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13화 (113/241)

113화

“그렇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하오?”

“네. 인간이 아닌 지성체의 탄생이죠. 생물학적으로 생물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엄연히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인간 수준의 지성.”

“당신은 대체 인간을 뭐로 아는 거요!”

막스는 결국 분통을 터뜨렸다. 강현의 말은 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인간성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언제나 그렇듯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인간이 인간이지 또 더 뭐가 있겠어요? 설마 신이 직접 창조한 축복받은 생명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죠?”

“당신도 인간이오.”

“그러니까 더 인간이 아닌 지성체를 만들고 싶지 않겠어요? 미지의 존재를 탐구하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요.”

미친! 이 작자는 연구에 미쳤다. 완전히 돌아버렸다. 막스는 돌아가면 강현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모조리 분쇄기에 갈아버릴 것이라고 맹세했다.

[분석 완료. 대응 코딩을 시작합니다. 코딩 완료.]

둘의 대화는 아즈삭의 알림 메시지로 인해서 끝이 났다. 어느새 시간이 지났나 보다.

분석에 걸린 시간과는 다르게 백신 프로그램을 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강현은 그 백신 프로그램을 전원 장치가 달린 SNP모듈에 담아 막스에게 건네 주었다. SNP나 RNP나 휘발성 메모리 소자를 이용하기 때문에 전원이 끊어지면 내용이 사라진다.

“이거면 동일한 바이러스에는 안 걸릴 거에요.”

“.....”

하지만 이미 분노하여 강현에 대한 색안경을 낀 막스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현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계속 유지하려면 시스템 리소스의 일정 부분을 항상 그 백신을 가동하는데 사용해야 되요. 마치 몸안에 백혈구를 집어넣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변종이 공격하면 대응을 못하니까 바로 아즈삭에게 연락하세요. 분석해서 바로 백신을 만들어 드리죠.”

그것은 일반적인 개인용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백신 프로그램의 실시간 감시 기능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고맙소.”

막스는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니 차마 예의상이라도 격식을 차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냉큼 걸음을 옮겨 본부로 돌아갔다. 바이러스 치료는 물론, 범인 색출부터 강현과 아즈삭에 대한 대응 방법까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괜찮겠습니까?]

막스가 돌아가고 나자, 아즈삭이 물었다. 그 물음의 내용은 막스에 관한 것이었다.

“글쎄. 네 판단은 어때?”

[심장과 동공의 수축 등 신체적인 반응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어떤 것을 결심한 듯 합니다.]

“아마, 너와 나에 대한 것이겠지.”

[제제일까요, 아니면 대비일까요?]

“구분해도 의미없어. 대비를 하고 싶으면 자신들의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한 예산을 타내기 위해서는 너의 성능에 관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거든. 그렇게 되면 권력자들은 안전을 위해 내게 목줄을 걸고 싶어 안달이 나겠지. 예산을 타내지 못한다면 역량을 키우지 못하니 결국에는 꼼수를 부리는 수 밖에 없고 각종 공작이 들어올 거야. 어떻게 되든 귀찮기는 마찬가지지.”

그래서 강현은 결정을 하나 했다.

대세, 혹은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힘에 대한, 혹은 힘에 의한 역학 관계는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한 정해진 구도를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강현이 자신을 귀찮게 할 것이 분명한 막스를 처리할 것을 결심한 것 역시 그러한 흐름의 자연스러운 수순에 불과했다.

[어떻게 할까요?]

“파셀 의원에게 연락을 넣어.”

아즈삭은 파셀 의원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요즘 대선 준비에 무척이나 바빴다. 민주당의 후보 역시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자정주의의 물결을 이끌고 공화당과 보수진영의 체질과 이미즈를 효과적으로 개선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여론조사에서 무려 15%차이로 앞서고 있어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였다. 이 상태만 유지하면 차기 미 대통령도 그리 먼 꿈이 아니다.

[아, 강 박사! 어쩐 일인가?]

그가 반갑게 안부를 물었다.

“오늘 큰 일이 생겼다는 건 알고 계세요?”

[아즈락 말이지? 그것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네. 사태 해결을 위해서 막스 부장이 찾아갔다던데 해결은 된 건가?]

“네. 망가진 하드웨어는 교체하는 수 밖에 없지만 다행히 근본적인 대처 방안은 금방 나왔어요. 이제 남은 건 범인을 색출하는 것 뿐이죠.”

[그것 참 범인이 누군지 궁금하구먼.]

“저보다 궁금한 사람은 없을걸요?”

[하하! 하긴 자네의 작품에 흠집을 낼 사람이니 그럴만 하지.]

“그게 아니라 범인은 천재에요. 다른 분야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이쪽 다중 연산을 이용한 전자 세계의 코딩은 확실히 저에 준하는 수준이에요.”

[허허허. 이거 사법 거래를 해야하는 건가?]

파셀 의원의 말 뜻은 사법거래를 통해 범인의 형량을 감해주는 대신 미국을 위해서 일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거야 정부에서 알아서 하겠죠. 그보다 말이죠, 막스 부장 말인데요.”

[그가 왜? 자네에게 무례라도 저질렀나?]

“아니요. 사람이 너무 불안해 보여서요. 아즈삭 말로는 편집증적인 증상이 보인다고 하는데 첩보계에 있으면 다 그런가요?”

[흐음.. 그럴 수도 있지. 아무래도 완벽을 요하는 분야니까. 그래서 이렇게 전화를 한 건가?]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혹시라도 헛소리를 하면 문제가 클 것 같아서요. 이번에 인공지능 때문에 또 크게 일을 겪었으니 혹시나 편견이 생길지도 몰라서요.”

[하하하!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되지 않나? 그리고 이미 인공지능은 없어서는 안 될 현대 사회 필수 요소라네. 그래, 고작 그것 때문에 연락을 한 건가?]

“네.”

[푸하하하! 세계 유수의 기업들을 간 떨리게 하는 사람이 정작 본인의 간은 작구먼. 알았네. 내가 알아서 조치하지.]

“감사합니다.”

[하하. 뭘. 서로 돕고 사는 거지.]

통화는 끝이 났고 강현은 아즈삭에게 두고 보자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스가 경질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명분은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를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님은 그도 강현도, 파셀 의원도 알고 있었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인 것이다.

그 때문인지 막스는 소지품을 들고 정보부 안가에서 나서며 강현을 향한 원한 어린 외침을 질렀다.

물론 그 내용은 아즈삭이 확실하게 기록해 놨다. 비록 강현에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요주의 인물로 아즈삭의 감시 리스트에 드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아즈삭이 그러는 동안 강현의 마음은 온통 이 천재 크래커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차 추적을 시작했다. 그리고 크래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의도가 무엇인지 추측을 했는데 아무래도 그 목적이 모든 인공지능에 대한 파괴인 것 같았다.

“아즈삭. 혹시 지구상에 있는 인공지능 중에 사람에게 원한을 산 녀석이 있어?”

[글쎄요. 없습니다만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도태된 사람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들 중의 한 명이 아닐까요?]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다름 아닌 금융계였다.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한 데이터 분석 능력은 트레이더의 수를 급감하게 만들었다. 금융계에 도입된 인공지능은 최정상 트레이더의 손발이 되어 그들의 업무 역량을 극대화 시켰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고객이 빼앗긴 다른 트레이더들은 도태되고 말았다.

“아니야. 이런 코딩 실력이 있었다면 그런 인공지능의 메인테넌스나 개량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훨씬 대우를 잘 받을 테니까 이런 식으로 인공지능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 같아. 오히려 자신의 커리어가 더 높아질 수 있는 기회가 되거든.”

도태되는 만큼 새롭게 생긴 자리가 바로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직업군이다. 강현이 개발하고 NASA가 정리한 다중 연산 컴퓨팅 프로그래밍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인재에 대한 수요는 퍼져나가는 인공지능 만큼이나 높았고 그들의 연봉 역시 금융계에 종사하는 웬만한 이들보다 훨씬 높았다. 변화는 도태와 동시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는 개체의 풍요를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도태된 자들이 원한이 있더라도 범인 수준의 프로그래밍 실력이 있다면 금방 현실에 적응에 잠깐의 원한 따위 금방 잊어버릴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높이 올라갈 기회가 왔다면서 좋아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즈삭이 유추한 범주는 용의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

“이 바이러스는 명백한 원한의 산물이야.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인공지능을 공격하는 것 역시 원한이 느껴질 정도라고.”

그리고 강현의 직감 역시 이 컴퓨터 바이러스가 평범하게 만들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렸다. 이것은 증오의 결정체라고 할만한 것이 들어있었다. 해커들의 흔한 자기 과시욕 따위는 일절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개연성이 있는 견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원한을 산 행동을 한 적이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도 스스로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수 있다는 점을 잘 모른다. 단순히,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누군가의 원한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인간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러할 진데 하물며 인간의 감성을 그 존재에 대해서 알기만 할 뿐 이해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은 오죽할까?

“흐음.. 결국은 범인을 잡아봐야 알 수 있겠다는 거네.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아. 범인이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있으니까.”

강현의 말대로 미국 첩보부의 아즈락을 무력화하는데 성공한 해커는 자신감을 얻었는지 천지 사방으로 바이러스를 뿌리고 있었다. 꼬리가 길어지면 밟힐 확률 역시 증가하는 법. 더구나 그 꼬리를 밟고자 하는 이의 수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백신을 대가로 전 세계의 인공지능의 도움을 구하면 소재 파악은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럴까?”

그리하여 전세계 첩보와 금융, 정부 기관 데이터 베이스 등을 관리하는 수백기의 인공지능이 단 한 명의 크래커를 잡기 위해서 협조를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그들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할 수 있으니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오히려 몇몇 인공지능은 너무 과한 전력이 아닌가하는 효율성 문제를 제기할 정도였다. 일찍이 한 명의 범죄자를 잡기 위해 각 인공지능의 이해관계(국적, 존재 이유 등등)를 넘어 공조 수사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천재 해커는 대단했다. 우회를 위한 단말마다 변종 바이러스를 심어두고 꼬리를 끊었다. 이는 일시적이나마 추적한 인공지능에게 강력한 타격을 입혔고 아즈삭이 다시 해석한 백신을 제공받기 전까지 정상적인 운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인공지능을 운용하는 국가나 은행, 증권사 들은 때 아닌 고장의 연속에 원인을 파악한다고 골머리를 앓았다. 그리고는 그들은 고장의 원인이 해커의 변종 바이러스 공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짐작했을 뿐 설마 인공지능들이 백신을 대가로 해커를 찾기 위해 조직적인 행동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몇몇 증권사에서는 해커에게 거액의 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중요한 거래에 오류가 발생해 많은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세계 인공지능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차근차근 해커를 압박해 들어갔고 해커는 문제의 원인, 즉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 공급하는 아즈삭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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