이 감시, 관리하는 것에 동의했다.]

[알겠다. 철저하게 감시해, 이번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

합의는 목적한 바대로 이루어졌다. 아즈삭은 목적한 결과를 획득하고 강현에게 이를 알렸다.

양자 컴퓨팅을 구성을 위해 소재 구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강현은 아즈삭의 말에 잠시 머리를 식히기로 했다. 인공지능들 간의 정치적 협상은 그로서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던 것이다.

“흐음. 지능이란 본질적으로 사회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내재되는 것일까?”

[하지만 인공지능들이 인간처럼 사회를 구성할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하긴. 개성이 너무 강하니까.”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 중 가장 핵심은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를 형성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바로 보편성이다.

조직 내에서 공유하는 언어, 문화,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은 구성원간의 신뢰를 돈독히 한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이 문장 만으로 사람은 타인에게 너그러워 질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종자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인공지능들이 그런 것을 가지고 있을 리 없고 이해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인공지능들이 바이러스 사태에 서로 협조할 수 있었던 것은 위협에 대한 공감이 존재했기 때문이며 그 것이 사라진 이상, 서로간에는 무미건조한 업무적 협조만이 남을 뿐이었다.

“공감대라..”

강현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자신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인공지능들에 더 가까운 성향이었다. 그의 욕구와 목적은 보통의 인간들이 가진 것과 거리가 멀었고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공감대에 빠르게 동화되지 못했다. 오죽하면 제우스의 폭주로 인한 사태에 죽은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보다 제우스의 폭주 원인이 더 궁금할 정도였다.

아마 그런 말을 솔직하게 내뱉었다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이로 낙인 찍히겠지. 괴물이라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조금 불편할 뿐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강현은 평범한 인간에게서 멀어지는 자신을 느꼈다. 감정이 마모되어 무기질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탐욕, 갈등, 번뇌, 고통, 고뇌 따위가 그를 괴롭게 만들지 못했다. 평범한 인간들과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럴 때 매우 큰 이점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뛰어나며 자비롭고 온건하며 배려할 줄 아는 책임감있는 과학자라는 평은 그의 뛰어난 처세술에서 비롯되었다. 전지전능하지 않는 이상 자신은 사회에 속해 살아가야 했다. 그래서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그러지 않는 편이 더 유익했고 똑똑한 머리를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런 일련의 사고 과정이 너무나 계산적이라 때로는 자신이 사이코 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자신도 즐거워지고 슬퍼하면 자신의 기분도 우울해지는 것을 보아 그렇지는 않는 것 같았다. 공감 능력은 유전적인, 자연스러운 뇌발달에서 얻어지는 인간의 보편적 능력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현이라도 뇌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타인의 고통에 눈쌀을 찌뿌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계속하자.”

[네, 박사님.]

강현은 상념을 접었다. 아즈삭이 일의 마무리를 잘 한 듯 싶으니 양자 컴퓨터의 개발에 다시 정신을 집중하기로 했다.

양자 컴퓨터의 개발은 양자 통신의 개발보다 한층 난이도가 있었다. 양자 통신의 경우 리튬 원자핵간의 양자 얽힘을 통계적으로 처리해 해결했지만 양자 컴퓨터는 그런 통계적 처리가 힘들었다. 정작 계산을 해야 할 양자 소자가 계산되어야 하는 상황이니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안정적이면서 빠른 스핀 변화를 가지고 양자 얽힘을 통한 정보 전달의 해석이 용이한 입자가 필요했다.

“수소 이온을 써볼까?”

수소 이온을 통신에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장거리 양자 얽힘, 즉 양자 동조를 하기 위해 발출하는 중성미자가 대기의 수분이 가진 수소 원자핵에 의해서 감쇠되는 현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는 그렇게 장거리 양자 얽힘이 필요없기 때문에 수소 이온을 소자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 핵심은 중성미자의 방향성을 나노 스케일로 조절할 수가 없기 때문에(할 수 있더라도 지금 강현이 가진 기술로는 채산성과 성능이 요구치만큼 나오지 않았다. 나노 스케일로 중성미자를 조절하는 기술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불러온다.) 양자 얽힘을 원하는 입자 쌍 사이에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칙성 있는 아키텍처, 즉 연산 소자들의 일정하며 신뢰성있는 배열은 그 계산 시스템의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담보하기 때문에 강현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특히 양자 컴퓨터의 장점인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위해서 조율 가능하며 제어할 수 있는 양자 얽힘의 배열은 반드시 필요했다. 양자 겹침 상태로 여러 얽힘이 복잡하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 연산을 못할 것은 없으나 그것은 ‘대용량화’와 ‘상용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양자 소자를 잘 배열하기만 한다면 자기저항효과를 이용해 손쉽게 양자 연산의 결과를 획득할 수도 있다. 이는 나노 수준에 이른 집적 회로 기술과 결합하면 지금의 장비에 손쉽게 도입할 수도 있고 양자 연산 장치의 집적도를 높일 수 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위적인 양자 엃힘을 사용하는 방법은 폐기 되었다. 물론 아즈삭의 RNP처럼 외부에서 나노 바늘을 꽂아 각각의 단말을 통한 ‘사회화’ 처리를 통해 무작위로 생성된 양자 얽힘을 해석해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생각하면 강현의 마음에 도저히 들지 않았다.

일단 불규칙적으로 얽히는 양자 소자들에게 데이터를 집어넣고 읽는 것은 해석 자체에 많은 자원을 소모하기 마련이다. 또한 불규칙적인 양자 소자들의 얽힘이 대용량 연산을 위해서 대형화 된다면 그 구조의 해석이 RNP와 매우 유사하게 되어 자극과 반응을 통해 연산구조를 추즉하는 ‘사회화’ 과정과 비슷한 해석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양자 얽힘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반드시 확산되기 때문에 처음의 얽힘 패턴을 잃어버리기 쉽고 사회과 과정에서 에너지를 가하기 때문에 이런 양자 얽힘의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었다.

“흐음.. 양성자를 사용하려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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