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생태 모방이라.. 훌륭하네요.”
사실 그건 그렇게 새로운 발상은 아니었다. 이미 각종 기술에서 생물 모방 기술이 연구되고 응용되고 있었다. 유전자 조작을 한 미생물로 약효 물질을 뽑아내는 것 역시 생물 모방 기술의 한 갈래에 불과했다.
다만 생물 모방이 아니라 생태계를 모방하겠다는 발상의 스케일 자체가 대단했다. 그리고 그 발상을 실행하기 위해서 입증 자료를 모으고 당국과 지역 주민들을 설득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강현은 절대로 못 할 사업인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도와드릴 것은 사람들을 교육하고 가축을 살 돈이라는 거군요.”
알렌 세이버리의 생태 모방에서 사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생태계의 포식자로서 가축들의 이동을 결정하고 관리하기 위해 반드시 이 생태계 사이클을 이해해야 했다. 그래서 교육을 받을 필요가 반드시 있었다. 아프리카엔 버려진 땅이 너무 많았고 가축은 돈을 넣어 사면 되지만 그 가축을 관리할 사람이 없었다.
“네.”
“하지만 아프리카입니다. 치안도 불안하고 전쟁이 끊이지 않죠. 땅이 풍요로워진다고 해도 오히려 그 때문에 표적이 되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그래서 일단은 치안이 유지된 국가들에 한정해서 사업을 할 생각이에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는 곧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강현은 서류를 훑어보았다. 이상한 내용은 없었고 매년 얼마씩을 기부한다는 내용과 함께 사업의 추이와 자금 사용에 관한 것을 이메일로 전달받는 권리가 있다는 정도만이 기재되어 있었다.
마리아는 강현의 사인을 받은 서류를 소중하게 봉투에 집어넣더니 손을 내밀었다.
“박사님, 고마워요. 그리고 이 사업을 확실하게 지지해 주시는 거 맞죠?”
“네. 보니까 매우 좋은 사업이더군요. 저의 지지부진한 이산화탄소 해양 고정 장치보다 훨씬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도 좋은 방법이고요.”
미 정부가 기획하고 강현이 만든 해양 고정 장치는 그 성과가 지지부진했다. 아니 이산화 탄소를 고정하고 있다는 증거는 있었지만 그것이 수산물의 개체 증가로 이어진다는 정황이 없었다. 절반의 성공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요? 역시 박사님은 좋은 사람이에요.”
엇!
강현은 마리아의 느닷없는 가벼운 키스에 급히 소매로 입술을 가렸다.
“안 묻는 루즈에요. 닦을 필요는 없어요.”
그녀는 곱게 눈매를 휘더니 휙하고 돌아가 버렸다. 폭풍같은 마지막이었다.
강현은 뭐 저런 여자가 있나 생각하면서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싱숭생숭한 기분은 오랫동안 지속되엇다.
며칠 후 강현은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이메일로 알렌 세이버리의 고마움 가득한 편지를 받고 흐뭇한 기분으로 아즈삭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양자 통신이었다.
양자 세계의 신기한 현상 중 하나인 양자 얽힘을 이용하여 빛의 속도로, 하지만 흔히 빛이 가진 제약없이 정보를 전송하는 기술이었다.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면 어떤 하나의 계를 구성하는 두 개의 양자를 특정 방법으로 분리하면 두 양자 간에 얽힘 상태가 생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스핀 값이 반대인 전자쌍이 분리되어 어떤 오비탈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이 가지는 스핀 값은 항상 반대이며 따라서 한 쪽 전자의 스핀값을 확인하면 자동적으로 남은 다른 쪽 전자의 스핀값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또다른 예로는 어떤 결정질 원소에 광자쌍을 주입해 전자를 들뜬 상태로 만들면 이 전자가 다시 안정 상태로 가면서 방출하는 광자들은 전자라는 양자계를 거치며 서로 간섭해 얽힘 상태가 되어 서로가 가진 에너지나 편광 방향 등이 상관관계를 가지게 된다.
이런 양자 얽힘을 이용한 전송 기술의 핵심은 바로 전자의 양자 얽힘 상태를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는 하는 것이지만(전자기기에 이용하게 위해서) 지금까지 뾰족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절대 온도 수준까지 냉각한 다이아몬드를 이용해 전자를 가두는 실험이 있을 뿐이지만 이것 역시 전자를 그리 오래 가두지는 못했다. 양자 세계에서 언제나 전자는 어딘가로 가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양자 얽힘. 신기한 현상이다. 전자기파는 대역폭에 한계가 있어 공공재일 수 밖에 없으나 양자 통신 기술이 실현되면 사실상 그 대역폭은 무한대가 된다. 통신 회사가 경매를 통해 주파수를 대여할 필요 없이 스스로 양자 얽힘 상태의 매개체를 이용해 통신 서비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많은 뉴스 기사에서 양자 전송 기술을 빛보다 빠른 전송기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국소성의 원리(어떤 물리적인 현상도 공간을 매개해서 전파된다는 원리)를 해치기 때문에 아무리 양자 얽힘이라도 정보의 전송 속도는 빛보다 빠를 수는 없다는 것이(비록 국소성의 원리에 위반되는 현상이라도) 현대 양자 물리학의 정설이다. 또한 정말로 양자 전송이 빛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한다면 그것은 정보를 과거로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타임 패러독스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만일 빛보다 빠른 입자를 발견한다면 이 이론은 다시 수정될 가능성도 있었다.
아무튼 강현은 양자 얽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어째서 양자 얽힘은 일어나는 것인가? 왜? 얽힘 상태에 있는 빛의 편광 방향은 서로 상관관계에 있어야 하는 것인가? 왜 얽힌 상태에 있는 전자쌍의 스핀은 서로 반대여야 하는가? 양자 얽힘을 매개하는 것은 무엇인가?
강현의 물음은 아인슈타인이 물었던 질문과 상당히 닮아있었다. 양자역학의 이러한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숨겨진 변수 이론이 제창되었으나 다시 벨이라는 과학자를 통해 이 숨겨진 변수 이론을 만족시키는 양자 이론은 없다는 것을 벨의 부등식으로 증명하고 양자 세계의 비국소성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실험을 설계했으며 과학자들에 의해서 무수히 반복 증명되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양자 얽힘이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 아직 양자 역학은 제대로 된 질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양자 세계에서 기존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상관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현의 의구심은 더욱 짙어졌다.
‘매개없는 상호작용은 가능한가?’
양자얽힘 현상은 마치 어떤 연락이 불가능한 두 사람이 한 사람이 왼손을 들면 다른 한 사람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오른손을 드는 것과 마찬가지의 형상이다. 이는 국소성의 원리를 어기는 것이지만 양자세계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관념적으로 그것은 가능한가? 아니 수학적으로 가능한가 이 말이다. 벨의 부등식을 통해 양자 세계의 국소성이 유지되는지 검증하는 실험은 결국 벨의 부등식의 승리고 끝났지만 두 입자간을 매개하는 무언가는 분명히 존재했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상호작용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무언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숨은 변수 이론이 옳다는 것으로서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강현이 생각하기에 얽힘 상태의 양자간에는 무언인가가 있었고 이것이 무엇인지 해석하는 것이 양자 통신 기술의 열쇠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현은 양자세계의 특성인 비국지성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공간의 제약없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
그렇다면 공간은 무엇인가? 강현의 다중차원중첩설에 의하면 이 통상적인 공간은 각각의 형태를 에너지의 매개가 되는 공간이 겹쳐져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설명하지도 입증하지도 못한 공간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 입자가 있는 것이 아닐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벨의 부등식으로 인해서 숨은 변수 이론은 폐기 되었다. 양자 얽힘을 위해 상호작용을 하는 어떤 입자가 존재한다면 반드시 에너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안되나?”
그는 생각을 거듭하다가 숨은 변수 이론이니 벨의 부등식이니하는 것들을 머리에서 지웠다. 선입견은 때론 신선한 발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나와있는 무수히 많은 신비로운 현상들 중에서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찾아낸 것은 바로 천문 물리학이었다. 우주의 비밀에 다가간다는 점에서 극소의 세계를 탐구하는 양자 역학이나 극대의 세계를 탐구하는 천문 물리학이나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연코 현대 천문 물리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블랙홀과 암흑 물질이다.
블랙홀은 단순히 엄청난 질량이 뭉쳐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멈춘, 시공간의 구멍이었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블랙홀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중력이 너무 강해 시공간을 일그러뜨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신비한 것이 바로 우주의 70%나 된다는 암흑 물질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팽창하거나 수축하고 많은 천문학자들도 이런 개념을 지지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중력에 의해 팽창이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우주의 팽창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일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점점 가속하고 있었다.
우주에 있는 어떤 것이 은하계들을 서로 멀리 밀어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에너지양을 생각하면 우주가 가진 에너지의 약 70%를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인류는 이에 대해서 어떤 이론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저 이것에 암흑 물질, 혹은 암흑 에너지라는 명칭을 붙였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 암흑 에너지가 반중력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한다는 것일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력을 거슬러 은하계가 떨어지는 속도를 가속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둘 중에 강현은 블랙홀에 관심을 가졌다. 정확히는 블랙홀의 특이한 점인 사건의 지평선.
이 사건의 지평선 이내로 들어가면 블랙홀의 중력장에서 탈출하기 위한 속도가 빛의 속도를 뛰어넘기 때문에 빛도 탈출하지 못한다.
하지만 만일 양자 얽힘에 있는 입자 중 하나가 블랙홀에 떨어진다고 하자. 이때 양자 얽힘을 통한 정보 전송은 일어날 것인가?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비국소성이 양자 세계의 특성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서 강현은 지금까지 나온 블랙홀의 여러 수학적 모델을 이용해서 신 통일장 이론에 하나 하나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작업은 고난하고 머리가 아픈 작업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양자 얽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지금 있는 기술로 양자 얽힘을 응용하기는 어렵다. 기초 연구의 깊이가 깊어져야 다양한 공학적 시도가 가능한 것이고 지금까지 밝혀진 양자의 세계의 원리만으로는 다양한 접목이 어려운 것이다.
강현은 차근 차근 블랙흘의 수학적 모델을 신 통일장 이론으로 풀어해쳐 기술하는 작업을 진행 하던 중에 자신이 만든 공식 중에서 에너지를 매개변수로 가지지 않는 변수를 발견했다. 이 변수가 속해있는 집합은 그것은 어떤 상수의 배수만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냥 일반적인 복소수를 도입하게 되면 그 변수를 응용하는데 모순이 발생하는 아주 특이한 변수였다.
“이것이 양자 얽힘의 매개변수일까?”
============================ 작품 후기 ============================
후기: 몽골의 사막화에 대해서는 온난화가 주 원인인지 환경 파괴가 주 원인인지 검증하는 연구 내용은 없지만 몽골의 사막화가 가속된 것은 유목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생활 양식이 바뀌고 산업화를 시작하고 난 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죠. 온난화로 인해 강수량이 줄어들고 호수나 강이 매마르는 지역은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러나 생태계가 지구 환경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대기의 20%가량 되는 산소는 모두 광합성 활동에 기반해서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