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06화 (106/241)

106화

<11-일상>

물론 민주주의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다원주의가 일반화되고 또한 자본주의의 대립격이었던 공산주의의 붕괴로 인해 진보 보수의 경계가 상당 부분 옅어졌다. 그러나 모험을 추구하는 것이 젊음의 특징 중 하나라는 사실은 달리 이견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나 젊음을 거치기 때문에 젊었을 적의 꿈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세파에 깎이거나 변형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랬던 추억은 누구에게 있지 않은가?

강현은 바로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헨델 사장에게 지금에 맞는 삶의 목적이 있듯이, 마리아에게도 삶의 목적이 생겼음을 인정하라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던 것이다.

[… 끊겠네. 더 이상 딸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

상상외로 딸아이와의 갈등이 심한 모양이다. 헨델 사장은 대화를 종료하고 싶어했고 강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귀찮게 변명할 필요없이 중매를 거절할 좋은 문구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일단 걱정거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블랙홀을 모델화한 수식들과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들과 씨름을 벌였다.

= = = =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평화협정을 제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평화협정! 중동 평화의 시발점이 되나?]

약 두 달 전 헨델 사장이 말했던 말처럼 중동의 혼란을 가라앉히는 일들이 진행되었다. 세간에서는 드디어 이스라엘이 정신을 차린 건가 싶었지만 강현이 아는 것처럼 그 이면의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의구심을 갖던 팔레스타인들은 상상 외로 공정하면서 온건한 평화협정 문구에 환호했다. 평화협정은 이스라엘의 농간, 혹은 화전양면전술의 일환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는 강경파도 있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했다. 이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끝없는 죽음과 희생에 지쳐버렸던 것이다.

그러는 한 편 아프리카 강현의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알렌과 그의 동료들은 인원을 확충하고 인원 교육에 힘쓰고 있었다. 순환 방목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축들을 다루는 이들이 확실하게 그 이치를 이해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축이야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일단 순환 방목을 이용한 목축업이 짐바브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일부에서 먼저 시작을 해야 했다. 일단 시작을 하니 다른 많은 아프리카 나라에서도 관심을 가져서 사람들을 보내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그 활발한 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강현의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다. 계약서에 ‘익명’으로 지원을 한다는 부분이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면 분명히 언론에게 귀찮게 했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조항이었다.

그러나 그를 당황하게 만든 일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HA 시리즈를 만들 수 있게 허락을 해달라고요?”

“네. 거기다가 실리콘 피부를 입힐 생각입니다.”

일본에서 온 하즈모토라는 개발자가 찾아와 하는 말은 HA 시리즈를 이용해 기존의 실리콘 인형보다 더 완성도 높은 인형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곁들여 은근슬쩍 내민 것이 바로 여성의 음부를 완벽히 모방한 자위기구였다. 속칭 오나홀. 강현이 개발한 인공 근육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여성기의 해부학적인 형상을 완벽히 모방하기 위해서 현존하는 초인기 AV 여배우의 그곳을 CT단층 촬영을 통해 3D 이미지화를 하여 그를 토대로 성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배우 말고 마찬가지로 다른 몇 명의 배우의 CT단층 이미지를 이용해 시제품을 만들었으니 한번 사용해 보라고 뻔뻔스럽게 내밀기까지 해서 강현을 당황시켜버렸다.

“그, 그러니까 어디에서 나오셨다고요?”

“헵스에서 나왔습니다.”

“자, 잠시만요.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강현은 일단 헵스가 뭐하는 회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박사님. 무척이나 당황하셨습니다.]

“당황하는게 당연하지! 면전에서 영업을 한답시고 자위기구를 내밀다니! 당황하지 않을 도리가 있냐? 아무튼 햅스인지 핵스인지 무슨 회사인지 확인해봐.”

[네, 박사님.]

아즈삭은 곧 출력결과를 보여주었다. 헵스는 각종 자위기구를 만드는 일본 회사 중 하나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펠라○오를 구현한 자위기구였다.

“이런 곳이었구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곳에서 개발부장으로 일하고 있으니 자위기구를 내미는데도 수치심이 별로 없을 만 했다. 개발자란 자고로 자신이 개발한 물건에 자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세간의 욕을 먹을지라도 말이다.

[박사님. 관련 검색에서 이런 것도 찾았습니다.]

“자, 잠깐! 그런건 왜 또 출력하는 거야?”

현란한 포르노 영상들이 출력되었다. 어떤 새로운 매체가 발달하면 가장 먼저 선을 보이는 것이 포르노다. 성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확실히 돈이 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유명한 통신 사업가인지 개발자인지가 자신들은 단지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이 포르노를 좀 더 빨리 다운받을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한 것이라고 자조했겠는가?

[성(性)에 대해서는 연구 안하십니까?]

“나, 나중에 얘기하자. 나중에.”

강현은 아즈삭에게도 당황한 채로 다시 응접실로 왔다.

“그, 그러니까 성상품을 개발하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 그렇군요.”

강현은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천재라고 해도 익숙한 틀을 깨어버리는 상황에서는 당황하는 건 마찬가지 인가보다.

그러나 그는 곧 평정심을 되찾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더치 와이프 안드로이드 버전을 만들고자 하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역시 핵심을 파고드시는군요.”

사실 수많은 공상과학 소설에서 이미 그러한 문제를 언급했다.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의 신체를 가진 로봇이 개발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경우 인간과 로봇과의 사랑,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영혼의 존재 등 수많은 인문학적인 문제들을 대중에게 던진다.

그러나 사실 그것이 실제로 구현이 된다면 당장 닥칠 문제는 바로 그것이 수요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성에 대한 질문 따위는 사업성, 즉 돈보다 나중의 문제였다. 그리고 인간의 성에 대한 욕구는 상상 외로 크다. 전세계 포르노 사업, 음성적인 성매매 사업을 비롯한 콘돔 같은 각종 성인용품 시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즉, 하즈모토가 기획하는 움직이는 더치 와이프 계획도 성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내다본 회사의 승인이 있었기에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때, 확실히 회사에서 돈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하즈모토가 이렇게 미국까지 날아와 강현을 만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즈모토는 그런 회사의 신뢰와 또 자신의 개발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강현의 기술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3대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식욕, 수면욕, 성욕이죠. 그리고 그 3가지를 만족하면 더 고차원적인 욕구를 바라게 된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아성찰의 욕구죠.”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익히 자신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선진국이라는 곳에서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성욕의 경우에는 더 그렇죠. 식욕과 수면욕은 혼자서라도 충족할 수 있지만 성욕은 혼자서 만족하는 건 정말로 힘든 일입니다.”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설사 남녀가 서로 만난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겠습니까? 연애랍시고 온갖 감정 놀이를 하면서 시간낭비 돈낭비를 하죠. 결국에는 그 끝에 요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당당한 표정으로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넣는 하즈모토. 강현은 점점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끼어들 수 밖에 없었다.

“잠깐. 남녀간의 사랑은 고려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남녀간의 사랑은 호르몬적으로 딱 2년에서 3년이 되면 만료됩니다. 그 이후에는 정으로 함께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성욕의 해소가 매우 중요한 겁니다.”

강현은 하즈모토가 할 뒷말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성욕의 해소요?”

“그렇죠. 남녀가 서로 만나는 이유에서 성욕을 제외한다면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맞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언제나 사람은 자신의 성욕이 해소가 되어 정신이 말끔해질 필요가 있는 겁니다. 성욕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의 남녀간의 만남은 그저 불장난이 되거나 욕망에 얽혀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만들 개연성이 너무나 높습니다.”

“......”

강현은 할 말을 잃었다.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경우만 따져도 제시와 관계를 맺었던 것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지 그녀에게 욕정 하기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녀의 몸 이외에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를,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 같았고 누나 같았으며 자신과 대화를 자유자재로 나눌 정도로 똑똑했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주었다. 그녀가 성욕에 얽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즈모토의 말은 공감가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의 욕구를 풀기 위해서 상대의 육체를 갈망하는 것과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갈망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게 더치 와이프를 안드로이드화 한다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요?”

“수요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움직이고 말하는 더치 와이프가 있다면 여성을 만나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 아닙니까?”

“저희는 성인용품 제작사지 데이트 주선 업자나 결혼정보 회사가 아닙니다. 그저 인간은 성욕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남녀의 예를 든 것 뿐입니다. 다른 예로는 성욕 때문에 수시로 발기해서 정상적인 회사 생활을 못하는 남성의 경우가 있습니다.”

순간 강현의 머릿속에 그 정도면 정신과에 가서 섹스 의존증인지 진단을 받아봐야 하지 않는가 생각했지만 이내 머리 속에 지웠다. 성욕이든 뭐든 다 집어치우고 이 이상한 대화에 말려든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다. 지금 자신의 머리속은 전혀 다른 속성의 대화에 엉망진창이었다.

강현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먼저 판단했다. 일단 이 계약을 통해 그에게 이득이 될 것과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그 다음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생전 처음 접하는 이 기묘한 대화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었다.

“....”

하즈모토는 강현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자 긴장한 기색으로 침묵을 지켰다. 그는 과연 기술을 제공할 것인가?

강현에게 받아야 할 중요한 기술은 HA 시리즈의 전반적인 핵심 기술이었다. 특히 미국의 군용 물자인 K 시리즈의 자세 제어 시스템은 필수적이었다. 골격과 관절의 재료는 각국에서 따로 개발한 신소재를 이용하기 때문에 그다지 필요 없었다. 하즈모토도 일본에서 개발한 신소재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세라믹 재료로 만든 인공 관절을 생각하면 충분히 사람의 허리에 올라타서 허리를 흔들 수 있는 더치 와이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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