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10화 (110/241)

110화

정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상호작용이다. 주체가 객체를 관찰하면서 필연적으로 객체에서 무엇인가 정보가 담긴 어떤 것을 수용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관찰은 본질적으로 주체와 객체 모두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의미로나, 또는 철학적인 의미로도 말이다.

아무튼 관찰이란 행위의 본질로 인해 아주 작은 미소한 입자들로 이루어진 양자 세계에서 입자에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 즉, 얽힘 상태에 있는 양성자의 스핀을 읽는 행위 자체가 양성자와 관측 장치 사이에 새로운 상호작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보에 잡음이 낄 수 밖에 없으며 이른바 양자 얽힘의 확산 현상과도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일회의 양자 얽힘 당 전송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한정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강현은 다른 방법을 연구하는 것 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원거리에서 양자 얽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중성미자 뿐이었다.

그렇다면 중성미자가 원거리 통신에 적합한 것인가? 그것은 이미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에서 중성미자 검출 실험에서 732km 떨어진 두 도시에 만 오천 여 개의 중성미자를 쏘아 보냈고 중성미자의 도착을 검출했다. 그 과정에서 빛보다 빨랐느니 아니니 따위의 소란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바로 중성미자가 장거리로 정보를 보내는 데 이용될 수 있을 정도로 전파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일반적인 중성미자는 대형 욕조에서 체렌코프 복사의 현상을 통해서 검출을 하게 될 정도로 흡수율이 낮다.

그렇다고 강현이 조절한 것처럼 수소 원자핵이 공명 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를 낮추는 것 역시 문제였다. 지구의 표면적 70%를 덮은 것이 바로 물이었고 이 물에 붙은 수소 원자핵을 통해 에너지를 조절한 중성미자가 흡수될 것은 너무나 뻔한 이치였다. 거기다 지상의 물만 있나? 대기의 수분, 하늘 위의 구름 등 강현이 흡수가 용이하도록 에너지 상태를 조절한 중성미자는 원거리 양자 얽힘에 사용하기에 너무나 미진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강현은 더 이상 수소를 사용해 양자 얽힘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파장의 중성미자를 사용하기 위해 그는 수소를 대신할 다른 원소를 찾았고 가장 적합한 원소로 중성자 4개에 양성자 3개로 이루어진 리튬을 선택했다. 왜냐면 지각의 리튬 함유량은 고작 0.006%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성미자의 소실 가능성이 무척이나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심 원자핵을 구성하는 중입자의 수가 많아진 만큼 얽힘의 과정이 무척이나 복잡해지고 해석도 어려워지며 양자 얽힘의 확산을 통해 원하는 양자 얽힘이 유지되는 시간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원거리 양자 얽힘, 강현이 양자 동기화 기술이라고 명명한 기술이 실현이 된다면 양자 얽힘의 유지 시간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양자 얽힘을 통한 스핀 해석의 문제도 아즈삭으로 대표되는 비약적이며 미래적인 정보 처리 시스템으로 얼마든지 빠르게 해석할 수가 있었다.

물론 리튬보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중입자(양성자, 중성자)의 수가 적은 헬륨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비율이 매우 적기 때문에 중성미자의 전파를 방해할 가능성이 없었다.(우주에서는 수소 다음으로 흔한 원소 약 24%. 다만 너무 가볍기에 지구 중력으로 잡아둘 수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헬륨의 화학적인 안정성(불활성 기체) 때문에 고체화 된 모듈로 만들어도 수명을 장담하기가 어렵다. 작동하는 와중에 기체나 액체가 되어 유동하게 되면 해석에 더 큰 오류가 생길 수 있다. 그 만큼 양자란 미소 단위를 다루는 기술에서는 안정적인 상태의 입자가 다루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강현은 리튬을 이용한 양자 모듈을 제작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약 10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원거리 양자 얽힘을 실현시키고야 말았다.

원거리 양자 얽힘은 중성미자 방출 장치와 통신을 위한 양자 모듈 한 쪽이 같은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왜냐면 중성미자는 광자처럼 전자를 매개로 둘로 쪼개지지 않기 때문에 양성자에 탄성 충돌시켜 다른 양성자에 흡수시키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 양자 얽힘을 생성하는 방법이었다.

“하아.. 힘들었다.”

지금까지의 개발 중에서 가장 힘이 들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 기술이었다. 무려 일년이 넘는(정확히는 387일) 시간이 걸릴 정도니 그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양자 모듈의 스핀값을 통계적으로 해석해 정보를 전송하고 손실을 줄이는 정보 처리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까지 그야 말로 시작부터 양자 역학이 사용된 나노 공학, 재료 공학, 컴퓨터 공학, 전자 공학 등 여러 과학 분야를 총 망라하지 않았다면 결코 상용화가 가능한 양자 통신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첨단화 된 현대의 과학기술은 각 분야의 종합적인 통합이 아니면 결코 제대로된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박사님.]

“너도.”

강현 만큼이나 고생했던 것이 바로 아즈삭이었다. 특히 양자 모듈의 스핀 자기장 값을 읽고 잡음을 걸러내 정보를 추출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계적인 방법이 필요했고 이 방대한 계산을 아즈삭이 없었다면 결코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 그럼 좀 씻자.”

연구하는 중간 중간 샤워도 했지만 며칠 동안 제대로 수염도 깍지 않아 턱이 지저분했다. 머리 역시 자랐는데 길어져서 눈을 가리고 귀찮게 하니까 아즈삭을 시켜서 적당히 자르게 했다. 아즈삭은 HA를 이용해 강현의 머리칼을 잘랐는데 아무래도 인공지능이다보니 머리를 자르는 센스가 엉망이었다.

셀리가 봤다면 ‘어머나, 세상에!’라며 기겁을 하고는 그를 즉시 미용실에 끌고 갔겠지만 연구를 하는 내내 그의 생활 반경은 NASA 방사선 연구동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실험 장비를 설치하러 온 기술자 이외에는 방문조차 받지 않았다.

중간에 노벨상이고 어쩌고 하면서 찾아온 이도 있었는데 생각만큼 진척이 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 한창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강현에게 짜증만 듣고 돌아갔다. 역시 양자 세계를 컨트롤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튼 그때문에 ‘노벨상보다 연구가 중요!’ ‘역시 세계 최고의 천재!’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지만 아즈삭은 강현의 연구에 방해가 될까봐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강현은 방금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라? 나 노벨상 후보였어?”

[네, 박사님.]

“근데 왜 안 알려줬어?”

[연구에 심취해 계셨기 때문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하긴 재산도 많으니 굳이 상금을 탈 필요도 없고 명예욕도 없는데다가 시상식장같이 번잡한 곳으로 들어가기도 싫으니 굳이 아즈삭을 탓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국가 위상이 상승하는 노벨상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여러 번 사람을 보낸 미 정부만 속이 터질 뿐이었다. 물론 이번 강현의 발명에 입이 활짝 벌어질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양자 통신 기술! 실현되다!]

[전자가 아닌 원자핵을 이용한 양자 통신의 기막힌 효용!]

[양자 동기화란 무엇인가?! 양자 통신의 핵심을 파보자!]

미국의 통신망 회사라는 곳은 죄자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기 시작했다. 양자 통신은 일약 장거리 통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케이블을 깔 필요가 없는 것 하나 만으로 엄청난 이점이 있다.

아무리 광케이블이라고 해도 광섬유를 통과하는 동안 손실이 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신호를 증폭시켜 주는 중계 장치를 설치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는 장거리 통신의 속도를 저하시킨다. 하지만 강현이 개발한 양자 통신을 이용한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사이에서 그야 말로 빛의 속도로 통신을 주고받을 수가 있었다.

물론 좀 더 편리한 사용을 위해서는 각 기지국의 양자 모듈이 따로 따로 양자 얽힘을 해야 했지만 강현은 이 문제를 각 모듈의 동기화 시간, 그리고 정보처리 방법으로 해결했다.

중성미자로 인한 양자 얽힘이 어느 기지국의 양자 모듈과 형성되는지 완벽한 조절은 불가능했지만 양자 모듈의 온도를 미세하게 조절하여 리튬 원자핵의 에너지 상태를 조정해 공명할 수 있는 중성미자의 파장을 제한적으로나마 선택할 수 있고, 또한 각 기지국에 할당된 인증 코드를 이용해 제대로 된 접속인지 확인하고 다시 새로운 양자 얽힘을 형성하는 방법도 이용해 기지국을 다양하게 설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러곳에 기지 국을 세울 수 있는지가 걱정이었던 통신망 회사들은 더욱 기뻐했다. 강현의 기술만 얻을 수 있다면 국제 통신망 업계의 1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 정부는 당연히 미국 기업에 이 기술이 넘어가기를 바랬지만 강현은 이 양자 통신 기술을 석유 제조 라이센스와 같이 컨소시엄에 넣어버렸다. 통신망은 정보화 사회의 근간이기 때문에 통신망을 누군가 독점하게 된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당연히 정보에 가장 민감한 잭이 가장 먼저 달려와서 강현에게 뭐라고 했다. 정보부 요원이기 때문에 정보의 가치, 중요함을 더욱 실감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라니?”

“양자 통신 기술이 미국 업체에 들어가게 된다면 국익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본 적 없어?”

“글쎄.. 나는 양자 통신 기술도 미국이 독점하면 괜한 분란을 초래할 것 같은데?”

“어째서?”

“좀 많이 가진 쪽이 베풀 줄 알아야 시기를 받지 않지.”

“....”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현의 기술로 그 동안 얼마나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는가? 그리고 그 강화된 영향력 만큼 미국을 싫어하는 국가에서는 더욱 미국을 싫어하게 되었다. 아무리 팔레스타인 사태가 종결된 중동이라고 해도 말이다. 특히 이란은 더욱 그랬다. 아예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는 이란은 반감기 가속 장치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보려고 우회적으로 장치를 구입해 모방까지 했지만 사용에 필수적인 데이터 베이스가 없기 때문에 삽질을 반복하는 중이었고 삽질을 하면 할 수록 오히려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다.

결코 반감기 가속 장치로 인해서 미국과 결탁할 수 없다는 그들의 강한 의지는 아무래도 역사적으로 냉전을 겪으며 서방 세계와 미국에 여러 번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정보는 좀 아니지.”

“왜? 양자 통신인데 도감청이라도 해볼려고?”

“....”

다시 꿀 먹은 잭. 양자 통신이 흔히들 도감청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양자 암호 기술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도감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지만 강현의 양자 통신은 그런 것까지는 아니었고 단말기나 기지국에 은밀하게 장치를 집어넣는다면 얼마든지 도감청이 가능했다. 아무래도 양자 통신의 소형화가 아직 불가능한 만큼 기지국에서 각 개인 단말기까지는 전파를 이용한 통신을 그대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는 개방적이어야지. 중세시대도 아니고 말이야. 지식이 비전이 되는 순간 문명은 쇠퇴하게 될 거야.”

지식은 사람을 통해서 그 효용성이 발현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유되며 생명력을 얻고 존속된다. 그러나 지식에도 수준이 있고 또 그것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 역시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식이 비전이 되어 아는 사람만 알게 된다면 어느 순간 전해줄 사람이 없게 되면 그 지식은 사장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는 지식이란 이름을 가진 문명의 종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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