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
“?”
강현은 샐리가 편지를 두고도 가지를 않자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뚱한 것이 꼭 삐진 것 같았다.
“박사님. 성욕을 주체 못할 것 같으면 여자를 사귀세요.”
“풉!”
그는 그녀의 말에 홀짝이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섹스를 하고 싶으면 여자랑 해야지 왜 인형 같은 걸 만들어요?”
“....”
강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섹스가 목적이 아니라고 말하면 믿어줄까?
“세, 섹스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럼요?”
“그냥 만들고 싶다고 해서.”
“무수히 많은 응용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섹스로이드냐고요.”
역시나 그냥 넘어가지를 않는다.
“그런데 왜 샐리가 그걸 신경 쓰는 겁니까?”
“지금 박사님 이미지가 어떤지 아세요?”
“알죠.”
“알면서 그렇게 태연히 있어요?”
“뭐, 변태 학자 소리를 들어도 연구에 별로 지장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왜 지장이 없어욧!”
발끈하는 샐리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해진 강현이었다.
“몰라욧! 알아서 하세욧!”
화가 난 그녀는 돌아가 버렸고 강현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태 자신에게 가진 마음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언제 자신을 포기할 건지... 조만간 빨리 정리를 해야 하는데 기회가 생기지 않아서 여태껏 미루고 있었다.
강현은 입맛을 다시며 한 숨을 쉬고는 다시 모니터 화면에 집중했다.
한편 셀리가 방문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잭이 방문했다. 역시 문제는 기술 유출이었다. K 시리즈의 위력을 보면 강현의 자세 제어 프로그램은 전략 기술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이번 기술 제공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강현에게 유감을 표명했다. 전통적 로봇 기술 강국인 일본에게 기술이 제공 되었으니 차후 그들이 이를 이용해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기술들을 하나하나 제공하는데 굳이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해?”
“현. 너는 네가 가진 기술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군. 지금 중동에서 네가 개발한 K 시리즈가 얼마나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지 알아?”
잭이 언급하는 것은 전술타입용 모빌 아머와 K 시리즈로 구성된 스쿼드였다. 펜타곤에서는 이것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다가 미식 축구에서 힌트를 얻었다. K 시리즈가 완전 자율 행동을 하지 못하고 항상 행동을 수정 받아야 하는 한계가 있어 병사들을 이용하는 방법과 달라야 했고 미리 개개인의 전술이 짜여져 움직이는 미식 축구 만큼 적당한 운용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미식 축구처럼 몇 기는 라이너 역할처럼 전방에서 적들을 압박하는 화력조, 한 기 는 러닝백처럼 적진을 향해 돌격을 시키는 방법으로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컨드롤하는 지휘용 모빌 아머는 쿼터백의 역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었다.
총알이 먹히지 않는 무시무시한 이들의 돌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폭발물을 진행 방향에 매설해 두거나 RPG따위의 대장갑 화기를 이용하는 것 뿐이지만 둘 다 전술적으로 이용하기에는 난감했다. 유동적으로 변화는 상황에서 어디에 폭약을 매설 해야 하는지 결정하기가 어려웠고, 또한 빠르게 움직여서 RPG따위로는 맞추기 힘들었으며 때로는 능동방어 유닛을 장착해 탄두를 공중폭파시키는 놈도 있어서 상대하는 것보다는 후퇴하는 것이 더 나을 정도였다.
“중요한 건 CNC 장갑이지 자세 제어 시스템이 아냐. CNC 장갑이 없었다면 자세 제어 기술은 그냥 장난감용으로나 사용될 걸? 비싸서 기껏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방사능이 넘치는 원전에서나 가능하고 그것도 방사능으로 오염되어서 반감기 가속장치로 방사능을 제거하면 수명도 엄청나게 줄어들거야.”
인간형 로봇의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강현이 생각하기에 인간형 로봇의 의의는 그저 인간의 로망에 불과했다. 인간의 정신이 탐구의 주제가 되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완벽하지 않은 로봇은 그거 인간을 닮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을 대신하는 용도 이상으로는 쓸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것도 인간형이 아니어도 된다. 실제로 강현은 K 시리즈의 전술적 이용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이였다. 한국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K 시리즈를 개발한 것은 시기적으로 무력을 재빨리 갖추어야 했기 때문에 HA에 사용된 기술력을 이용해 재빨리 개발을 한 것 뿐이었다. 굳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이족 보행은 필요없고 오히려 개나 소같이 사족 보행 로봇에 등에 다가 갖가지 무기를 다는 편이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빌 아머 프로젝트나 K 시리즈는 그저 돈지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전쟁 무기들이 목적은 공포를 주며 미국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것이었기에 강현은 별말하지 않았다. 돈지랄로 덤벼드는 적이 적어진다면 애꿎은 사람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넘어가도 상관없어. 아즈삭 시리즈와 인공지능 기술이 없으면 제대로 변용도 못할걸? 그래서 원천 기술이 중요한거야.
강현은 원천 기술을 중요시 생각한다. 그리고 자세 제어 프로그램은 전혀 원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아즈삭이란 인공지능을 이용한 피드백 노가다의 산물로, 아즈삭만 있다면 언제든 새로운 자세 제어 프로그램을 만들 수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인공지능 기술을 응용한 파생 기술인 것이다.
그에 비해 CNC 장갑은 다르다. 그것을 만들기 위한 원리들과 그 과정에서 필요한 공정의 핵심 데이터야 말로 진정한 원천 기술이었다.
“그리고 국가에서 지정한 기술을 판 건 아니잖아.”
“자세 제어 시스템을 전략 기술로 정하려고 한 걸 반대한 게 너잖아.”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기술이야.”
역시나 마찬가지 이유로 별로 중요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강현은 전략 기술 설정에 반대했다. 이유는 역시나 인공지능 기술만 보호한다면 그딴 기술은 얼마든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다. 요즘 들어 ‘강현이 개발한 기술이다’라는 타이틀만 붙으면 어떻게든 국가 보호 기술이라든지, 아니면 전략 기술 등의 딱지를 붙이려는 정부의 행동이 지적 재산의 소유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 온건 그것 때문이야? 일개 기업에 기술을 제공한 것 때문에?”
“일개 기업이 문제지. 성인 용품을 제작하는 기업이잖아. 네 이미지가 어떤지 알고는 있어?”
잭이 찾아온 이유가 기술유출 하나만은 아닌가보다. 하긴 겨우 그런 문제라면 미국 정부에서 철저하게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감시하면 되지 않은가?
“내 이미지가 왜?”
“하아.. 넌 이미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이야.”
미국 과학력의 상징이 바로 강현이라는 인물이었다. 특히 반감기 가속 장치의 개발은 강현을 올해 노벨상의 가장 유망한 후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신 통일장 이론은 완전히 해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려되지 않았다.)솔직히 지금까지 강현이 노벨상에 오르지 못한 것은 그가 개발한 기술이 뭔 가를 새롭게 만든 기술이라고 하기 보다는 거의다 기존에 학문적으로 연구되고 알아낸 것들의 응용과 파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현이 만든 기술 중에 가장 경제적 파급력이 높은 석유 제조 기술도 기존의 유전자 조작 기법을 엄청나게 높은 수준으로 한단계 진화시킨 것에 불과했고 가장 사회적 파급력이 높은 인공지능 개발의 경우 컴퓨터 기술에 관련된 노벨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거론되지 못했다.
강현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 연구 결과가 하나 같이 당장 상용화가 가능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고 수준도 높았으며 발표 간격이 도저히 혼자 연구를 하고 있다고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었고 엄청난 경제적 파급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을 만한 것은 제시와 함께 연구했던 JH 세포와 가설 수준에 머물렀지만 공식적으로 오류를 찾을 수 없는 신 통일장 이론 뿐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미국내에서 동양인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증가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 교포 사회에서는 강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같은 한국인이란 점에서 으시대기도 했다. 물론 강현이 한국이라는 나라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해 미국에 온 정치적 난민이라는 대중적 인식으로 인해서 입밖에 꺼내지는 못했다. 만일 그런 식으로 다른 인종과 대화를 한다면 한국이라는 나라를 조롱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현은 자신이 그런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말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보통 유명세와 함께 귀찮음이 함께 오지 않는가? 한국에서도 천재 소년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국회나 기업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얼마나 귀찮게 굴었는가?
“하아.. 난 모르겠다.”
잭은 한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뭐라고 말을 해도 강현이 어떤 사항에 대해 결정을 한다면 기어코 그 결정을 밀어붙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천재다운 괴짜 기질은 물론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기 전까지 자신의 결정을 밀어붙이는 태도는 과연 지금까지의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만큼 고집도 세다는 사실도 동시에 증명했다. 그래서 그에 관한 것도 보고서로 올렸지만 왜 여전히 계속 쓸데없이 자신을 보내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차피 이런 문제에 있어서 강현의 태도를 크게 변화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도대체 왜 판거야?”
“흥미롭지 않아? 과연 섹스로이드가 완성되면 인간은 어떻게 적응할까?”
“하아.. 또 한국에서 진행한 그것과 비슷한 거야?”
“호기심의 원천은 그렇지만 그걸 빌미로 뭘 하겠다는 건 아니야?”
잭은 또 한국에서 일을 벌인 것처럼 크게 일을 벌릴 거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물었고 강현은 직접적으로 답했다. 아무래도 잭이 파견된 것은 차후에 있을 강현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잭은 강현의 대답에 한 숨을 내쉬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는 이쪽 생리에 너무 밝았다. 그래서 대화나 일처리에 오해가 없고 신속해서 편하기는 하지만 정보부 요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까발려진 것과 마찬가지라 불안한 면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어찌 알 것인가? 이미 미국의 아즈락을 비롯해 아즈삭 시리즈를 첩보에 사용되는 기관에는 모조리 강현의 바퀴벌레 스파이가 잠입해 있다는 사실을..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화제를 바꿨다.
“만일 일본 정부에서 기술을 빼가면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소송을 걸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일본은 그 특유의 화(和)라는 문화때문에 강자에게 굴복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섬나라라는 특성으로 인해서 공멸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엄격한 신분 질서를 만들어 놓고 그런 문화가 현대까지 이어온 그들로서는 자신들을 이긴 최초의 국가에게 아무래도 약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그 나라가 세계 패권을 쥐고 있으니 여타 말할 것이 있을까?
덕분에 강현은 이런 저런 공작을 하지 않아도 미국이라는 배경 덕분에 일본 정부가 기술을 무단 도용한다고 해도 제제 하는 일에 별로 부담이 없다. 이것이 정부와 공생하는 이의 이점이었다. 물론 아나키스트가 보았다면 더러운 협잡이라고 비난했겠지만 그게 뭐 어땠다는 건가?
“끄응...”
잭은 앓는 소리를 했다. 그 와중에 미국의 입김은 도대체 얼마나 가해져야 하는 것일까? 미국은 대국이고 입김 한 번 불어주기 위해서는 내부에 수많은 이해 관계를 조율해야 했다. 그 와중에 정보부의 일거리가 늘어가는 것은 당연한 소리였고 사무직인 잭에게는 책상 가득 서류 뭉치가 쌓이는 이미지가 머리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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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갈길이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