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하아.. 문제가 생기면 난 몰라.”
“안 도와주면 어쩔 수 없이 알아서 해야지.”
어련하시겠어? 잭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강현이 나서면 어떤 상황이 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에 K 시리즈란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로봇 병사들이 출현했을 때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강현이라는 존재는 미 정보부를 비롯한 각국 첩보망을 벗어나 무력을 구축할 능력이 있었다. 가끔 잭은 강현이 세계 정복을 꿈꾸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였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잭은 지시한 내용은 다 처리하고 이제는 강현의 근황을 이것 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요즘 대쉬하는 여자는 없어?”
“글쎄..”
샐리라는 이름을 꺼내기 위한 유도 심문이었지만 강현은 고개를 저어버렸고 잭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잭은 그런 강현이 답답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샐리라는 여자는 자신이라도 대쉬할 것 같은 그럼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미모만 따지면 제시보다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런 여자를 강현과 이어주기 위해서 지원 작전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자신이 덥썩 잡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강현의 신변을 이것저것 알아가는 와중에 그녀의 이름을 꺼내도록 유도 질문을 한 것도 그런 지원의 한 방책이었다. 안면이 있는 친구인 자신이 말이라도 한 번 꺼내보면 지지부진한 두 사람의 사이가 한 걸음 진척되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방금 유도 질문이 실패했다고 해도 잭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보를 다루는 요원에게 끈기는 필수였다. 다만 지금은 물러서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밀어붙이는 것이 좋을지 판단할 차례였다. 그리고 잭은 한 번 밀어붙여 보자고 생각했다.
“정말 없어?”
“없다니까.”
“그럼 내가 한 명 소개 시켜줄까?”
“싫어.”
“그러지 말고 한 번 만나봐. 진짜 진짜 섹시하고 이쁘고 착하고 머리도 좋아.”
세상에 그런 여자가 어디 있겠냐만은 강현을 미국에 붙잡아 둘 수 있다면 북한 미녀라도 미국인으로 만들어 초빙할 곳이 바로 미 정보부라는 곳이었다.
“됐어.”
“아, 일단 한 번 만나 보라니까.”
“싫으면 싫은거야.”
“보면 너도 좋아할 것이 분명하다니까.”
“됐어.”
“쩝.”
이쯤 되자 잭도 더 이상 권유할 수 없었다.
“그럼, 난 간다.”
“응.”
잭은 앞일을 걱정하며 돌아갔다.
= = = = =
“드디어!”
강현은 몇 달 동안 블랙홀 수식과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을 서로 대입하고 조합한 끝에 수식의 몇 가지 의문점을 해결했다. 그중에 가장 해결하기 난해 했던 것은 사건의 지평선을 경계로 양자 얽힘이 유지 될 수 있는가라는 점이었다.
비국소성은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도 유지되는가라는 질문에 강현의 수식은 No라는 답을 내어 놓았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현대 양자 물리학에서 그것은 양자 얽힘의 파생효과라는 답을 내어 놓았다. 따라서 시간이 단절되는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는 양자 얽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사선의 지평선을 넘어서도 양자 얽힘이 존재한다면 블랙홀의 시간은 정지해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실을 신 통일장 이론으로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 와중에 에너지로 표현되지 않고 특정 상수의 정수배만을 가지는 변수 두개를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이로서 그는 현재 물리학에서 표현하는 기본입자들을 모두 표현할 수가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입자를 다루는 양자 색역학과 신 통일장 이론을 연결하는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번 내용을 발표할까 말까 생각했지만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수식의 일부를 알아냈다고 설레발을 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꼴사납다. 그러다가 전체적으로 오류라도 발생한다면 무슨 개쪽인가?
그래서 강현은 이번 연구 성과를 응용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양자 통신이 가장 유력하겠지?”
아무리 신 통일장 이론을 통해 양자 상태, 즉 에너지의 종류와 특성 값을 결정하는 변수를 알아냈다고 해도 그것을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양자 통신의 실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양자 얽힘을 오랜 시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양자 얽힘에 있는 입자들을 통신이 필요한 장소까지 떨어뜨리는 동안 그 입자가 원하지 않는 입자와 얽히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런 특성에 가장 알맞은 입자는 아무래로 광자였지만 광자는 오랫동안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거기다가 이동하는 와중에 소실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를 이용하는 방법이 연구 중이었다. 전자의 양자 얽힘 역시 어렵지 않게 만들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그것의 시간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확률이 지배하는 양자 세계와 고전 물리학의 경계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강현은 전자나 광자를 이용해 양자 통신을 실현할 생각은 없었다. 왜냐면 보존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원자핵, 다시 말하면 중성자나 양성자를 이용한 양자 얽힘 보존 기술을 개발할 생각이었다. 양자 얽힘이란 하나의 에너지 상태를 분리할 때 발생하는 시공간적인 상관관계라고 설명할 수 있었고 중입자인 양성자나 중성자를 이용할 경우에는 전자보다 훨씬 오래 보존하고 기계적으로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이미 반감기 가속 장치가 있었다. 원자핵을 변환하고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고온의 플라즈마를 이용한 중성미자 방출 방식은 양자 통신에 사용하기 부적합했다.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확산하는 법이다. 그 말은 높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입자가 그보다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입자와 양자 얽힘을 반복해 간다는 의미였고 단일한 양자 얽힘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양자 얽힘의 보존을 위해서는 극 저온, 에너지가 매우 낮은 상태에서 실행해야 했으며 양성자나 중성자의 정밀한 컨트롤이 요구되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기술적 방법론은 두 가지. 하나는 중입자의 고정. 다른 하나는 고정된 중입자의 상태를 관측할 수 있는 방법. 이 두 가지였다.
그리고 강현은 고민 끝에 중성자는 폐기했다. 중성자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중성자의 스핀을 계측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중성자를 붕괴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치에 기계적으로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핵력을 이용해 양성자와 붙이는 수 밖에 없는데 이 핵력이란 강한 상호작용이 양자 얽힘에 관여해 원하지 않는, 또는 조절되지 않는 양자 얽힘을 만들어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양성자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양성자 역시 전자처럼 스핀을 가지고 있으며 그 스핀을 통해 자기장의 방향을 만들어 내면서 또한 이미 이 양성자의 스핀 방향을 계측할 수 있는 정밀한 장치 역시 개발된 상태였다.
따라서 양성자를 잘 고정하면서 양자 얽힘을 방해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가장 좋은 방법은 단 하나의 양성자로 이루어진 수소를 화합물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수소를 흡수할 양자 모듈은 절대 영도에서 작용해야 했기 때문에 모듈을 만드는 것도 골치가 아팠다. 양성자의 스핀값, 즉 자기장의 변화값을 읽기 쉽도록 외부 자기장을 차폐하도록 되어 있는데 절대 영도에서 금속들은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초전도체는 강력한 반자성 물질이다. 반자성 물질이란 재료내부로 자기장이 침투하는 것을 막는 것인데 이로 인한 현상이 바로 공중에 둥둥 뜨는 현상이다.(자기부상 열차의 원리다.)때문에 수소 합금에 사용되는 원소들의 비율을 조절해 비정질처럼 원자 배열을 흐트려 뜨려(초전도 현상은 금속 원자들의 규칙적 배열이 중요한 요소다. 전자가 아무런 저항 없이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료를 구상해야하는 작업도 해야 했다.
이렇게 모듈을 완성하고 나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모듈간 양자 얽힘을 실험했다.
광자의 양자 얽힘을 생성할 때는 하나의 광자를 이용해 전자를 들뜨게 하고 들뜬 전자가 몇 개의 낮은 전자 준위로 내려가면서 얽힌 상태의 광자들을 방출하게 되며 이는 광자를 이용한 많은 양자 얽힘 실험에 사용되는 방법이다. 강현도 이와 비슷하게 중성미자를 이용해 양성자를 들뜬 상태로 만든 후에 에너지의 자연적인 확산을 통한 양자 얽힘을 시도했다.
양자 모듈에 흡수된 수소에 중성미자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은 별로 큰 문제가 없었다. 신 통일장 이론을 통해 파동으로 해석된 중성미자를 양성자, 즉 수소 원자핵과 공명시킬 수 있는 수준의 파장으로 설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양자 얽힘을 조절하는 것은 무척이나 난해한 일이었다. 조사되는 중성미자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서 강현은 액체 수소가 가득 든 방벽을 준비해야 했으며 혹시나 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중성미자가 생성되는 와중에 생기는 잡다한 방사능도 차폐하는 방벽도 만들어야 했고 양성자의 자기장을 측정하기 위한 정밀한 장치도 주문해야 했다.
덕분에 중성미자 발생장치가 있는 NASA의 방사능 실험장은 온통 케이블과 알 수 없는 장치들로 마치 영화에서나 나오는 SF 장면처럼 되어 버렸다.
마침내 구성된 실험 장비를 이용해 강현은 실험을 조율하고 또 조율하기를 수 백 번을 하고 나서, 마침내 약 16시간 가량의 양자 통신을 성공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산재해 있었다. 이 양자 얽힘이 일어나는 양자 모듈을 과연 얼마나 멀리 떨어뜨릴 수가 있는가? 그리고 양자 모듈을 원거리에서 활성화 시키는 방법은 없는가? 또한 소형화 가능성은?
강현이 지금 개발한 장치는 이것저것 장착한 것이 너무 많아서 소형화는 도저히 무리였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장거리 통신을 안정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만 발견한다면 더 이상 해저 광케이블은 필요가 없을 것이며 통신망 구축에 필요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더구나 미국 같이 넓은 지역의 유무선 통신망을 유지하는 비용 역시 급감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유선 통신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파 자체의 한계로 인해 많은 중계국이 필요한 무선 통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흐음..”
그러나 여전히 강현의 마음에는 별로 들지 않았다.
[박사님,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이대로는 상용화가 무리라서.”
확실히 그랬다. 적어도 장거리 양자 통신이 가능하기 위해서 멀리 떨어진 양자 모듈을 동기화 시키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그건 아무래도 중성미자가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확실히 양성자를 이용한 양자 통신은 거리를 멀리 떨어뜨리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하지만 광자나 전자처럼 양자 얽힘의 보존이 양자 역학적으로 매우 어려운 입자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있었기에 강현은 양자 모듈 간에 일어난 양자 얽힘의 수명을 대대적으로 늘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기 위해서 다시 기존의 양자 역학을 보고 신 통일장 이론도 접목해 본 결과, 양자 얽힘이 가장 오래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정보를 읽고 전송하는 양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