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104화 (104/241)

104화

양자 세계의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불연속성이다. 심지어 에너지 역시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흑체 복사(양자 역학의 시발점) 연구를 통해 에너지가 가질 수 있는 최소단위를 발견하고 에너지 준위간의 차이는 그 최소단위의 배수라는 사실도 발견하고 그것을 기술한, 가장 중요하면서 유명한 물리 상수인 플랑크 상수를 물리학계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 플랑크 상수는 고전물리학의 세계와 양자역학의 세계를 연결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랑크 상수처럼 강현이 발견한 변수도 신 통일장 이론과 기존의 양자역학을 연결 시키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특이한 점은 에너지의 크기를 기술하지 않는 변수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에너지가 같지만 양자 상태가 다른 입자들을 기술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었다.

초시공간의 에너지가 아니라 상태만을 규정하는 변수의 발견은 강현을 고무시켰다. 그리고 비단 그런 변수가 이것 뿐만이 아니라는 직감도 있었다. 양자역학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매개입자들의 종류는 많았고 그들을 모두 통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변수가 하나 더 있어야 했다.

그는 한 달 가까이 수식들을 정리하면서 수학적으로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그것은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는 양자간의 비국소성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시간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많은 고전 물리학자들을 골머리 앓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마저 상대적이라는 사실은 절대시간의 개념마저 붕괴시키며 많은 과학자들을 맨붕의 상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시간마저 상대적이라면 도대체 시간이란 것의 근본은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양자 역학에서는 1960년대에 이미 시간이 양자 얽힘에서 온다는 실마리를 잡았고 1983년 실험으로 이를 검증했다.

간단히 설명하면 관측자가 계 안에 있는 경우와 관측자가 계 밖에 있는 경우를 비교하는 것이다. 양자 역학에서 관측자에 의해서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이를 통해 양자가 있는 계 안에서 관측자가 관측하는 경우에는 확실하게 결과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계 밖에 있는 관측자가 관측하는 경우 그 계안에서 양자 얽힘으로 인한 변화는 확인할 수 없다.

시간의 가장 큰 속성이 뭔가? 바로 변화이다. 변화가 없는 계는 곧 멈춘 상태,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그 계에 속하지 않은 관측은 양자에 변화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과학자들은 시간은 그저 양자 얽힘의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하며 시간마저 어쩌면 신기루에 불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뜨거운 커피가 식는다는 현상을 양자 역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시간에 따라 에너지가 평형 상태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위의 공기 입자와 커피 입자간의 양자 얽힘을 통한 평형상태로 가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럼 다시 블랙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블랙홀에서의 시간은 멈춰있다. 이는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증명되었다. 그런데 시간은 양자 엃힘에서 나왔다고 하니 블랙홀 안의 양자와 밖의 양자가 얽힐 수가 있을까?

없다. 변화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양자 얽힘의 비국소성에 위반이 된다. 공간적인 장애 없이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강현은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해답을 발견한다면 신 통일장 이론을 이해하는데 큰 장벽을 하나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흐아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해볼까?”

강현은 사고가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 것을 느끼며 기지개를 켰다. 게슈탈트 붕괴라고, 어느 한 가지 개념을 너무 생각하다보면 그에 관련된 뇌세포에 피로가 와서 그 개념을 떠올리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그저 뇌를 쉬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마침 시계를 보니 벌써 늦은 밤이라 잠을 자는 것도 좋은 것 같았다. 하품이 나오는 것이 어서 침대안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즈삭의 전갈이 강현을 조금 귀찮게 했다.

[박사님. 전화가 왔었습니다.]

“응? 누구에게?”

[카길의 경영자인 헨델 사장입니다. 꼭 좀 연락을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정말로 급할 것 같지 않은 전갈은 강현의 집중이 끝나고 나서 전달하는 아즈삭이다. 그 본연의 존재이유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왜지? 이유는?”

[그의 딸인 마리아와 관련된 일이라고 합니다.]

“쩝..”

혹시라도 중매라도 서려는 건가? 강현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돈과 영향력이 있는 강현을 사위, 혹은 친척으로 두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았고 그에 비례해서 중매도 많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번 사교파티에서 만난 마리아를 넌지시 언급하며 딸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틀렸다.

“투자를 철회해 달라니요?”

헨델 사장이 꺼낸 주제는 강현이 알렌 세이버리에게한 막대한 투자였다.

[그런 많은 돈을 그런 증명되지도 않은 일에 사용하겠다니 보는 입장에서 안타까워서 그렇네.]

“그건 알고 있어요.”

알렌 세이버리의 주장과 연구 결과는 많은 과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빈약한 증빙, 근거없는 예측이라고 말이다. 특히 현재 사막화 된 땅의 절반 이상을 녹지로 만든다면 이산화탄소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그의 말은 수치적으로 말이 안된다면서 비판을 받았다. 기존의 성과 역시 정말로 생태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인지 증명할 수 없다고 비판 받았다.

[그런데 왜 굳이 거기에 투자하는 건가?]

“정말로 궁금해서요.”

[무엇이?]

“생태계 모방이라는 방법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 지가 말이에요.”

[…..]

과연 학자다운 호기심이었다. 하긴 알렌 세이버리의 계획대로 된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없었던 광역 생태학 실험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그에 일조한 사람이 될 것이다. 거기다가 어차피 쌓아두고 쓰지도 않는 돈이 아닌가?

강현의 대답에 전화기 너머로 헨델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곧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과학적 여부를 떠나 매우 중요한 문제네. 나는, 아니 우리는 알렌 세이버리의 계획을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어.]

“우리란 곡물 카르텔을 말하는 것이죠?”

[그렇네.]

“그거랑 이거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그건 말일세..]

헨델은 설명을 시작했다.

세계 곡물 생산량 중에 약 5%가량이 사료용이다. 겨우 5%라고 하지만 엄청난 양이다. 양만 따져도 약 5억 6천만 톤이다. 그로 인해서 형성되는 시장이 얼마나 클까? 또 그 사료를 이용하는 공장형 축산업의 규모는?

그래서 가축을 이용한 알렌 세이버리의 방법은 매우 주목을 받고 있었다. 비록 옥수수 같은 곡물 사료의 섭취가 없어져 체중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지만 넓은 아프리카 땅에서 대규모로 그와 같은 일을 벌이게 된다면 엄청난 고기가 생산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기존 공장형 축산업의 도태를 반드시 불러올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웰빙시대, 좀 더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의 선택은 뻔하다. 똥 오줌으로 범벅이 되고 엄청난 가축밀도로 인해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키워진 고기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손을 탔다고 해도 자연에서 난 것을 먹고 큰 고기를 선택할 것인가? 광우병, 비위생적인 사육환경 등을 생각하면 되도록이면 후자의 것을 선택하지 않을까?

여러가지 요소를 생각할 때 알렌 세이버리가 주장하는 방법으로 기워진 가축이 시장에 나온다면 기존 축산업계는 붕괴할 가능성 마저 있었다. 그것은 매년 5억톤이 넘는 곡물을 사주는 고객을 잃어버리는 것이고(알렌 세이버리의 순환 방목 시스템은 곡물 소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건 곡물 카르텔에 엄청난 타격이었다. 즉,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순환 방목 시스템으로 녹지가 늘어나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로 인해서 파생될 시장 혼란인 것이다.

“흐음.. 그렇군요.”

헨델이 말하는 뒷배경을 들은 강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아예 같이 아프리카에 투자를 하시는게 어떤가요?”

저번에 연회장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아프리카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헨델은 거절했다.

[곤란하네.]

“왜죠?”

[그건.. 말하기 어려운 일일세..]

강현은 뭘까 하다가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곡물 시장을 쥐고 있는 카르텔 역시 유대인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대인들이 아프리카와 사이가 안 좋은가보죠?”

[후우.. 정말 자네는..]

헨델은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직설적인 강 박사였다.

[그렇다네.]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은 식민지였었다. 그리고 식민지를 벗어나더라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각종 이권을 선진국, 그러니까 이전에 자신들을 착취했던 나라에 헐값으로 매각할 수 밖에 없었고 각종 차관이나 대출 등 빚에 얽매여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본 세력에 유대인들이 상당수 관여 되어 있었으며 인종적인 차이와 그로 인한 거부, 증오로 인해서 유대인 자본이 자리를 잡기 어려운 땅이 또한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에 진출하기 어려운 조건인데다가 아직 중동의 갈등도 마무리 되지 않았구요. 그쵸?”

[허헛! 진짜 자네는.]

헨델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천재의 식견은 남달랐다.

인종과 역사적 걸림돌을 뛰어넘어 유대인이 아프리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식량뿐만 아니라 기술, 자본, 에너지 등 여러 분야의 유대인 네트워크의 역량이 필요했다. 그래야 순환 방목 시스템을 통한 축산업은 지하자원이든 뭐든 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한 중동의 갈등과 피, 테러들은 아프리카에 섣불리 손을 댈 수 없게 만들었다. 수 많은 전쟁사를 보면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전선을 둘로 분리하여 패배하는 예가 너무 많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은 중동이란 전선과 아프리카란 전선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프리카의 여러 문제를 방관하기로 했다. 적어도 중동의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아프리카가 자립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까지 꼭 패권을 쥐고 싶습니까?”

[자네는 모르네. 소수인종의 비애라는 것을.. 나라 없는 설움이 어떤지..]

수 천년간 나라 없이 떠돌았다.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인종을 초월한 이해관계, 즉 돈이었다. 그러나 그런 돈마저 증오로 가득 찬 대중과 미친 권력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 그들은 수천 년 간 경험했던 멸시보다 더한 아픔을 겪었다.

비단 학살 당한 것은 유대인 뿐만이 아니었다. 나라 없이 떠돌아 다니던 집시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학살 당했다. 그들에게 나라가 있었다면, 소수 인종이라며 감히 증오의 화살을 돌릴 깜냥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면 과연 소수 인종에 대한 국가적 범죄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뭐 이런 저런 사정은 알겠지만 말입니다.. 왜 그 때문에 저의 지적 욕구를 해소하는 일을 방해 받아야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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