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07화 (107/241)

107화

힘든 노동을 할 로봇을 만들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로강도가 약한 세라믹 재질로도 충분히 성능을 구현할 수 있었고 또한 일본은 세라믹 신소재 개발의 강국이었다.

그 밖에는 전체적인 구조는 인체를 모방한 것이니 별다를 게 없었고 배터리 기술은 무료이기 때문에 역시 문제가 없었으니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두뇌. 즉, SNP와 그것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이었다.

한 때 강현이 HA 시리즈를 발표했을 때 일본은 이를 모방해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일본이 아무리 로봇 강국이라고 하지만 강현의 개발품은 개발 개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자 세계의 생명이라는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만든 병렬연산 시스템은 폰 노이만 구조를 따르지 아니했고 아즈삭 시리즈라는 결과물을 낳았으며 이 난해한 하드웨어를 능숙하게 코딩할 수 있는 인력은 일본 전체로 따져도 겨우 2명 뿐이니(몸값이 엄청나다. 아즈삭 시리즈의 메인테넌스를 요구하는 은행과 정부 기관, 증권 등 이미 아즈삭 시리즈는 전자 보안에서 필수적인 시스템이었다.) 일본의 기술을 응용하려고 해도 수많은 애로 사항이 꽃폈다.

그래서 강현이 HA 시리즈를 선보였을 때 일본 열도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도무지 기존의 기술로 찔러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나마 적용 가능한 기술은 지엽적인 곁가지에 불과했고(관절, 소재, 구조, 센서 등) 핵심인 제어 기술(프로그래밍, 제어용 하드웨어 등)은 기존의 방식을 완전히 뜯어 고치는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의 방식대로 말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자 노벨상을 몇 명이나 수상한 일본의 과학력은 몇 년안에 HA 시리즈 못지 않은 결과물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되었다.(그래 봤자 강현이 이미 개발한 모델의 개량형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흐음.. 일단 허락 하겠습니다.”

하즈모토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강현은 이 일을 그냥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 안드로이드 자세 제어 시스템은 특허나 그런 것이 되어 있지 않지만(모방하기에는 데이터가 너무 크고 그것은 아즈삭의 보조를 받는 테크닉의 일종이기 때문에 사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미국 정부에서는 전략 기술로 인정하고 있는 상태였다.

“제가 준 자세 제어 시스템이 일본 정부에 간접적으로도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약속하실 수 있습니까?”

“네.”

하즈모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적재산권자로 충분히 고려할 만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제 이름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설사 나오더라도 저는 그저 서류에 사인을 했을 뿐이지 개발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강현의 두번째 조건에서 하즈모토는 난색을 표했다. 세상에 어느 계약에서 상대방의 사정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가? 사람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이와 관련된 일에는 그저 노코멘트로 일관 할테니 그쪽에서도 노코멘트로 해달라는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래도 눈가리고 아웅이 뻔할텐데..”

K  시리즈나 HA 시리즈처럼 자립 보행형 더치 와이프가 출시되면 분명 강현이 연관되어 있음이 만천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성인용품 제작에 일가견이 있는 헵스라고 해도 그 정도로 기술력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도로 기술력이 있으면 뭐하러 더치 와이프나 만들고 있을까?

하즈모토의 그런 의문에 강현이 답했다.

“손벽도 손이 마주쳐야 나는 겁니다.”

안드로이드 더치 와이프가 출시되면 분명 최소 한 차례 이상 이슈가 되고 소란이 일 것이 분명했다. 시청률이 목마른 언론, 찌라시들의 줄찬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과의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인가? 그저 한 개발자의 개발 의욕에 자신도 응원하고 싶어졌다? 아니면 과연 섹스로이드라고 할 수 있는 물품이 어떤 현상을 가져올지 궁금해졌다?

어떻게 무슨 말을 하든 구설수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런 구설수에 말려들면 귀찮아진다.

하지만 침묵으로 일관하면 지친 언론은 떨어져 나갈 것이 분명했다. 언론이 침묵하고 새로운 이슈를 찾아 가면 대중의 시선 역시 그리로 쏠릴 것이다. 그러니 이번 하즈모토와의 계약에 관해 어떤 견해도 밝히지 않는 것이 사태가 확대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즈모토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인이 된 계약서를 소중히 가방에 넣어 돌아갔다.

[박사님. 왜 허락하신 겁니까?]

“그냥.”

[이해가 안 됩니다.]

“그냥 한 번 보고 싶었어.”

그건 학자의 입장에서 섹스로이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남자의 입장에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강현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달 후 강현은 섹스로이드, 제품명 도로시의 출시를 듣게 되었다.

“전 세계의 도로시들이 개명을 해야겠군.”

강현은 혀를 찼다. 작명 좀 신경써서하지. 전세계의 도로시들이 섹스로이드에 도로시란 이름을 붙인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겠는가?

그의 예상대로 세상 여기저기에 퍼진 도로시들이 헵스의 회사 사이트에 갖은 욕설을 비롯해 항의글을 올리자 은근슬쩍 DXA-00이라는 모델명으로 바꾸어 버렸다.

하지만 한 차례 크게 소란이 일었고 각종 매스컴을 타고 말았다. 이것이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라면 헵스의 경영진들은 무척이나 뛰어난 것이 분명했다.

DXA-00. 섹스도 가능한 인형이 등장하자 전세계에서 관심을 보였다. 물론 그중 대다수가 남자임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 섹스로이드의 시현은(성행위는 없었지만) 많은 남성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목소리를 내는 시스템이 일품이었는데 최대한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도록 돈을 들였다.

그리하여 완성된 섹스로이드의 출시가는 무려 한화로 5억원 상당. 초고급 외제차를 훌쩍 뛰어넘는 가격이었지만 그 정도 돈을 들여 섹스로이드란 기상천외한 상품을 사고 싶어하는 재력가들은 많았다. 일례로 10억 상당의 슈퍼카는 재고가 남지 않는다. 그래서 헵스 또한 희소성을 강조하며 단 100대만을 제작했고 모두 팔려나갔다.

구입자들은 이 섹스로이드의 무게가 50kg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어깨에 짊어지고 다닐 수 있을 정도가 아닌가?

하지만 당연한 것이 야리야리한 여성의 몸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공 근육의 크기는 작아졌고 일본에서 개발한 세라믹 재료(인공 관절에 쓰인다.)를 이용해 만든 골격은 금속으로 만든 가격보다 훨씬 가벼웠기 때문에 사람에 가까운 체중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입한 강현의 무전극 배터리 역시 그래핀이나 CNT등 가벼운 탄소 소재를 이용했기 때문에 그다지 무게가 나가지 않았다.

처음에 구입자들은 이 신기한 더치 와이프를 꽤나 가지고 놀다가 아쉬운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빈약한 인공지능, 그리고 자신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 반응. 이른바 개성이 필요하다는 것.

그들은 그들의 요구를 헵스에 피드백을 했으나 헵스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결국에는 인공지능의 개선이었다. 그러나 받아온 강현의 기술력에도 ‘개성’을 프로그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강현도 아즈삭을 통해 판매의 추이와 여러 사항들을 알아보고 있었고 구입자들의 요구 역시 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감정이나 반응을 어떻게 프로그램하라는 말인가?

감정이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다. 그 기본에는 욕구가 존재하지만 이성을 갖춘 인간의 감정은 무척이나 복잡한 심리학적 과정에 의해서 도출된다. 즉, 한 인간의 개성이란, 생물학적 발달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은 사회 환경적 요소, 거기에 개인의 뇌와 신체에서 벌어지는 생화학적인 반응, 이 모든 것들의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반응에 의해서 일어난다.

설사 그 모든 변화를 추적하고 기록할 수 있다고 해도 한 인간의 개성을 타인이 원하는 형태로 정확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변수가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에 조정이 불가능하다.

아즈삭만 해도 그렇다. 강현이 설정한 욕구에 의해 자아가 성립되기는 했더라도 이따금 강현을 놀라게 만드는 예상치 못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섹스로이드 구입자들의 소원은 이루기가 불가능했다.

설사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개성을 가진, 즉 자아를 지닌 로봇이 가지는 여러 의미들.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구입자는 물론 그 주변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있었다.

설사 그런 것들이 미래에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당장 당면한 문제점은 지금 강현의 기술력으로 구입자들이 원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방 하나 크기 정도 되는 하드웨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란 스스로 정보를 피드백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수정하기 위해 다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정보 처리량이 급속도로 증폭되기 때문에 필요한 하드웨어의 최소 크기는 정해져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양자 컴퓨터는 있어야 했다. 강현의 SNP나 RNP도 나노 소자를 이용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존의 반도체와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집적율은 높다고 하더라도 역시나 크기를 더 줄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양자역학적으로 불가능했다.

기본적으로 전자를 이용하는 메모리 소자의 원리는 높은 에너지 장벽을 이용해 전자를 가두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 수준의 세계에서는 전자가 아무리 높은 에너지 장벽이라도 ‘확률적으로’ 뚫고 갈 수 있다. 야구공이 두꺼운 시멘트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일이 양자세계에서는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제어용 하드웨어의 축소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완전 자율형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는 지금 수준에서는 무리였다.

하지만 헵스는 어떻게든 이런 수요자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 머리를 짜냈지만 기껏 할 수 있는 방법은 대용량 데이터 베이스를 이용해 각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기에는 헵스라는 회사는 너무 작았다. 적어도 다국적 대기업 정도는 되어야 그런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객님들의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고객님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좀 더 개선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상투적인 멘트로 상황을 종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역시나 강현에게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나 강현은 어떤 요청도 받지 않고 연구실에 칩거했다. 세상 만사를 잊는데는 그만한 일도 또 없었다.

“박사님. 여기요.”

그런 강현에게 대량의 편지 뭉치가 또 날라오기 시작했다. 이메일도 확인하지 않고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강현의 연구실은 정부에서 보안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 수고했어요.”

강현은 샐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박스에 담아서 옮겨야 할 정도로 편지의 양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섹스로이드가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 벌써 어떤 나라에서는 섹스로이드를 이용한 성매매 기업이 설립을 준비 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과연 채산성이 맞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그로 인해 섹스로이드는 사람이 아니니 성매매란 범죄가 적용되지 않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 작품 후기 ============================

슬럼프 입니다. 사실 저번 에피소드에서 유대인 네트워크와 한 판 벌이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와중에 중동에서는 핵폭발도 일어나고 아수라장이 되고 막장으로 치닷는 시놉시스가 있었습니다만 이것 저것 생각해 보니 주인공이 너무 갑이라서 싱겁게 마무리 되고 말았습니다. 아즈삭과 바퀴벌레 스파이의 정보력이 너무 뛰어나서리.. 하아.. 정말 외계침략이라도 시켜야 제대로 갈등구조가 만들어질까요? 글이 안써지네요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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